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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내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했던 시절 위로 내리는 지 모른다 어느 겨울밤처럼 눈도 막막했는지 모른다 어디엔가 눈을 받아두기 위해 바닥을 까부수거나 내 몸 끝 어딘가를 오므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피를 돌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흰 풍경뿐이어서 그토록 창가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애써 뒷모습을 보이느라 사랑이 희기만 한 눈들, 참을 수 없이 막막한 것들이 잔인해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비명으로 세상을 저리 밀어버리는 것도 모르는 저 눈발 손가락을 끊어서 끊어서 으스러뜨려서 내가 알거나 본 모든 배후를 비비고 또 비벼서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 이 되겠다는 듯 쌓이는 저 눈 풍경 고백 같다, 고백 같다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전문)
어쩌다 보니 다시 이병률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책장에는 그의 시집이 있었고 나는 이런 시를 읽는다. 마치 처음 발견한 시를 읽는 것처럼. 그제 새벽에 내린 눈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 밤에 둥근 보름달이 생각나기도 했다. 새벽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차 안에서 달리는 차가 아니라 눈이 내게로 달려들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자꾸만 그리워졌다. 처음 버스를 타고 멀미를 했던 시절이 말이다. 그리고 같은 눈발을 보면서 시인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중얼거렸다. 시인은 그때 외로웠던 것 같다고. 시를 쓸 때 시인의 마음에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고. 이병률의 『바람의 사생활』에서 자꾸만 외로움과 쓸쓸함이 보였다. 그 감정을 알 것 같기도 했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쓸쓸함이 이 계절과 닮아 겨울의 끝에 이 시집은 나를 기다렸던 건 아닐까.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가 황혼에 눈길을 주다보면 저 멀리 풍경이 강가에 다리 놓는 모습 보입니다 강 저편에서 강 이편으로, 강 이편에서 강 저편으로 서 로 각자의 기둥을 놓고 손을 내뻗는 모습에 무작정 속이 아리다가도 그 속도가 아름답기도 하고 장해 보이기도 하여 창가가 뒤 휘둘립니다 며칠에 한 번쯤 통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神)은 자 꾸 자리르 만들고 허문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당신들도 지워졌으므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신 은 당신들의 장엄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목숨 걸고 자본주의의 풍경이 되는 일을 합니까 한 풍경이 등짐을 지고 일 갔다 돌아옵니다 자꾸 먼 데를 보는 습관이 낸 길 위로 사무치게 사무치 게 저녁은 옵니다 다녀왔습니다 (「저녁 풍경 너머 풍경」전문) 고단한 퇴근길, 시인도 생활이었다. 우아하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밥벌이를 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 길, 그 길에 아는 눈과 만났다면 덜 외로웠을 텐데.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든다. 우리는 저마다 풍경이 된다, 풍경이 모여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숭고하고 거룩한 풍경이라는 건 안다. 우리 눈에 펼쳐지지 않은 그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자리하고 있을까. 어쩌면 길게 이어지는 슬픔의 풍경이, 어쩌면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저녁 풍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계절 몇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 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 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 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당신이라는 제국」부분) 한 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나침반처럼 눈부시게 눈부시게 떨리는 뒷모습에게 그러니 벌거벗고 서 있는 뒷모습에게 왜 그리 한없이 서 있냐고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뒷모습」부분) 짐작할 수 없는 쓸쓸함이 펼쳐지는 시를 읽으면서 누군가의 등을 생각한다. 혼자 간직한 비밀, 혼자 간직한 사연을 지키느라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헤치며 가는 사람. 그건 시인의 등일지도 모르고 내가 아는 한 사람의 등일지도 모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걸 그들이 알았다면 조금 덜 외로웠을까. 그건 자신만의 몫이라고 괜찮다고 말했을 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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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혹은 ‘검고 고요한 저 소실점’ - 이병률, 『바람의 사생활』
몸살 난 몸으로 펼치는 시적 순례(방랑)의 길은 고행(苦行)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성의 빛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는 ‘바깥’에서 빛나고 있다. 일체의 내력을 내려놓고, 아는 사람조차 하나 없는 외지(外地)를 떠돌며 시인은 제 몸에 새겨진 ‘비린내’를 하나하나 삭이려 한다. 비린내를 삭이지 않으면 시인은 몸살의 지경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힘들다. 뱀의 독(말)에 물린 대가로 앓아야 하는 몸살의 기운은 오로지 신성한 언어로만 치유될 수 있다.
