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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론(華夷論)’을 부정하다. 화이론(華夷論)은 간단하게 말하면 문화수준이 높은 중국 혹은 한족(漢族)을 ‘중화(中華)’라 하여 세계의 중심이라고 존중하는 반면 문화수준이 낮은 중국 이외의 지역 혹은 주변의 다른 민족을 ‘이적(夷狄)’이라 하여 멸시하는 사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은 한국으로 유입되어 ‘소중화(小中華)’라는 의식으로 변형된다. 덕분에 한족(漢族)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다른 민족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각각 느끼는 이중구조적 세계관이 조선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명(明)나라의 멸망이었다. 이후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인조차도 “만주족을 따르는 짐승으로 여기고 중국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1)”는 극단적인 자세까지 노출하였다. 이러한 ‘소중화(小中華)’라는 의식을 완성, 조선 후기 사상계를 지배하게 한 사람은 ‘송자(宋子)’라는 칭호를 얻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다. 그에 의해 주자(朱子)의 해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이단 심판하듯 척결(剔抉)하는 바람에 조선 후기 사상계는 질식상태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억누르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이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다. 실학적 학풍을 가진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3~1772)을 스승으로 모신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說)’과 하루에 1번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地轉說)’ 등을 주장했다. 비록 그가 연행사(燕行使)의 수행군관으로 따라간 북경 방문 때 오늘날 기상청에 해당하는 흠천감(欽天監)의 정(正)인 할러슈타인(August von Hallerstein, 중국식 이름 劉松齡, 1703~1771)과 부정(副正)인 고가이슬(Anton Gogeisl, 중국식 이름 鮑友管, 1701~1771) 등과 수 차례 면담하면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에 접했지만, 언어소통의 한계 등으로 인해 큰 성과는 없었다. 따라서 그의 천문학자로서의 업적은 서양의 과학적 성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닌 재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서양 천문학의 관측결과 등을 토대로 “중국은 서양과 경도 차이가 180도라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여기고 서양은 지구 중심의 반대쪽에 거꾸로 사는 곳이라고 여긴다오. 반대로, 서양 사람들은 서양을 중심으로 여기고 중국을 중심의 반대쪽에 거꾸로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오.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있기는 어는 곳이든 모두 마찬가지요. 옆으로 사는 곳도 없고 밑에서 사는 곳도 없다오. 모든 곳이 바로 중심이라오.2)”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이런 천문학적 지식에서 ‘화이론(華夷論)’을 부정할 근거를 찾았다. 바로 지구가 둥글고 모든 곳이 중심이기 때문에 중국만이 아닌 모든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흔히 얕잡아 보는 일본의 학문에 대해서 “일본의 이(伊)씨와 물(物)씨의 학술3)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요체는 몸을 닦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니 그 또한 성인의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기네의 학술에 따라 정치를 해도 또한 좋지 않겠는가? 돌 벼가 익어도 흉년을 구할 수 있는 법이다.4)”라고 하여, 일본도 이(夷)가 아닌 화(華)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홍대용의 천문학은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기반으로 티코 브라헤(Tycho Brache, 1546 ~1601)의 천문학을 해석, 한국 최초로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한 대곡(大谷) 김석문(金錫文, 1658~1735)만큼 의미 있는 작업인 셈이다. 과시하기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위한 학문을 하다. 그는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와 문장을 공부하여 벼슬과 명예를 구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5)”라고 비판한다.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선비가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이렇게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몰두하는 당시 사대부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홍대용(洪大容)은 중인계층이나 공부하는 잡과 십학(雜科 十學)에 해당하는 천문학(天文學), 산학(算學) 등도 공부하였다. 석당(石塘) 나경적(羅景績, 1690~1762)과 함께 전통적 혼천의(渾天儀)에 서양 시계의 기계적 원리를 결합시킨 새로운 혼천의(渾天儀)를 개발하고, 이런 자연과학을 하는 데 반드시 익혀야 할 기초학문인 수학 공부를 위해 기초 수학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주해수용(籌解需用)>을 저술한 것이다. 