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해 목표를 이뤘다. 이번 해가 시작할 때 세운 목표가 한강 작가의 전 작품을 다 읽는것이었는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를 이루었다. 아슬아슬하게 얼마 앞두지 않았는데 해냈구나. 보람차다. 모두가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것만을 원하고 쫓는 시대에 타자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않고 끝까지 폭력의 역사와 삶의 민낯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작가 덕분에 나는 위로받은 한 해였다. |
|
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지은이 한강 외, 펴낸 곳 문예중앙, 417쪽]을 읽고
어디일까! 눈 한 송이가 녹는 곳은.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비롯해 최종 후보에 강영숙의 ‘맹지‘와, 권여선의 ’이모‘, 김솔의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김애란의 ‘입동’, 손보미의 ‘임시교사’,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 조해진 ‘사물과의 작별’, 황정은의 ‘웃는 남자’는 벌써 10년 전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 문학이 걸어온 의미 있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면 퍽 좋겠지! 하는 마음과, 무엇보다 한강 작가가 쓰는 데만 8개월이 걸린, 유난히 힘들었던 작품이라는 한강의 고백을 듣고 싶어서, 강산이 변한 후에야 책을 주문했고 힘들게 읽었다. (혼잣말: 특히 단편소설은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글의 양이 짧으니 후다닥 읽을 수 있지, 하는 선입견과는 달리 페이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수상작인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한강이 고른 자선작 ‘에우로파’, 윤경희 문학평론가의 수상 작가 인터뷰 ‘연하고 깨끗한, 막연하나 이끄는’을 우선 읽었다.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과 십 년의 시간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지난 후에 뒤돌아보면, 한 틀에 묶인 채 세월의 눈치 하나도 안 되지 싶은, 비현실적인 찰나의 시간이 되고 만다. 사십 대 초반의 여성 화자인 K에게, 죽어 유령인 그가, 옛 직장 남자 선배인 그가 자정 무렵 찾아온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 그가 되풀이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때, K는 어쩐 일이세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는다. 뭐든 이유가 있겠지, 죽은 지 삼 년이나 지난 뒤 누군가에게 올 때에는, 그리 기다려보기로 한다. 십칠 년 전 그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었던, 검은 바위들이 솟아오른 해변을 비틀거리며 앞서 걸었던 선배, 경주 언니를 함께 회상하면서다. K는 입사한 첫 달에 느꼈던 사무실 분위기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의 미소와 목소리와 속마음이 모두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은 이물감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선배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다. 보수적인 오너가 세운 잡지사는, 여자 직원은 결혼과 함께 퇴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경주 언니는 결혼을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길 원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녀가 출근 투쟁을 시작하자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살아서 언니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서로 상처 주고받기를 멈추지 못하는 인간은 벌레 같다고 여겼다. 인간이 벌레 같다면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길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그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이해할 길을 엮어나간다. 현실의 시간을 정지시키는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상징되는, 비현실적인 찰나의 시간에서 어쩌면 구원은 가까스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실제로 한강 작가는 소설 속 K처럼 옛 직장 선배의 죽음을 3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고, 그 쓰라린 체험을 어렵게 소설에 녹여냈다고 하였다. 인간 내면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진실과 삶을 향한 의지를 특유의 시적 문체로 작품 속에 녹여온 소설가 한강을 또 이렇게 만나보니 반갑고 의지할 수 있어 참 좋다. 몇 줄 간략한 느낌들!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를 통해 김솔은 돈을 좇아 도시로 모여든 인터내셔널 장삼이사들의 블랙코미디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그리 멀지 않은 근처임을 알려주고 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 이기호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매일 같이 시위를 시작하면 어떤 마음이 될까, 질문을 던지고는, 내 삶의 영역에 갑자기 들이닥친 광경은 안타깝지만 성가시게 다가올 수 있음을, 슬쩍 내민다. 그러한 사회 심리 두어 조각이 흥미롭게 녹고 있다.
[뒷이야기] 황순원 문학상黃順元文學賞은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대한민국의 문학상이다. 2001년 중앙일보가 시 부문의 미당 문학상과 함께 제정했다. 전년도 7월 ~ 수상 년도 6월까지 발표된 모든 중편, 단편 중에서 문학평론가, 소설가들이 추천한 작품을 대상으로 1차 예심을 거친다. 1차에서 많은 표를 받은 30편이 2차 예심 대상이 되고 여기서 10편을 골라 3차 본심을 거쳐 수상작이 확정된다. 상금은 5,000만 원이다. 2017년 제17회 수상작은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