「꽃들의 계곡」에서 시인은 오랫동안 앓은 자의 몸을 시의 세계로 불러낸다. “한번 호되게 앓는 동안/ 내 몸의 주인이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이 시의 화자는 고백한다. 몸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화자가 처한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폐렴을 겨우 이기고 떠난 어느 멀고 먼 길”에서 또 다시 병을 얻은 존재는 호숫가 오두막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다. 방랑하는 자가 얻은 하룻밤의 휴식은 “바깥주인이 끓이는 닭고기 스프 냄새”와 “오두막집 아이가 한아름 꺾어다 내미는 풀꽃 다발”이 연출하는 뜨거운 감각의 향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두막집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저 바깥은 황혼이 울어대는 소리/ 짐승들이 길을 지우고 발 씻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해질 무렵의 호숫가 주변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감각의 세계는 끝없는 방랑에 지치고 지친 화자의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살아 있는 생명들이 내뿜는 숨결을 마심으로써 온몸을 들끓게 했던 몸살의 기운은 시나브로 가시기 시작한다. “내 몸의 주인인 저녁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저녁은 온갖 생명들이 제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밤에 잠 못 들고 눈물을 흘리는 시인의 정황을 생각한다면, 뜨거운 감각으로 넘쳐나는 저녁의 풍경은 몸살 난 몸으로 경험하는 세계와는 다른 ‘충일(充溢)한’ 세계를 시인 앞에 펼쳐 보인다. 뱀의 지독한 독(말)이 중화되는 자리에서 현현되는 저녁의 충만한 풍경은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에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물의 말」)로 각인되어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시린 이마”(같은 시)의 이미지는 ‘당신’에게 향해 가는 순례의 길 위에 확연한 감각으로 놓여 있는 것이다.
감정의 속닥거림에 취했었나 링거 바늘을 타고 들어오는 광기의 헛것들을 들이마시느라 잠 못 든, 날 찾아온 그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실의 마비였다 사는 일이 곤한 일인 줄 모르게 나는 다녔고, 그대도 곤한 줄 모른 채 이역 멀리서 물결이 무늬를 더듬듯 살고 있었다 腸이 진정되면, 다시 티벳트 여행길에 올라야지요 그러자 그대, 좀처럼 납빛을 털지 못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곳은 고원이라 공기가 없어요 그대를 만난 살얼음 낀 병실 복도 귀퉁이에서 한 채의 힘이 무너지고 있었다 병원 앞 숱한 바퀴 자국 위로 폭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날, 그대가 왔다 오래 지워지지 않던 숱한 주사 자국 새로 공기가 스며들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 「공기」 2연
‘中國 柳州, 어느 병실의 여의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위 시는 방랑지에서 만난 한 여인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용하지 않은 1연에서 시적 화자는 방랑의 기운이 신열이 되어 밤새 앓아누운 후, “물어물어 찾아간 어느 병원의 나무칸막이 뒤에 그대”와 조우(遭遇)한다. 주목할 점은 “천천히 그대가 병인을 눈치챘다 나도 나를 눈치챘다”라고 화자가 진술하고 있는 대목이다. “연필 부러지는 소리보다 작게 세상을 툭 치고 지나가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번뜩이는 깨달음은, “그대를 만난 살얼음 낀 병실 복도 귀퉁이에서 한 채의 힘이 무너지는” 순간의 경험으로 묘사된다.
