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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라캉 르장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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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고 비싼 책이 리뷰어 클럽에서 당첨되어, 꼼꼼하고 상세한 리뷰를 쓰려고 했다. 마감 일자가 지나면서 양질의 리뷰로라도 만회를 해야지 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아무리 쥐어짜도 양질의 리뷰는 커녕 대략의 내용 요약도 불가능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면 책이 무슨 내용인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 이해가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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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고 비싼 책이 리뷰어 클럽에서 당첨되어, 꼼꼼하고 상세한 리뷰를 쓰려고 했다. 마감 일자가 지나면서 양질의 리뷰로라도 만회를 해야지 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아무리 쥐어짜도 양질의 리뷰는 커녕 대략의 내용 요약도 불가능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면 책이 무슨 내용인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 이해가 불가능하였다. 


두꺼운 책을 만든 사람들을 존경하는 편이다. 단 한두쪽 짜리 리뷰 한 편도 제대로 쓰려면 몇번 읽고 이리저리 내용을 잘 배치하고 문장을 제대로 쓰기위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는데, 이렇게 두꺼운 책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역자와 한국 내 출판사가 들인 노력과 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폄하하거나, 악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해의 범위가 너무 짧고, 내가 아는 상식과 내게 익숙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이 텍스트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뭔가 정리해서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단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당혹스러웠던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야 할 수밖에 없음을 시인해야겠다. 


책을 읽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일단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문학적 테크닉이 필요한 산문도 아니고, 그 어렵다는 라캉, 르 장드르, 푸코를 설명하는 인문서적에 쓰인 문장이라면, 주어와 목적어 만이라도 정확한 정교한 문장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어와 단어들이 서로 얽힌 채 문장 속에서 어떠한 관계들을 형성하는지 깨닫는데만도 온 신경을 쏟아야 가능하다. 그러니 몇 줄만 읽어도 피로도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줄줄 읽어진다면 마음을 비우고 그야말로 글자만 읽을 때 그렇다. 기교 없이 단순히 주어 목적어 온전한 문장은 가뭄에 콩난듯 드물다. 주어는 확장을 계속하여, 여러개를 가지며, 목적어 역시 마찬가지어서 문장은 호화찬란 자체다. 온전한 서술어로 끝나는 문장 없이 도치법이 난무하여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다. 이렇게 과잉 감정들은 실제 이론과 무관한 것들도 많다. 그렇다보니 가뜩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을 이해하는 흐름이 끊긴다. 


더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그만두자. 언어 바까이 있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동경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형편없는 이야기다. 언어에 유일한 구멍이 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신비를 도출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기꺼워하며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그런 중학생 차원의 이야기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를 비판하는, 의사소통이 한 번씩 이루어질 때마다 언어는 "생성"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따분하기 그지없다.(203)


위의 내용은 라캉에 대한 비평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이제까지 라캉의 세미나와 저서를 통해 그의 주장을 설명하고 비판했던 내용을 포기하는 수준에 이를만큼 라캉 철학 자체의 난해함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중학생 차원의 이야기를 왜 분석하고 해석하고 책까지 내놓는가. 사실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라캉의 제대로 번역된 책도 없고,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았기에 국내에서 이 책을 출판하려면 라캉을 먼저 제대로 소개한 후, 출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내용이 라캉의 해설서가 아니라, 위 문장에서처럼 비평서에 가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고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는 종류의 범위에 있지 않아서 대개 어렴풋하게만 그 뜻을 상상해볼 수 있었지만, 언어학에 기반한 환유와 은유에 대한 기능은 알듯 말듯 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라캉은 말이 파롤이 아니라 언어 랑가주를 뜻한다고 말한다. 라캉은 랑가주를 0과 1의 교대, 현전과 부재가 교대하는 구조이며, 파롤에 선행한다고 했다. 소쉬르의 정의에 의하면 파로롸 랑그는 다르게 정의되는데, 파롤은 같은 말이라도 상징이다. 억양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랑그는 서로간의 규칙이 고정적인 것이다. 그는 특히 소쉐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다르게 해석하여 환유와 은유로 그 둘의 관계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일단 언어학적 정의를 무시하고 언어학 비슷한 걸 재정의한다고 보여졌다. 여기서 환유의 기능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앵의 연결이며 시니피에에 도달하지 못한다. 


