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번째 사도들의 편지를 처음에 폈을때 진짜 재미있어서.. "아 이런책도 있네"라면서...읽었는데.. 읽을수록 조금 어려운감이 느껴졌던 책이다. 성당에 다니는 교우로써 오랜만에 종교에 관련된 책을 읽어서 참 기분 좋게 받았다. 이 책은 2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일까? 받고 나서 왠지 책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던 책이기도 했다. 오래된 콥트어 수사본을 심도있게 조사하던 프랑스 생 마르땡 수도원의 안드레이 신부가 로마 발 열차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안드레이 신부가 살해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 신부인 닐 신부는 안드레이 신부가 죽은 이유를 추척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닐 신부가 안드레아 신부가 죽은 곳에서 발견한 쪽지.. 사후강직 현상으로 뻣뻣하게 굳은 안드레이 신부의 주먹에서 가까스로 빼낸 쪽지엔 이렇게 적혀있다. 닐에게 알릴 것 : 콥트어 수사본 사도의 편지 MMM G의 포석 관계를 연결할 것. 지금 당장.. 닐 신부는 이 쪽지를 보면서 첫번째 문장, 두번째 문장, 세번 반복한 MMM의 뜻, 마지막줄의 "연결한 것"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 왜 "지금 당장"이라고 쓰고 왜 밑줄을 그었을까? 을 그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비밀을 추적하면서 닐 신부는 여러 세기 동안 은페되어 온 예수의 동료이자 열세 번째 사도의 존재를 찾아 내고, 그가 쓴 편지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하지만,, 닐 신부가 편지를 찾을려고 노력할 수록, 로마 교황청은 닐 신부가 편지의 비밀을 찾지 못하도록 에루살렘과 이슬람의 성전인 메카를 동원한다. 닐 신부는 젊은 시절 친구이자 현재 로마의 동료인 리랜드 신부와 함께 로마 교회의 계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닐 신부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산지로 떠나게 되지만 남아 있던 리랜드 신부는 이슬람교도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교회가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값(심지어 살인까지)도 치른다는 점이 좀 놀라웠던 소설이다. 이책이 더 실제로 느껴졌던 점은,, 이책의 지은이가 실제 사제의 길을 걷다 작가가 된, 은둔하는 수도사 프랑스 소설가 라고 한다. |
| 읽기 전부터 작가의 이력으로 인해 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루시퍼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가 어떤 종교에 대해서 얼마 만큼의 풍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책의 타당성과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경험으로 인해 작가의 이력에 관심을 갖고 읽은 책이다. # 어떤 작가가 쓴 책인가? 개종한지 얼마되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카톨릭이라는 종교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카톨릭에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이 읽으면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작가가 20년간 사제의 길을 걷다가 그만두고 작가가 된 은둔하는 수도사이며 신학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닐처럼 실제로 작가 또한 20년간 베네딕트파 수도회의 사제였고 바티칸에서도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작가 소개글에 나와있다. 그래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카톨릭 내의 사건들을 비교적 풍부하게 실었다고 할 수 있다. #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점은? 요즘 종교계에서 눈에 띄는 것들 유다복음 문제나 예수 부활과 관련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소설로 쓰여졌다. 그리고 작가가 신학 전문가라는 배경 때문에 소설 속에 나온 내용들이 허구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통 사람인 독자로써 현실과 픽션의 차이를 잘 구별짓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유다에 대한 해석이 기존과 다르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작가의 견해와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관련되어 예수의 제자들이 인간 예수를 신격화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고 그는 죽었으며 그리고 사막 어딘가에 그의 무덤이 존재한다는 13번째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의 편지와 관련된 책 내용은 종교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예수가 신이 아니고 부활하지 않았다면 아주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종교를 믿는 이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종교자체의 존립여부가 흔들릴 수 있는 큰 문제이다. 이것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한 나로써는 더 이상 뭐라고 작가의 의견에 대해서 비판할 수 없다. 확실한 근거와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면서 작가의 의견에 대해 함부러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계에는 우리가 실제로 알지 못하는 비밀 혹은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소설 속에서 제시된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과 연관된 책을 여러 권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적극성을 띤 사람이 아닌 독자로써 나중에라는 기약만을 남겼다. 그리고 또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에 대한 작가의 설명 또한 놀라웠다. 