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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한 그릇] 밥값이 아니라, 밥심을 생각한 한 때
"[따뜻한 밥 한 그릇] 밥값이 아니라, 밥심을 생각한 한 때" 내용보기
밥. 밥심. 밥값. 밥벌이. '밥'이란 글자가 다른 말과 결합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최근 정호승 님의 <밥값>이란 시를 통해 생존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제인 '밥 먹는' 행위에 대해 잡설을 푼 적이 있다. 우석훈 님은 마흔 살 중년을 위한 <1인분 인생>을 얘기했고, 소설가 김훈 님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다. 저마다 '나' 혹은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고단함과 의미를 담
"[따뜻한 밥 한 그릇] 밥값이 아니라, 밥심을 생각한 한 때" 내용보기

밥. 밥심. 밥값. 밥벌이. '밥'이란 글자가 다른 말과 결합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최근 정호승 님의 <밥값>이란 시를 통해 생존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제인 '밥 먹는' 행위에 대해 잡설을 푼 적이 있다. 우석훈 님은 마흔 살 중년을 위한 <1인분 인생>을 얘기했고, 소설가 김훈 님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다. 저마다 '나' 혹은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고단함과 의미를 담는다. '우리'가 아닌 '나' 말이다.

 

그러던 중 '밥'의 의미를 새롭게 깨우친 책이 하나 있다. 시인 김사인 님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이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산문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시인의 줄글은 범인의 그것과는 궤가 다르다. 사물에 대한 명민한 촉과 감수성이 남달라서인지, 그들이 부려놓는 삶, 사는 이야기는 깊이와 폭이 다르다. 한 마디로 삶의 지혜를 한 수 배운다고나 할까?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저자가 라디오 불교방송의 프로그램 <살며 생각하며>를 통해 만났던 다양한 소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살며 생각하며' 저자가 밤마다 올렸던 수인사의 말씀을 묶은 책이다. '별 맛은 없을지라도, 매일 한 그릇씩 따뜻한 밥을 지어올리고자 애쓴 것을 갸륵하게 여겨, 너그럽게 거두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머리말에 '아무 것도 아닌 책'이라 이름 붙였다. 전혀 아무 것도 아니지 않다. 삶의 전부가 들어있는 책이다. 수인사의 말씀인지라 편편이 짧은 글이다. 소설가 하성란 님이 600자 안에 인생을 이야기했던 <왈왈>과 비슷하다. 하루에 한 편씩 마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비워내듯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읽기에 따라선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내 나이 또래라면 응당 고개를 주억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쉽게 씌여졌으나, 전혀 쉽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 그래서 차례대로 한 번, 뒤에서부터 한 번. 두 번 이 책을 읽었다.

 

먹는 일을 포함해서, 적어도 육체적 욕구와 직결되는 행위들은 가급적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을 예의로 삼던 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이젠 그런 시절은 다 지나갔나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감싸주던 은근함이랄지, 자기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넌지시 속을 비친달지 하는 그런 맛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요즘의 풍경들이 그렇다고 흉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투명하지만 공격적이라고 느껴지고, 타인에 대한 조심스러움이나 배려의 기운은 그리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의 입체감은 거세되고 홀겹의 명료함만 남은 듯이 보이는 거지요. -P14~15. '투명한 풍경들' 중에서

 

