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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체가 매우 신선한 시리즈다. 지식인 마을, 이라 하여 우리가 따로따로 알고 있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관련이 있다 싶은 구석이 있는 녀석들만 묶어서 흐름을 파악한 책인데, 꽤나 깊이있고 동시에 재밌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 시리즈 중 한 권을 읽고서 전체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공자&맹자> 만큼은 매우 잘 쓰여졌다고 봐야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기획한 '이지 고전' 시리즈를 몇 권 읽었더랬는데, 이지 고전 시리즈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고,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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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말한 적 있는데 강신주는 말보다 글이 좋은 사람이다. <감정수업>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책으로 경력에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동양철학에 대한 강신주의 깊이는 정말 대단하다. 특히 해석의 독창성 이라는 면에서 강신주의 견해는 반짝 반짝 빛이 난다.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이제 막 인문학을 접한 사람들에게 보석같은 전집이다. 어렵고 두려워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시리즈로 인문학을 공부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내 기억에 강신주는 이 시리즈에서 두 권을 집필했다. 하나는 <노자&장자>, 또 하나가 이 <공자&맹자>다. 처음 읽은 건 <노자&장자>였는데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노장 사상을 송두리째 찢어발기는 충격적 경험이었다. 그래서 <공자&맹자>의 저자가 강신주라는 걸 보는 순간 곧바로 집어 들었다. <공자&맹자>를 강신주가 썼다는 건 공맹의 말씀에 "네네"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나와 타인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자, 그래서 장자의 사상을 소통의 철학으로 해석한 강신주에게 공맹의 무자비한 자기 중심주의는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난번 <맹자>의 리뷰에서 나는 유학이 전란을 평정하기엔 너무 이상적이지만 평화의 시대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쓴 바 있다. 왜일까? 그것은 유학이 신분의 차별을 정당화함으로써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유학의 전통적 관습 규범인 삼강을 살펴보자. 군위신강, 군주는 신하의 법칙이 되야 한다. 부위자강, 아버지는 자식의 법칙이 되야 한다. 부위부강, 남편은 아내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 이게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부장지수가 10점 만점에 8점은 나올 것이다. 유학은 근본적으로 군주, 아버지, 남편 중심적 사유 편향을 보여 준다.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다워야 하고, 남편은 남편 다워야 한다. 신하가 군주 다울 순 없고 자식이 아버지 다울 순 없으며 아내가 남편 다울 순 없다. 고상한 척 얘기하지만 사실은 절대 내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엄포가 숨어 있다. 누구든 이 규범을 거스르면 예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고 예를 모르는 사람은 금수와 같은 자니까 마을에서 내쫓든 때려 죽이든 상관 없다. 유학의 예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 시키는 마력을 갖는다. 공자의 예와 맹자의 인은 인류의 역사를 꿰뚫는 보편적 윤리 규범이 되기 어렵다. 특히 공자의 예는 주나라 시대에 정립된 예 즉 '주례'의 복원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사상은 당시에도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춘추. 수 많은 제후들이 쏟아져 나와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상황에서 옛 나라의 법도를 복원하자니, 그 어떤 군주가 따를 수 있었겠는가? 공맹의 사상이 당시에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 마음을 갈고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모두에게 군자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나름 보편성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연 선함이 인간의 본성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맹자는 우물에 떨어지려는 아이를 봤을 때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달려가 아이를 구한다는 예시로 성선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 우물 앞에 성인이 아닌 아기가 있었다고 해보자. 아기는 우물에 떨어지려는 아이를 보고 달려가 구해줬을까? 오히려 재미있는 피카부(Peekaboo) 놀이라고 생각해 박수를 치며 웃지 않았을까? 어른이 아이를 구한 건 죽음의 의미와 그 고통의 크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다. 같은 예시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공감의 철학을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거기서 성선을 봤고 오늘날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맹 이후의 유학이 그들의 사상을 신성화해 창의적 논의를 말살하고 반대자를 잔인한 방법으로 숙청하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맹의 사상은 자기가 임의로 설정한 준거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 믿는 착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폭력적 오만이 내재되어 있다. 흔히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의 중세를 다크 에이지라 부르며 조롱하는데, 과연 그 다크 에이지가 유럽에만 있었을까? 아주 오래 전 부터 유학은 혁신적 사상가들을 사문난적으로 찍어 끔찍한 형벌로 죽이는 야만을 부렸다. 유럽의 중세는 천 년, 동양의 유교는 이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유럽을 보고 웃을 일이 아니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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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맹자 유학의 변신은 무죄 저자 : 강신주 출판사 : 김영사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학(儒學)이나 유교(儒敎)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것이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고리타분하다 라던지, 가부장적이다, 남성중심적이다 와 같은 대답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가 명심보감(明心寶鑑) 한 권에 다 들어 있다면 꾸준히 읽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난 그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사춘기를 거치며 나는 유교사상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를 갉아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항적 생각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유교가 구시대의 유물이며 한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주장을 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글들도 적잖이 수용했던 것 같다. 