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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는 지난 2000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6년에 개정판이 나온 우리나라가 겪은 전쟁을 보다 객관적으로 마주하기 위해 씌여진 책이다. 이런 한국전쟁의 발발과 경과를 설명하는 데 몇 가지 점들이 간과된다.
먼저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 미국과 소련의 힘의 불균형이다. 각각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력과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은 15개 독립국가로 분열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연합)이지만 가장 큰 국가인 러시아의 현재 GDP는 대한민국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950년 당시의 소련 전체는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도 미국에 비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을 본격적인 '전쟁'이라기 보다는 그 전에도 종종 일어났던 '무력분쟁'이나 '도덕질'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둘째는 당시 미국의 관심사는 2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재건에 있었고, 아시아에서도 한국보다는 대만에 더 치중해 있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자키기 위해 자신이 세운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있었지만, 남한의 안보를 책임진다던가 한국군을 적극 지원하거나 내전 발생시 적극 개입할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지금도 UN은 PKO(평화유지군) 활동은 할 지언정 한국전쟁이 UN의 기치 아래 연합군으로 참전한 유일한 전쟁이다.
셋째, 한국전쟁은 외양으로 보면 이데올로기 전쟁이지만 내재적으로 보면 식민지의 굴욕적 체험과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남북한 한국인들이 갖게 된 분노와 열망의 표현이다. 당시 남북한 두 정권은 양자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을 무너뜨려 상대를 자신의 품으로 집어넣으려는 강력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았고, 남한은 북한 정권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보았다. 이는 한국전쟁을 민족주의를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한국전쟁을 '6.25 사변', '6.25 동란' 정도로 부른다. 남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당이 불법 남침하여 민족 전체를 고통에 빠뜨린 사건이라고 보는 셈이다. 반면 북한은'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치적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용어이다. 왜 우리는 전쟁이 발발한 개전일자는 이렇게 기억하면서도 휴전일자는 잘 알지 못한까? 우리에게 휴전은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라 끝을 보았어야 할 전쟁의 '내키지 않는 중단'이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을 증언하지만 그들이 속한 각자의 위치에 따라 한국전쟁은 서로 극명하게 달리 기억된다. 전투를 지휘한 영관급 장교와 전투 일선에 참전한 병사의 그것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전쟁의 발발 이후 북한에 점령당한 남한 주민이 겪은 전쟁과 인천상륙작전 이후 수복된 남한 영토에서 북한에 동조한 부역자들이 겪은 그것이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국제적 군사대결체제라는 틀 속에서 보아야 하고,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과 인권의 실현이라는 전망을 놓치지 않은 채 그 부정적 유산을 청산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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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김동춘 선생의 전쟁과 사회가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간된 지 어언 16년이 흘렀어도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 속 이념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읽을수록 언젠가 강만길 선생이 하셨던 말씀이 자꾸만 생각난다. 6.25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다시 바라보려면 전쟁을 겪은 세대가 다 죽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하신 말씀 말이다. 이제 70년이 넘었는데도 갈등의 씨앗은 여전하니 맞는 말씀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의 김원봉 관련해서도 그렇고. 그러나 나 역시 김일성 재평가는 힘들 거 같으니 언제나 가능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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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의도도 좋습니다. 미국이 2차대전을 치루면서 쌓여있는 무기를 소비할 곳이 없어 선택한곳이 한국이고 모윤숙은 가미가제에 대해선 찬양일색을 한 대표적 친일작가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인건 알겠는데요 추천사를 써줄 사람도 많을텐데 하고많은 사람중에 리영희인가요 모택동은 조중비밀변계조약을 체결해 한국전쟁의 참전대가로 간도를 가져갑니다. 만일 맥아더장군이 한국전쟁 참전대가로 제주도를 뺏는 조약을 체결했다면 우린 기분이 어떨까요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패러다임)♡♡ 1951년 독립국이던 티벳과 위구르를 침략해 수많은 사람을(중국의 거대한 기차)학살하고 강제병합한 것도 모자라 남의땅인 신장 뤄부포 호수에서 40여 차례나 핵실험을 했고 문화대혁명때 수만명의 내몽골인을 쏴죽였고 4천만의 중국인을 굶겨죽인 모택동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본받아야(自有人)한다고 했는데 이건 사상을 떠나 동양의 히틀러인데 사람좀 봐가면서 추천사 써달라고 그러십시오○○ 읽어보니 의기는 대단하신데 서양의 철학사조중 형이상학만 배운 학자다. 예를들자면 p106 세상에 단일민족이 어디있나 이건 나폴레옹이 지어낸걸 백성을 결집시키기 위해 선각자들이 도입해 외친 구호였을뿐입니다. 큰틀에서 한국전쟁을 재조명한다더니 왕수쩡이나 와다하루끼 같은 외국학자들의 책보다 부실하다. 38선은 일본대본영에서 그은걸 그대로 복사한겁니다.