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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뭔가 특기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착하거나 모범생도 아닌, 꽤나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친구 때문에 생긴'학교에 다니는 이유'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지내던 소년은 어느날 우연히, 체인쏘를 들고 강림하는 '세계의 적'에 목검과 나이프로 맞서싸우는 '세일러복 미소녀전사'를 만나게 됩니다.
(오 하느님 어머니 부분은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따 온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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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제가 즐겨 취하는 감상문 스타일은 '풀이'식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것은 ~~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캐릭터는 ~~를 상징하며, 그가 말한 이 대사는 결국 ~~이다. 이런 식으로, 무언가 하나 '코드'를 정해놓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좔좔좔 풀어가는 형식. 심할 때는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일일히 다 풀어 버리죠. 사실, 작품 본편을 읽는 재미보다 그렇게 풀어가는 재미가 더 큰 경우가 많아요. 자, 그러면. 이번에 감상문을 쓸 작품은, 저~기 위에 제목으로 올려 놓은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입니다. 요즘에는 'NHK에 어서 오세요'로 유명해진(?) 타키모토 타츠히코 씨의 데뷔작.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글 한마디 한마디마다 넘처흐르는 '신인 작가의 열정'이 손에 쥘 듯이 느껴져서 더 좋았지요. 이런 건 '작품'이 맘에 들기 이전에 '그 글을 쓴 사람'이 맘에 든다니까요 정말. 이런 걸 봐 줬으면, 열심히 감상문을 써 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작가를 위한,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게 읽은 저 자신을 위한. 그렇다면 이번에도 변함 없이, 작품 내의 여러 소재들, 캐릭터들, 대사들이 의미하는 바를 풀어 볼까요? ...불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그런 '풀이'식 감상문이 불가능해요. 왜냐구요? 작품 내에서, 다 풀어 버렸거든요. 각 캐릭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이 외치는 대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들의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소설 내의 사건들이 도대체 무슨 주제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 명백합니다. 풀이를 하려는 행위 자체가 바보스러워 질 정도로, 너무나도 명백해요.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장담컨데, 이 책의 독자중 99%는 그것을 이해했을 겁니다.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하게 보일 뿐더러, 틈틈히 그걸 설명한 후 마지막에는 총정리까지 해 줍니다. 혹시나 자잘한 것들을 놓치는 사람이 있을 까봐, 책 맨 마지막의 '해설'란에서는 다른 작가가 써 준 약~간 난이도가 있는 풀이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나쁜 작품일까요? 너무 명백하게 써 놓은 주제에 혹시라도 독자가 이해 못할까봐 일일히 설명까지 해 놓은 이 소설은, 나쁜 작품일까요? '살아라' 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삶이라는 건 더러워. 힘들어. 정말 지랄맞아. 젠장. 빌어먹을. 엿같아. 캄캄해. 아아~이런 쓰펄!!!! 그래도 살아라. 살다보면, 답이 있.을.지.도.몰.라. 그러니까, 살아라. 참으로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주제입니다. 이것 저것 일일히 다 설명해 놨으면서도, 그 주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요. 살다 보면 희망이 있을거다! 절망은 언젠가 웃음으로 바뀔거다! ..그딴 소리 안합니다. 삶이란 얼마나 암담한지. 삶의 목적을 찾기란 얼마나 허무한지. 그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독자에게 들이댑니다. 이거 맞지? 삶이란게 이런 거 맞지? 그런 후에 '그치만 답은 없어' 라고, 이 또한 '너무나 명백하게'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비꼬듯이 한마디. '그래도 혹시 알아? 답이 나올지. 그러니까, 살아봐' 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너무나 명백하게. 너무 뻔뻔해서 질려버릴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역시,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뭐 대단한 메세지인양 숨겨 놓는 것도,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으로 빙빙 돌려 표현하는 것도 아닌, '~~해라'라는 명령형도, '~~임에 틀림없다'는 확정형도 아닌, 무책임하고 애매한 추측형만을 그저 대놓고 외치는 '살다 보면 답이 있을지도'. 솔직히 누가 삶의 정답을 논할 수 있고, 누가 그 가치를 결정할 수가 있겠어요? 남이 온갖 근거를 가져다 대며 '살아라!'라고 외쳐봤자, 그것은 정답이 아니며 자신의 삶에 가치를 주지도 못합니다. 차라리 그냥 '아아, 인생이란 더러워. 그치?'라고 줄창 씹어대면서도 '그래도 답이 있을지도'라고 무책임하게, 하지만 명백하게 중얼거리듯 외치는 편이-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법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그 말은 믿을 수가 있는 겁니다. 애매하니까. 무책임하니까. 같잖은 '살아라! 살다 보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어!'보다, 훨씬 더 믿을만 하니까. 애매하기 때문에 오히려 확실한 아이러니를, 이 책은 주제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를 읽고서 '아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갈거야!'라는 희망에 찬 대사를 울부짖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치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은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저 '삶이라는게, 살다 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고? 당연한 소리 아냐?'라고 한 번 코웃음치고 말았을 뿐이지요. 하지만 언젠가 제가 정말로 힘들 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일 때. 혹은...이 소설에 나온 '노토'처럼, 오토바이를 탄 채로 커브길 가드레일을 향해 전력질주 할 때... 그 '당연한 소리'를. 이 소설은, 떠올리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렇게 다시 사는 것을 택했을 때,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이 '네거티브 해피'라 해도...작가도 저도 책임은 못집니다만) 우리들은,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었다. -《네거티브 해피 · 체인소 엣지》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