나아가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인 연익성(延益成)과 함께 노닐고, 시조 일천여 수를 모아 <대동풍요(大東風謠)>를 엮는 등 음악 쪽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이런 점들을 보면 홍대용(洪大容)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처럼 실생활에 관련된 여러 분야에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계승자를 얻지 못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홍대용(洪大容)은 ‘지구지전설(地球地轉說)’에 근거하여 중국만이 아닌 모든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는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해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만물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뽑내는 마음 때문6)”이라고 비판하면서 사람과 만물이 균등하다는 ‘인물균등론(人萬均等論)’도 주장하여 오늘날의 평등사상이나 생태사상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같은 이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사상과 세계관을 온전하게 계승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한 시대의 획을 그을 수도 있었던 그의 학문은 다른 동료, 후배 실학자들의 자극제 역할만 하고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1) 홍대용,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홍대용 선집>, 김아리 편역, (돌베개, 2006), p. 67 2) 홍대용, 앞의 책, p. 211 3) 이(伊)씨와 물(物)씨는 퇴계학/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을 제거/극복하기 위해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선택한, 대표적인 고학파(古學派) 유학자인 이토 진사이([伊藤仁齊],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를 말한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와 관련된 일화 중에는 야간도주를 하고 구걸을 하면서까지 부모를 봉양하려 했지만 극심한 기근에 버티지 못해 끝내 어머니를 유기한 농민에 대한 처벌 문제에 대해 농민보다 어머니를 유기하도록 만든 객관적인 정치 상황(영지를 책임지고 있는 모든 관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 일화도 있다. 4) 홍대용, 앞의 책, p. 74 5) 홍대용, 앞의 책, p. 24 6) 홍대용, 앞의 책, p.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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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련 책을 읽어 갈수록 느꼈던 것은 탁견을 지닌 사상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 주자학의 관점에서 벗어난 시각의 견해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출세를 버리고라도 자신의 학문과 사상에 충실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8세기를 살았던 홍대용(1731-1783)도 그런 인물이다.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실학자들이 쏟아져 나온 때와 일치하지만, 그의 사상은 이용후생의 실학적 차원을 넘어서 과학과 역사 사회 경제 등의 여러 분야를 통합해서 통찰력을 보여준 사상가였다고 평할 수 있겠다. 홍대용을 보면서, 우리가 조선의 사상에 대해 성리학, 주자학 일색이라고 단정적으로 배운 게 아닌가 고개를 가웃거리게 됐다. 그가 수학했던 남양주 석실서원만 해도 과거 공부에 매진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이론을 허용하지 않고 교조화됐던 당시의 주자학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고,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도 허용하는 등 실사구시와 실천을 중시하는 학풍으로 학생을 가르쳤다. 홍대용은 실용성을 강조한 석실서원 김원행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학문적 열정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팔방미인이었다. 천문기구인 혼천의와 자명종을 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음악, 역사, 사회 등 다방면에서 깊이있는 학문을 습득했다. 특히 과학에 대해서는 놀라운 열의를 갖고 있어서 숙부 수행원으로 중국에 갔을 때,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서양인들을 만나 수학을 비롯한 과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는 수학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뿐더러 관상감에 겨우 들어가 망원경이나 기타 천문기구를 보면서, 우주와 지구에 대한 사고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관상감의 경우 외부인들을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는데 홍대용이 관계자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그것도 아주 잠깐만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에 들어온 서구 과학 학문과 기술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더욱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실증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자세를 가졌기에 그가 다른 실학자보다 단연 앞선 뛰어난 과학적 인식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주는 본디 고요한데 기(氣)로 가득차 있다오. 우주는 안도 없고 끝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요.그러다 기가 쌓이고 뭉쳐서 어떤 물질을 이루는 바탕이 되기도 하오. 그것들은 허공에 두루 퍼지는데,어떤 것은 돌기도 하고, 어떤 것은 멈추어 있기도 하오. 우리가 사는 땅과 해와 달과 별들이 그런 것이오."(203쪽)
"우리가 사는 땅은 하루에 한 바퀴를 돈다오. 그 둘레는 9만리이며 하루는 열두 시간이오. 그런데 9만리나 되는 넓은 둘레로 열두 시간을 돌게 되니, 그 속도는 천둥이나 포탄보다 빠르다오. 이렇게 빠르게 돌기 때문에 하늘의 기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허공에 쌓이고 땅에 모이게 된다오. 그래서 위아래로 작용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땅의 중력이오. 땅에서 멀어지면 이런 힘은 사라진다오."(208쪽)
이렇듯 지구 자전, 그리고 원형설등 그가 제시한 우주, 지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시대를 훌썩 앞서간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과학적 사고의 깊이에서만큼은 비단 조선 뿐아니라 18세기 동아시아 수준에서는 당대 최고가 아니었을까.
