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한 이웃="">이라는 소설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충분하다. 또한 세상이 얼마나 인색하고 폭력적인가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법이 참 따스해서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간의 동물에 대한 폭력을 그려내는 데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 <낭만 고양이=""> 같은 경우는 내용은 물론, 결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시장 뒷골목을 헤매는 길고양이의 삶에는 강한 연민이 일었다. 결국 고양이로 대변되는 인간의 삶이기에... 지금 누군가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오레오피테쿠스라는 멸종된 유인원으로 상징되는 <석구>라는 작품 속의 인물은 대학시절의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순수한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 그 점이 안타깝기만 한 이 시대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방 도우미로 전락해버리는 한 가정주부의 삶을 그리고 있는 <서울야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 표지에 나오는 글처럼 요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는 소설이다.서울야곡>석구>낭만>수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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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책을 선택할 때 그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책 제목에 끌려서 선택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이것 저것 꼼꼼하게 따지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김혜정 작가의 단편집인 이 책 수상한 이웃도 아무런 예비 지식
없이 단지 제목에 끌려 선택한 책이었다. 그것도 이 수상한 이웃이란 제목과 조금
은 흥미로운 표지에 끌려 이 책이 추리물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기대는 책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기도 전
에 보기 좋게 배신 당했다. 이 책 수상한 이웃은 추리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
주변의 흔하게 소외된 그러면서 삶을 꿋꿋이 버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혀 생각도 못했던 내용에 빠져서 끝까지 이 책을 읽어나
갔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
을 버텨가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들의 오해와 선입견으로 주변에
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표제작 수상한 이
웃, 이복형제들의 반목과 그러면서도 결국은 자신들 모두가 세상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다시 보듬는 오리 날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지만 보지
않으려하면 절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빗댄 것처럼 보
이는 낭만 고양이 그리고 그 외에도 이 책 수상한 이웃에는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보통 패배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
를 조금의 미화나 희망도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 마지막
까지 세상과 화해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끼리 화해하고 세상에서 더 밀려나고 심지
어는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루저라고 부르는
그들을 받아들일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담담한 루저의 이야기에서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존재하는 이해하고 받아들
여 보려는 이들의 존재와 그래도 마지막까지 살려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래도 아직은 버텨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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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놓고 보니 모두 삶이 쓸쓸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대로 수상한 이웃(김혜정, 문이당, 2006)은 사회적으로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변두리 인물 군상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 첫 작품이 좋으면 그 다음 작품도 기대하며 읽게 된다. ‘수상한 이웃’을 시작으로 ‘방씨의 하루’에서는 정점을 찍어주며 말끔하게 내리막을 달려 준 단편이었다. 사실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만 떠도는 인생들의 이야기로 단순히 비루하고 남루한 생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 내야 하는 삶에 대한 시선이 돋보였던 작품중에 하나였다. ‘수상한 이웃’은 한 노파의 살인사건으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린 조용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한 밤에 봉변당할 뻔한 일을 구조당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영원한 이웃이 없듯 한번 이웃도 다시 봐야 한다는 씁쓸한 뒷내가 나는 이야기였다. ‘오리, 날다’는 졸지에 아버지를 여의고 배다른 어린 동생 두명을 양육해야 하는 처지가 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어떻게든 동생들을 버리고 애인과 함께 아버지가 남겨준 돈으로 청춘의 삶을 살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미스터리하면서 과연 그 오리는 날았을까? 의문을 갖게 하는 ‘오리, 날다’였다. ‘낭만 고양이’는 누군가의 귀여움을 받다 길거리에 버려져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이다. 시장 한 귀퉁이에 좋은 사람이 있다 생각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측은하기만 하다. ‘등에’는 형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자 애를 쓰는 인물의 이야기다. 