언어학적인 부분을 눈여겨본 이유는,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의 통로인 언어는 상호간의 동의와 관습에 의해 어떤 뜻으로 사용하기로 한 단어에 대해, 라캉과, 사사키 아타루가 그 암묵적 동의를 깨고 소통 불가능하게 변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앵의 소쇄르의 원래 의미를 꺠고 재정의한 라캉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와 역자가 모의해서 책에 쓰인 단어들과 번역한 단어들은 일반 한국인들이 바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책에서는 다른 뜻을 갖는 것처럼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것이라 여겨졌다. 

g******1 2016.01.18. 신고 공감 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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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은 포기 : 난 안되겠어 먼저가...
""야전과 영원"은 포기 : 난 안되겠어 먼저가..." 내용보기
야전삽은 야전에서 전투중 임시로 사용할 진지공사에사용하는 삽이다.   영구진지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좀더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삽 아니 건설용 굴삭기가 필요하다.   지난 몇 주 동안 틈틈히 야전삽가지고 이 책을 파 보았으나 내 능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 않은 어휘 우리 글같지만 우리글 같지 않은 문장은 한 줄읽다가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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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삽은 야전에서 전투중 임시로 사용할 진지공사에사용하는 삽이다.

 


영구진지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좀더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삽 아니 건설용 굴삭기가 필요하다.

 

지난 몇 주 동안 틈틈히 야전삽가지고 이 책을 파 보았으나 내 능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인데 우리말 같지 않은 어휘 우리 글같지만 우리글 같지 않은 문장은 한 줄읽다가 멍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다시 철학을 읽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책은 포기한다. 혹 나중에 자습서가 나오면 그 때 읽어 보겠다.


 

나에게 필요한 자습서




포기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아 다시 펼쳐보았다. 하지만 서문부터 다시 난관이었다.  처음 읽을때 혼란을 겪은 곳 다시 그곳이었다.


" 만년의 푸코가 걸었던 이로에서 도출한 마지막 결론이, 실은 라캉과 르장드르의 이론과 깊은곳에서 공명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는 개체로서의 주체와 법인으로서의 주체를 "결과로서" 출현시키는, 종언없는 역사의 창조성과 우연성의 수준이다.


---- 이게 정녕 우리말이란 말인가? '이런 문장이 끝없이 나온다. 정말 책에서 나오는 말처럼 '너는 하지말지어다'라고 저자가 나에게 '안 돼'라고 말할뿐인 존재가 되었다.



* 재미로만 보는 야전과 영원 선택 조건표



YES마니아 : 골드 l****0 2016.01.17. 신고 공감 5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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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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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속에서 살아가면서 유익한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더 이상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본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고 저자의 의도는 텍스트 속에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모더니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평의 책을 받아드는 순간 책의 두께에 압도되고, 내용에서 한번 더 압도 되어서,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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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속에서 살아가면서 유익한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더 이상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본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고 저자의 의도는 텍스트 속에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모더니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평의 책을 받아드는 순간 책의 두께에 압도되고, 내용에서 한번 더 압도 되어서, 도저히 저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했다. 따라서 이번 서평에 있어서는 독자반응비평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인 ‘해석은 독자의 반응에 결정된다.’는 주장에 편승해서 서평을 쓰고자 한다. 즉, 해석은 놀이이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기준과 내 관점에서 풀어보겠다.


저자는 현대의 ‘주체’논의에 대해서 설명한다. 특히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자크 라캉과, 그의 비평적 후계자인 르장드르, 미셀 푸코 이 세 사람의 철학을 재구성하고 본인의 언어로 해석하여 방대한 내용을 책으로 구성했다. 