☆☆ 이승만대통령이 잘했다는게 아니라 전쟁사를 다루려면 미국,소련,중국,유럽,일본등에 살아있는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봐야하는데 이승만과 그 측근들의 실수담이 다다. 6.25전쟁사를 다룬 책중에 이책의 시야가 제일 협소하다 또 무슨 전쟁기념관이 한국에만 있나 사람들이 모른다고 아무말이나 막 갖다붙인다. 미군의 양민학살이야기 비공식 매체에서 접할만큼 접한 내용들뿐이다. 안두희를 비호해준건 친일경찰이며 변호사인 전봉덕으로 전혜린의 아버지입니다. 또 3.1운동과 임정을 기획한 여운형선생을 혜화동에서 암살한 김두한얘기는 쏙뺀다. 또 50년동안 국민을 괴롭힌건 공화당까지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은 쏙뺀다 괴벨스식 논법이다. 민주당을 쓰고싶지 않다면 50년이란 말을 쓰지 말아야죠♡♡ 농지개혁이 6.25의 상당부분을 차지했구나 몰랐다. 전쟁에 의해 정치가 어떻게 변하고 사회가 어떻게 재편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학살에 대해 정확히 알고싶다면 (국가가장기를 약탈한다)읽어보십시오 이분은 중국의 비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모택동을 영웅이라 찬양하는 유시민같은 소중화사대주의 사상가다. 등소평이야기(톈안먼 사건)○○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했다. 예를들자면 중공군의 제일앞엔 조선족 그뒤엔 중공군옷으로 갈아입은 항복한 장개석군이 그뒤엔 공산당군이 그뒤엔 총사령관 펑더화이 이런식으로 큰틀을 그릴수도 있다. 또 미시적 관점으로만 쓰려면 한사건을 세밀하게 분석한후 이런사건이 여러곳에서 있었다 그래야지 백화점식으로만 사건을 나열한다 깊이가 없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건 뒤에 로스차일드라는 유대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다 교회다니시나보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사죄했지만 한국은 베트남에 김대중대통령이 미안하다는말 한마디만했다. 그런데 왜 일본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지 뒤끌 많다 흥남에서 친일파하던 문용형에 대해서 쓰십시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 시절 원곡이라는 연극이 유행했고 그 시나리오 대본에서 서유기 수호지 삼국지가 나옵니다 도원결의 삼고초려 100만대군 108도둑 여의봉 모두 허구인데 유시민은 삼국지와 수호지의 영웅들이 활약하던 중국대륙이라고 헛소리를 하고있다. 또 모택동이 침략해 식민지로 만든 위구르,티벳을 중국의 고유영토라고 하고있다. 이런 사람이 추천한 책이니 내용이 부실하지 만일 1933년 외국의 어느 국회의원이 조선은 원래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했다면 기분 좋겠습니까○○ 김두한이 여운형선생을 암살했는데 그의 딸은 왜 국회의원이 되었을까요 우두산 소슬묘도 없고 문소근의 개세지웅도 없고 모악산 김태서묘도 없고 황해도에 있는 이승만 할아버지묘도 없고 경복궁 좌향논법도 없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책만읽는다. 특히p389 80년대 논법에서 한걸음도 못벗어났다. (80/20법칙,일본의상도)읽어보십시오 정도전의 사농공상이란 상업을 억제하니 공업이 발전할 수 없고 공업이 발전할 수 없으니 좋은 물건을 만들수 없고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으니 나라에 부가 쌓이지 않고 나라에 부가 쌓일수 없으니 군대를 키울수 없고 군대가 없으니 변변한 싸움 한번 못해보고 국권을 넘겨준 것아닌가 (한국,번영의길)☆☆ 책 몇권만 추천드립니다 북한현대사 김의나라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3 풍수,대한민국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조용헌의 도사열전 인류본사 反중국역사 찔레꽃 문익환평전 욕망하는 지도 탈북마케팅 대쥬신을 찾아서 1,2 거란제국사연구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미완의 파시즘 광장 베트남사 한국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 소설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 히로히트평전 86세대 민주주의 에코다잉 세계수목장 한국어는신라어일본어는백제어 당신들의 대한민국 얼굴,한국인의 낯 호치민평전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비밀의숲 DMZ가 궁금하니 북한의 자연생태계 패권의비밀 노컷,조선왕조실록 한국,번영의 길 평양의 소련군정 한국보수세력연구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 위구르 제노사이드 마오1,2 만주족의 청제국 달라이라마와 함께한 20년 ♡○☆ 봄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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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어느 운전사의 실수 1914년 6월 28일 오전11시 화창한 여름날 아침이었다. 승객 두사람이 탄 자동차가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비좁은 통로를 지나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런데 이날 이 자동차 운전사가 저지른 실수는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이 자동차는 불행하게도 열아홉살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앞에 멈춰섰고, 세르비 아 테러조직 '검은 손' 에 소속되어 있던 프린시스는 눈앞에 다가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두 번 당겼고, 차 안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 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 대공비가 30분만에 숨졌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사건을 세르비아 침공의 빌미로 삼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편에 서자 세르비아의 보호를 공언하고 있던 러시아도 가만 있을 수 없 게 되었다. 단 30일만에 국가들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힌 위협과 동맹의 연쇄 반응으로 거대한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 리고 오스트리아,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터키는 엉켜버렸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유이 며 5년뒤 1,000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뒤에야 이 전쟁은 끝이 났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심심해하던 유럽역사에서 1914년 이전은 길고 평화로운 오후 같은 시대였음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 시대의 역사가들에게는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설 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닥친 듯한 사건이었다. 