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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해피는 네거티브하지 않아.
"네거티브 해피는 네거티브하지 않아." 내용보기
주인공은 뭔가 특기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착하거나 모범생도 아닌, 꽤나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친구 때문에 생긴'학교에 다니는 이유'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지내던 소년은 어느날 우연히, 체인쏘를 들고 강림하는 '세계의 적'에 목검과 나이프로 맞서싸우는 '세일러복 미소녀전사'를 만나게 됩니다.'너무나도 확실하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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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뭔가 특기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착하거나 모범생도 아닌, 꽤나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친구 때문에 생긴'학교에 다니는 이유'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지내던 소년은 어느날 우연히, 체인쏘를 들고 강림하는 '세계의 적'에 목검과 나이프로 맞서싸우는 '세일러복 미소녀전사'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도 확실하고 명쾌'한, '절대적 악'인 적과 싸우고 있는 소녀를 보고 소년은 자신도 그녀와 함께 싸우면 '살아가는 목적'도 '의미'도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에게도 그런 게 생기는 거라고 믿고 함께 싸우길 청합니다. 물론, 그녀만큼의 운동신경도 전투력도 없는 소년으로서는 그냥 전장까지 소녀를 자전거로 날라주고 포카리스웨트나 커피를 준비하고, 수건을 건네주는 역할밖에 맡을 수 없지만, '초인전대물에서 초인전대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을 서포트하는 박사나 로봇이나 도우미들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갑니다.

(종잡을 수 없이 비현실적으로 나아가던 스토리를 마지막에 현실로 다시 끌고오며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결국 마지막까지 봐야 모든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만, 중요한 부분까지 다 적어 보겠습니다. 물론, 이런 내용을 알고 보신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반전이라거나, 비밀이 중요한 그런 소설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소녀를 동경하는 소년과 그런 소년에게 끌리는 소녀. 너무나 흔한 시츄에이션이라 한숨이 나올 것 같지만, '체인쏘를 든 남자'의 비밀이 밝혀지며 상투적인 저런 설정도 빛을 발하더군요.

결국 '세계의 적'이자 '절대악'인 체인쏘를 든 남자는 '소녀의 세계'의 적이자 소녀에게 있어 '절대악'이었던 겁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역시 삶의 의미나 왜 살아야 하나, 왜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소녀에게 마치 부모님이 '살아라'는 말을 해 주듯이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길의 소녀의 앞을 체인쏘를 든 남자가 막아섰고, 그 후 소녀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세계의 적과 대적하며.
(소녀는 세상에 이런 슬픈 일이 있는 건 어딘가에 이런 일을 꾸미는 세계의 적, 절대악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거기서 체인쏘 남자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으면 밋밋하지요?)

하지만, 황당하지만 재미있고, 말은 가벼워도 적당히 진중하게 행동하는 소년과 함께 싸워나가는 동안 소녀는 '다른' 살아가는 이유나 의미,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뭐, 간단하게 '사랑'이라고 해 둡시다. 하지만, 오랫동안 '싸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언제나처럼 쌀쌀맞게 대하게 되고, 소년의 '동경'하는 마음 역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도쿄에 살고있던 부모님은 소년을 도쿄로 전학시켜 함께 살자고 하고, 소년은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이제 자기는 떠나니까, 혼자 무리해서 싸우지 말라고 했을 때 소녀가 보인 이상한 반응에 의아해하면서도 떠날 짐을 꾸리는 소년.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가는 건 '세계의 적' '절대악' 때문이다'

늘 마지막엔 하늘로 날아올라 달아나던 체인쏘를 든 남자를 이번에야말로 물리치고 소년이 떠나는 걸 막으려고 결심한 소녀는 홀로 마지막 전장으로 향합니다. 소년에게 체인쏘를 든 남자가 처음 출연한 배경과 자신의 마음을 적은 편지를 남기고..