이 책은 라캉이 다루는 설명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캉은 왜 난해한가?”, “라캉의 난해함이 규범적인 기능을 지니기 때문이다.”(30쪽)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라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라캉은 주체를 거울을 기준으로 거울 이전의 유아적 상태와 거울 이후의 자아가 분화된 상태를 구별해서 설명한다. 거울이라는 것은 아기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아기는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를 자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아직 주체가 분화되기 전으로 생각한다. 이를 상상계라고 한다. 상상계의 특징은 자신을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타자 지향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고 ‘말’을 하는 순간 상상계를 벗어나 상징계로 진입하게 된다. 말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게 되고, 특히 이 시기에는 법과 규칙이라는 사회적 질서에 의해서 자신을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진다. 라캉은 이 단계에서의 논의는 언어철학의 용어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상징계에서 살아가는 주체는 이윽고 실재계에 접어들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실재계는 이상향이다. 도달 할 수 없는 곳. 한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향이면서, 사회적 질서와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타자의 욕망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실재계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실재계는 세계가 아닙니다. 표상에 의해 실재계에 도달할지도 모른 다는 희망은 전혀 없습니다. 실재계란 전칭적(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재계란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것’이 아니고, 제 요소 하나하나가 그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131쪽) 이후에 저자는 ‘향략’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더욱 길게 설명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파악이 안되므로 여기까지만 설명하겠다.


저자는 2부에서 르장드르에 대하여 설명한다. 르장드르는 라캉의 비판적인 계승자로서, 라캉이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주체에 대한 논의를 했다면, 르장드르는 법, 종교, 고전어, 프랑스 행정사, 관료제의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 연구를 통해 주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나갔다. 르장드르는 자신의 스승의 이론의 출발점인 정신분석학을 비판한다. 르장드르는 상상계와 상징계가 날카롭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침투한 것으로 이해한다. 즉, 상상계와 상징계가 포개지도록 하는 것이다. “거울은 하나의 장치다. 그것 자체는 말도 이미지도 아니지만, 말과 이미지와 물질로, 그 무엇보다 말과 이미지의 상호 침투로 치밀하게 조립된 하나의 장치다.”(268쪽)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르장드르는 스승의 ‘거울’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켜서 거울은 단순히 유아기때에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울은 제 3자이며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한다.”(273쪽)고 말하면서, 거울의 의미를 확장한다. 결국 르장드르에게 있어서 거울이라는 것은 ‘사회’까지 확장된다. 르장드르의 말을 들어보자. “사회인 거울. 그것은 ‘이것은 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이미 개인적인 것이 아닌 ‘정치적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이 동일화에 의한 표상으로서의 주체는 생산된다. 이와 동시에 ‘이것은 네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거기에 비친 애증의 모습으로부터 주체를 분리하고, 한계를 통보함으로써 ‘소격’을, ‘소외’를 생산한다. 이 두 가지 언명을 이미지의 힘을 통해 기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거울>의 사회적 기능이다. 고로 ‘이미지란 인간의 모태’이고, 그로부터 생산되는 우리 개개인은 이미지이고 시니피앙이다. 고로 ‘표상’이다.”


주체에 대한 논의를 사회로까지 확장시킨 르장드르의 이론은 푸코에 의해서 다시금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푸코는 사회가 가진 권력, ‘광기(狂氣)’로 표현되는 권력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지배자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회 형태에, 모든 수준의 종속=주체화”라는 것이다. 한 개인이 주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회 형태에 종속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곧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푸코와 르장드르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조금 들어보자.



“우리는 조금 전 푸코의 이로를 끝까지 따라 가겠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권력은 ‘안 돼라고 말하는’, ‘언어적인’, ‘법’ 이라는 이해와, ‘그 법을 발화하는 자가 절대적 주체’이고 그 ‘절대적 주체’에 대한 사랑과 그 법의 발화에 대한 복종이 ‘각각의 주체’를 만들어 낸다는 구도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라는 것, 그리고 푸코가 이 ‘절대적 주체’를 직선적으로 ‘주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두자. 이는 르장드르가 주장했고 우리가 살펴온 <거울>로서의 법적 주체, 즉 르장드르의 어휘를 쓰자면 ‘모뉴멘털한 주체’와 의례적인 관계를 반복함으로써 ‘주체’가 생산되는 과정자체를 비판하고 있다는 데까지는 이야기해두도록 하자”(454쪽)


사실 저자가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것조차 벅차다.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에 대한 선(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발견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붙들고 오랫동안 씨름했지만 결국 내가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체의 분화, 거울, 사회, 권력이라는 각각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일면 이들의 주장과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치밀한 논증들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주장이 주체의 형성과 진정한 주체에 대한 논의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주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각 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추측해 볼 수 있었지만, 결국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주체에 대하여 현대적 논의를 궁금해 하는자, 이 책을 만나고 읽어보면서 저자의 탁월한 지식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길고 긴 시간동안 책을 대충대충 읽고 난 뒤, 큰 감동을 받은 양 리뷰가 작성되었습니다.