요즘 거리의 상점, 카페들은 대부분 통유리로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때가 많다. 뭐든 투명하게 비치는 풍경들. 저자는 '생의 입체감은 거세되고 홀겹의 명료함만 남은 듯이' 보인다고 말한다. 생의 입체감 속에는 어울려 사는 삶, 남을 배려하는 삶이 맞물려 있다.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자기가 혼자서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디지털 세대의 기묘한 고독 같은 것이 느껴져 쓸쓸한 느낌'이라고도 말한다. 갈수록 '우리'란 공동체보다는 '나'란 세계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된다. 우스개소리로 이외수 님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을 '나'뿐인 놈이라고 했지만, 광폭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작금의 사람들은 철저히 홀로, 외롭게, 쓸쓸히 오늘을 산다. 그것도 가늠할 수 없는 빠르기의 삶의 속도를 맞으며.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난 '배려'란 단어로 읽었다. 서툼, 망설임, 투박함이란 단어가 환기시키는 정겨움이란, 사람 사는 냄새란... 사진작가 신철균 님의 옛(?)스런 사진이 어우러져 정말이지 아랫목 이불에 뚜껑을 덮은 채 놓여진 한 그릇의 밥이 연상되었다.

 

세상은 내 옆에 있는 경쟁자를 밟고 일어서라 부추긴다. 조금이라도 손해날 짓은 애당초 하지 말라 말한다.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생활하면 대놓고 코 베어간다고 염려한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보니, 어깨에 내려앉은 삶의 부담보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먼저 걱정하게 된다. 큰 욕심 없이 짧은 인생살이 동안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며, 정직하게 그리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을 내내 담는다.

 

또 하나, 내 직업관에 대한 변화다. 편집디자인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해오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대부분은 멋들어진 디자인과 카피, 현란한 제책 방식으로 만들어진 단행본) 작업물을 낼 때였다. 팀 단위로 몇 날 몇 일 밤샘을 하며 마감을 치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냈을 때... 고단한 퇴근길 조촐하게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그간 쌓인 피로를 말끔히 털어낼 때... '난 다시 태어나도 에디터로 살아갈거야' 다짐하는 순간이다.

 

헌데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지금껏 클라이언트 잡을 하며 과연 그들에게 제대로된 만족을 줬는지, 내가 만든 책(잡지 등)은 과연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재작년 우리회사 오너가 뜬금없이 기획자들에게 '디자인이 뭐에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다들 머뭇머뭇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오너의 한 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바로 배려에요' 발단은 기획서를 최대한 짜임새 있게 정리하기 위해 누군가 작은 폰트로 예쁘게 정리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나이 드신 분이라면 돋보기를 써야 할 정도로) 크기였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난 주 목요일에 회사 팀원들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 갔었다. <페이퍼 로드, 지적 상상의 길>이란 전시였는데, 디자인 전공자나 에디터에겐 매우 관심 가는 분야다. 무엇보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의 포스터 및 단행본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기대가 컸다. 허나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이런 기대는 산산이 조각났다. 일단 전시 콘셉트가 없다. 중구난방으로(거의 관람객을 농락하는 수준) 전시 구획이나 동선이 짜여있고, 작품 하단에 작품명과 디자이너의 이름 등이 소개된 패찰이 거의 현미경으로 봐도 못알아볼 정도로 작고, 낮게 배치되어 있었다.

 

분명 전시를 주관하는 사람(그룹) 중 디자이너가 대다수일텐데, 이런 식의 배려 없는 전시가 또 어디있겠는가?  '紙的상상'이란  부제를 턱~하니 붙여놓고, 전혀 만져볼 수 없는 전시라니... 최근 들어 작업물의 물성을 강조하는 트렌드를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독자(관람객)에 대한 배려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들이 하는 디자인 작업물은 안봐도 뻔하지 않을까? 그래도 심플하고, 세련된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준비하는 자들 스스로 자위하는 꼴이다. 아무튼 다시 한 번 내 작업, 직업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이제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야 한다. '십시일반'을 생각하고, '후대'를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부터 바꿔야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나를 배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김사인 님이 정성스레 담아놓은 밥 한 그릇,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덤으로 그가 쓴 '오월' 전문을 남긴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서른 일곱 중년'의 새벽이다. 아기가 배고프다 운다. 젓물리는 아내 곁에, 쪼그려 앉아 '배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까 한다.