넓은 등 하나를 찾기 위해 떠난 순례의 자리에서 만난 이 여인은 그러나 “이역 멀리서 물결이 무늬를 더듬듯 살고 있”을 뿐이다. 저마다의 사람들이 가야 할 저마다의 길이 있다. 몸이 나으면 티베트로 떠나야 하는 것이 화자(시인)의 길이라면, 이역의 여인은 그녀대로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이 있다. 그녀는 티베트로 떠나려는 사내에게 “그곳은 고원이라 공기가 없어요”라고 걱정스레 말한다. 자신의 병인을 눈치 챈 여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공기’라는 말은 “오래 지워지지 않던 숱한 주사 자국 새로 공기가 스며들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화자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방랑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수없이 쓰러졌을 것이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숱한 주사 자국은 화자의 이러한 고행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화자의 몸속으로 스미는 그대의 말(숨결)은 그러므로 호숫가 오두막집에서 화자가 받은 환대의 윤리를 그대로 재현한다. 타자의 환대는 그러나 타자(당신)를 향한 환대로 쉽게 전이되지 않는다. 타자의 환대가 대가가 없는 양상으로 진행된다면, 타자를 향한 환대에는 무엇보다 타자에 대한 주체의 욕망이 깊숙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양이 감정의 쓸모」라는 시에서 시인은, 한 시인을 사랑하는 서점 직원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에 새겨진 환대의 불가능성을 세밀하게 천착한다. 이 시의 1장을 참고한다면, “당신은 가지를 입에 물고 나는 새”이고 “나는 제자리에서만 당신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하나의 무의미”이다. 새와 무의미(나)의 경계는 제자리에서 “나는 새를 보며 놓치지 않으려 몸 달아하”는 시적 화자의 불안한 정황이 묘사됨으로써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내 바깥의 주인이 돼 버린 당신”이라는 시구에 표현되는바, 당신은 화자가 미칠 수 없는 바깥에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은 화자의 바깥에 있는 실재적(real)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 그것이 의미화되는 순간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는 이내 사라져버린다.
“의미는 가까이 말아요”라는 시적 진술은 화자가 처한 이러한 정황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이 시의 2장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인을 “문장으로 문장으로 스치다가” 사랑에 빠져버린, 한 서점 직원의 이야기가 시화되고 있다. 문장으로 표현된 부재의 대상은 가지를 물고 무의미(나)를 가로지르는 새처럼, 현실 속으로는 들어오기 힘든 실재(the real)이다. 서점 직원은 그러한 실재를 상상 속에서 사랑할 수 있지만, 그와의 만남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데서 그 사랑은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병률의 시에 구현되는 ‘당신’의 시학은 이처럼 당신을 향한 서점 직원의 불가능한 사랑(욕망)과 상당히 닮아 있다. 「당신이라는 제국」에도 표현되듯 ‘당신’은 “봄날은 간다”의 리듬에 맞춰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실재의 이미지와 같은 존재이다. 당신이라는 제국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실재의 현현은 시간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는 주체의 한계를 뚜렷이 부각시킨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봄날은 간다”.
이역의 땅에서 ‘나’가 받은 환대의 윤리에 비한다면, 타자를 향한 ‘나’의 사랑에는 사랑에 빠진 주체의 한없는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을 밀지 못해서 잡지 못해서 살이 붙어 흉이 많다”(「순정」)는 부분에 나타나듯, 존재의 상처는 실로 시간 밖으로 나아갈 수 없는 주체의 한계지점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그리하여 「관계의 사전」에 이르면, ‘나’의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당신’이 지목되는 극한의 상황이 발생한다. “당신은 병질 엄(广)이다. 당신이 이미 병들어 있다면, 그런 당신을 한없이 사랑하는 ‘나’ 역시 병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병질 엄’을 부수로 한 예순한 글자를 찾아 “한 글자 한 글자 소리내어 읽으니/ 멍들고 파리해지고 경련이 일고 머리가” 헌다고 화자는 이야기한다. 당신이 그리워 당신에게 갔지만, 당신이 사방에 퍼뜨린 병질이 도리어 ‘나’의 몸속으로 들어와 가뜩이나 몸살 난 몸을 더더욱 아프게 한다.