r*****o 2016.02.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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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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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읽게되는 것이 바로 서문이다. 작가의 생각뿐 아니라 책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싶어서다. 집으로 말하면 그 집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현관 같은 곳이 바로 서문이다.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이 서문을 가장 마지막에 작성했다고 한다. 모든 집필을 끝내면서 결코 쉽지 않은 과정동안 생각하고 느낀 것들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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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읽게되는 것이 바로 서문이다. 작가의 생각뿐 아니라 책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싶어서다. 집으로 말하면 그 집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현관 같은 곳이 바로 서문이다.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이 서문을 가장 마지막에 작성했다고 한다. 모든 집필을 끝내면서 결코 쉽지 않은 과정동안 생각하고 느낀 것들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야전과 영원>은 라캉, 푸코, 르장드르.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파올 것 같은 철학자들의 주장을 재정리한 책으로 저자는 어렵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 철학자들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어떤 공통점이나 관점도 없다고 단언한다. 라캉은 아예 작정하고 어렵게 글을 쓴 사람이라 그의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솔직히 주제도 주제지만 900여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는 데, 서문에서 만나는 저자의 솔직한 말은 읽으니 부담이 없어진다. 그냥 읽어가나면 된다.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어도 상관이 없다.

학창시절 철학과 기호학에 관심이 많아 라캉과 푸코에 대해 공부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무엇을 읽고 배웠나...생각해보면. 거의 생각나는 것이 없다. 괴로움에 왜 이 수업을 신청했었던가...하던 후회스러움만이 떠오른다. ㅎㅎ
다시 만나 본(정확하게는 사사키 아타루의 해석을 통해) 라캉은....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무작정 어려운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식으로 이론을 정립했는지 알고나니. 무작정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역시 의도는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이제 사사키 아타루는 세 철학자의 이론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저자는 이 세계는 몽타주가 만들어낸 '현실'과 '진리'의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거울이론'이라 지칭하는데,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보이는 것은 내가 아니라 거울이 만들어낸 몽타주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셀카사진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어디서든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셀카를 찍어 각종 효과를 덧입힌 후, 자신의 쇼셜미디어 등에 업로드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셀카에 찍힌 모습과 실제 인물이 얼마나 다른가! 동일인물인지 모를 때조차 있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 사진이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거울이론이다.

이런 동일시는 나를 환상에 빠트린다. 때문에 소격(적당한 거리두기)이 필요하다. 거울과 나 사이의 거리두기를 통해 왜곡되고 만들어진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라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사회(혹은 조직)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집단속에서 살지만 자신의 '주체'를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데, 마치 부속품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것. 바로 우리가 불행한 이유다.
세명의 철학자들의 이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조금씩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은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 자체로 직시할 수 있는 사고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고를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시대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기준에 나 자신을 맞춰버리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기 자신보다 타인과 사회가 정한 삶의 방식에 자신을 맞추고 평가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외면하기 어려운 일침을 가한다. 그것이 모든 문장들이 이해가 되지 않음에도 끝까지 읽게되는 이유다.'주체적인 삶'이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광설같은 문장에도 다음장을 넘기게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d****a 2016.0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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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의 시간들, 바깥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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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 자체로 직시하지 못하는 사고는 시대의 검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325p.     사사키 아타루는 말한다. 그리고 이 세계는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몽타주가, 기계가 실재하며 오직 그것이 생산하는 “현실”과 “진리”가 실재할 뿐이라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거울 속에 만들어진 몽타주로서 ‘나’가 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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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 자체로 직시하지 못하는 사고는 시대의 검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325p.

 

 

사사키 아타루는 말한다. 그리고 이 세계는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몽타주가, 기계가 실재하며 오직 그것이 생산하는 “현실”과 “진리”가 실재할 뿐이라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거울 속에 만들어진 몽타주로서 ‘나’가 있다. 이런 나와의 ‘소격’은 필요하다. 거울과 나 사이의 거리, 이 소격을 만들어내는 그곳에 바로 텍스트가 있다. 사사키 아타루는 그렇기에 텍스트의 혁명은 곧 나와 세상에 대한 전복, 혁명이라고 말한다. 사사키 아타루가『야전과 영원』이라는 저서를 통해 밝히는 것은 텍스트를 통한 혁명, 그것에 대한 증명이다.