하지만, 소년이 찾지못한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가지마!'라는 소녀의 말이었고, 이제 그 대답을 찾게 된 소년은 도쿄로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통보한 후, '훔친' 오토바이로, 친구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오토바이로 어딘지 알 수 없는 마지막 전장을 찾아 달려갑니다. '죽은 친구와 함께'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뭔가를 찾기 위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이런 장면은 언제나 저를 감동시킵니다. 제가 가장 쉽게 찡해지는 그런 대목입니다 :b 나스 안달루시아에서 라스트스퍼트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도로를 달리는 페페에게 전율과 감동을 느꼈듯이, 네거티브해피의 이 대목에서도 찐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소년은 소녀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체인쏘를 든 남자와의 최후의 대결의 향방은?.. 뭐, 클라이막스 부분이나 결말까지 다 말해버리면 안 되겠죠.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작가의 인기작인 NHK에 어서오세요를 먼저 보신 분들, 혹은 NHK에 경도된 분들(?)이 네거티브해피도 '좌절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나 '암울한 이야기'라고 평하시는 건 매우 잘못된 겁니다(느끼는 바가 다를 수도 있다고 항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네거티브해피에서는 아직 '대학' 혹은 '직장'.. 혹은 백수(프리타?)라는 아직 알 수 없는, 그리고 희망(설령 엉터리일지라도)이 있는 '미래'가 주인공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어려서인지(라고 적으면 슬퍼지지만)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감정들도 주인공들을 구제해 주고, 구원해 주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들은 구원받습니다. 살아가는 목적, 이유, 의미..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좀 더 건전합니다. '세일러복 미소녀전사'는 소년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법칙(그런 법칙 없다!)에 충실합니다 :b 어서 번역되어 한국의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라지만, 이건 전에 한 모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군대'가 있기 때문이지요! 오 하느님 어머니!)

'달린다' 거기다 '건전(정상)연애'. 내일의 걱정과 불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도, 오늘은 일단 '세일러복 미소녀전사'에게 건배~!

 

(오 하느님 어머니 부분은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따 온 것입니다)

s*****g 2007.02.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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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 내용보기
기본적으로 제가 즐겨 취하는 감상문 스타일은 '풀이'식입니다.이 작품에서 이것은 ~~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캐릭터는 ~~를 상징하며, 그가 말한 이 대사는 결국 ~~이다.이런 식으로, 무언가 하나 '코드'를 정해놓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좔좔좔 풀어가는 형식. 심할 때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일일히 다 풀어 버리죠. 사실, 작품 본편을 읽는 재미보다 그렇게 풀어가는 재미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 내용보기
기본적으로 제가 즐겨 취하는 감상문 스타일은 '풀이'식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것은 ~~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캐릭터는 ~~를 상징하며, 그가 말한 이 대사는 결국 ~~이다.
이런 식으로, 무언가 하나 '코드'를 정해놓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좔좔좔 풀어가는 형식. 심할 때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일일히 다 풀어 버리죠. 사실, 작품 본편을 읽는 재미보다 그렇게 풀어가는 재미가 더 큰 경우가 많아요.

자, 그러면.
이번에 감상문을 쓸 작품은, 저~기 위에 제목으로 올려 놓은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입니다.
요즘에는 'NHK에 어서 오세요'로 유명해진(?) 타키모토 타츠히코 씨의 데뷔작.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글 한마디 한마디마다 넘처흐르는 '신인 작가의 열정'이 손에 쥘 듯이 느껴져서 더 좋았지요. 이런 건 '작품'이 맘에 들기 이전에 '그 글을 쓴 사람'이 맘에 든다니까요 정말.
이런 걸 봐 줬으면, 열심히 감상문을 써 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작가를 위한,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게 읽은 저 자신을 위한.
그렇다면 이번에도 변함 없이,
작품 내의 여러 소재들, 캐릭터들, 대사들이 의미하는 바를 풀어 볼까요?



