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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쁘리모 레비의 삶을 돌아보면서 거리감을 느꼈다. 물론 세계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쁘리모 레비가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기도 했고, 유대인 학살과 차별이라는 어마무시한 단어는 책이나 영화에서나 간접경험을 통해서만 알고있어서 그런지 페이지를 계속 넘겨도 내 삶과 연관지어 진정한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차별’의 범주를 확장시켜주는 구절을 읽고 쁘리모 레비와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레비와 친구들은 끝내 연합군이 승리해 파시즘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들은 그 싸움의 ‘타자’라고 생각했다. 또 ‘타자’로 계속 존재할 생각이었다” (33). 레비도 레지스탕스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전까지 자신이 ‘타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대인이 차별받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연하게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차별에 맞서주겠지’라는 생각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레비의 생각은 차별받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사람으로서 인종차별을 인식하는 태도, 여성으로서 성차별을 인식하는 태도 등 대부분 레비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을까 2차 대전의 피해자인 레비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감하고 싶었다. 작가 역시 레비에게 공감 하려하고 있고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유까지 이해하려 한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에 맞선 레비의 상황을 오늘날의 차별에까지 확장하면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차별은 항상 존재해왔고 그에 맞서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의 각성과정은 8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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