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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대화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느 인물에게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막 자랑하던 끝에, 그 상대가 반박으로 쏴붙이는 말이 "그러면 뭐하냐? 넌 조금도 지금 행복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잖아?"였습니다. 한국 같은 획일적 잣대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라면 과연 저 말이 제대로된 공격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전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사회에서 최소한의 인정을 받을 만한 성취를 거둬야 이게 씨알이 먹힙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뜨내기가 어디서 주워 들은 말만 - 마치 자신이 그 근처에나 가 보기라도 했다는 듯 - 허세로 주워섬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격 비슷한 객관적 기준을 갖춘 인생이라야 설득력이 있죠.
무자격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이런 용어를 주워섬기면 다른 이들이 지레 자신을 그런 세계에 속한 레벨로 대접하겠거니 같은, 삼류 사기꾼이 품는 자폐적 망상에 빠지기도 하죠. 여튼 외적인 스펙을 거의 나무랄 데 없이 갖춘 인생도, 정작 주관적으로 행복하질 못하다면 저런 허접한 공격에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물론 아Q식 허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인생이 망상과 기만 속에서 아무리 행복하다 한들 그게 전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님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누구라도, 자신의 바른 강점과 대체 불가능의 매력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바탕에서 성장과 도약의 기초를 마련해야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점은, 책에서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고, 저 역시 몇 년 전에 특정 종교 교파에서 발전시킨 입장을 책 한 권으로 펴 낸 걸 읽고 서평도 쓴 적 있습니다. 제가 도구로서 에니어그램이 인용, 원용될 때마다 느끼는 게, 원형으로서의 소스와 논의의 틀이 아무리 충실히 다져졌다 해도 그런 초기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게, 연구자, 강사의 실제 사례에 대한 성실한 응용이라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에니어그램 말고도 MBTI, DISC 등 보편적인 이론을 통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함"을 독자들에게 깨우칩니다. 형식적인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와 청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특히 개별 피상담자와 구체적으로 교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피상담자(내담자)는 자신대로, 상담을 통해 효과적인 치유,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어 내며, 능력 있는 상담자는 개별 내담자와의 밀도 있는 소통을 통해 자신도 종전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한 컨설턴트로 성장하는 게, 상담 모델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건설적 상황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상담자로서의 농도 짙은 고백과 성장담이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실제로 성공적이었던 상담이라면, 그 회상 부분과 효과적으로 추출된 교훈이 책 문장에 그대로 느낌이 녹아 있습니다. 절실한 독자는 "이게 바로 나를 위해 나를 향해 들려 주는 이야기"라며 바로 공감하고 목마른 부분을 채웁니다.
강점은 착각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현재 느슨한 정도로만 사회 생활을 하기에, 자신의 허상이나 착각이 (2차적) 관계 속에서 "깨지고(용어를 약간 순화해서 쓰겠습니다)" 재구성, 리빌딩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혹은 의식적으로 피하는지도 모르죠). 이런 걸 두고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느니 행복하다느니 하는 말로 포장하는데(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극히 불투명한 가능성에 모든 걸 건다거나, 이미 해당 분야에 한 발 들여 놓았더거나 무슨 명성이나 쌓은 듯 자신과 타인[어리숙한]들에 대해 최면을 걸고 과장, 기만을 합니다), 이게 냉정히 말해 그 상태를 계속 유지나 할 수 있으면 그러든 말든 남이 상관할 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 건 곧바로 파탄을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엉뚱한 남탓을 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인간이 꼭 있기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자신의 장점, 강점에 대해 바른 인식을 하면, 엉뚱한 데서 갈증을 채우거나("나는 여기에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곧 성공할 것이다") 허위의식에 빠지거나 하는 폐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꿈, 열정, 행복"은, 확실히 "강점"과 친한 세 가지 팩터가 맞습니다. 내가 이 분야에 확실히 강점을 갖고 있기에 여기에 열정을 쏟을 마음부터가 먹어지며, 이런 활동을 냉정히 평가해 줄, 자격 있는 지인과 관계의 단초가 주위에 형성되어 있기에 기복 없이 그런 열정이 유지되며, 마침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성공, 즉 꿈의 실현에까지 이르는 겁니다. 반대로, 자신의 참된 강점을 모르는 인간은 남들에게 사기를 치고, 남들이 어설픈 사기를 안 받아들이면 자신한테 사기를 치며, 이로부터 저급한 막장 드라마가 아주 구태의연하게 창작되는 거죠. 심지어 자신의 유년에 대한 훤히 속보이는 날조 과장이 이뤄지는 추태도 흔히 보는 바입니다. 이게 다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한 열등 컴플렉스 때문이죠. 부모가 애 능력은 생각 않고 과도하게 주입한 기대가, 성인 아니 노인이 되어서까지 자아를 왜곡하고 속박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이 아닌, 자신 이상의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어떤 허상에 의해 말하고 행동하는 참담한 결과가 벌어지죠.
"긍정성, 주도성, 사회성". 역시 뭐랄까, 꿈을 갖고 행복해지되 그것이 사회 속에서 공인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똑같은 조건에 처해서도, 좋게 해석하고 난국을 타개하거나 선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이 있고, 비틀린 시선으로 왜곡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이런 사람이 자기 개인의 꿈이라도 올바른 방식으로 실현할지 참 의문이죠. 기왕 맞닥뜨릴 상황이면 자신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헤쳐 나가고, 또 정리해서 조직 전체를 자신에 우호적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어떤 게 던져졌을 때, 물론 타석에 선 교타자처럼 잘 커트해 내고 마음에 드는 코스는 정타로 만드는 기술도 중요합니다만, 야구에서도 경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건 이니셔티브를 가진 투수입니다. 디펜스보다 중요한 건 오펜스고, 내가 선제적으로 사태를 제압하는 적극성, 주도성입니다. 이 모든 게 균형감각과 결합할 때, 참된 의미에서의 "사회성"이 완성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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