시적 화자의 마음에는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견인」)가고 싶은 근원적인 소망이 내재되어 있다. 아픈 몸은 그것을 찾기 위한 길을 내보이지만, 아픈 몸은 또한 그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에둘러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당신에게 다가갈수록 당신은 저 멀리 사라진다. 「봉인된 지도」를 따른다면, “검고 고요한 저 소실점”에 있는 존재가 바로 ‘당신’이다. 넓은 등을 가진 당신을 향한 순례는 그러므로 소실점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달과 지구의 자리가 멀어져 달이 작아 보일 때까지/ 일년은 삼백육십오일이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일 때까지”(같은 시) 이루어지는 순례의 여정은, 신형철(「이렇게 헤어짐을 짓는다」, 시집 해설, 128쪽)의 말마따나 “죽음을 향해 가는 일이 그의 일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돌려 말하면 달의 영향으로 100만 년마다 15초씩 길어지는 지구의 하루처럼, 시인의 순례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영원성의 반복적 리듬으로 펼쳐진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시인은 하나의 소실점에서 다른 소실점으로 계속해서 이동한다. 당신을 향한 시적 화자의 불가능한 사랑의 욕망은 영원한 순례라는 시적 정황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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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들려주는 시
바람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이다. 하지만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의 여운은 그 머무름의 시간보다 긴 듯 하다. 이병률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은 그 찰나의 순간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나를 흔들어대었다. 내 안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 놓더니 여기저기 숨어있는 시의 언어들이 몇 차례나 숨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나는 바람이 들려주는 시에 온 감각이 정지해버린 듯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 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며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굴처럼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 무늬들 (p.14) -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이다. 여기서 그리움은 유리창과 그 유리창의 물 자국으로 번져 표현되고, 그 그리움의 두께는 유리창에 낀 먼지로 보여 지고 있다. 밀어도 잘 밀리지 않을뿐더러, 밀린다고 해도 먼지 낀 유리창에 남는 손자국이며 물 자국들이 아쉬움과 미련의 마음 같다. 마음 줄을 따라 손끝이 아려져옴을 느낀다. 밀어도 밀어도 밀리지 않는 그 무수한 그리움들 때문이다. 손끝으로도 만져지지 않는 안타까운 그리움들 이건만, 괜시리 손끝만 자꾸 부딪쳐본다.
자리를 보고 터를 다져 집을 짓고 마당에 심은 나무가 꽃을 틔워 천지에 떨어뜨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벌판이 되는 일 피의 일 먼 길을 떠나 몸 누일 곳을 찾아 두리번거려 찾은 못에 땀 젖은 옷 벗어 걸고 이곳은 어디쯤일까 하는 현기증으로 이건 누구의 냄새일까 하는 궁리로 잠을 못 이루고 잠시 세월을 데리고 갔다가 애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난 곳으로 돌아오는 일 피의 일 당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그 사랑의 경로들이 백년을 죽을 것처럼 살고 다시 백년을 쉬었다가 문득 부닥친 한 목숨에게 뼈가 아프도록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 넣는 일 - 피의 일(p.56) - 자리를 잡고, 터를 잡고, 쉼 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비로써 찾아든 중심. 아마도 그 중심으로 모든 감각과 시간이 한곳으로 집중되고 쏠리게 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마치 지구에는 원심력이 있듯 사랑에는 너라는 중심이 있다. 그러다 ‘당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사랑의 경로’를 이탈하는 날에는 원심력을 잃은 물체가 밖으로 튕겨나가듯 마음 또한 어디론가 튕겨져 나갈 것이고, 사랑했던 시간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뜨겁던 붉은 피 대신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 넣으며 보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 시에는 이러한 ‘피의 일’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한 날 우는 새들의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는 울음 멎게 술 한잔 부어줄걸 그랬나, 발이 젖어 멀리 날지도 못하는 새야 지난날을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두운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 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곰 지나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리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 보아라 -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p.28) - 가만히 곱씹어 읽다보면 어느새 내 곁에 새 한 마리 찾아와 앉아 있는 듯 하고, 또 때론 내가 시인의 새가 되어주고 싶어진다. ‘몸이 마리워하는’사람들끼리 함께 술한잔 부딪히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눠야겠다. 살자고, 그래도 또 살아내자고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밀어내듯’ 앞으로 앞으로 밀며 살다보면 언젠가 붉게 생을 물들일 날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새벽 네시나 됐을까 이마 한가운데로 한 방울 물이 떨어져 잠에서 깬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 탓에 기와도 빗물을 다 막아내지는 못하겠나보다 자리를 옮기고 냄비를 가져다놓으니 똑 똑 잠들 만하면 떨어지고 잠들 만하면 떨어지는 빗소리가 앓은 소리를 낸다 소리를 줄이려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담그자 냄비 가득 증명할 수 없는 냄새가 나고 거꾸로 누워 천장에 눈을 맞추니 꼭 내 얼굴을 닮은 얼룩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시린 이마 안 풀리는 일들이 꿈으로 닥쳐온다 했는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느라 늦게 일어나 늦은 약속에 나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시린 이마 내가 나에게 뭐라 말을 거느라 이마 위로 떨어뜨린 그 서느런 최초의 한 방울 - 물의 말 (p.70) -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어 본다. 내 이마위에 물 한 방울 똑-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이마가 정 가온데가 시려온다. 그 끝을 따라 마음까지 시리다. 여기서 한 방울 물의 똑-소리는 자아의 노크이다. 지금 시인은 자꾸만 말 걸어오는 내면의 울림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 그 ‘안풀리는 일들’이 무엇이 길래, 이토록 시인을 뒤척이게 하는것인지. 그 ‘앓는 소리’가 시끄러워 ‘마른 수건을’담궈도 보고 애써 소리를 외면하려는 듯 자세도 바꾸어 보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안에 그 어떤 울림이 내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늘 마주하게 될 ‘시선’이며, 늘 듣게되는 ‘말’일 것이다.