카톨릭 교회에서 사도직의 대표자(계승자)인 그가 소설 속에서는 상당한 야망이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사실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한 집단이 일인자로써 누구나 그에 합당한 자신의 권위에 대한 야망과 그것을 잃을 것에 대한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어 자신에 권력에 대해 도전하는 사람에 대해 배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소설 속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신의 세력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잘 나타나 있다. 소설은 읽고 느낀 점은 예수를 신이 아니라 단지 인간으로 가정한다면 신약성경은 너무나 인간적인 영웅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마지막에 죽음으로 끝맺기 때문에 실패한 영웅이야기라고 규정짓을 수 있지만 결국 죽음을 초월한 부활을 하니까 희망의 메세지를 남겨서 민중의 현실의 고통(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준다 점에서 해피엔딩스토리로 볼 수도 있다. 희비극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작가의 풍부한 성경적 지식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소설이라 柰냘玖?좋겠다. 현재 종교계에서 논란이 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으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책 읽기가 되었다. |
| 아주 오래 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지금 찾아보니 1992년 7월 25일에 구입한 책이다. 어찌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는지 -책에 나온 수도원 지도를 일일이 대조해가면서-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이다. 환상이 깨질까 두려워서 숀 코너리가 나온다는 영화는 안 보았다. 언젠가는 다시 읽으리라 다짐하며 누구에게 빌려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몇 년 전 온 지구를 뒤덮은 빨간 책 <다빈치 코드="">를 읽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어쩐지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은 좀더 편안하게 느껴져서 영화도 보았다. 이 책 <13번째 사도의 편지>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너무 읽고 아니 갖고 싶은 마음에 기다리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책은 더더욱 늦게 도착했다. 암튼 내 손에 들어온 책을 보고 예상보다 작은 크기에 좀 어리둥절했다. 그 전의 두 책은 둘 다 두껍고 편집도 빡빡했고 사이즈도 좀 더 컸기 때문에 이 책은 혹시나 내용이 좀 부실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읽기도 전에 불안했다. 기존의 교회가 갖고 있는 보수성과 예수의 진실을 찾고자하는 한 신자의 싸움이라는 구도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교회 측의 시각에서 보면 그 불편함은 <다빈치 코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듯하다. 이 구도는 단지 교회 내부의 이야기라고만은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불변의 진리, 당연한 사실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흔들리는 듯하다.다빈치>다빈치>장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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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작가다. 내가 만난 그의 첫번째 작품이 장미의 이름이었지. 그리고 나는 그런 류의 소설을 엄청 좋아하게 됐다.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그런 현학적인 책을 좋아하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뭐, 읽으면서 배우면 되지 하는 긍정적인 자세랄지?!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기독교인이었다. 나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5살 때무터 기독교를 바탕으로 교육하는 유아원에 보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재단의 국민학교, 중학교까지 다녔지. 그렇게 종교가 내 인생으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성경의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을 보며 예수님이 행한 기적들을 보며 감탄하고 감동했고, 어린이 찬송가를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성경의 에피소드를 그리는 그림대회에서 상을 타서 자랑스럽게 엄마의 손에 쥐어드렸다.
물론 지금의 나라는 인간에게는 특정한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신론자가 되었다거나 어떤 종교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삼라만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에 인간이 가장 위에 위치한 존재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모자란 것들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하나님이면 어떻고 알라면 어떻고 부처님이면 어떤가. 우리가 모두 그들의 가르침 아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어쨌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때 종교를 가졌던 덕분에 성경에 대한 나름의 기본적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하게 된 덕에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내가 위에 설명한 두 가지의 측면에서 내가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예수에게 유명한 12명의 사도뿐만 아니라 13번째 사도가 있었다고 말해주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장 아꼈던 제자였고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 무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남겼고, 현대로 넘어와서 그 편지를 발견한 안드레이 수도사가 바티칸의 높은 그분들의 사주로 살해된다. 그는 절친한 수도사 닐과 이 사실을 공유하려 했는데......