그가 보여준 우주관은 이렇게 뛰어나지만 더욱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는 이런 자연과학적 인식을 인간 사회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했다. 우주에는 저마다 별들이 다 운행하는 이유가 있고, 또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중화주의에서 벗어나는 세계관임과 동시에 '하늘이 내고 땅이 기르니, 모든 혈기를 지닌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오'라고 인간에게도 그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주의 별도, 민족도, 인간도 다 각각 동등하다는 평등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세계관이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적인 주장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의 이론이 지닌 탁월성과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사구시와 실용성으로 학문을 실생활에 이용하는 실학자의 차원을 뛰어넘은 것이다. 자연과학적인 지식과 사상을 인간사회에까지 투영하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가치와 사상을 제시한 것이었다.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는 홍대용의 '담헌서' 중에서 핵심만을 추려 편역한 책인데, 조선시대 한문문장 특유의 담백한 맛이 난다고 할까. 조선의 한문 책들 번역한 것을 처음 읽었을 때만해도 수사적으로 단순하고 문투가 고전적이라 고루하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자주 읽다보니 문장의 담박함이나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정감도 간다. 역시 익숙해지고 보니 문장의 의미나 매력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아쉬운 점은 담헌서의 핵심만을 추려서 그런지, 중략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골자는 빼놓지 않았겠지만, 그의 사상을 너무 축약했다고 할까.
생각해보면 역사시간에서도 홍대용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배웠던 것 같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과 인물에 대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재평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 이이,이율곡 등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그에 비해 홍대용이 제시한 사상이나 세계관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인지 언급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주자학에 경도되고, 그 위주로 논쟁이 이루어지고 학문적인 성취가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홍대용처럼 시대를 앞서간 우주관을 제시한 인물이 있었음에도 더욱이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곱씹어 볼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그 가치를 발견하고, 평가에 대해 너무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홍대용이 뛰어난 사상가였음을,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세계관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구체적인 주장과 사상을 알게 됐고, 이제사 관심을 갖게 됐기에 나도 할말이 없지만, 홍대용을 비롯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특히나 비주류적인 인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요즘 들어 그의 진가가 평가되는 듯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뛰어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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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지식인 홍대용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을 너머 학문에, 또는 독서에 있어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홍대용은 유학을 공부해서 과거 시험을 치르고 벼슬길에 오르는 것에 삶의 목표로 하지 않고, 오로지 진정한 학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학문을 통해 자신을 연마하는 학자로서의 길로 갔다. 그러면서 공허한 이론만을 강조하는 유학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며 실제적이 학문인 실학을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홍대용의 학자로서 가장 존경할 부분은 어느 학풍에 휩쓸리거나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을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기보다는 모든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공평하고 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자세가 후세의 많은 학자들에게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당시 조선 후기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유학의 잣대에 홍대용은 불편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의 꼿꼿한 성품과 학문에 대한 넓은 수용 자세는 조선 사회의 학자들에게 머물지 않고, 중국까지 그 역량을 넓혀 갔다. 그가 숙부 홍억이 중국 사행의 서장관이 되자 그의 수행원 자격으로 중국에 간 것은 홍대용의 학자로서의 삶 뿐아니라, 그의 삶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되었다. 당시는 청나라의 지배에 있었던 중국을 조선의 학자들은 오랑캐라고 터부시하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홍대용은 그들의 역사적인 내력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서양 과학을 수용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배우고자 하였다. 홍대용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에서 살고 있는 서양 선교사를 만나 그들의 앞서가는 천문학에 대해 배우고자 하며, 비록 천문 기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서양의 과학이 수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홍대용이 만든 '혼천의'는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우주 과학에 대한 무한한 열정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공부를,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수양하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그 학문을 통해 사회 진출에 있어 발판을 삼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도서관 등 여러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바쳐 학문의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선까지 도달하면 어김없이 학자로서의 길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하나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박사들 중에 학문의 길을 닦아 나가기보다 인기에 편승해서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경우를 매체를 통해 종종 목도하게 되면 많이 불편해 지고, 여러가지 의문이 생긴다.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와 공부를 통해 좀 더 많은 후학을 양성한다든가, 더 나아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서 벗어나 학문을 아우르는 데까지 이르면 일반인으로서 존경과 그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많다. 더구나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조금은 안일해 보이는 책 몇 권을 써내 부와 명성을 이어가는 경우를 접할 때는 진정한 학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홍대용 선집-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는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학문을 추구하는 여러 학자들에게 지금의 자신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물론, 이 책은 홍대용의 사상과 그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읽기에 이해를 돕고자 홍대용의 저작집[담헌서]에 있는 글들을 뽑아 엮은 것이니, 그들에겐 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대용의 사상은 작금을 살아가는 여러 학자들이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으로 생가됨을 왜 일까??