 

 

 3년 전이었다.『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통해서 처음 사사키 아타루를 만났다. 한눈에 봐도 제목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불온한 것이 서려 있었다. 그의 말투는 온화하고 차분한 반면 묵직하고 강인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혁명이었다. 세상의 전복, 뒤바꾸는 힘. 사사키 아타루는 그것이 다름 아닌 읽고 쓰는 텍스트를 통해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야전과 영원』은 라캉, 르장드르, 푸코를 각각 논한 3부로 구성된 사사키 아타루의 데뷔작으로 그와 같은 사유를 축적해간 그 이로(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논의 궤적, 전개 방향 등의 의미)를 확인해볼 수 있다. 되었다. 이 세 명의 철학자의 이론을 가로질러가며 그 안에 담긴 혁명의 불씨를 찾아낸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면,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은 세상을 새롭게 조직하는 일이다. 라캉의 심리학적 용어에 따르면 “대타자의 향락”, “여성의 향락”이다. 이를 곧 “신의 여자가 되어 낳는 것”, “연애편지”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애편지를 써가는 하루하루의 영위를 통해 의미를, 개념을,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그렇게 텍스트를 고쳐 쓰는 것, 분만하는 것이다.

또한 법학자 피에르 르장드르에 텍스트를 직조하는 것은 역사의 도박장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지상에서의 법의 목적은 인간 멸종의 저지, 곧 계보 원리에 있다. 이 계보 원리를 근간으로 한 이성, 근거율, 인과율이 현실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세 해석자 혁명을 통해 종교에서 세속화된 국가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텍스트의 직조, 곧 근거율, 준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근간을 모두 내놓고 벌이는 위험한 도박이 된다.

푸코를 통해 주권권력, 규율권력, 생명권력, 통치성 등 개념을 통해 사회를 구체화 시킨다. 그 과정에서 이전의 이론을 철회하는 전회가 여러 번 있지만, 푸코의 이론에서도 결국 구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을 구성하는 몽타주의 존재이며, 이에 대한 자각의 중요성이다. 곧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다이어그램이라는 장치이다.

 

 

  이런 텍스트를 통한 혁명을 사사키 아타루는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따『야전과 영원』이라 붙였다. 여성의 향락, 개념의 창조, 근거율, 준거의, 역사의 도박장에서 도박, 다이어그램의 창조가 바로 사유의 <바깥>이고 <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바깥이야말로 영원한 야전이 있는 곳이다. 새로운 시대는 바로 이곳에서 창조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텍스트와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소 긴 이로를 마무리한다. 책 속에는 세 명의 학자뿐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론을 덧붙인다. 그렇게 책은 8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이루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그토록 길게 돌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강인하고 묵직한 음성이 그 긴 여정을 지치지 않게 북돋는다. 지적 고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방황하고 때로 정체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진정한 읽기란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라고 했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그의 말을 떠올리고는 했다. 나의 고통이 그에 버금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쥐어뜯는 고통 정도는 확실히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이 두꺼운 텍스트를, 그의 이로를 쭉 지나온 과정이 바로 소격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현실의 바깥에 두려한 일. 치열한 야전이 일어나는 그 ‘바깥’의 한가운데는 아니더라도 그 문턱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찬바람을 쐬고 나니 머리가 개운해진 듯하고, 돌아본 나의 주변은 분명 책을 읽기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고 어렴풋하게 느낀다.

 