이 책은 어쩌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읽기에는 약간 불편한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직 성직자가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13번째 사도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종교의 부조리와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수 있다. 전직 성직자의 화려한 상상의 나래로 순수하게 창작된 이야기일 수도. 다만 확실한 하나의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연과 욕망에 대한 탐구도 재미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종교 권력 상위권에 있는 성직자의 변태적 성욕이라든지 그 희생자가 겪는 슬픔, 그것들을 이용한 반대세력의 응징....설정이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판타지는 자극되기 마련.
프랑스의 고즈넉한 수도원과 화려한 바티칸, 중동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사막....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는 것도 즐거운 독서 방법 중 하나.
2권의 끝즈음 여행이 끝나간다는 기분에 조금 서운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간다는 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서운한 마음을 다독여본다. |
| 솔직하게, 나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다. 지독한 무신론자로 20년을 좀 넘게 살아오면서, 오직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다소 위태로운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고 당당하게 외치던 니체의 말마따나, 우주를 정복하는데 대략 50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21세기, 최첨단의 과학시대에, ‘종교’라는 주제가 툭 튀어나온다면 일단 피곤해지고 만다. 하느님 말씀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믿음의 결과는 결국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자신의 변명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간혹 소장하고 있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믿음이 가질 않았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들이 많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견을 다는 분이 없었으면 한다.) 이렇게 뼛속까지 무신론을 지지하는 내가, 기독교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도 매우 놀랍다. 종교에 무지한 관계로, 「13번째 사도의 편지」를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나, 모르는 성경의 내용들이 나올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최대한 바른 방법으로 문장의 의미를 해석코자 노력했다. 같은 장르의 스테디셀러「다빈치 코드」에서 보았던 비슷한 흐름을 간파하면서도, 추리 소설 특유의 몰입감은 언제나 동일한 느낌의 재미로 다가온다. ‘카라바조’의 아름다운 그림, ‘성 마태와 천사’가 표지로 등장한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예수의 비밀을 둘러싼 벌어지는 추리 형식의 소설이다. 어느 날 로마발 특급열차에서 도서관 사서신부인 안드레이 신부가 살해당한다. 의문스러운 죽음을 필두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닐 신부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온화한 해석학 교수이자 수도원의 사소한 규칙까지 어겨본 적 없는 모범적인 사제인 닐 신부가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 ‘13번째 사도’가 남긴 비밀의 편지를 찾으면서 사건은 점점 흥미롭게 전개된다. 물론 그를 제지하려는 바티칸의 방해공작이 이어지고, 닐 신부를 도와주는 든든한 친구들도 합세하여, 진짜 편지를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전반적인 흐름은 여느 추리 소설과 다르지 않다. 의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암호가 적힌 작은 쪽지. 그리고 선량하고 우직한 주인공과 타락한 종교인들의 추악한 모습까지…. 그러나 「13번째 사도의 편지」의 진정한 교훈의 목적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인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신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것이고, 더욱 공감하거나, 혹은 거부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개인의 입장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정직한 소설이라고 생각 된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에도 등장했다 시피, 그 비밀은 교회의 계급제도로 보호된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위험한 문제일 것이다.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최후의 만찬부터 예수의 행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닐 신부가 모험을 펼치는 내용이 교차적으로 등장해서 더욱 큰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화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유다’의 죽음은 자살로 귀결되었는데, 베드로가 살해했다는 이색적인 주장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생각 된다. 또한,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써 권력과 돈의 망상에 사로잡힌 변태 성욕자 ‘칼포’ 대주교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따끔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퇴색되고, 점점 물질화 관습화 되어가는 교회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책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제법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기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에게 진중한 물음을 던져주는 책, 「13번째 사도의 편지」. 