그들은 한결 같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호주제나 여필종부(女必從夫), 가부장적인 사회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사회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해 이런 인습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한국은 종교 백화점이 될 만큼 다양한 종교가 유입 되었고 탈 유교적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한국사회는 유교의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까? 아니 벗어날 수는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교(儒敎)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이 그것은 종교이고 우리 모두는 유교를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도 장남이라는 타이틀은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있고 여자들은 결혼하면 가정과 자녀교육으로 인해 자신의 경력이 단절됨을 감수해야 하며 직장의 대표이사와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수 많은 직장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가 주는 가치관에 반(反)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죄책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교의 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은 어쩌면 답이 없는 질문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해 조금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주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희를 거쳐 조선의 정약용에 이르기 까지 유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근본을 가지고 진화해 왔는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주장이나 사상을 같이 펼쳐 놓고 독자들에게 유학의 다른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구절이 참 와 닿았다. 한 사람의 철학자를 이해하는 데는 그의 말과 이론들을 재구성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작업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동시대나 후대에서 어떤 식으로 그를 비판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한 철학자를 그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83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님은 이런 접근법을 ‘Reading of cross-check’ 기법이라고 표현했다. 즉 어떤 사상을 들여다 보기 위해 동시대에 그 사상과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사상을 파헤침으로써 그 사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강신주씨의 접근법은 독자들에게 유학의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량이 작다 보니 사실상 강신주씨의 사유 전체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 또한 했다. 특히 <대화> 부분에서 가상으로 맹자와 장자가 논쟁을 벌이는 부분이 풍부하게 독자들에게 제공되었다면 유학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강신주씨도 이 책을 통해 이 시점에서 우리가 유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중요한 화두는 던졌다. 그것은 바로 그가 유교가 아닌 유학에 집중했다는 것이고(유교는 종교적 관점이고 유학은 학문적 관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유학의 변신은 무죄>인 것과 같이 유학 자체도 상당한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그 만의 사유를 통해 독자들에게 던져준다는 사실이다. 결국 조선왕조 500년을 거쳐 뼛속 깊이 뿌리 내린 유학사상이 만들어낸 한국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유학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독자들의 숙제가 되었다. 조만간 이 숙제를 함께 고민해볼 기회가 생기길 희망한다. 노래하는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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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지식인 마을 03) ●강신주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2006년) 이슈인 호주제 폐지로 시작한다. 호주제 폐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호주제를 미풍양속,인륜이라 보는 근거로 유학 사상을 제시한다. 이 책은 유학 전통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유학을 발전, 변화시킨 학자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조금씩 변모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첫 째가 공자의 사상을 다룬 부분, 둘 째는 맹자의 사상과 그 특징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성리학자 주희와 조신시대 실학자 정약용을 다루고 있다.
읽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어 사서삼경이나 공맹지도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입문서, 혹은 유학 사상의 창시와 승계 변화를 알기에 좋다.
공! 감! 구! 절!
-안연이 인(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 그 언어와 행동이 '예'에 합치되면 그것이 곧 인이다. 하루라도 그렇게 한다면 온 세상이 인을 따르게 된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안연이 말했다. "좀 더 상세한 실천 조목을 말씀해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어리석지만 이 말을 섬기겠습니다." 『논어』「안연」편 -(p.41)
-사람들은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상황을 당하게 되면,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고, 지역 사회의 친구들에게 친찬을 바라서도 아니고, 아이의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관찰한다면,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지심은 (禮)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知)의 단서이다. 『맹자』「공손추」편-(p.73)
-월인천강의 비유가 중요하 이유는 주희의 유명한 존재론, 즉 이기론(理氣論)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기(氣)가 있다면 도리〔=이치〕는 곧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 이런 기(氣)가 없다면 도리(道理)는 있을 곳이 없게 된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 달이 있는 것과 같다. 이 물이 있기 때문에 하늘 위의 달을 비출 수 있으니, 만약 이 물이 없다면 결국 물에 비친 달도 없게 된다. 『주자어류』-(p.79)
-정약용은 유학 사상에 주체의 자율적 의지를 도입했다. 이것이 그의 철학의 책심이다. 마음 안에는 세 가지 이치〔理〕가 있다. 그 본성〔性〕으로 말하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 이는 맹자가 맗ㄴ 성선설이다. 그 권형(權衡)으로 말하면 선을 할 수도 있고 악을 할 수도 있다. 이는 고자(告子)의 소용돌이치는 물의 비유와 '선과 악이 섞여 있다'는 양웅(揚雄)의 이론이 생긴 원인이다. 그 행사(行事)로 말하면 선을 하기는 어렵고 악을 하기는 쉽다. 이는 순자(筍子)의 성악설이 나오게 된 원인이다. 순자와 양웅의 이론이 잘못된 것은 본래 성(性)이란 글자를 오해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우리 마으 안에 원래 이런 세 가지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이미 사람에게 선을 할 수도 있고 악을 할 수도 있는 권형을 주었다.그리고 그 아래에 또한 선을 하기는 어렵고 악을 하기는 쉬운 육체를 주었으며, 그 위에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본성을 주었다. 만일 이 본성이 없다면 우리 인간 중에 예로부터 조그마한 선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심경밀험(心經密驗)』-(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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