  사실, 거리두기인 이 소격은 이 시대 철학이 하는 주요 일이기도 하다. 철학은 현실에 동떨어져 나와 메타적 시선을 갖게 한다. 사사키 아타루의 성과라면 이를 '텍스트의 혁명'으로 바라보며, 방대한 이론으로 역사와 사상 속에서 그 맥을 증명해 보이고, 그 의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텍스트의 혁명은 인류의 역사 속에 면면히 전해내려오는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는 야전에서 이루어져왔던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서 다소 절망스러워 보이는 이 시대에도 그 바깥이 있음을 그리고 이를 실현할 희망이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i******i 2015.12.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야전과 영원 - 자신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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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를 안 읽은 지 얼마나 되었는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동안 내가 철학서를 손대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는 스피노자의 저서를 읽다 지쳐버린 탓이 있다. 내 오랜 독서 습관 중 하나가 대부분의 책들을 출간순서대로 읽는 것이다. 문학의 경우는 신화부터 시작해서 각 국가별로 시대순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탄생년도 순에 따라 읽고 중간에 추가되는 책들이 있지만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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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를 안 읽은 지 얼마나 되었는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동안 내가 철학서를 손대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는 스피노자의 저서를 읽다 지쳐버린 탓이 있다. 내 오랜 독서 습관 중 하나가 대부분의 책들을 출간순서대로 읽는 것이다. 문학의 경우는 신화부터 시작해서 각 국가별로 시대순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탄생년도 순에 따라 읽고 중간에 추가되는 책들이 있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인 습관이라 주요작품은 그래도 대강 연도순으로 읽었다. 이 습관이 인문서적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동양고전은 사서삼경 중 읽기 쉬운 순서부터 그 뒤로 몇 몇 책을 따라 읽었다. 서양 철학은 솔직히 말해 헤겔이후 니체와 프로이트까지만 읽었다.

 

이토록 철학 문외한이지만 주체라는 단어에 혹해 리뷰어 신청을 했다. 주체란 것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나마 이름 들어온 철학자는 푸코였고, 앞에 쓰인 라캉과 르장드르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약간의 부담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지만 의외로 읽기 어려운 것은 없었다. 나는 무척이나 수동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저자의 안내를 따라 그저 생각을 함께 움직여나갔다. 그런데 읽다 보니 철학이란 것이 너무도 간단한 것을 장황하게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의 존재, 타자와 나를 구별하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거울에 비친 상이 진정한 자신이 아닌 자신의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 그 이미지가 나의 표상이라고 선언하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의 사고 속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글이나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을 따름이다. 언어란 것이 얼마나 많은 의미의 혼입을 가져오고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그 인지를 가장 잘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단어의 선택을 통해 모호함을 생산하고 하나를 가정하고 그 가정을 또다시 모순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장 명료하게 다른 한 점의 티끌조차 섞이지 않는 이미지에 대응하는 단어란 존재하지 않기에 말이란 하면 할수록 꼬이고 엉키기 마련이다. 게다가 번역이라면 더욱 이 문제가 심화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본식 한자 단어와 지금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 한자 단어와 실갱이를 해야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여러 단어들이 춤을 추었고 나는 희미하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말았다. 더불어 번역에서 실수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몇 군데 눈에 뜨이긴 했는데 가장 확실한 부분은 560쪽의 11줄과 12줄의 '푸코'라는 고유명사인 것으로 보인다. 문맥 흐름상으로는 '푸코' 대신 '베아스'가 들어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내게 잘 맞았던 부분은 라캉도 푸코도 아닌 르장드르 부분이었다. 분량상으로는 푸코가 많았지만 르장드르에 대한 내용들은 내게 굉장히 이해하기 쉬웠다. 푸코의 경우는 라캉과 마찬가지로 사고의 흐름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한 사람의 사고의 변화를 보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무지한 독자의 눈에 비친 철학이란, 특히 문과와는 담을 쌓은 철저한 자연계 독자의 눈에, '0'과 같은 개념이 없음이 특이하다. 수학에서 0이란 개념은 혁명을 가져왔다고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숫자로 인해 여러가지를 가정하여 풀이해나간다. 0이란 숫자도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0의 0승을 계산불가능한 숫자인지, 0인지, 1인지를 놓고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특이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저 내려놓고 나머지를 풀이해간다. 0의 0승이 1이 아니라는 증명도 있고 0이 아니라는 증명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학의 개념들은 한계를 긋고 그 한계에 대해 모순과 의미의 삽입을 허용하고 나중에는 개념들을 뒤틀어버린다. 때론 아전인수의 느낌마저 받는다. 책의 말미에 이르르기까지 나는 '야전'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몇 쪽에 있는 내가 내면의 바깥에 있어 그 바깥의 밤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깨닫는다. 내 안의 나를 객관화하는 것. 나를 깨닫는 것과 내가 그 객관성을 잃었을 때의 많은 문제점들은 이미 르장드르의 이로를 통해 저자가 잘 풀어놓았다는 것만을 느낀다.