...불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그런 '풀이'식 감상문이 불가능해요.
왜냐구요?

작품 내에서, 다 풀어 버렸거든요.

각 캐릭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이 외치는 대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들의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소설 내의 사건들이 도대체 무슨 주제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 명백합니다.
풀이를 하려는 행위 자체가 바보스러워 질 정도로, 너무나도 명백해요.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장담컨데, 이 책의 독자중 99%는 그것을 이해했을 겁니다.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하게 보일 뿐더러, 틈틈히 그걸 설명한 후 마지막에는 총정리까지 해 줍니다.
혹시나 자잘한 것들을 놓치는 사람이 있을 까봐, 책 맨 마지막의 '해설'란에서는 다른 작가가 써 준 약~간 난이도가 있는 풀이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나쁜 작품일까요?
너무 명백하게 써 놓은 주제에 혹시라도 독자가 이해 못할까봐 일일히 설명까지 해 놓은 이 소설은, 나쁜 작품일까요?

'살아라'

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삶이라는 건 더러워. 힘들어. 정말 지랄맞아. 젠장. 빌어먹을. 엿같아. 캄캄해. 아아~이런 쓰펄!!!!
그래도 살아라.
살다보면, 답이 있.을.지.도.몰.라.
그러니까, 살아라.

참으로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주제입니다.
이것 저것 일일히 다 설명해 놨으면서도, 그 주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요.
살다 보면 희망이 있을거다!
절망은 언젠가 웃음으로 바뀔거다!
..그딴 소리 안합니다.
삶이란 얼마나 암담한지. 삶의 목적을 찾기란 얼마나 허무한지. 그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독자에게 들이댑니다. 이거 맞지? 삶이란게 이런 거 맞지?
그런 후에
'그치만 답은 없어'
라고, 이 또한
'너무나 명백하게'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비꼬듯이 한마디.
'그래도 혹시 알아? 답이 나올지. 그러니까, 살아봐'
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너무나 명백하게.
너무 뻔뻔해서 질려버릴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역시,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뭐 대단한 메세지인양 숨겨 놓는 것도,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으로 빙빙 돌려 표현하는 것도 아닌,
'~~해라'라는 명령형도, '~~임에 틀림없다'는 확정형도 아닌,
무책임하고 애매한 추측형만을 그저 대놓고 외치는 '살다 보면 답이 있을지도'.
솔직히 누가 삶의 정답을 논할 수 있고, 누가 그 가치를 결정할 수가 있겠어요?
남이 온갖 근거를 가져다 대며 '살아라!'라고 외쳐봤자, 그것은 정답이 아니며 자신의 삶에 가치를 주지도 못합니다.
차라리 그냥 '아아, 인생이란 더러워. 그치?'라고 줄창 씹어대면서도 '그래도 답이 있을지도'라고 무책임하게,
하지만 명백하게 중얼거리듯 외치는 편이-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법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그 말은 믿을 수가 있는 겁니다. 애매하니까. 무책임하니까.
같잖은 '살아라! 살다 보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어!'보다, 훨씬 더 믿을만 하니까.
애매하기 때문에 오히려 확실한 아이러니를, 이 책은 주제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를 읽고서 '아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갈거야!'라는 희망에 찬 대사를 울부짖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치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은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저 '삶이라는게, 살다 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고? 당연한 소리 아냐?'라고 한 번 코웃음치고 말았을 뿐이지요.

하지만 언젠가 제가 정말로 힘들 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일 때.
혹은...이 소설에 나온 '노토'처럼, 오토바이를 탄 채로 커브길 가드레일을 향해 전력질주 할 때...
그 '당연한 소리'를.
이 소설은, 떠올리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렇게 다시 사는 것을 택했을 때,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이 '네거티브 해피'라 해도...작가도 저도 책임은 못집니다만)




우리들은,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었다.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中
d*****h 2007.04.1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