자칫 자신이 알고있는 분야가 최고라고 외치며 편협된 시각으로 세상을 평가할 수 있는 요즘에 '홍대용 선집'을 통해 진정한 배움의 자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책에 실린 내용 중에 '독서의 방법'(p27) 일부를 적어보며 다시 한번 그의 생각을 되새겨 본다.
".....글을 읽을 때 소리를 높이면 안 된다. 소리가 높으며 기운이 빠진다. 눈을 돌려도 안 되니,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다른 데로 달아난다. 몸을 흔들어도 안 된다. 몸을 흔들면 정신이 흩어진다. 글을 외울 때는 어수선하게 뒤섞거나 중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너무 급하게 외우지 말아야 하는바, 너무 조급하면 뜻을 음미하기 어렵다. 너무 느리게 외우지도 말아야 하는데, 너무 느리면 느슨하게 풀어져 생각이 뜬다"
이크!! 독서하는 자세와 태도가 다소 자유로운 내겐 이 글귀에 귀가 번쩍 뜨였다. 다소 힘들겠지만, 실천해 볼만한 사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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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딱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신 분이란 생각이든다. 인공위성이다 뭐다 해서 우리가 과학 발전으로 인해 실제로 많은 것을 볼 수 있게되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과연 어떨까싶다. 사실 책만보는 바보라는 이덕무의 책을 통해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한분 한분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우리가 역사책에서 그분들 얼마나 제대로 바라 볼 수 있을까? 몇년도에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 정도 알 수 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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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덕무가 스승으로 삼은 사람이 둘인데 한명은 박지원이고 한명은 홍대용이다. 박지원의 산문집은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고, 홍대용의 글이 궁금하여 읽었다. 읽고난 느낌은,
홍대용은 천재다!
당시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는 숱한 양반들과 달리 홍대용은 과학적 접근을 통해 지구의 그 어느곳도 중심이 없으므로 중국이 중심인 것도 아니며, 하늘의 입장에서 볼때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 모두 다를바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단연 눈에 띄는 독보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상에 근거하여 그는 서자인 이덕무를 비롯한 박제가나 유득공과 같은 실학자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학문을 연구하는 목적이 과거를 보기 위한것 이라면 깊은 연구를 할 수 없다고 여겨 평생 과거준비를 하지 않은채 학문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특히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중국사신으로 갈때 서양인을 직접만나 서양과학기술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한편 스스로 제작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두께가 얇은 편인 이 책은 홍대용의 사상과 학문에의 열정은 잘 집약해 놓고 있어서 홍대용에 대해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 읽기 딱 좋은 구성을 띄고 있다.
학문은 진실한 마음에 있고, 실행은 실용적인 일에 있으니, 진실한 마음으로 실용적인 일을 하면 잘못이 적고 과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동궁(정조)께서 말씀하셨다. 내 생각도 경솔하고 조급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침착한것이 현명한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중략- 내가 아뢰었다. 마음가짐은 마음을 닦는 공부의 중요한 단서이니 일이 있건 없건 항상 마음가짐에 대한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움직일 때든 아니든 언제나 마음이 안정되어야 생각이 밝아져서 일을 이치에 맞게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일을 게을리 할 지언정 글을 많이 읽지 못할까 걱정이고, 근본은 날로 거칠어 가도 저술을 많이 못할까 두려워합니다."일을 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라고 한 성인의 가르침은 사라진 지 이미오랩니다. 엤날 학자들은 책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오늘날 학자는 책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현자가 배출되었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가 날로 줄어듭니다. 어째서 고금이 이처럼 다른 걸까요? 사실은 책이 많은 게 화근입니다.
남을 다스리느 자는 먼저 그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의리가 마음속에 쌓여 사랑이 만물에 미치게 된다. 그러기에 고대의 훌륭한 왕들이 남기 은혜가 만세토록 지속되는 것이다. -중략-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그 열매가 번성하고 근원이 깊은 물은 멀리 흘러가듯이, 사랑과 의리를 갖춘 사람은 그 공이 빛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