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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 김영현, 시간여행
죽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티비나 인터넷 기사 등에서 하루에도 빠지지않고 접하는 것이 사고소식이기도하니 말이다. 죽음이란 나에게 두려움이다. 잃을것이 많아지면 더 두려워진다. 특히 나처럼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자식의 입장이기만 했을땐 덜 했으니 말이다. 난 어렸을때부터 유난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렸을때 자주 보았던 사고 때문이었다. 도로근처에 살았던 탓에 사고 장면을 자주 보았고 초등학교때는 학교 근처의 아주 심한 사고현장을 가까이서 목격도 했으며 그외에도 차 사고로 인해 구급차에 실려가는 어린 아이옆에서 그 아이를 지켜보며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고 결국 그 아이가 사망했단 소식도 접했다. 아마도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일찍부터 하게 된 것 같다. 죽음이 두렵고 슬픈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별때문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이 책의 제목은 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인데 유쾌할 수 있을까. 그럴수만 있다면 지금보단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꼭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 두려워할 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좀 더 다른 방법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이책은 죽음앞에 당당하거나 또는 의연할 수 있었던 저자의 주변사람이나 소크라테스 등 유명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책의 본문엔 죽음의 경험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몰랐던 이야기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책을 어느정도 읽고나니 문득 저자는 이책을 왜 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겨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언제죽을지 모를 죽음에 대해 두려워만 하기보다는 이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 아닌가싶다. 후회없는 인생을 잘 살았노라고 죽음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 언제닥칠지모를 죽음이 두려워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이책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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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음에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있었지만. 정작 내죽음 은 어떻게 맞이 하게 될것인가? <죽음에관한 유쾌한 명상>을 읽으면서 나에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되었다. 얼마전에 일본의사가 쓴 책에서 죽기전에 < 엔딩노트> 를 작성해야 된다고 읽었는데 무심코 흘려버리고 바쁘게 살아왔다. 저자도 건강할때 <버킷리스트>를 기록해놓을것을 권면하고 있어서 이번에는 꼭 죽기전에 하고싶은일들을 꼼꼼하게 적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것인가? 하는 물음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건강한 사람은 웰빙에 관심이 많다.그래서 몸에 좋은음식을 먹기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그렇지만 잘죽은것(웰다잉)을 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같다 . <평소에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죽느냐가 그의 삶을 결정하듯이 평소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의 죽음을 결정한다 p200> 라고 책속에서 저자는 말한다. 배우 김자옥씨의 죽음을 보면서 참 아름답게 사셨고 그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 하셨다고 생각했다 . <죽음은 생을 완주한 자만이 맞이할수있는 마지막 관문이다.pp220>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는 이 세상을 잘 살다가 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예수님,석가,소설가, 그외에도 저자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세상에서 성공했었던 사람들의 죽음들을 통해 간접죽음을 경험해 볼 수도 있었던 시간이였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은 생로병사중 늙음의 기간이 가장 길고, 어떻게 늙어가는지에 대한 몸에 현상도 잘 설명해준다. <죽음은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늙음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겹도록 경험 해야 한다.p210> 그러나 죽음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혼자 감당해야 몫임을 알게된다 . 그렇지만 저자는 사람이 죽을때는 다섯가지단계을 지나게 되는데 마지막에 평화의 단계를 하나더 추가한다 .왠지 마음에 위안이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런데 그 죽음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죽음을 대면하기 좋은 사람은 아무도없을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사랑하고 나누면서 겸손한게 살아야 할것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오는순서는 있어도 가는순서는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책은 자신을 돌아보게되고 살아온길과 살아갈길에 방향을 알게 해준다. 책을 덮으면서 가슴에 남는 말이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이며, 그것을 넘어가는 것도 혼자이다. 