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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적벽대전을 대단한 전투로 여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유비와 손권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에서 이긴 것일 뿐이고 조조는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승부가 이미 정해진 별 볼일 없는 전투가 뭐가 대단한 말인가! 조조가 적벽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조조가 적벽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북쪽 땅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등 뒤의 걱정거리로 남아 있었는데 오랫동안 남방의 정벌을 했었다는 점이다. 오직 승리하겠다는 일념 하에 전투에 임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전투다. 그런데 뒤를 걱정하면서 전투에 임했던 조조는 적벽에서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도를 빼앗기면 자신의 근거지를 잃게 되는 것인데 어찌 걱정이 되지 않았겠는가! 전에 한번 여포에게 근거지를 빼앗겨 고생한 경험이 있어 뒤가 늘 걱정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적벽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로 조조가 적벽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육군을 데리고 수상전에 임했다는 점이다. 북군은 물싸움에 서툴렀다. 그런데 조조는 안장과 말을 버리고 배와 노를 믿고 동오와 싸웠다. 육전에 능한 육군이 물싸움에 능한 해군과 물에서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이건 너무나 뻔한 것 아닌가? 적벽은 물로 둘러싸인 곳이었고 적벽전투는 수상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벽에선 당연히 해군으로 구성된 손권측이 이길 수밖에 없었고 반면에 육군으로 구성된 조조측은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적벽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두 번째 요인이다. 세 번째로 조조가 적벽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싸움을 벌인 시기가 추운 겨울이었다는 점이다. 조조가 한창 싸움을 시작하려던 때는 한겨울이었다. 겨울에 마초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수상전을 하러 왔다고 해도 병력의 핵심은 기병이고 이겼을 땐 육상으로 쳐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지는 건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퇴각 시 걸어서 도망갈 순 없는 노릇이라 기병은 이래저래 필요했다. 그런데 마초 수급이 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려 했으니 조조 입장에선 애초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적벽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세 번째 요인이다. 네 번째로 조조가 적벽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병사들이 달라진 풍토와 물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물이 더러워 차가 발달한 나라다. 게다가 지역이 워낙 크다 보니 풍토와 물이 지역 마다 제각각이다. 조조가 데려온 병사들 대부분은 중원 출신이다 보니 남방의 물이 맞지 않아서 배앓이 혹은 돌림병에 걸리는 병사가 많았다. 싸워보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많은 병사들이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조조의 병력은 수만 많았을 뿐 막상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키는 측에선 공격하는 측의 10분의 1만 되어도 지킬 만하다. 그런데 공격하는 측의 병사들이 병들어 그 수가 줄어들었으니 지키는 측에게 유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조조가 손권 유비 연합군과 붙었으니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조조가 적벽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네 번째 요인이다. 여기에 하필 시기가 남동풍이 부는 때를 만나 적들이 이를 노리고 화공을 썼으니 조조가 어찌 저들을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조조는 한두 가지 불리한 조건에서 전투를 벌여 진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이미 조조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조조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벽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벽전투를 엄청난 전투인양 꾸미고 포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1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패한 조조 놓아주는 관우’라는 제목이 붙은 부분이다. 조조는 적벽전투에서 여러 가지 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진 후 패주하게 된다. 이때 조조는 세 번씩이나 주유와 제갈량의 슬기를 깔보며 무능함을 비판한다. 여기에 더하여 전에 자기 부하였던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해서 겨우 위기를 넘기게 된다. 화용도를 무사히 지난 조조는 조인에게 남군을 지킬 계책을 남겨주고 양양은 하후돈에게 그리고 가장 요긴한 땅인 합비는 장료에게 맡긴 후 허도로 돌아간다. 바로 위의 장면 생각 없이 보면 허풍쟁이 조조가 크게 당하고도 정신 못 차렸다가 관우의 큰 은혜를 입고 겨우 살아서 마지막엔 뛰어난 혜안을 발휘하고는 허도로 도망갔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로 위의 장면은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어느 부분이 논리에 위배되며 어느 부분이 상식에 어긋나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이상한 것은 바로 조조가 패주하면서 허풍을 떨었다고 묘사한 장면이다. 조조는 적벽전투에서 패한 후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부하들 앞에서 허풍을 떤다. 이 장면에서 조조가 보여준 행동은 패전으로 인해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잘 따져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조는 허풍이 심한 캐릭터가 아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짓은 더더욱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끔 꾀를 써서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킨 사례는 있긴 하다. 