형을 뛰어넘고 싶지만 결코 뛰어 넘지 못한 동생,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되어 도움을 준 나타샤라는 러시아 여자를 찾아 헤매는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사랑이었을까? ‘아내의 신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버린 아내를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신경과민으로 여제자에게 갖는 과도한 애증과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석구’는 학교나 사회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사내를 두고 동창들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그는 온전한 생활인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동창들에게 유형무형의 부담을 지우며 살아간 부정적인 인물의 이야기다. ‘서울야곡’은 가정 형편 때문에 노래방 도우미로 나선 한 가정 주부의 삶을 보여주고 ‘물속에서 걷다’는 한 중국 교포 여인의 도피행을 그린 이야기로 ‘등에’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러시아 여인 나타샤의 삶이 서로 닮아 있다. 그녀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최선을 다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지만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고된가를 전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방씨의 하루’는 용역 회사를 통해 어느 학교의 숙직 전담원으로 들어간 인물이 그 학교 교장과 형제간인 것처럼 닮음으로써 빚어지는 의외의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궁지에 몰린 노인 방씨가 한 순간 장난끼가 발동해 자신을 멸시한 교장을 골탕먹일 작정으로 교장을 샤워실에 가둔채 하루동안 교장행세를 하고 또 교사들도 그것을 알면서도 그를 교장으로 알고 온갖 결재를 완료하는 교묘한 공모의 현실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신문 기사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우리 주위에 있고 늘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주변인에서조차 떠밀려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이나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한데 엮여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을 통해 소외된 삶이 무엇인지 우리 주변을 다시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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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만을 떠돌아야 하는 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단편집이다. 얼마 전 일본 작가 카쿠타 미스요의 <삼면 기사, 피로 얼룩진>이라는 단편집을 봤다. 그 작품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사회면 기사를 살펴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었다. 기사 자체를 소재로 내용을 만든 일본 작품과는 달리 이 단편집은 그 기사가 중심이 아닌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단순히 비루하고 남루한 생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 내야 하는 삶에 대한 살아 있는 시선이 돋보였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삶이라는 것이 던져주는 작은 물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수상한 이웃>은 변두리에 새로 생긴 아파트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혼자 사는 노파의 살인 사건으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린 조용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한 밤에 봉변당한 뻔한 일을 구조당한 여자의 이야기다. 누가 수상한 이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웃이 이웃이 아니게 된 지금 어쩌면 모든 이웃이 모든 이들의 이웃인 우리에게는 수상함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아내의 신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되고만 아내를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신부 인형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을 놓는 아내와 그 이유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남편, 가끔 살면서 지뢰가 하나씩 터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터지지 않더라도 지뢰를 밟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누군가를 끌어 안고 함께 가느냐, 아니면 혼자 자폭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그런 느낌의 작품이었다. 소통할 수 없는 부부란 각기 다른 지뢰를 밟은 사람들이 아닐까.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부부란 따로 자폭함을 선택한 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내 오래된 살과 뼈들이 뭉쳐
이런 석구같은 친구는 이제 멸종되었다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누구도 석구같은 친구를 원하지 않고 자신이 되고자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슴 한껸 아리다 느낀다. 악어의 눈물같은 눈물을 흘리는 친구, 미안하다는 의미를 몰랐던 친구, 하지만 다시 그가 살아 그들 옆을 어슬렁거린다면 또 다시 귀찮아 하고 창피하게 생각할 친구들, 석구의 멸종은 진정한 친구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 야곡>은 노래방 도우미가 되어야 하는 아줌마의 이야기가, <방 씨의 하루>는 교장 선생님과 외모가 빼닮은 일용직 숙직원이 된 방씨의 이야기가, <물 속에서 걷다>는 돈을 벌기 위해 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조선족 아줌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두 같은 이야기다. 언젠가 신문 기사의 작은 사회면에서 본 이야기나 뉴스에 등장했던 이야기들, 그렇게 외면했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고 또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 늘 주변인이기만 했던 사람들 이야기, 주변인에서조차 떠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비단 우리가 주변으로 몰아버린 것이 사람이나 동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사람살이의 기본, 더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생존권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무엇이랴 싶지만 단지 산다는 것만이 전부라면 인간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너무 초라하다 느껴지지 않을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이들 소외된 삶들을 통해 바라보게 하고자 한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