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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인문주의와 유럽통합의 상징이 되었는지 궁금하여 에라스무스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더니 요한 하위징가의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이 눈에 띄어 먼저 츠바이크의 책을 읽게 되었다. 에라스무스라면 『우신예찬』이라는 그의 저서 한 권의 이름만 외웠을 뿐이라 그가 후세에 뿐 아니라 살아생전에도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계 성직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 황제와 제후들이 방문해주기를, 편지에 답장해주기를 고대하던 당대 최고의 인기인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에라스무스는 로테르담(http://blog.yes24.com/document/9873861)출신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출생연도도 모르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다. 아버지가 귀족이라든가 신부라든가 하는 말이 있지만 수도원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것을 보면 신부의 아들이었던 모양이다. 어두운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고급스럽고 우아한 귀족적 취향과 그에 걸맞는 연약한 육체와 예민한 신경을 가졌기에 성직자로 복무하거나 대학강단에 의무로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다. 그가 전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각계의 고위인사들과 친교를 맺으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학식과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덕분이지만 운이 좋았고 얄미울 정도로 처세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학예를 사랑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그가 인문주의자로 살도록 내버려두는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종교개혁의 광풍이 유럽전역을 휩쓸게 되자 사람들은 그에게 교황의 편에 설것인가 종교개혁의 편에 설 것인가 선택을 강요했다. 어느 편에도 가담하길 거부하며 중재자가 되려는 그의 입장은 양편 모두를 그의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시대는 화해를 외치는 에라스무스보다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루터의 편이었다. 물론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변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테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에라스무스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츠바이크의 중언부언이 지겹기도 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광기를 어리석다고 생각한 에라스무스의 판단과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할 지 모르는 가련한 노력들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역사의 손짓에 한 번 쯤은 제대로 응답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이쯤에서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떠오른다. 칼뱅에 비하면 그나마 루터는 타협과 대화의 여지가 있었고, 카스텔리오에 비하면 에라스무스의 영향력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하늘이 선물로 준 재능과 명성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를 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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