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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예술 작품을 접하는 데서 가장 큰 즐거움을 맛봅니다. 예술 작품이 안기는 강렬한 행복감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 1920년.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예술 작품은 문학 작품이다. “상대성 이론이 성공적인 이론으로 밝혀진다면, 독일은 나를 독일인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프랑스는 세계 시민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내 이론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판명된다면, 프랑스는 나를 독일인이라고 부를 것이고 독일은 나를 유대인으로 선언할 것입니다.” - 1922년 4월 6일, 소르본에서 열린 프랑스철학협회 모임의 연설에서 아인슈타인은 세르비아 출신의 밀레바와 17년간 부부 사이로 지냈다. 두 사람은 1897년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서 만났다. 둘 다 물리학도였다. 그는 열여덟 살이었고 그녀는 스물두 살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밀레바와 결혼한 것은 주로 ‘의무감’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1902년 결혼 전 딸 '리제를'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의 모계에 정신질환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밀레바도 종종 우울증을 겪었고 여동생 조르카는 조현병을 앓았다. 둘째 아들 에두아르트는 의학을 공부할 무렵 스무 살 때 조현병이 발현되었다. 그는 스위스 요양원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서 느낀 실망감 때문인지 미국으로 건너가기 직전(1933) 마지막으로 에두아르트를 찾아가본 뒤로 편지도 거의 쓰지 않았다. 1912년 사촌 엘자 뢰벤탈과 재회하여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엘자는 이혼한 상태였다. 1919년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이혼하고 엘자와 결혼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엘자의 첫째 딸 일제(22)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편 엘자의 여동생 파울라에게도 눈독을 들였다. 1913년 엘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아내 밀레바는 쌀쌀맞고 유머라곤 없는 데다가 인생에서 좋은 것을 끌어낼 줄 모르는 사람이야. 게다가 자기 존재만으로도 남들이 삶에서 얻는 즐거움을 꺼버리지.” 아인슈타인은 대체로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했지만 밀레바에게는 매정할 때가 많았다. 1936년 엘자는 심장과 콩팥 질환으로 오래 투병한 끝에 사망했다. 1955년 아인슈타인은 복부 대동맥의 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떴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했던 인터뷰, 강연 그리고 편지글 중 1600여 인용구를 가려 묶은 것이다. 책에 담긴 말들은 모두 아인슈타인이 직접 말한, 혹은 직접 쓴 육성이자 친필이다. 그가 십대 때부터 76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쓴 글까지 그의 평생을 아우른다. 그 내용도 친구와 연인에게 보낸 사적인 글에서 과학 논문이나 사회 이슈에 관한 성명까지 그의 삶의 여러 측면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서로 모순된 신념을 안고 있었고, 착한 면과 못된 면을 둘 다 갖고 있었던 인간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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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인슈타인의 유명세야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외형은 만화나 그림에서 천재박사 캐릭터들이 그대로 따르고 있을 정도로 천재하면 아인슈타인이 연상된다. 그만큼 유명한 것에 비하여 사실 많은 이들이 그의 이론이나 업적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다. 그저 '상대성이론'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 정도? 상대성이론이 그래서 뭔지는 모르겠다. 알고 싶어서 과학책을 들추어도 보았다. 문과를 나왔으니까 과학은 잘 모르겠다는 식의 지레 겁먹은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잘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은 천재라는 것만 알지, 결국 그가 어떤 말을하고, 어떤 연구를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던 터다. 그런데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해왔던 말들이 모두 담겨있다. 여기에는 과학이 아니어도 아인슈타인의 다양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그래서 이 책을 보았다. 두꺼운 책에 그의 말과 생각들이 충실히 담겨있다. 과학이 아니어서 읽기도 한결 수월하고, 천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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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슈타인이 말합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안그래도 최근 전자파 발견이 이슈화 되면서 아이슈타인의 위대함에 대해 경탄하고 있었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발견들을 내가 다 본적도,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수학이 아닌 상상력으로 진리를 추구한 그의 천재적인 모습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그의 천재적인 과학적 업적만 알지 인간 아이슈타인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당대 아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슈타인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 왠지 당연한 의무이자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런 이유들이 이 두꺼운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게 만들었다. 이슈타인의 자서전인가해서 집어 들었는데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달랐다. 아이슈타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자서전 형식으로 씌여진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들을 주제에 맞게 분류하여 적혀 있는 책이었다.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들을 읽으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인슈타인을 엿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지루하게 서술식으로 풀어놓은 일반적 자서전이 아니라 주제별로 짧은 단문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어서 비교적 두꺼운 책이라 부담이 될것 같았지만 쉽게 읽어나간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을 발췌했다 제1장 아이슈타인 자신에 관하여 행복한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기 때문에 미래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경우에 따라 나중에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와 1916년 나눈 대화에서 아빠는 왜 그렇게 유명하냐는 아들의 질문에 -굽은 나뭇가지 위를 기어가는 눈 먼 딱정버레는 그 길이 굽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거야. 