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 색깔 공기---- 제목이 주는 이미지는 수채화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도대체 이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방 알아 채리기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작은 글씨로 ‘우리가 죽음을 대할 때’라고 친절하게 우리를 이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는 암시를 준다. 죽음이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장 한장씩 읽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내 심장이 불에 데인듯한 화기를 느꼈다 그동안 죽음으로 오는 형과의 단절 때문에 아파하고 냉가슴을 앓아오던 내게 죽음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죽음이 죄의 결과라-- 죄가 없으면 인간은 죽지 않고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뜻인가? 그렇게 무한히 살수 있다면 좋을까? 바르트는 죽음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라고 말했다. 죽음은 인간을 유한하게 한다. 인간은 유한성 속에 두어져 있지. 오히려 이 유한성 때문에 기쁨도, 노력도, 문학과 예술의 성취도 가능하다. 슬픔뿐 아니라 환희와 즐거움, 인간이 성취한 그 모든 문화마저 모두 이 유한성에서 나온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인간의 유한성은 이렇게 인간의 존재와 그 성취를 아름답게 해준다" -본문 인용- 내게 있어 형의 죽음은 내가 아무리 부활을 믿는다 해도 너무나 아쉽고 애석한 일이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고등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공장으로 내 몰려야 했고,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배우지 못한 자신의 한을 동생을 통해 이루기 위해 결혼까지 미루어 가며 하나뿐인 동생에게 정성을 쏟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혼이후 안락한 생을 시작할 무렵 막 돌이 지난 어린 둘째 딸을 남긴채 늦은 가을의 붉은 낙엽같이 사라져 갔다 그때가 10년전 바로 지금 이었지---. 그리하여 나는 경주에서 처가가 있는 울산을 지날 때 마다 가기 싫은 발걸음을 해야 하는 곤혹을 지금도 치르고 있다. 왜냐면 그 가는길에 형의 주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있어 형의 죽음은 내게 각별한 것이었고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늘 생각해 왔고 죽음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늘 갖고 살아왔다. 그런 내게 죽음에 대한 한 신학자의 너무나 놀라운 통찰은 죽음을 새롭게 보게했다. 그렇다 형의 짧은 죽음이 없었다면 형의 삶이 그렇게 아름답게 내게 각인 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무한히 산다면 -- 내가 형에 대한 지금의 심정과 인식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의 유한성 속에서 삶과 노력, 수고가 빛이 나는 것이구나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왠지 모를 눈물이 난다 그래 내가 형을 생각하며 이렇게 기쁨으로 울 수 있는 것도 형의 유한성 속에 살아온 애뜻함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책을 덮고 말았다. 더 이상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을 살려 보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니다 마지막 청도 골짜기에서 형을 마지막 보낸 것이 가슴 저리게 아파온다 죽음을 준비시켰더라면 부활의 영광이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기꺼이 수용하게 했더라면--- 왜 진작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죽음 그 놀라운 신비를 이제야 경험하게 될 줄이야! 고인과 나의 형을 생각하며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일독하기를 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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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앙인의 삶이 다르게 표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이 어느 순간에 참 슬프다
오랳동안 읽은 책이다 첫장을 편 순간부터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매 장 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들이 그랳고.. 그리고 죽음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책 속의 주인공 그 분의 가르침의 무게가 상당했다
병마와 싸우는 투병일기가 아니라
죽음을 대하며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회고록...
절대자 앞에서 자신의 삶의 마무리를
진실하게 하셨던 한 분 목사님의 삶을
그 가족의 글로
그 자신의 글로
엮은 이 책은 우리에게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의 의미로부터 시작해
현실 속 살아야 할 삶의 자세로
그리고 절대자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의 우리 모습까지
하나하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할 것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굳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신앙을 가진 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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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유한성 속에 두어져 있지. 그런데 오히려 이 유한성 때문에 기쁨도, 노력도, 문학과 예술의 성취도 가능하다. 슬픔뿐 아니라 환희와 즐거움, 인간이 성취한 그 모든 문화마저 모두 이 유한성에서 나온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을 때 인간의 유한성은 이렇게 인간의 존재와 그 성취를 아름답게 해 준단다.’ (35쪽)
‘(라파엘의 ‘마돈나’ 그림을 보며)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초조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우리 모두를 향해 있었다. 마리아의 눈은 어느 누구도 소유할 수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눈빛을 받을 수 있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눈은 우리 모두를 향해 있었고, 이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들 속에 있었다.’ (73쪽)
‘우리 사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최소한을 찾아주는 것은 분배의 의에 해당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79쪽)
‘성서는 인간을 타고난 악인이나 선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항상 새롭게 규정되어 가는 존재이다.’ (84쪽)
‘병이 낫는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지만, 주님이 부르실 때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132쪽)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가지려는 자세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41쪽)
‘그러나 부활하면 더 이상 닫혀진 자아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독특한 체험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죽고 부활하면, 자기 중심적 ‘자-아’에서 순식간에 ‘그리스도-아’로 변화할 것이다. (중략) 부활은 우리의 존재를 ‘질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중략) 죽은 자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 (153-156쪽)
이 책은 김치영 목사가 죽음 앞에서 고통 중에 남긴 마지막 설교다. 그가 간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아들 김동건 목사가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책은 2000년 5월 어느 날에서 출발하여 2000년 10월 9일 장례예배로 끝이 나며, 부록으로 고인이 쓴 병상 설교와 장례예배 설교가 실려 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아는 크리스천이라면 죽는다는 사실이 그다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살아온 삶을 마무리 지어야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다는 사실은 많이 아쉽고 슬프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막연했던 내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일까 생각해 보았다. 김치영 목사님은 솔직하게 고통을 표현하면서도 믿음의 자세를 보여주었으며, 마지막까지 가족과 함께 자신의 신앙에 대한 생각을 나누려고 했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맡은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관을 만들거나 그림이나 책을 구입하여 감상하는 그의 모습에서 크리스천의 의연함을 맛볼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처럼 피조세계는 유한하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니 유한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언제 죽을지,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고인이 보여준 것처럼 아름답게 생을 마치고 싶다. 그처럼 마지막까지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의미 있는 생을 사는 사람이고 싶다. 왜냐하면 육체의 죽음이 영원한 끝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거듭남을 믿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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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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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남도 땅에서도 끝자락 어느 한적한 바닷가
맑고 고요한 자연속에서 살다가
얼마 전 쫓겨오듯 서울로 올라 오게 되었다.