목이 마른 부하들에게 산 너머에 매실나무 숲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갈증을 해소시킨 것이 바로 그 예인데 이로 인해 부하들은 매실의 신맛이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이는 덕분에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고 조조는 이를 통해 사기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 이외에 조조는 좀처럼 거짓으로 부하들의 사기를 올린 적이 없다. 그런데 적벽전투에서 패주할 때는 희한하게도 허풍을 자그마치 세 번이나 떨며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려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조조의 평소 모습과 매치가 되지 않을뿐더러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서 촉한정통론자들의 조작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실제로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있었다고 치고 얘기해보자. 조조는 세 번째 예측을 하기 전에 이미 두 번의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부하들의 사기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졌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두 번째 허풍은 첫 번째 예측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치자.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생각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행동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 번씩이나 같은 짓을 반복해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앞서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같은 허풍으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올리고자 또 허풍을 떨었다는 점은 조조의 특성상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는 실패를 거울삼아 전투에 임하는 조조의 평소 모습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 촉한정통론자들 혹은 나관중의 조작이 의심되는 장면이다. 이런 조작을 통해서 이들은 조조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효과를 거둔 것은 물론이고 적벽전투의 성공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까지 얻었다. 만약 이 장면이 없었다면 적벽전투의 성공은 그리 크게 회자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이긴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적벽전투를 적벽대전이라 칭하면서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었겠는가! 적벽전투가 끝나고 난 후의 이런 조작이 없었다면 적벽전투는 예전은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전투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이는 역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한편 조조는 적벽에서 패주하는 도중에 관우를 만나게 된다. 이때 조조는 고개를 숙여가면서 목숨을 구명해줄 것을 관우에게 부탁하게 되는데 이 또한 조작된 장면으로 의심된다.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이었고 관우는 나라의 녹을 받지 않는 유비의 장수에 불과했다. 즉 아무리 관우가 유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해도 급이 달랐기 때문에 조조가 관우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고 목숨이 가장 중요하고 해도 한나라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관직도 없는 일개 장수에게 고개 숙여 목숨을 구걸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조를 이민족의 후예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때 조조는 엄연히 한나라 사람이었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체면을 중시하는 민족인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조조는 중국인들이 뿌리라고 생각하는 나라인 한나라 사람이었는 데다가 최고의 지위에 올라있었는데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했겠는가! 난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실용을 중시하는 조조였다고 하더라도 혼자 관우와 맞닥뜨렸다면 모를까 부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관우에게 목숨을 살려줄 것으로 부탁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만약 이런 장면이 실제로 연출되었다면 이를 목격한 부하들은 더 이상 조조에게 충성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하늘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군주가 한낱 장수에게 살려달라고 고개 숙여 우는 장면을 봤는데 어느 장수가 그런 군주를 자신의 주군으로 모시려고 들겠는가! 권위가 떨어진 군주는 부하들을 부릴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이런 상식을 위반된 이 장면은 촉한정통론자들이 조조의 위신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 왜곡된 장면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 두 장면이 조작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화용도를 빠져나온 직후에 조조가 취한 행동이다. 조조는 화용도를 무사히 빠져나온 후 허도로 돌아가기에 앞서 뒤의 일을 미리 생각해둔 사람처럼 바로 처리한다. 조인, 하후돈, 장료에게 각각 남군, 양양, 합비를 맡긴다. 훗날 위기까지 내다보며 계책까지 남기는 장면은 조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게 바로 조조다. 