 

오월입니다. 오월,하면 지난 시대에 우리 인간의 손이 만들어냈던 불행과 고통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으신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만, 그래도 모쪼록 좋은 일만 생각하셔서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기 바랍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비유했을 만큼, 오월은 봄의 절정이자 또 초여름의 문턱입니다. 정말 신록이 눈부신 계절이지요. 피천득 선생에 따르면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입니다. "침엽수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아직은 보드라운" 달입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년' 같은 싱그러운 마음으로 오월 한 달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P228 '오월' 전문



t******2 2012.05.13.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의 낮고 평범한 자리 위에 내리는 햇살같은 시선
"삶의 낮고 평범한 자리 위에 내리는 햇살같은 시선" 내용보기
이 책은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니다. 저자 또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책일 듯합니다. .. (중략) .. 별 맛은 없을지라도, 매일 한 그릇씩 따뜻한 밥을 지어올리고자 애쓴 것을 갸륵하게 여겨, 너그럽게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이 책은 시인이자 교수인 김사인 선생이 진행한 불교방송(BBS-FM)의 프로그램 <살며 생각하며>의 오프닝 멘트를 모은 책이다. 시인
"삶의 낮고 평범한 자리 위에 내리는 햇살같은 시선" 내용보기

이 책은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니다. 저자 또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책일 듯합니다. .. (중략) .. 별 맛은 없을지라도, 매일 한 그릇씩 따뜻한 밥을 지어올리고자 애쓴 것을 갸륵하게 여겨, 너그럽게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시인이자 교수인 김사인 선생이 진행한 불교방송(BBS-FM)의 프로그램 <살며 생각하며>의 오프닝 멘트를 모은 책이다. 시인이 "무료함과 쑥스러움을 무마하기 위한 싱거운 한마디도 있고, 사는 일의 고달픔에 대한 투정도 있고, 멋대로 굴러가는 세상사를 향해 이만치에서 부려보는 어깃장도 있"다고 말하고 있거니와 300쪽에 못 미치는데다 여백이 많은 책이라 마음만 먹자면 금세 읽어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독서를 눈 굴러가는 속도에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따뜻한 밥 한그릇"을 굳이 식은밥으로 만들어 허겁지겁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물론 아쉬운대로 배야 부르겠지만).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전주 AALF에서 시인의 육성을 들었기 때문이다(마침 이 책의 부록으로 장애우용 음성도서가 따라왔다. 거창한 무엇은 아니고, 시인의 육성이 담긴 CD이다). 잠깐 AALF 때 이야기를 하자면.

시인이 목소리는 차분하고 나직하였으며, 특히 시를 읽을 때에는 여리게 떨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속도의 느림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12시 전후로 이어진 자신의 방송을 어르신들이 좋아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의 느린 목소리가 노인분들의 숙면을 도왔기 때문이란다(사실 일리는 있겠다). 찬찬한 목소리로 자신의 문학적 생애를 되짚어 주셨는데 한지에 스미는 먹물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힘이 있었다. 소박한 목소리로 지긋이 찍어낸 판화같다고 할까. 여하간 다시 책으로.

책의 물리적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가 더딜수밖에 없었는데, 글자를 귀로 들으려 애썼기 때문이다. 아니, 귀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목소리가 고마웠고, 삶의 낮고 평범한 자리 위에 내리는 햇살같은 시선이 따스했다. 방송 원고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느낄 수 있던 너그러움이 고스란히 물들어 있는 책이다. 출간된지 1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초판 1쇄라는 사실이 조금 안쓰럽다.

"쌀 많은 쪽으로 먼저 한 그릇을 따로 담아 아직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아버지나 다른 식구들 몫으로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두곤" 했던 따뜻한 밥 한 그릇. 배려이자 사랑이며, 따뜻함이자 그리움인 밥 한 그릇의 언어들이 그야말로 아직 책을 찾지 않은 다른 독자들 몫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나며 펼쳐보기에 좋은 책이다.

 

http://iyagi.maru.net

s*****6 2007.11.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