책의 뒤 표지에 소설가 ‘김훈’은 자신은 시를 쓸 수 없으니 보통말로 써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보통말로도 써내려갈 재주가 없으니 그냥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바람이 들려주는 시에 나를 맡긴다. 감정의 덩어리들이 하나 둘 쭈뼛쭈뼛 고개를 든다. 그리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미련과 아쉬움, 그 어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온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일렁이는 파장에 마음결이 흔들리고, 수십 번 옷깃을 바로잡아 보지만 또 흔들리고 만다. 해설에 덧붙인 ‘신형철’의 말처럼, 정말 살아있는 것은 때로 휘청거리곤 하는가보다. 그렇다면 새삼 또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시인의 말처럼, “스친 자리가 그립다. 두고 온 자리가 그립다. 거대한 시간을 견디는 자가 할 일은 그리움이 전부, 저 건너가 그립다.” 어쩜 시인은 마음들을, 이렇게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시인은 시인인가 보다. 내가 ‘시인’이 되지 못하고 ‘보통 사람’이 될 수 밖게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7.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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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밤에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 툰드라에 사는 한 에스키모 부족의 마을에서 오로라가 너울거리던 어느 밤에 예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더군. 그때 별이 하나 떨어졌는데 그 기운이 심상치가 않아 마을의 늙은 주술사가 별의 길을 더듬어 보더니, 옆사람을 죽게 할 운명의 별이라, 그래서 그 기운을 타고 난 그날밤의 아이를 죽여야 한다 했다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부터 전해오던 다른 이야기들처럼 엄마는 아이를 안고 한밤을 타 멀리멀리 도망을 갔다더라구. 툰드라 땅은 넓고도 넓어 도망을 간 곳도 산도 하얗고 땅도 하얗고 바다도 하얗게 얼어있는 그런 곳이었고, 아이는 그곳에서 자랐다는거지. 별의 기운을 떨치기 위해 달이라 이름지운 그 아이는 얼음같이 눈같이 자라 예쁜 처녀가 되었고 아주 가끔, 1년이나 2년에 한 번 지나가던 유목 에스키모들과 잠깐 말을 섞는 것이 삶의 바깥에서 타인을 만나는 전부였다고 했어. 그래도 사랑은 있었고, 잠깐의 사랑은 그날의 별을 닮은 아이를 데려다 주었고 그 보다 조금 전에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별같은 아이는 아무도 없는 땅에서 달의 딸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지. 하지만 둘만 사는 땅에는 주술사가 없어 별같은 딸의 운명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별같은 아이가 , 별같은 아이를 낳던 달만큼 자랐을 때, 길을 잃은 나그네를 거두어 들였고 둘은 모두 그를 사랑했지만 나그네는 별같은 딸과 물이 얼면 그 위를 걸어 건너 그곳을 떠난다 했다지. 떠나기 전날, 나그네가 물이 얼었는지 보러 가고 별같은 딸이 짐을 꾸리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달은 별같은 딸을 죽여 그 가죽을 뒤집어 쓰고 나그네를 기다렸다더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말도 안되는 소린지는 가릴 것이 있나. 그저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건데,,,, 달은 별같은 딸과 나그네를 다 잃고 죽도록 외롭고 아프다가 죽었겠지. 이건 내 생각이야. .... 달이 처참한 남은 날들을 견디는 동안 그래도 가끔 고개들어 하늘을 보며 잠깐 웃던 일이 있었다는데... 오래전 달에게도 사랑이 있었을 때, 그 사랑이 덫을 놓아 잡은 짐승을 질질 끌면서 달에게로 오던 기억. 