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강해 설교가이자 저술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은 그가 글의 주제로 삼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정제하여 간절함으로 쏟아낸 결과여서, 그의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영적 각성과 헌신의 길로 들어서는데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49년 10월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주일 저녁 강단에서 연속 4주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모은 『회개』 또한 다윗의 시편 51편을 통해 참회란 무엇인지 돌아보고 참회에 이르는 과정과 결과에 관한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인지 깊이 조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회개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지어 흠잡을 데 없이 정확한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 삶에서 회개를 통한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을까? 회개의 결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느끼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무언가 허전하고, 마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살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정과 육을 모두 못박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방식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춘 삶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매일 매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분을 깊이 만나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헛되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편 51편을 보자. 다윗은 밧세바를 범했다. 정욕을 채우기 위해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 그는 아무 일 없이 지냈다. 선지자 나단이 그의 죄를 지적할 때까지 그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죄인이란 늘 그렇다. 죄의 심각성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다윗도 나중에서야 인정한 바와 같이 본성 자체가 죄를 그리워하고 죄짓는 것에 발이 빠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바울조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고백했을까? 하나님께만 범죄했다고 하는 통한의 고백을 보면서 회개는 우리가 답하듯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그토록 미워하신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죄를 짓는 우리의 본성을 보면서 죄를 지은 후의 회개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말 내 죄에 대한 뼈아픈 돌이킴이 없으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것을 다시 지을 개연성이 너무 높은 뼛속 깊이 죄인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그 죄 때문에 하나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는데 어떻게 다시 그 죄 속으로 기꺼이 기어들어 가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철저한 고백이 돋보이는 시편 51편은 그래서 우리에게 단순하게 알고 있는 회개의 엄중함에 대해 찌르는 칼과 같이 다가온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10:12)는 말씀과 같이 지식적인 믿음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악한 도구로 쓰이는 법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사야서1:18)이라는 말씀대로 조건 없이 죄사함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서의 회개란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만큼 나 또한 그 죄를 정말 미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다시는 하나님이 그토록 미워하시는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로부터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덧입어야 함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또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죄를 짓게 된다. 저자는 회개를 단계별로 구분해 놓았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참모습에 눈을 뜹니다. 그는 제정신이 들면서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를 지었는지 깨닫습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용서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지은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 그분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거듭나며 새로운 성품을 입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회개는 철저한 돌이킴이 수반되는 강력한 자기 확인이다.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자각이야말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동인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5:16) 육체의 욕심을 거스를 힘이 내게 없다는 철저한 자기 인식이 선행돼야 성령을 좇는 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된다. |
|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회개이다. 아마 교회에 다녀본 사람들, 아니 기독교 방송이라도 한번 들어본 사람들은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개가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회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놓고 마음에 후회하는 것, 마음에 죄책감을 갖는 것, 그리고 마음에 자책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회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행동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들을 우리는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실 회개의 성경적인 의미는 그것이 아니다. 아마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성경적인 회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지 않았는가 싶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크리스천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왕의 이야기를 통하여. 회개를 한문으로 풀어보면, 돌이킬 회자와 고칠 개라는 글자가 합쳐진 것이 회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단지 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돌이키고, 행동을 고치는 것까지가 회개인 것이다. 다윗은 바로 이런 모습까지 있었다. 자신이 저질렀던 밧세바 간음사건 때문에 다윗은 마음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아니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던 터에, 어쩌면 다윗의 귓전을 때리는 말은 "너는 간음죄를 저지른 범죄자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윗은 그 말을 듣는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침상이 눈물에 젖어 썩을 정도까지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는 간음죄를 짓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도 혈기왕성한 남자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음죄를 저질렀다는 기록이 성경에 두번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가를 알 수 있다. 회개의 단계는 우선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다. 아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인정해야 되고, 죄를 고백하고, 죄를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단계인데, 많은 사람들이 일단계에서 멈추는 경우들이 많다. 그나마 조금 나은 사람들이 죄를 인정하는 단계까지는 가지만, 그 이상을 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렇기에 회개가 힘든 것이 아닐까? 이 시대에도 여전히 크리스천들에게, 그리고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회개일 것이다. |
|
짧은 메시지의 강력한 힘!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무늬만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진정한 회개를 경험한 '참' 그리스도인인지 지금껏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줄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이제라도 회개하라고 강하게 촉구하는 책이다.
얇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해서 때론 눈물을, 지금껏 살아왔던 -기억도 세세히 나지 않는- 날들을 떠올리며 후회로 또 눈물을 흘려야 했다.
...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저서를 세 권을 한꺼번에 사서 제일 먼저 <회개>를 읽었고, 이어 예수 그리스도와 부흥도 읽을 참인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책을 만나게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
|
인간이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숨을 쉬는 한 죄는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타락 했고, 사탄의 시험으로 인하여 결코 죄를 멀리 할 수 없다. 인간이 죄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둘 뿐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거두심에 따라 개인적 종말을 맞이하거나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하심으로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이 둘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계속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게 마련이다. 인간은 개인적 종말이나 세상의 종말이 도래하지 않는 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을 제외한 성경 인물 모두가 죄인이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죄인이 있다면? 아마도 다윗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윗이 지은 시편 51편 강해를 담고 있다. 저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주일 저녁에 한 연속 4주의 설교를 담고 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중죄를 지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은 낭떠러지로 추락한 다윗의 심정을 생생히 기록한 시편 51편을 통해 회개에 대해 고찰을 한다. 회개는 어떠한 것인지,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회개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본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회개란 무엇인지, 회개하는 법 등을 알아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의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바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죄를 방치하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혹자는 이에 대해 "기독교는 참 편리한 종교이다. 죄를 짓고 싶으면 짓고, 그 다음에 회개하면 그만이나 말이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히 회개를 단지 죄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회개를 악용하는 사람은 결코 회개한 것이 것이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인상깊은 구절"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떠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 " 시편 51편을 강해한 이 책은 1949년 10월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주일 저녁에 4주간 연속으로 설교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다윗의 참회의 시인 51편은 회개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침 이 책을 읽기전에 이 책 46쪽에서 말하는 존번연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생동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죄인의 고백, 죄인의 무력함, 죄인의 간절한 욕구, 구원과 새 생명. 네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갖는 '원죄'외에도 살아가면서 저마다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최근 매체를 통해 듣게 되는 메가처치들이 돈과 성과 권력과 관련하여 세상에 수치를 드러낸 일들과,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단체의 금권선거에 이르기까지...참으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죄를 지었는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 가 아니라 그 죄를 짓고 난 후의 반응입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던 길을, 잘못된 길을 돌아오면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말이죠.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세상에서는 '법'의 잣대로, 교회에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몇년 전 한국교회는 부흥을 사모하며 100년전 한국교회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걸고 전국적으로 기도운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100년전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동기가 잘못되었고,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부흥은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즉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선물 때문에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회개가 우선시 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윗의 모습이 나의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간음한 자요, 살인한 자요, 거짓말 한 자입니다. 회개함으로 주님앞에 용서함을 받았지만 그 결과로 많은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아기를 잃어야 했고, 자녀의 반역에 왕위를 놓고 달아나야 했고, 자신들의 후궁들이 백주대낮에 욕보임을 당하는 수치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했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그의 자리를 굳건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일컬어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래야 합니다.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한 겸손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확실히 경계해야 합니다. 죄는 나의 육체와 영혼을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을 지나면서 주님앞에 나 자신을 겸허히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무지했던 나의 과거와 교만으로 인해 순종치 않았던 모든 일들을 회개합니다. 아버지, 용서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