거기에는 정답도 왕도도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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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죽음에 관한 책을 여러번 접해보는 것 같아요~ 찾아서 읽을려고 하는 편은 아니었는 데 죽음에 관한 에세이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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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말 화살같이 빠르다 일주일이 의미없이 반복되기를 수차례 다시 또 월요일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를 죽는것, 마냥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을 반가워 할 수 만도 없다 어릴때는 정작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도 많았고, 죽음이라는 걸 막연히 두려워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하루 하루 사는 것만도 코가 석자라 닥치지 않은 죽음까지는 고민할 시간도 없다. 가끔 장례식장에 가서나 맞딱드리는 죽음. 그마저도 남의 죽음일뿐, 아직까지 나의 죽음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가치있게 나이 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후회없는 죽음은 무엇인지,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게다가 그 사색이 침울하고 우중충 하지 않고 밝고 유쾌 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싶었다. 이책은 불교의 생사관과 쇼펜하우어의 철학, 장자, 소크라테스등 세계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화 등을 소개하며 죽음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언급하고 우리에게 내려놓고, 벗어나자는 메세지를 전한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흔히 말하는 그 통속성 석에 종족 번식을 위한 생물의 이기성이 숨어 있다는 분석 또한 신선했다. 비록 나는 사랑에 깊이 빠져 연인과 함께 자살하거나 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사랑은 경험해 본 적 없어 잘 이해할 수 없지만 ㅎ 오히려 종족 번식을 위한 욕망이 죽음을 초월하는 거라면,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2세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더 삶에 집착하게 되지 않을지. 엄마가 되어보니, 내 새끼들을 놔두고, 사랑 나부래기 때문에 목숨을 끊는 것 같은 철없고 사치스런 짓은 못할 것 같은데.. 이런 경우도 역시 '번식을 통해 불멸로 나아가려 하는 것으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본능이다'는 작가의 말과 일맥상통하기는 한다. 결국 종족번식의 수단 또는 과정인 사랑이 그 목적을 달성(2세 출산)한 후이냐 전이냐에 따라, 그 본능의 궁극적인 방향도 달라지는 건가 싶다.
우리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한 원인을 전쟁에 대한 공포로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기도 한다. 전쟁이 아니더라고, 국왕의 참수형, 능지처참등 죄인에 대한 처형, 중세 이교도 재판의 마녀사냥 등도 같은 효과를 낳는다.
폭력과 광기는 비단 전쟁과 같은 특별한 상황 하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도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이용해 인간을 지배한다.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집단을 지배하는 가장 공공연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럴지도! 우리가 죽음을 무서운것 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기게 된 것 역시 위와 같은 지배과정의 한 학습효과일지 모른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연상훈련을 하고, 갑작스럽지 않을수 있도록 오랫동안 준비해온 죽음을 맞는다면 더 이상 죽음이 불행이 아닐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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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 명상에 대한 책이 있어 읽게 되었다. 명상이지만 그 주제는 죽음. 나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 둘을 낳고 난 뒤에 자다가 새벽에 깨서 혹은 한 낮에 대뜸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이 아니라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라는 원초적 질문이 내 마음 무의식에 계속 자리하고 있나보다. 사람이라면 죽음에 대해 한 번쯤은 다들 생각해보지 않을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20대 후반 갑상선암에 대한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근무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주변의 권고로 갑상선 진료를 받았는데 종양이 발견되었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악성종양 같은데 수술하고 약 먹으면 된다며('평생' 약 먹어야 된다는 말은 빼고) 나를 안심시켰기에 그게 암일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진료를 받고 나오니 간호사는 젊은 나이에 암진단을 받아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악성이 암을 대신하는 용어인지조차 몰랐다. 약 봉지였는지 아니면 대학병원에 가기 위한 진찰서였는지 모를 종이에 나의 만 나이가 적혀있었다. 아마도 26살 이거나 27살이었을 것이다. 아직 결혼도 못 해봤고 임신, 출산도 못해봤는데 이런 진단을 받다니 나는 놀라지 않은 척 했지만 내 마음은 너무 놀라 갈 곳을 잃고 근처 시장을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던 시절이라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도 몰랐고, 소식을 알리던 날엔 마치 내가 곧 죽을 것처럼 가족은 모두 슬퍼했다. 진단을 받은 그 해의 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는 내년에도 내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을지 이게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생일이지 않을까 하며 그 순간을 잘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느낌이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종양은 주기적으로 관찰했으나 크기가 더 커지지 않아 수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몸 생각하지 않고 육체와 정신을 갈아넣어 일했던 것을 멈추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나를 혹사시키며 증명하려 했던 것일까. 그저 내가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여기던 때였다. 