전쟁에서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이고 프랑스와는 기존의 두나라의 식민지로 있던 아랍땅을 나누자는 사이 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하고 유대인에게는 독립국을 세워준다는 벨푸어선언을 해 군자금을 조달하고 불리 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랍의 하심왕조와는 전쟁후 팔레스타인을 주는 조건으로 후세인-맥마흔서한 을 각각 체결하게 된다. 하나의 땅을 놓고 책임질 수 없는 세가지 약속을 해 오늘날 중동사태의 발발 원인을 제공한다. 연합국편을 들던 소련이 1917년 공산화되고 전쟁에서 빠지자 공산혁명주체세력중에 유대인이 많다고 잘 못판단한 영국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적극지원한다. 형제국 터키를 배신할 수 없지만 결국엔 터키에 총을 겨눈 하심왕가에 의해 중동에서 겨우 승기를 잡은 연합국은 승리하게되고 발칸의 산악지대에 각각 독립국으로 흩어진 소국들을 달래기 위해 미국의 윌슨대 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는데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이걸 잘못해석해 발칸반도에 국한된 선언을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걸로 알아 3.1운동이 촉발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두달후 중국에선 5.4운동이 그후 인 도에선 비폭력저항운동이 간디에 의해 일어난다. 연합국이 독일에 전쟁배상금을 요구할때 정부의 간섭을 극대화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학설을 주장한 경 제학자 케인스가 만일 그렇게되면 인플레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다른 독재자가 등장해 세계는 혼란 스러워질거라 예견했으나 이를 무시당한다. 1933년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한 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일으켜 3,00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연합군에 항복 한다. 미국은 관동군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고 천황직속군사령부인 대본영이 그은'38 선'에 의해 그 북쪽은 소련군이 무장해제시키고 남쪽은 미군이 무장해제 시키는 선으로 그은 것이 영구고 착화된다. 이후 중국대륙을 거의 지배한 국공내전의 승자 장개석에게 소련은 1946년 1월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중국은 정식으로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1933년 10월부터 국민당 정부군에 쫓겨 중국대륙을 남쪽으로 반바퀴돌면서 1만km를 걷는 이른바 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1946년 6월 국민당정부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동북지역 남부권까지 밀린 중국공산당세력은 북한지역으로 까지 후퇴해야했다. 국민당정부 세력에 의해 최악의 순간까지 밀렸던 중국공산당 세력에겐 두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조선들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북한이 후방기지로서 역할해준데 힘입어 1947년 7월부터 대반격을 취할 수 있었고 이 시기를 틈타 소련군에 의해 군사훈련도 더불어받아 강병으 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공업시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미국의 제일 큰 걱정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는데 공산주의가 생겨난 가장 큰 배경은 '잘살아보세'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추워서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발칸 은 산악지대라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동서독 국경이 가장 위험한 지역인데 여길 막는 길은 마샬플랜으로 이름지어진 막대한 경제원조를 서독에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되면 독일에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우방국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 되니 프랑스가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베트남에서 디엔 비엔 푸 전투이후 고전하고 있던 프랑스대신 베트남독립군(월맹)을 이끄는 호치민과 전투하는 길 밖에 없어 월남전을 개시하게되고 여기에 한국도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은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었고 미국이 한국을 예쁘게 봐주어 토목기술이 전 수되고 중동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미국에 의해 카이스트도 설립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돌아간후 중국은 8로군에 편입되었던 조선의용군을 대 륙평정후 북한으로 돌려보내 6.25전쟁을 수행한 중요한 병력이 되게한다. 북한군의 전투력이 0.5라면 조 선족의 전투력은 1.5였다고 한다. 이승만은 북한이 비밀리에 남침준비를 하는 위기상황에서 1948년 11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 그 전신인 한민당과 협의를 거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문제가 흐지부지된 것도 그 로서는 공산당에 대한 수사경험이 풍부한 일제 고등계 출신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6.25발발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배치된 조선족은 무려 6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전쟁발발 당시 약20만명의 북한군 병력중 30%에 가까운 것이다. 전쟁후 일본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역사교육과 민주교육을 시켰으나 일본이 최후방어선이라 여긴 미국은 일본내에서 군,정에 경험이 많은 전쟁범죄자들인 우익세력을 재등용하게 되어 오늘날 자민당차원에서 야 스쿠니신사참배를 하게되는 우경화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중.일 삼자구도와 중국의 남중국해로 영해확장문제가 진행돼 2016년까지 다투게 되는데 여기 산호섬은 수많은 생물의 서식처로 세계적 생태보고인데 여기다 군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지금 미국과 대치 하고 있는 것이다.♡○☆ 봄에 자미원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