기가 막힌 반전이나 소름이 끼칠 만큼 쓰릴 있는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만큼, 진중한 무게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성경을 빼 놓고는, 서구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사실이니까, 나처럼 종교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분들도 한번쯤 읽어보며 여러 가지 의견들을 머릿속에 정리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작가의 이력에서 나타난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소설이 탄생한 것 같다. 정치적인 야망에 눈이 먼 열두 사도들이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허울뿐인 평화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기독교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
| 작가가 누구냐는 사실 내게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빼고는.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이력을 알아야만 했다. 역시 가톨릭 사제 출신 작가다. 작가의 이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작품의 소재가 종교적이기 때문이고 그 안에 타 종교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봤으면 좋겠다. 작품의 시작은 한 사제가 발견한 어떤 것으로 인해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절대 기독교 문명이 알아서는 안 되고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살해당했다. 그는 살해당하면서 절친한 동료 사제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그 사제는 그것이 자신과도 관련된 일이라 생각해서 파헤치기로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액자 형태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시기에서 부터의 일도 쓰고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와 함께 어느 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걸까? 그리고 자칭 예수께서 가장 사랑한 제자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유다는 정말 예수님을 배반한 것일까, 아니면 음모의 희생양일까? 어떤 종교도 타 종교의 믿음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로를 존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종교의 그릇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닐 신부의 얘기는 잊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작가의 치명적인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만을 생각하길 바란다. 자신의 종교를 비판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것은 인간이 신을 모욕하는 행위라 여겨진다.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이 믿는 신께 누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서구 문명이 몰락한다면 그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을 잘못 믿는 자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힘으로 누르고 배척하려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나도 신께서 총, 칼을 앞세우고 자신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죽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리라 믿는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닐까. 진정 선한 신이시라면 인간도 싫어하는 폭력을 쓰시지는 않으실 테니까. 진정 믿음이 깊다면 금으로 만든 반석이 필요할까? 신께서 그것을 원하시는 걸까? 예수께서 원하시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유대교의 교회도, 이슬람의 사원도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이 책을 만약 유대인의 시각과 이슬람의 시각에 의해 썼다고 생각해보면 그들도 똑같이 말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그림에 대해서 얘기를 풀어나갔던 <다빈치 코드="">와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보면 좋을 듯하다. 색다른 시각에서 최후의 만찬과 13번째 사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또한 이 작품 속 이야기는 <최후의 템플="" 기사단="">에도 혹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템플 기사단이 고문에 의해 발설한 말이 들어 있다는 설도 있으니까. 또한 교황청과 가톨릭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천사와 악마="">와도 좀 비슷하다. 유대인과 이슬람인과 가톨릭인의 비틀어진 모습을 각각 보여주는 가운데 진짜 나쁜 것은 어떤 곳에서도 권력에만 집착하고 믿음 있는 척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게 만들었다. 미스터리적인 면에서 보면 약간 박진감과 긴장감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추리적으로 보기 보다는 팩션의 색다른 소재를 다룬 면과 진지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천사와>최후의>최후의>다빈치>최후의> |