하얀 땅 위에 환상처럼 실제처럼 그 사랑과 그 짐승을 함께 먹기도 했다지 아마. 웃지도 울지도 못하던 달이 찌그러지기 직전이었다지 아마. 그 짐승의 고기가 달의 숨통을 끊었다더군, 당신이 내게 오던 길에 들은 이야기라더군. ...........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당신은 덫을 놓아 잡은 짐승을 질질 끌고 와서는 내 천막 앞에 내려놓고 그 이야기를 해주고는 무릎이 빠지는 눈길을 돌아갔고 당신이 간 길을 눈이 눈이 다시 메워버렸어. 먹고 남은 짐승의 살을 얇게 저며 말리고 있어. 당신 다녀 올 일천오백년동안 다 말려두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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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슴에 이를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걸어가겠는가. 차마 내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를 향해 한걸음 내딛는 순간 그리움을 가장한 외로움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리의 역할이 바람이라면? 우리는 바람의 사생활을 전혀 눈치 챌 수 없기에 내 머리칼을, 내 볼을, 내 가슴을 스친 바람 한 줌이 그에게 닿아 스민다 해도, 마찬가지로 그의 체취를 실고 온 바람 한 자락이 내 코끝을 간질인다 해도 아무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의문에 하나의 값이 가능할까 몰라 그 하나의 값을 갖지 못하는 일은 더 쉬울지도 몰라 이를테면 내가 당신의 누구인지 모르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것, 알게 되면 그것을 잃는 일이므로 껴안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 (‘아무도 모른다’ 부분)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고 혼자이길 원한다. 반면에 혼자임을 두려워한다. 바람처럼 서로에게 연결된 끈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왜 혼자냐고 합니다 노부부가 호밀빵 반절을 건네며 내게 혼자여서 쓸쓸하겠다 합니다 씩씩하게 빵을 베어물며 쓸쓸함이 차창 밖 벌판에 쌓인 눈만큼이야 되겠냐 싶어집니다 국경을 앞둔 루마니아 어느 작은 마을 노부부는 내리고 나는 잠이 듭니다 눈을 뜨니 바깥에는 눈보라 치는 벌판이 맞은편에는 동양 사내가 앉아 나를 보고 있습니다 긴긴 밤 말도 않던 사내가 아침이 되어서야 자신은 베트남 사람인데 나더러 일본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울 뿐 그에게 왜 혼자냐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어디를 가느냐 물으려다 가늠할 방향이 아닌 듯해 소란을 덮어둡니다 큰 햇살이 마중나와 있는 역으로 사내는 사라지고 나는 잠이 듭니다 매서운 바람에 차창은 얼고 풍경은 닫히고 달려도 달려도 시간의 몸은 극치를 향해 있습니다 바르샤바로 가려면 이 칸에 있고 프라하로 가려면 앞칸으로 가라고 차장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로든 가지 않아도 됩니다 어디든 지나가도 됩니다 혼자인 것에 기대어 가고 있기에 (‘동유럽 종단열차’ 전문) 마중나온 햇살만이 반겨주는 눈부신 호젓함. 열차의 종착지는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박수라도 치듯 반갑게 바람이 일지 않았을까. ‘겹’의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를 쉰이 넘은 형에게나‘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의 여관 옆방 사내에게나 여실히 필요했던 건 혼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임을 시인은 간파했다. 돌아서면 그리움이 되는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있기를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하다.