삶의 터전이 갑자기 바뀌고, 적잖은 나이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제 4개월로 접어 들면서 차츰 적응해 가는 중에
나는 요즘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그 재미란 다름 아닌 사람을 만나는,
꼭 만났어야 할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 가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신간이 출간 되면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책을 만드는 분들, 글을 쓰는 분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책을 통해 한 몫(?) 잡아 보겠다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책이 좋아 책과 함께 생활하고 싶은 분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같은 종류의 책을 구입해야 된다면
나는 맨 처음, 어떤 출판에서 간행 된 책인지 살핀다.
지금껏 홍성사는 단 한 차례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홍성사! 참 좋은 출판사임에 틀림 없다.
특별히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의 전철은
나에게 아주 편안하고 더 없이 좋은 독서실이 되었다.
쓰잘데기 없는 서설이 너무 길었다.
왠지 이 책 앞에선 이렇게 내 자신의 사소한 것이라도
쏟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빛 색깔 공기가 나에게 던져 준 신선한 충격에 대해
순전히 주관적인 어투로 간략히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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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그네여!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한 마디이다.
이 세상 어떤 순간 보다도 ''죽음''만큼 우리의 가슴을 쥐어 흔들어
감동시키고 벅차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의 문턱에서도 이토록 숭고하게 삶을 찬양하는
한 사람의 마지막을 목격하고서도
그대, 그래도 두려운 것이 있는가?(''그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무엇을 얻고 싶은가?
아무 것도 손에 쥐고 갈 것 없는 인생이여,
주와 함께 하지 않는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무엇 때문에 낙담하고 있는가?
인생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란 없다는 것을,
끝까지 생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마무리 하는
한 사람의 처연한 삶을 목격하고서도
그대, 낙담할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어떤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인지
새로운 눈을 떠야 겠다.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도
일찍부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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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주인공이 바로 신대원 시절 내가 존경하던
교수님의 아버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 같아선 곧 바로 전화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인상깊은구절] "그동안 나를 간호한다고 수고한 동선이보다도, 산소 준비한다고 뛰어다닌 동건이보다도, 엄마가 ''십자가지도''를 쓴 것이 더 중한 일이다." *''십자가지도''란 글은 책 속의 주인공 목사님의 관을 덮을 때 쓰기 위해서 였다. 그 글을... 글쎄 사모님이 직접 쓰셨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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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넘어서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인 고통의 삶과 죽음 앞에선 공허함이 있었다.
그러나 "빛 색깔 공기"는 죽음을 넘어서 삶의 현장 가운데 진지한 대화를 요청해 왔다.
절망과 공허가 희망과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특별히 이 책을 읽으면서 김치영 목사님께서 고통과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봤는데,
그것은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현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한
의미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준다.
그 지평은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삶이며,
현재의 삶 가운데 역동성과 구체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 했는데,
모두들 저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진적 감사를 받아야 할 것은
"빛 색깔 공기"라 여겨진다..
이 책에 너무나 감사하다..
죽음을 넘어서 의미 있는 삶을 삽시다. [인상깊은구절] "어머니! 슬퍼하셔도 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슬픔을 참을 필요는 없어요, 어머니, 슬퍼하는 것이 신앙이에요!" (p. 76 중.) |
| 현대인들의 삶은 목적과 의미가 상실된 삶이라 하겠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디를 향해 살아 가는가? 이런 질문들은 이미 오래된 서재 속의 책, 그 위에 쌓여 있는 먼지만큼이나 찾은지가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돈도 어느정도가 아니다,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는 더 벌어야 한다는 것... 우리 현대인들에게 이 문제 말고 인생의 다른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가? 진정 의미있는 목적과 목적있는 의미가 남아 있을까?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한낫 지나간 이론이 아니다. 앉아서 사색하는 것도 아니다. 견디기 힘겨운 말기 암의 고통 앞에서 진솔하게, 그러나 힘이 있고 확신으로 말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죽음 이후에 부활을 믿는다, 아니 가장 중요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이 부활은 얼마나 큰 의미있는 소망일까? 책 속의 고인은 고통과 허무의 죽음 앞에서 가장 역설적으로 기쁨과 평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망에 가득찬 고백으로 나아간다. 죽음이 주는 허무와 절망,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간다. 부활의 확신으로 가득 찬 그 마지막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책은 현대인들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죽음은 다시 삶을 불러낸다.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소망에 대해서 묻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