| 지은이 미셸 브누아 20년간 사제의 길을 걷다가 작가가 된, 은둔하는 수도사 프랑스 소설가이자 신학 전문가 기독교의 은폐된 기원에 대한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실제로 20년간 성 베네딕트 파 수도회의 사제였고 바티칸에서도 5년을 보냈다.그는 자신의 실질적이고 오랜 경험과,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 정확하게 고증된 역사 자료들을 바탕으로< 13번째 사도의 편지>를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이사람은 참 독특하다^^ 난 교회를 다닌다.믿음이 강한것도.. 아니라고도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중간인...하지만 확실한건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종교도 개인의 취향이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좋다 나쁘다 단정짓고 싶진 않다. 그러나 가끔은 믿음을 의심하고 싶을때가 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때 그의 얼굴이 악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편견이 자리하기 때문일것이다..믿음을 가진 사람은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일꺼라는 편견~ 편견을 버려~!ㅎ 흥미로운 종교, 역사 프랑스산 팩션 스릴러다. 첫장을 넘기면서 부터는 도대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아 애태웠는데 어느순간 흡입력이 생겨 몰입하며 읽게 되었던거 같다. 예수 13번째의 사도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받는 제자, 열세 번 째 사도라고만 언급될뿐이다. 예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고 있으나 사도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시기로 기독교의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열세번째 사도에 관한 비밀을 파헤쳐 가는데... 1세기 초 최후의 만찬-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초대교회 설립으로 이어지는 성서 이야기와 20세기 말 동료 안드레이 신부의 쪽지를 보고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닐 신부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긴밀하게 펼쳐진다. "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방안을 서성거리던 그는 사제들이 옷장으로 사용되는 선반 위에 귀한 종이를 올려놓은 뒤 복도로 나갔다. 설마 몇 분 간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그의 방을 방문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닐은 잰걸음으로 자신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성서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평소 자주 사용하는 첫 번째 서가에서 콥트어-영어 어원학 사전을 찾아냈다. 사전을 들고 <유령>에 기입하자마자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심하게 고동쳤다. 그 중요한 종이는 그가 놓았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저녁 예배를 알리는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수도복의 안주머니에 복사본을 집어넣은 후 교회로 내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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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년 동안 열심히 교회라는 곳을 다니며 성서 구절도 꽤나 외웠었다. 10년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남들이 다녀서, 그리고 5년은 미션스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필수’였기 때문에 다녔다. 그래서 그 두꺼운 성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페이지는 한 장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름 ‘비판’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다.
그러면서도 성서를 둘러싼 미스테리를 다룬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긴박한 상황 전개로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었던 『다빈치 코드』, 성서만큼 두꺼운 책이었고 작가의 해박한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던 『장미의 이름』, 그리고 『13번째 사도의 편지』. 그래서 많은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국이었다. 15년을 다녔지만 선무당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얇은 식견 때문이었는지 전직 수도사가 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상황이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추리소설이라면 한 장 두 장 잘 넘어가야 하는데, 한 줄 한 줄 읽는 것도 힘에 버거울 정도였다. 독자로서의 나의 자질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소설가로서의 작가의 자질이 부족했던 탓일까.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내가 이전에 알고 있었던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그 사람이 남긴 메시지, 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전. 처음에는 상황이 그려지지 않아 참 어렵게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나중에는 반전이라고 등장하는 것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서 맥이 빠져 버렸다. 어차피 추리소설이라는 것들은 그 구성이 비슷하기 마련이겠지만, 원래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는 법이니까 그 화살은 아우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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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제목부터 나를 끌어당겼다. 예수님의 제자는 분명 12명. 열두사도이기 때문이다. 숨겨져있는 또 한명의 제자..그는 누구일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책을 펼쳐본다.
아주 먼 옜날 최후의 만찬을 시작으로 일어나는 중대한 사건들과 현재의 프랑스 생 마르탱 수도원의 안드레이 신부의 갑작스런 죽음을 둘러싼 사건들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20세기를 넘나드는 이야기들, 처음 우려했던거와는 달리 책을 읽음에 방해는 되지않았다.
흥미진진한 사건들로 장면장면을 상상하게 했지만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긴박감이 조금 부족하다. 추리소설 매니아들은 다소 지루하다 하실듯 하다. 너무 우연적이 요소들이 많고 조금은 식상하다. 그리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면서 어찌그리 도청같은것에 둔감하신지...아직도 답답하고 이해가 안된다. -_ -;; 그래도 비밀을 찾아나서는 닐 수사와 함게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 시간들이 지겹지는 않았다.