당시 나는 어릴 적부터 꿈이라고 여겼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1년여 넘게 하고 귀국하여 대학을 졸업하여 취업해서 일하던 상태였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취업에 목메지 않았다. 부모와 가까운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여기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에(당시 중견기업) 쉽게 취업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다들 잘나가는 대기업에 취업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을 그 친구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지방사립대 출신인 나는 당연히 내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그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사회초년생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벌어지는 듯 했고, 바라보는 목표가 점점 달라졌다. 아마 그래서 나는 더 일에 매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똑똑하지 않은 방법으로. 건강 이상 진단을 받은 이후, 내가 지켜왔던 삶에 대한 기준이 옳지 않음을 느꼈다. 위로해주는 친구들과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부모님도 나를 대신해서 아프고 죽어줄 순 없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약간은 엉뚱하게 아니면 원래의 내 모습대로 사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일은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했고, 내가 만나고 싶은 배우자에 대한 리스트를 적었다. 그러면서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하였고 종종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하고 싶었던 것을 미루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답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 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끝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내가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정답이 있는게 이상할 법도 한데 나는 왜 그 정답일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이 책을 읽었을까. 하지만 실망도 잠시, 내가 죽음이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냄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죽음 앞에 섰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장자 등 유명한 철학자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배우며 나 또한 대충대충이 아닌 최대한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내가 한때 외우고 다녔던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졸업 축사엔 이런 말이 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언젠가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는 것. 그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깨달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 p.3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임을 우리는 그녀의 연구를 통해 배우게 된다. 그들은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고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기회를 주길 원한다. 죽음이란 회피하고 싶은 검은 얼굴의 사자가 아니라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중요한 손님이고, 그와 함께 떠나기 전 우리는 짧은 순간이나마 지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149 삶의 의미는 내가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답해야 하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삶의 의미를 흔히 누군가가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는 왜 사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누군가가 대답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대답을 해주는 존재는 아무 데도 없다. 설사 종교가 있어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믿는다 하더라도 답을 찾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가 찾지 못하는 이상 답이 스스로 와주지는 않는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이나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는 성경의 말도 먼저 스스로 두드리고 구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라는 질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떻게'를 찾아 노력하는 중에 자연히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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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소설작가인 저자의 생각과 인식 그리고 명상을 담은 책. 동서고금의 역사와 종교와 철학과 여러 위인들까지 섭렵하고 폭 넓게 인용한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이란 것이 전인미답의 경지라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명쾌하거나 참신한 성찰 또는 통찰이라기 보다는 죽음의 단상에 대한 총정리 느낌이 강한 책였다. 유명한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가 오랜 세월 죽음을 지키고 관찰하며 남긴 죽음에 대한 5단계 심리적 반응(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은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지만 음울하고 씁쓸했다. 