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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벨 박사의 일본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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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기마족과 왜/ 존카터코벨/김유경 편역/글을읽다/2006저자의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이라는 책을 먼저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책입니다. 미국의 동양미술사학자로서 서구인 최초로 동양 예술로 학위를 받았다는 저자는 먼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심취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던 중에 일본 고대사의 근원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9년이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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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기마족과 왜/ 존카터코벨/김유경 편역/글을읽다/2006

저자의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이라는 책을 먼저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책입니다. 미국의 동양미술사학자로서 서구인 최초로 동양 예술로 학위를 받았다는 저자는 먼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심취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던 중에 일본 고대사의 근원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9년이나 한국에 머물면서 연구를 계속 하게 되었다고. 

이책은 주로 한국에 머물러 있었을 때 역사 관련 잡지나 신문 등에 기고한 칼럼 등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대략 1970년대에서 80년대의 글이다 보니 지금과는 약간의 시대적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루고 있는 시대는 한반도에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가 있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이후에도 고대사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관점은 그리 변하지 않았기에 글의 내용은 자체는 시대와 무관하게 퇴색한 것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의 고대사 즉 8세기 초에 나온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덴노 중심의 군국주의 과정에서 이러한 날조된 고대 역사를 더욱 강화시킨 것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더불어, 한국의 사학계가 이런 저런 대내외적인 이유로 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글의 내용은 총균쇠 라든가, 지리의 힘 같은 최근 서적들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한민족의 기원은 보통 북방 스키타이계의 기마민족으로 지금 중국이 이만한 크기로 팽창 하기 훨씬 이전 황하강 유역에 중원에 자리 잡고 있었을 때 아마도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이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말을 탔고, 바지를 입고 수렵을 했던 용맹한 민족이면도 독자적으로 밭농사를 짓고 중국에서 한자와 벼농사를 받아 들였던 민족이었죠. 고대 시대를 지나 멸망하게 된 동부여 사람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가야와 백제 신라 등의 나라를 이룩하고 살기 시작했으며 그 중 일부가 바로 왜로 건너가 조몬인들과 융화되기도 하고 조몬인들을 정벌하기도 하면서 이른바 야요이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소시적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우리는 이렇게 배웠지만, 사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배우지 않습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매년 참배하는 이세 신사, 이즈모 신사나 이소노카미 신사 등은 사실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정복자?이자 지배자였던 이들을 모시고 있는 신사들이며 신공왕후, 다케우치노 그리고 이들의 아들로 추정되는 진무천황 모두 모두 한반도에서 넘어간 부여족이라는 것. 그 이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라비아산 멋진 말들(천마총에 그려진 천마처럼)과 부장품이 쏟아지는 점이나 한반도에서 많이 발견되는 각종 진귀한 유물들이 이후에서야 비로서 일본에서 발견되는 점 등을 들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공왕후(진구여왕)이 일본에서 한반도를 정벌?했다는 식의 억측을 비롯 그 어느 것도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은 없고 굳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넘어왔다고 우기면서도 정작 아스카, 나라 일대의 고분 발굴을 금지하여 고대사를 밝히는 것에 미온적인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이지요. 

한반도를 통해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8세기 무렵에 되어서야 일본은 나름의 독자적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거나, 일본 천황의 가계가 실은 한반도에서 넘어간 사람들이라고 연구 결과에 따라 견해를 피력한 일본인 학자들이 어떤 고초를 겪게 되는지, 한국 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아직 허약하여 서구권에서도 그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이들이 미미하다는 점을 특히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내에서도 그리 관심이 없다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인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점도 서술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경술국치 등의 일을 겪은데다 일본 군국주의가 덴노를 신격화 시키는 운동을 하면서 역사 왜곡은 더욱 심해졌고 비록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면서 덴노가 인간으로 내려왔다고는 하나, 저자가 살아 있을 때도 지금도 일본의 고대 역사관은 더욱 고집스러워지 것 같습니다. 하긴, 기록할 만한 글을 갖고 있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앞서 말했던 일본 서기를 쓰면서 부터 역사왜곡을 시작했는데, 재밌게도 이 글을 썼던 이들도 바로 백제에서 넘어간 한반도 인이라고. 이들은 이방인이었기에 왜인들의 입맛에 맞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때부터 일본의 덴노가 만세일대를 이어왔다는 주장이 시작됩니다. 물론,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막부 쇼군 체제가 되다 보니 덴노야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었고 심지어 너무나 곤궁하여 장례를 제때 치르지도 못하는 덴노도 있었다지요. 하지만 이것이 다시 메이지 유신을 지나면서 그 긴 역사를 만세일대로 다시 엮어나가기 시작한 일본은 돌이키기 어려운 역사왜곡의 길을 걷게 되지요.  재밌는 것은 군국주의자들이 기독교나 불교가 너무 개인적이라 하여 군군주의에 맞는 신토를 장려하게 되는데 이 일본의 고유 종교라는 신토가 바로 우리나라가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의 무속 신앙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 거 참 아이러니 합니다. 

본래 가까운 나라 끼리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있기 마련이지요. 독일과 프랑스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래 좋게 보려고 해도 일본에게 아쉬운 점이라면 저자의 말 그대로 영국처럼 쿨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영국은 과거 본래 있던 브리튼 족을 누르고 영토를 침탈하여 들어온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 섹슨 족의 후예들입니다. 하지만 브리튼 족의 신화적 인물인 아서왕을 자신의 역사와 신화로 받아들여서 지금까지도 잘 우려 먹고 있죠. 그 이전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생각해 보면 영국은 그야말로 미개한? 이들이 사는 브리타니아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이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영국이 과거에 문명의 변방이었다고 해도 신사?의 나라이고, 산업혁명의 메카였던 것이 부정 될 일 도 없죠. 일본이 고대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일본이 근세에 와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하고 선진문명을 빨리 받아들여서 식민국가가 되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한때 식민지를 거느린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과거의 영광이 화려한 걸로 따지면 영국이 한참 더 할 텐데... 어찌 그리 붙잡고 놓지를 못하는지. 애초에 위정자들이 국가의 국뽕을 잘못 설정한 것이 두고두고 화근이다 싶습니다. 

 

 

 

 

 

r*******n 2023.08.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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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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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核心은 文化傳播를 넘어 政治的 支配層의 移動 가능성에 대한 가설이다. 古墳文化, 武器·馬具, 神話的 系譜를 단서로, 扶餘·高句麗系 요소가 倭王權 형성에 일정 부분 관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日本史를 固有發展史로만 보는 視角에 도전장을 내민다.長點은 비교문화적 視野와 大膽한 問題提起다. 다만 騎馬民族征服說은 現在 學界에서 主流說로 인정받기 어렵고, 考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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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核心은 文化傳播를 넘어 政治的 支配層의 移動 가능성에 대한 가설이다. 古墳文化, 武器·馬具, 神話的 系譜를 단서로, 扶餘·高句麗系 요소가 倭王權 형성에 일정 부분 관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日本史를 固有發展史로만 보는 視角에 도전장을 내민다.

長點은 비교문화적 視野와 大膽한 問題提起다. 다만 騎馬民族征服說은 現在 學界에서 主流說로 인정받기 어렵고, 考古學·文獻史料의 해석을 둘러싼 論爭이 크다. 일부는 文化交流의 强調로 수정되었으며, “征服”이라는 표현 자체가 과도하다는 批判도 존재한다.

k******6 2026.03.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