허풍으로 사기나 진작시키려고 하고 한때 부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녹도 받지 않는 하찮은 장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건 조조의 평소 모습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조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런 장면을 보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된 부분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촉한정통론자들이 교묘하게 역사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이와 같은 장면이 모두 조조를 깎아내리고 유비를 띄우기 위한 촉한정통론자들의 역사왜곡이었다는 점을 바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형주 땅 차용 사기사건’이다. 손권은 원래 유비와 연합을 할 뜻이 없었다. 자신에 비해 세력도 보잘 것 없었고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유비의 특성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손권은 유비와 손을 잡는 걸 내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손권이 제갈량의 세치 혀에 속아 유비와 연합한 후 조조에 대항하게 된다. 그래서 조조가 질 수밖에 없었고 유비· 손권 연합군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적벽전투에서 손권은 승리를 거두게 된다. 문제는 이 전투가 끝나고 나서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형주 땅을 놓고 유비와 손권이 다툰 것인데 <<삼국지>>에서는 왜 그토록 손권 쪽에서 형주땅을 달라고 하는지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촉한정통론자들은 유비 쪽도 적벽전투에서 손권과 더불어 싸워 공을 세웠기 때문에 형주땅 정도는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약 이런 점이 사실이라면 손권 쪽에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만약 손권이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형주땅을 달라고 했다면 말 잘하고 간사한 제갈량은 둘이 연합했을 때처럼 말로 굴복시켜서 다시는 형주땅을 노리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제갈량은 논리로 손권을 달랜 것이 아니라 교활한 꾀와 허무맹랑한 말로 손권이 권리를 나중에 행사하도록 만든다.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유비가 적벽전투에서 형주를 차지할 만한 공을 세웠다면 당연히 유비는 자신의 권리 주장을 하면서 손권의 주장을 묵살했어야 했다. 하지만 유비는 손권 측에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나중에 돌려주겠다는 얘기만 되풀이한다. 이 책은 물론이고 <<삼국지연의>>에도 빠진 내용이 하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건 바로 구두계약이다. 손권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저 제갈량의 세치 혀만 믿고 유비와 손잡을 그런 아둔한 군주가 아니었다 이 말이다. 제갈량이 오의 손권을 설득하러 갔을 때 둘 사이에는 분명 계약이 있었을 것이다. 연합군이 만약 적벽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형주를 손권 측에 넘긴다는 그런 계약 말이다.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손권이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에 걸쳐서 형주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비측에서도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고 이치를 따져가며 단칼에 손권의 주장을 묵살했을 것이다. 만약 소설에 구두계약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유비 쪽은 배신자의 이미지와 더불어 약속도 지키지 않는 패거리로 인식되어 대대로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과연 촉한정통론자들이 보고 가만히 있었을까? 절대 그럴 리 없었을 것이다. 역사왜곡의 달인인 중국인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을 삭제해 어떻게 해서든지 유비 측을 변호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논리상으로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국지를 읽고도 이와 같은 비논리적인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것은 이미 촉한정통론자들에게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다. 유비 쪽을 한없이 좋게 보고 한없이 좋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그들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이라도 신의를 배반한 유비는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진 역사적 사실은 복원되어 유비를 두둔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동작대에서 말한 조조의 진심을 제대로 전한 점’이다. 건안 15년 봄에 동작대가 이루어졌을 때 조조는 문무 관원들을 업군에 모으고 잔치를 베풀어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조조는 무관들에겐 활솜씨를 보이게 했고 문관들에게 글솜씨를 뽐내게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문관들이 조조의 공덕이 높디높아 하늘의 명을 받아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의 글을 지어 바친 것을 보고 조조가 한 말을 촉한정통론자들이 제멋대로 곡해한 점이다. 조조는 문관들의 시를 한 수 한 수 다 읽어본 후 웃으면서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의 좋은 글이 나를 너무 과분하게 칭찬했소. 나는 원래 어리석고 누추한 사람으로 처음에 효렴(孝廉)으로 추천되었소. 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니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아가 초군 동쪽 50리 떨어진 곳에 공부하는 집을 지어, 봄과 여름에는 책을 읽고, 가을과 겨울에는 화살을 날려 사냥이나 하면서,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후에야 세상에 나와 벼슬을 하려 했던 것이오. 그런데 뜻밖에도 조정에서 나를 불러 전군교위로 삼기에 뜻을 바꾸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공로를 세우고 싶었소. 죽은 다음 무덤에 ‘한의 옛 정서장군 조후의 무덤’이라는 글이 적히기만을 바랐으니, 그렇게 되면 조상에게 욕되지 않아 평생소원이 풀리는 것이오. 스스로 생각해보면 동탁을 토벌하고 황건을 소멸한 이래 원술을 없애고 여포를 깨뜨렸으며, 원소를 소멸시키고 유표를 평정해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었소. 