인간의 심연에 가장 깊이 흐르는 두 가지 감정은 분노와 슬픔이라는 말에는 먹먹하기까지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그의 철학적 인문학적 죽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부처의 죽음에 대한 일화와 불교철학에 대한 언급은 파편처럼 산재되어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게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불교의 교리와 철학에 대한 이해를 이 책으로 인해 좀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의義와 기개, 절개 그리고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가 제시했던 또다른 인간의 길을 새삼스레 인식했다. 그 많은 선비들이 허무하게 또는 부질없이 택한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지식으로 아는 것 또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감각적으로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인데 이 책을 읽다가 후자의 이해를 얻었으니 죽음에 대한 논의로 좋은 책인 듯 하다. 신숙주, 김시습과 함께 당대의 수재였던 사육신중 일인 성삼문이 능지처참당하며 남긴 절명시다. 형장의 북소리 생명을 재촉하고 머리들어 석양을 보니 해는 기울었구나 황천길에 주마조차 없으니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자려나 애잔한 감상의 죽음이지만 그의 가족 모두 남자는 죽임을 당하고 여자는 모두 노비로 끌려갔다. 사후 200년이 지나 복권되었지만 이미 그때가서 다 무슨 소용이랴. 늘어지니 각설하고. 이와는 또다른 불교와도 조금 다른 도가의 죽음에 대한 단상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도가에 대한 구구절절한 언급이나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생이란 한갓 떠도는 구름이 일어남 같고 죽음이란 한갓 떠도는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네 "이 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의 신곡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그 유명한 솔로몬의 전도서 귀절.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그 못지않게 유명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 거세를 당하고 치욕과 모멸속에서도 생존을 택하며 남긴 사마천의 한마디. 구우일모九牛一毛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모두가 죽는다. 죽음에 대해 이따금 한번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만 너무 매몰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지 더 고민하라는 누군가의 말이 웃음짓게 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거나 어떤 정리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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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죽음'을 어둡게, 그리고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만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요즘 이야기도 하듯, 죽음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금 생을 더 빛나게 해줌에도 '모든 것엔 끝이 있기' 때문이기에. (이 따옴표문장은 책에서 나온 문장이다. 책의 가장 중심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을 밝히는 건 소설가 김영현 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간략한 책 소개와 내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책 소개에는 역시 저자 소개가 빠질 수 없기에 저자 소개를 가지고 왔다.
소설가 김영현 씨는 상당히 많은 저작을 남기신 소설가이자, 꽤 활발한 활동을 하시던, 최근에는 칩거중이시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계시다 하지만 그래도 활동이 많으셨던 분이다. 이 소설가가 쓴 '죽음'에 대한 이야기집은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각적인 측면을 제공해 주는게 가능하단 생각이든다. 소설가 이기에 건드릴 수 있는 '과학'을 넘어서는 어떤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것. 그러한 것들이 이 책에는 담겨있었다. 책 내용은 전체적으로 '모든 것엔 끝이 있다'라는 것, 아이 때는 몰랐던 이를 어른이 되어 깨달으면서 죽음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오는게 당연하니 죽음을 불안해하지 말고 그 불안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거기서 유쾌한 명상이 시작되는 여러 부분들을 많은 꼭지로 나누어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두 부분이 있어서 한 부분은 직접 적어 보고 한 부분은 책으로 가져와 보았다. (150, 151쪽의 내용들이다. ) 먼저 150쪽, ...........자기 삶을 꾸리는 주체는 궁극적으로 자기이며 의미 발견을 해야 하는 것도 자기이다. 신은 단지 수많은 기회를 제공해주었을 뿐이다. 오늘날처럼 심각한 가치 혼란을 겪는 시대에, “삶의 의미는 내가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답해야 하는 무엇이다.”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은 우리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인생을 완주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죽음이란 꽃다발을, 누구에게나 주어지며 내 삶의 의미에 방점을 찍어주는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빅터 프랭클의 문장을 인용하여 삶을 대하는 능동적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부분이 내게 상당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거기에 바로 이어져서 새로운 챕터로 나오는 게 151쪽, 바로 위의 사진 부분이다.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 둔 것인데 '불멸'을 다루는 많은 작품에서 주어지는 주제의식을 통렬하게 꿰뚫는다. 거기에 사랑 - 불멸, 이렇게 연결짓는 에로스 사고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이 책은 확실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게 해준다. 오랜만에 소설가의 시선으로 보는 죽음을 느껴본 듯 하여 좋은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소개영상도 있기에 이를 첨부해 보며 리뷰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