종교가 없는 분들이나 다른종교를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이 조금은 지루하고 낯설수도 있겠다. 다행이도 가톨릭신자인 나에게는 친숙한 용어와 지명들로 읽는데 막힘은 없었다. 단순한 팩션이지만 머리가 조금 혼란스럽다. 나의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더 친숙했고,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욱더 혼란스러웠고 이렇게 글을 쓴다는게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러나 역시 이 밤이 지나면 그냥 소설속 이야기로 남을 뿐인거다... |
| 처음부터 망설였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과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두권에서 오는 압박이 망설임을 부추겼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나 장미의이름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어 쉽게 포기하기도 아쉬운 기회였다. 결국은 13번째사도의 편지 두권을 받아들게 되었다. 나에 있어서 종교적 지식은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매주 채플시간에 배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당시는 나에게 있어 종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채플시간에 참가하고, 아침 저녁으로 하는 기도를 대강 따라하고, 그저 찬송가 몇구절 따라 부르거나, 성경책 몇구절을 읽은 것이 전부이다. 나머지 종교에 대한 나의 미천한 지식은 모두 영화나, 책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얻은게 전부였다. 13번째 사도의 편지는 바로 그 종교문제를 다룬 스릴러이다. 줄거리야 이미 책소개와 다른 리뷰어들에 의해 상세하게 소개되어졌기에 생략키로 하겠다. 하긴 스릴러물은 스포일러가 있기에 섯불리 내용을 이야기 하기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칫 앞으로 읽게될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될 지로 모르는 일이니까... 어쨋거나 내가 이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다빈치코드를 연상했기 때문이다. 워낙 다빈치코드가 공전의 히트를 쳤기에 비슷한 류의 소설이 많이 나오는 요즈음, 새로운 책이 나왔고, 다빈치코드와 필적할만하다는 책소개와, 마침 연말 크리스마스분위기와 연결이 되었고,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종교적 지식중 예수와 12제자에 관한 이야기, 게다가 12제자외에 또한명의 제자가 있었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처음 1권의 중간까지는 읽는 속도가 더디었다. 마치 성경책을 읽는 속도만큼이나....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종교가 없는 종교적 지식이 없는 문외한이 종교적 사건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각나라와 연결된 종교를 이해한다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아마도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읽었다면 분명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을 하며 나의 종교적 무지함을 탓하고 말았다. 하지만 읽기 시작한 것을 어찌 멈출 수 있을까. 어깨 넘어로 들은 이야기가 있고, 또한 옆에는 인터넷이 있는데...오히려 종교를 아는 기회가 되었다. 읽는 속도는 더뎠지만 덕분에 새로운 종교적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소설속에 나오는 허구의 사실이 아닌 현실속의 진실을...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을 많이 참조했다. 나참, 소설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다니...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그만큼 13번째사도의 편지는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니었으면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재일먼저 찾은것은 바로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12제자들의 이름. 12명의 이름과 그들의 행적을 읽고서 비로소 환하게 밝아옴을 느꼈다. 책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왜 그랬고, 어떻게 전파가 되었는지를 알게되었다. 처음 중간을 지나면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일반 스릴러소설처럼. 역시 작가가 신부출신이어서 인지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문 스릴러 작가가 아니라 긴박하거나,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을 연출해 주지는 못했던 듯 싶다. 잔잔히 이어지는 이야기속에 읽는이는 하나씩 느끼게 되는 분위라고나 할까, 아마도 작가가 종교에 깊숙이 몸담고 있는 신부님 출신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많은 것을 토해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이런류의 소설은 자칫하면 곤욕을 치를수도 있을 것이기에 결론내리기도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3번째사도의 편지는 완성도 높은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스릴러로서가 아니라 종교소설로서 말이다. 새롭게 어찌보면 새로운 시도도 아니지만, 종교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한 작가의 작품을 높이사고 싶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내가 종교적 지식이 해박했더라면 분명 나는 이 책을 별 다섯을 주는 평가를 했을것이다. 하지만 나의 모자른 지식때문에 부분부분 이해를 못한, 그래서 흥미가 반감되었기에 별하나를 빼기로 했다. 아마도 이 책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처럼 종교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