| 독일 고전주의를 이야기할 때 양축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괴테와 쉴러가 그들이다. 그 중에서 괴테는 고전주의라는 말 대신에 쓸수도 있을 만큼 고전주의의 근원같은 존재이다. 고전주의 자체가 그가 이탈리아 기행을 다녀왔던 때부터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전주의 정신이 가장 잘 발현된 작품을 말하라면 「이피게니에」를 드는 것이 보통이다. 아가멤논 왕 가족의 비극 이야기는 호메로스로부터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다루었던 주제이다. 그리스 시대의 3대 비극 작가중 하나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와 독일에서 최고로 꼽히는 괴테도 이에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그 둘은 똑같이 「타우리스의 이피게니」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교 및 대조의 대상이 될 만 하다. 여기서부터 에우리피데스와 괴테의 작품의 차이를 보면 고전주의에 대한 정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살았던 시대는 그리스 시대. 인간 중심의 헬레니즘 사회였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神의 존재를 자신들의 위에 놓고 살았다. 이런 경향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王」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의해 결정된 운명대로 결국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두 눈을 찌르는 것으로 神에 대해 반발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소극적인 저항으로 끝나고 만다. 결과가 이미 나타난 마당에 그런 저항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神 중심의 시대라는 것은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의 많은 부분에서도 역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前史가 되어 있는 이피게니를 신탁에 의해 바쳐야 했던 아가멤논 왕의 선택에서도 그러하다(왕 자신도 그런 선택에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 <신탁이 실패하는="" 것을="" 신들은="" 확실히="" 용납하지="" 않을걸세.="">(오레스트), <운명의 힘이란="" 인간이="" 대항할="" 수="" 없는="" 것입니다="">(오레스트), 등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이런 신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당시였으니 에우리피데스 역시 신 중심으로 사고했을 것이다. 그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에서부터 끌어오던 것을 펼쳐 보임으로써 신이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움직인다는 것처럼 비치게 하여 신 중심의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반면 괴테가 살았던 시대는 계몽주의와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대를 거친 고전주의 시대이다. 이 때에는 신 중심의 사고라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컸다고 여겨진다. 이런 점은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신들께서 그대의="" 운명을="" 어떻게="" 정하셨건,/그대의="" 집안과="" 그대에게="" 어떤="" 생각을="" 품으셨건="" 간에="">( I-3, 토아스), <그런 종류의="" 핑계(여신이="" 이피게니를="" 잡고="" 있어서="" 토아스와=""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찾으려고="" 애쓰지="" 마시오.="">( I-3, 토아스), <인간의 정신이="" 기어코="" 이룩하고자="" 하는/일은="" 무한해요.="" 수많은="" 세월="" 동안/여러="" 나라와="" 세대를="" 거치면서="" 시인의/입을="" 통해="" 전승되는="" 과정에서="" 부풀려지는/그런="" 위대한="" 행위를="" 우리는="" 당장="" 이룩하고="" 싶어="" 해.="">( II-1, 필라데스) 등을 보아서 그렇다. 물론, 이와 상반되는 구절들도 많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생각을 찾았다면 다른 부분들은 이야기 자체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에 삽입된 부분 쯤으로 치부해도 될 듯 하다. 특히나 그 자신이 신관(神官)인 이피게니의 말은 더더욱 그렇다. 비단 인물의 대사에만 이런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절정에서 대단원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극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할 만하다. 두 클라이맥스 사이의 차이점를 살펴봄으로써 두 시대의 차이점을 보자. 에우리피데스의 극에서는 이피게니 일행이 바람에 막혀 가지 못하고 토아스에게 잡히려 하는 그 순간에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모든 일을 설명해주고 중재해 준다. 인간들의 문제에 신이 직접 관여하여 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이 때에 신이 나와야 하는 곳에서 신이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신이 없이는 이야기의 진행이 되질 않고, 신만이 모든 것의 해결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토아스가 결국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아테나 여신은 토아스와 이피게니, 오레스트에게 명령하고 토아스는 <아테나 여신이여,="" 신들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무모한="" 자입니다.="" …="" 신들의="" 위력에="" 대항하면="" 대체="" 저희에게="" 무슨="" 명예가="" 있겠습니까?="">(토아스)라며 그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결말이 나게 된다. 반면 괴테의 작품에서는 클라이맥스에 신은 그리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간접적으로 등장하여 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틀림없지만, 결국 토아스와 오레스트를 중재시키는 것은 이피게니의 따뜻한 마음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안="" 되옵니다.="" 전하,="" 그런="" 피흘리는/증거가="" 필요치="" 않사옵니다.="" 검에서/손들을="" 떼세요.="" 저와="" 제="" 운명을="" 생각해보소서="">( V-6, 이피게니)라는 대사나 <그렇게는 안="" 되옵니다,="" 전하!="" 축복의/말씀없이="" 마지못해="" 보내시면="" 소녀는="" 전하="" 곁을="" 떠나지="" 않겠사옵니다.="">( V-6, 이피게니)라는 대사가 증명해 주듯, 신이 전혀 영향을 못 끼치지는 않지만, 진정한 결말로 진정한 화해로 이끄는 것은 이피게니의 아름다운 마음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괴테는 어쩌면 신의 등장으로만 해결되는 그리스 극에다 인간의 마음씨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정 인간 중심이라면 인간이 가장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둘의 같은 점을 지적하라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둘 다 삼일치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두 작품이 공히 삼일치의 법칙을 지키는 것은 공교로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괴테가 에우리피데스를 패러디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기도 하지만, 고전주의는 넓게 보아 삼일치가 대체로 지켜지는 시대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책은 작품 선정이 아주 좋다. 괴테의 고전주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만을 골라 엄선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번역은 몇 군데 미덥잖은 부분이 있다. 서양의 언어를 번역하는데에 있어 지나치게 한국적인 언어로 바꾸느라, 번역이 아닌 번안이 되어버릴 염려가 있다. <전하>라든가 <소녀> 등의 말이 바로 그 비근한 예가 되어 줄 것이다.소녀>전하>그렇게는>절대>아테나>인간의>그런>신들께서>운명의>신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