하지만 나는 운 좋게도 그 벌레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렸단다.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합니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다 포함합니다. -"지식보다 상상력을 더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며. 나는 평안과 행복 그 자체를 목표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것에 기반한 윤리를 나는 돼지우리의 이상이라고 부른다.... 언제나 내 앞 길을 밝히고 삶의 즐거움을 가득 채워준 이상은 선함과 아름다움과 진실함이다. 나는 안락과 행복을 목표로 삼는 데는 이끌린 적이 없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에서 (1930) 나는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어차피 금방 와버릴 텐데. (스티브 잡스도 인터뷰중 이와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10년후 애플에 대한 질문에 그는 우리는 10년후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건 고작 1년 또는 3년후의 미래정도 이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3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한다.) 나 같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을 행하고 겪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1946)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열렬한 호기심이 있을 뿐입니다. -1952.3.11 내가 요즘 같은 상황에서 직업을 고른다면 지식 추구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직업일 겁니다. -1955.1.17 막스보른에게 여기에서 내 할 일은 다 마쳤습니다 -죽어가면서 한 말. 제6장 죽음에 관하여 자연을 살펴보라. 그러면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7장 교육, 학생, 학문의 자유에 관하여 대부분의 선생들은 학생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내려고 질문을 던지는데 그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진정한 질문의 기술은 학생이 무엇을 하는지 혹은 알 능력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 또한 어디에서든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평생 어린아이로 남도록 허락되는 영역입니다. -1921.10.22 10장 인류에 관하여 사람은 자전거와 같단다. 계속 움직여야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아들 에두아르트에게, 12장 인생에 관하여 대가가 없는 것은 가치도 없다. -1927.6.27. 15장 평화, 전쟁, 핵폭탄,군대에 관하여 오늘날 횡행하는 싸움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각국 지식인들은 강화 협정이 향후 또 다른 전쟁의 원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은 윤리적으로 합당한 일이며 안타깝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 국면에서 독일이 자국의 행동을 정당화한 것을 옹호하며 독일 지식인들이 발표했던 성명서에 대항하여..1914년 10월 중순에 작성 내가 핵에너지를 끌어낸 장본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내 역할은 간접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내 생전에 그 에너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론적 가능성만 믿었을 뿐입니다. 그 일이 현실이 된 것은 우연히 연쇄반응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그건 내가 예측 할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레이먼드 스윙에게 한 말을 토대로 씌어진 '원자폭단에 관한 아이슈타인의 의견'에서 현재로서는 핵에너지를 위협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러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래서 인류가 겁을 먹으면 국제 문제에 질서가 잡힐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이 압박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겁니다 -상동 군비 경쟁은 전쟁을 예방하지 못합니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파국에 가까워질 뿐입니다. 다시말합니다 군비확충은 전쟁 예방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유엔 라디오 인터뷰에서. 1950년 6월 16일 **현재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이 생각난다. 북한의 핵은 전쟁을 초래할 것이다. 나는 살면서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만들라고 권하는 편지를 쓴 일입니다. 16장 정치, 애국심, 정부에 관하여 부적응의 시대, 긴장과 불안의 시대에는 대중이 스스로 평정을 잃어 평정을 잃은 지도자를 추종하기도 합니다 -1940년 가을 17장 인종과 편견에 관하여 인종은 사기입니다. 현대인은 수많은 인종이 섞인 복합체라서 순수한 인종이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파레크와의 인터뷰중 1929년 인종적 편견은 세대에서 세대로 무비판적으로 전수된 그리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전통의 일부입니다. 유일한 치료법은 계몽과 교육입니다. 이것은 느리고 힘겨운 과정이며, 바른 생각을 지닌 사람은 모두 여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20장 그밖의 주제에 관하여 게임 나는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시간이 없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는 무엇이 되었든 머리를 쓰는 일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혼 결혼은 우발적 사건으로부터 무언가 영속적인 것을 만들어내려는 실패한 시도이다 결혼은 문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노예상태이다. 성공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생각 좀 생각해야겠습니다 (아이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면 더듬거리는 영어로 늘 이렇게 말했다) 일 정신적인 작업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끼려면 그 일에 생계가 달려있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은 그것을 만들어 낼 때 썼던 사고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사고방식으로부터 탄생한 오늘날의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은 그것을 만들때 사용했던 사고방식으로는 풀수없다. 인식의 가장 낮은 수준은 "나는 안다"이다. 그 다음은 "나는 모른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