몸은 재상이 되어 신하로서 그 귀함이 극치에 이르렀으니 더 바랄 게 무엇이겠소?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이 나라에 없었으면 황제를 자칭하고 왕으로 일컫는 자들이 얼마였을지 모르오. 어떤 사람들은 내 권이 큰 것을 보고 함부로 어림짐작해 나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의심하는데 이는 너무 황당한 추측이오. 나는 늘 공자(孔子)께서 문왕(文王=주문왕)의 지극히 높은 덕성을 칭송한 말씀을 떠올려 마음속에 그 말을 아로새겼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내가 거느린 군사를 버리고 맡은 일을 내놓은 다음 봉을 받은 무평후(武平侯)의 후국(侯國)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아니 되어. 실로 일단 군권을 내놓으면 남에게 해를 입을까 두렵소. 자손들을 위해서도 생각해야 하겠고 또 내가 패망하면 나라가 이울어져 위태로워지니 공연히 헛된 명성을 부러워하다가 실제로 화를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오. 여러분 가운데는 내 뜻을 다 아는 이가 없을 것이오.” 출처 <<본삼국지>> 5권 P.308~309 이를 두고 촉한정통론자들은 조조가 자신을 주문왕으로 비한 것은 그가 죽은 뒤 아들 주무왕이 은나라를 뒤엎고 주 왕조를 세운 것처럼 자신이 죽으면 나라를 아들인 조비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고 곡해했다. 이와 같은 촉한정통론자들의 말은 억지고 모함이다. 아들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사례는 역사를 살펴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진이세 호해가 아버지인 진시황의 뜻을 거슬러 황제가 된 후 나라를 말아먹은 것을 들 수 있다. 진시황은 아들이 자기가 힘들게 세운 나라를 말아먹으라고 물려주지 않았다. 물론 정당하게 물려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인 호해가 진시황에 이어 진나라의 두 번째 황제가 된 것은 사실이고 나라를 이어받은 것 또한 사실이니까 이 점에 대해선 쓸데없는 논의는 없었으면 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해는 아버지가 형인 부소에게 나라를 물려주려는 뜻을 거스르고 자기가 황제가 된 후 아버지가 이룩한 통일왕조를 망하게 만들었다. 진시황이 과연 이런 멍청한 아들이 자신이 어렵게 이룩한 진나라를 물려받아 2대 만에 망하게 하길 원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진시황이 과연 막내인 호해가 자신의 유언을 조작해서 다음 황제로 점찍어둔 형인 부소를 죽이고 황제가 되어 진나라를 망치는 걸 원했겠는가 이 말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어떻게 세운 나라고 어떻게 통일한 왕조인데 겨우 2대 못 가서 나라가 망하는 걸 원했겠는가!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식은 21C인 지금도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부모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한 자식을 두고 부모의 뜻과 다르다고 해서 부모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억지다. 조조는 생전에 결코 황제가 되길 원치 않았다. 조조는 명분과 실리를 기반으로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썩은 왕조를 갈고 새왕조를 세울 수 있었지만 왕의 자리에만 올랐을 뿐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자식인 조비가 아버지의 뜻과 달리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건 조조의 권한 밖이었다. 이미 죽은 몸으로 그가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식을 어떻게 뜯어 말릴 수 있었겠는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조조와 조비는 비록 부자지간이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조비가 한나라를 무너뜨린 것을 두고 조조가 다 만들어줬고 그도 은근히 원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렇게 따지면 비판받을 사람은 세상에 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어느 아버지가 자신이 대통령인데 아들이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길 바랐겠는가! 그렇게 때문에 유독 조조만 비판받는 것은 부당하며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비난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조작으로 조조의 순수한 뜻을 더럽히고 명예를 실추시킨 촉한정통론자들은 죽어서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조조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안고 싸우는 바람에 적벽에서 지고 만다.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패배를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던 조조는 훗날을 대비하는 여유를 부리며 허도로 돌아간다. 한편 업군에 동작대를 세운 조조는 문무관원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면서 그들의 기량을 살피는 동시에 자신의 본심을 드러낸다. 유비는 제갈량의 사기행각으로 손권 측과 연합해 적벽에서 승리를 맛본다. 별로 한 것 없이 형주를 얻게 된 유비는 사전에 합의된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채 아예 형주에 눌러 앉는다. 이젠 운이 트이려는지 적벽전투에서의 승리 후 유비는 형주에 이어 손권의 여동생까지 얻게 된다. 눈에 가시 같았던 주유가 사망하고 봉추인 방통까지 얻게 된 유비는 다음 목표인 서촉을 노리기 시작한다. 손권은 제갈량의 꼬임에 넘어가 유비 측과 연합한 후 적벽에서 조조에게 승리한다. 하지만 병력과 병량만 낭비했을 뿐 형주를 얻지 못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를 타개하고자 이복동생을 이용해 유비를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동생만 뺏기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이에 화가 난 손권은 주유를 시켜 형주를 되찾고자 하지만 형주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손권의 둘도 없는 인재인 주유만 잃고 만다. 손권은 주유의 뒤를 이어 노숙을 군수통제권자로 임명하고는 다음을 기약한다. 인상적인 글귀 “장수가 된 도리를 보면 한때 이겼다 해서 기뻐하지 말고, 한때 졌다 해서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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