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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신앙의 출발 “아빠, 하나님은 선악과를 왜 만드셔서 죄를 짓게 만든 거야?”큰아이가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확인하려 하신 게 아닐까?”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내 안에서도 확신이 없었다. 박영선 목사의 ‘생각하는 신앙’은 바로 그 질문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이성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고, 또 자신이 경험한 전통이나 분위기 안에서 배운 방식대로 하나님을 해석한다. 하지만 그러한 신앙은 쉽게 흔들린다. 저자는 이것을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적 시각의 부재’라고 진단한다. 즉,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까지의 내 신앙의 근본을 흔드는 물음이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더 알고, 그분의 뜻에 내 삶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려는 ‘신학적 노력’을 마땅히 해야 했다. 저자는 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문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9p).”
이 말은 신학을 학문의 영역이 아닌, ‘모든 성도의 일상 속 태도’로 옮겨 놓는다. 감정의 열심에만 머무르려 하는 신앙은, 비로소 신학적 이해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신앙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따르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지적인 순종’이다. 그리고 그 순종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생각하는 신앙’에서 시작된다.
2. 본론: 하나님을 이해하는 지적(知的) 신앙의 여정 2.1. 계시: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끝내신다. 박영선 목사는 신앙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그 반대다.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계시는 지식과 정보의 노출 이전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결과입니다. (중략)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과 의지와 집념이 응축된 행위 그 자체로 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15p).”
이 구절은 단순한 교리적 설명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신앙의 위험’을 경고한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존재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며, 인간은 그분의 일하심에 참여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 깨달음은 내 기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종종 “하나님, 왜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묻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질문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의 뜻 중심으로 기도했다는 점이었다.
박 목사는 “우리가 하려는 일에 하나님의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우리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20p).”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위해 인간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신앙의 초점은 ‘내 뜻이 이루어지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가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에 맞추어져야 한다. 기독교의 근본은 이 지점에서 다른 종교와 구별된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신을 움직이기 위해 제물과 의식을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드러내시고, 스스로 일하시며, 스스로 완성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 역사하신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사건’이다. 나는 이 사실을 묵상하며, 신앙이란 결국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여정’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즉시 주시기보다는, 그분이 이루시려는 일을 조금씩 보여주시며 나를 그 일에 참여시키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하나님께 바라는 것만 요구하는 태도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려는 노력과 결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2.2. 권위와 순종: 진리의 무게를 견디는 신앙 성경의 계시는 종종 설명보다 복종을 먼저 요구한다. 이성은 납득과 논리를 원하지만,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전제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창조주의 진리가 담긴 선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권위가 종종 불편하게 들린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며, 그 판단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는 종종 억압이나 독선으로 오해된다. 박영선 목사는 이러한 오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신앙은 진리이므로 그렇게 적정선에서 타협할 수 없습니다 (83p).”
사람의 의견은 조율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권위가 복종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이며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리와 사실이 완전히 이해되기 전에 순종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진리가 우리의 이성으로는 완벽하게 깨달을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 19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85p).”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성이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죄성이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신앙’은 설명이 끝나야 순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무게를 견디며 순종으로 나아가는 신앙’이다. 그 순종은 이성을 포기한 맹목적 복종이 아닌, 이성의 한계를 인정한 겸손한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2.3. 성경의 해석: 하나님은 항상 일하신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렇게 요약한다. “인간은 그 속이 변하지 않는 이상, 외적으로 무슨 방법과 조건을 제시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146p).”
이 말은 인간의 근본적 무력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반드시 필요했는지를 증명한다. 결국 신앙이란 인간의 노력이 쌓여 이룬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신다. 하지만 그분의 일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고난과 실패를 통해 혹은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욥과 요셉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 고난은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된 과정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더 큰 목적을 완성하셨다.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요셉은 이스라엘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시려 하는가?” 이 물음은 현실의 고통을 단순히 감내하는 태도를 넘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식하는 ‘신앙적 통찰’로 이어지게 만든다. 성경은 바로 그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성경의 계시는 단지 과거의 사건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현재형 사역’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분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목격하는 행위’이다.
3. 결론: 하나님을 아는 관계로서의 신앙 ‘생각하는 신앙’을 읽으며, 나는 신앙의 본질이 단순한 감정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관계’임을 깨달았다. 즉, 신앙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닌,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나를 멈춰 세우지만, 그 안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다듬고 계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해되어야 믿는다’는 교만에서 벗어나, ‘순종 위에 세워진 믿음’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적 신앙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적 신앙’으로 성숙하고 싶다. 매일의 삶에서 이렇게 기도하고자 한다. “주님, 오늘도 제가 원하는 일보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 저를 써 주옵소서.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을 알고자 하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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