‘다리를 놓아 서로 그리워하는 것들의 맥을 잇는 일이 시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건널 수 없는 대상을 이제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가뿐하며 고맙다.’(시인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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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서 스물 다섯 번째 맞이하는 나의 생일날, 텅 비어버린 집을 외면한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나를 위해 준비된듯한 빈자리를 만났고, 시간에 몸을 맡긴 체 나는 책장을 넘긴다. 그 날 난 바람의 매서움이 익숙해지는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인을 만났다. 코트의 깃 한껏 세운 체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외면하며 제 갈 길을 갈 것만 같은 인물이 써 내려간 세상을 일부러 아름다워 보이려 들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푸근하게만 느껴지는 언어들. 시를 위한 언어가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시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봉인된 지도="">를 읽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의 외로움은 실로 오래 되었음을… 지구가 지금보다 더욱 긴 일년을 가졌고, 낮과 밤의 바뀌는 속도가 현재의 2배에 달하던 어느 날부터 그의 그리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당신의 입에서 절망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서도, 기다림을 포기하기 보다는 일년 삼백육십오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한 사내의 묵묵함.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허락하지 않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두드릴 때면 그 역시 아니 흔들릴 수 없었다. 혼자된 이에게는 치명적인 사람의 냄새, 둘 혹은 그 이상이 만들어낸 정겨운 흔적에 그는 한없이 약해진다. <나비의 겨울="">, <저녁의 습격=""> 등 이어지는 시들이 가진 제목을 바라보며 나는 홀로 남겨진 인간이 느껴야 하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은 그리움만으로 살 순 없는 것이라 하던데, 차라리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조금은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부터 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타인의 힘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 비록 상대가 나를 향해 증오의 칼날을 겨눌지라도, ‘이빨의 기운을 믿어 나를 물어’ 온몸 가득 뒤집히는 소유가 일어난다 할지라도(<탄식에게>)… 간혹 자신도 알기 힘든 감정들에 시달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겹>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무얼까? 상대가 멀어지기만을 바라면서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모호한 태도란…), 결국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미움보다 ‘정’이 더 강렬함을 지닌 공간이다. 돈을 받으러 간다던 친구는 몸이 불편한 부부에게 자신의 돈을 내어주는(<외면>) 공간에서 그는 자신을 죽이고파 했던 한 사람이 잘 살고 있을지 마음을 쓰고야 만다(<묵인의 방향="">).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감정들, 그 감정들로 인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 받는 그.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삶이 아니다. 결론이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이 차갑지 않다면 그것 역시 그가 꿈꾸는 것이다. 식어가는 그 순간에 느끼는 따스함을 꿈꾸는(<견인>)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읽어낸다. 자고로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존재. 내 상처가 너무 커 타인의 아픔을 읽지 못한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내 인생을 그의 언어로, 그의 시로 적셨다. 혼자면 어떤가? 눈을 들고 고개를 돌리면 들려오는 건 죄다 사람의 목소리인 것을… 쓰디쓴 소주로 내 자신을 현혹한다 하여도 결국 우린, 쓸쓸하다 할지라도 박하게도 흐벅지게도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 것을…견인>묵인의>외면>겹>탄식에게>저녁의>나비의>봉인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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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비가 오고 마르는 동안 내 마음에 살이 붙다
마른 등뼈에 살이 붙다
잊어도 살 수 있을까 싶은 조밀한 그 자리에 꿈처럼 살이 붙다
풍경을 벗기면 벗길수록 죄가 솟구치는 자리에 뭔지 모를 것이 끊어져 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
그 짐승같은 시간들을 밀지 못해서 잡지 못해서
살이 붙어 흉이 많다
남자의 순정이 더 순정스럽다. 각자의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남자의 순정은 애절하기까지하다. 그의 시는... 애절한 남자의 순정, 그 중에서도 작별을 해낸 남자의 순정을 이야기한다. 아니,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무 괴로워서 토해내는 것이다.
이별과 작별은 다르다고 한다. 이별은 어쩔수없이 헤어지는 것이고 작별은 헤어짐을 해내는 것이라한다. 그는 작별을 해내야 했었나보다. 그 절절함, 그 흉이 많은 고통들...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끌림에 이어 두번째로 접한 그의 글이다. 이사람.. 정말 순정스럽다. 이런 사람이 더 연애하기 힘들다. 여자도 마찬가지. 참 사람들은 이상하다. 순정을 바라면서도 정말 순정을 가진이에게는 순정을 주지 않는 그 아이러니함...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반대로 사랑을 잃어도 시인이 된다. 극과 극에 선 시들... 그것은 이미 언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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