 

여기까지가 철저한 이과 출신 독자의 한계다. 내가 그저 나 자신과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 객관화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았으나 내 머릿속에 타자가 된 나, 주체로서의 나는 그저 흐릿할 따름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5.1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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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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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자체를 풀이해 놓은 책이라고 볼수 있다. 텍스트 존재 자체를 새롭게 해야한다는 말을 논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야전과 영원은 비판과 새롭게 나아가는 삶을 제시하고 있다. 평이하게 지내는 인생을 던지고 반복되는 모순을 던지는 삶을 추구하기도 한다. 야전과 영원 그것을 표방하고 있는 책같다. 또한 혁명은 읽고 쓰는것으로 표현하는 자체가 폭력을 배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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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자체를 풀이해 놓은 책이라고 볼수 있다. 텍스트 존재 자체를 새롭게 해야한다는 말을 논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야전과 영원은 비판과 새롭게 나아가는 삶을 제시하고 있다. 평이하게 지내는 인생을 던지고 반복되는 모순을 던지는 삶을 추구하기도 한다. 야전과 영원 그것을 표방하고 있는 책같다. 또한 혁명은 읽고 쓰는것으로 표현하는 자체가 폭력을 배제한 나름에 이유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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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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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니체라 불리우는 젊은 소장파 평론가 사사키 아타루의 비평집입니다. 책 제목이 상당히 도던전으로 느껴집니다. 야전과 영원.분석하기 쉽지 않은 인물인 미셸 푸코와 자크 라캉을 분석하는 이 책은 그 주제의 묵직함에 본격 평론집이라는 분위기가 상닫합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 사회 안에서 주체가 되어가는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사사키 아타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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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니체라 불리우는 젊은 소장파 평론가 사사키 아타루의 비평집입니다. 책 제목이 상당히 도던전으로 느껴집니다. 야전과 영원.분석하기 쉽지 않은 인물인 미셸 푸코와 자크 라캉을 분석하는 이 책은 그 주제의 묵직함에 본격 평론집이라는 분위기가 상닫합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 사회 안에서 주체가 되어가는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사사키 아타루는 미셸 푸코, 자크 라캉의 텍스트를 읽으며 독자에게 확인시켜줍니다. 책의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의 책을 평론한 책이기 때문에 일반 철학서보다 더 어렵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읽은다는 뿌듯함을 만끽했습니다. 평소 미셸 푸코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책을 계기로 미셸 푸코에 대래서 더욱 진지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처음인데 그가 일본의 니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진지한 주제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v*****o 2016.0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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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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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인문학 책이에요... 인문학 책들은 다소 어려운 편이여서 쉬이 손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ㅠㅠ 저에게 야전과 영원은 읽긴 했는데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거 같아서 오랜시간 더 두고두고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이 책을 읽음으로써 고도의 지적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삶에 대한 성찰’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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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인문학 책이에요...

인문학 책들은 다소 어려운 편이여서 쉬이 손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ㅠㅠ

저에게 야전과 영원은 읽긴 했는데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거 같아서 오랜시간 더 두고두고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이 책을 읽음으로써 고도의 지적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삶에 대한 성찰’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d****k 2016.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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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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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손을 자르라니? 저자의 이런 파격적인 사상이 이 책에도 스며들어 있다. 어렵고 논쟁적이다. 글도 어려운 데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아연 질색하게 만든다. 웬만한 용기 없이는 독파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어렵게 읽히는 만큼 독파했을 때는 희열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세명은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 미셸 푸코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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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손을 자르라니? 저자의 이런 파격적인 사상이 이 책에도 스며들어 있다. 어렵고 논쟁적이다. 글도 어려운 데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아연 질색하게 만든다. 웬만한 용기 없이는 독파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어렵게 읽히는 만큼 독파했을 때는 희열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세명은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 미셸 푸코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빠개질 거 같은 인물들이다. 사실 자크 라캉은 이단아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자크 라캉의 사상을 엿보면서 르장드르와 푸코의 거울을 통해 라캉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서로 상반된 주장 속에서 어떤 철학적 기저가 숨어있을지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국내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 내에서도 많은 논쟁을 몰고 다니는 인물이다. 문학을 혁명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저자의 발상 자체가 얼마나 치명적인가? 이런 치명적인 사상에 끌린다면 한 번 이 책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a****e 2015.12.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