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든혼의 여인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남녀의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아시아데 앙바리와 아버지는 오스만제국이 명말한 후 독일의 베를린으로 망명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사이에 갈등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운명적인 사랑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운명적
인 사랑이 있는것이 아니고 그 운명을 만들어 가는 쪽이 더 빠르고 많을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지금 사랑을 하
고는 있지만 그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 운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터키와 주변 나라에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된것 같다! 우리집 바로 앞에 이슬람 사원이라
는 곳이 있다! 예전에 밤 늦게 그 곳을 지나갈때는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 곳 조차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
할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연애 소설이기 보다는 역사책과 연애 소설의 혼잡으로 보이기도 한다!! ^^ |
|
조금은 슬퍼 보이는 표정, 긴 머리에 청순하지만 웃옷을 걸치지 않은 듯한 여인의 모습… 책 속에는 그녀를 금발이라고 했지만 표지의 여성이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쿠르반 사이드」라는 낯선 작가와 책 표지의 매력 속으로. 책은 작은 가방에도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이고 조금 두껍지만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처음에 두께에 압도되어 낯선 문화와 생소한 단어 때문에 읽기 시작하는데 조금 오래 걸렸지만 작가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멋진 언어에 빠져들었다. 언어학을 공부하는 터키 여인 아시아데와 프랑크 출신 의사인 하싸, 보기에도 독특한 소재와 문화의 다양함을 엿볼 생각에 들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성간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넓은 세계 속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 차이에 대한 문제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결혼과 성문제가 이 책에도 중심을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접한 것이 있었다. 내 뇌리에서 계속 맴돈 부분이기도 하고 사고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부부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녀의 10%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 바람을 피우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나 위치에 의해서 본 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 어려울지라도 본능이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자극에 민감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의 취향으로 배우자에 대해서 싫증을 느낄 수도 있고 주변 환경에 의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이 모든 사회적 위치나 사상을 엎어서 본능만 앞세워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시아데는 비로소 이날 밤이 갖는 불가사의한 의미를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경제는 흔들리며 위치를 바꾸고 있었고, 영원히 길들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은 우쭐대며 그녀를 향해 이를 드러내 웃고 있었다. 인간은 본능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하느라 수세기를 덧없이 소비했지만, 본능은 오늘 밤 그동안 거둔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다. 오늘 밤, 길이 든 영혼들은 날마다 숨어 지내던 은신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뒤, 갑작스런 공격을 가하며 서구 사회의 방벽과 장애물을 쳐부수고 있었다.(p322) 이 책에서도 이런 고민과 생각을 아시아데는 수백 번도 더 했으리라. 아직 생을 많이 살지 않아서인지 삶이나 결혼에 대해서 들은 것도 별로 없고 생각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불꽃이 튀고 종소리가 들리는 것 뿐만 아니라 신중에 신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시아데가 존과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웠고 아시아데가 존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부분은 없을 지라도 아시아데가 아버지께 쓴 편지를 통해서 그 부부의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기도하기도 했다. 터키인인 아시아데의 눈으로 바라본 유럽인의 모습을 읽는 부분에서는 그 유럽인의 모습이 자유분방하게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교양있는 유럽인이라는 미명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미개인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동료 앞에서 미개인 취급을 하는 사람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시아데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유럽인들은 행복한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아시아데나 존을 노예 혹은 미치광이 취급을 했다니… 이것은 마치 아시아인들 전체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불끈하는 마음을 억눌렀다. 특히 쿠르츠가 아시아데를 범하려다 쿠르츠의 귀가 다쳤을 때 쿠르츠의 말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이 현실에도 꼭 일어날 것만 같아 슬펐다. 책을 처음 펼치면서 새로 접하게 된 작가에 대한 반가움과 그를 향한 찬사에 조금은 의아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을 자아내는 언어구사와 냉소적이면서도 차분한 어투에 더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인의 방황하는 내면감정 처리와 상반되는 환경에서 자라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남녀간에서 생겨난 갈등을 잘 보여준다. 모처럼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고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함께 고민했다. 조만간 저자의 책 <알리와 니노>라는 책을 손에 들고 있을 것 같다.
|
|
터키 여인을 중심으로 제국의 몰락과 함께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갈등과 고뇌를 겪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인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개척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오스만제국(OSMAN 帝國), 발칸반도(Balkan Pen.), 이슬람문화(회교도), 유목문화, 스텝지역, 튀르크(돌궐)족, 골든혼(골든만) 등등 독자로 하여금 작품내용 못지않게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한다. 어쩌면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와 역사소설을 같이 읽는 느낌을 준다. ‘사랑이란 나이, 언어, 종교, 괍습, 국경 등을 다 뛰어넘을수 있다’는 느낌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현실을 받아들인 듯 살아가는 여인... 아시아데. 동양과 서양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서는 같을진 몰라도, 사랑의 발전이라는 ‘가정’이라는 문제에서는 다르게 보여지는건 어쩔수 없는 것인가? 언급했듯이 사랑이야기나 역사이야기를 떠나 ‘골든혼의 여인’은 자기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듯 하다. 개인적 ․ 사회적인 모든 것을 통틀어서 자기자신에게 소중한 것이야 말로 진정 찾아야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들릴진 몰라도, 아시아데의 선택은 터키적인 선택이 아닌 자기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을 찾은 것 같다. 읽는 내내 맘 불편했던 그 무엇인가가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맘 편해졌던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내가 동양인이어서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
|
오스만제국을 비롯한 주변나라에 역사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지만,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펼쳐진다. 하싸에게도 최고의 아내였을것이다. 멋진 모습을 볼수 있었다. 태어나면서 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는 문화라고 불리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왔다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끝이 있고 언젠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잃어왔다. 보일지라도.. 내안에 신성한 지식을 채우고 남길 것이다. 허물을 벗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뱀과 다르다. |
|
현대인은 스스로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로 여긴다. 무한한 우주의 역사와 유구한 진화의 시간 그리고 오랜 선조들의 전통이라는 토대 위에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알지못한다. 온갖 첨단에만 정신이 팔려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다. 전통이란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것이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이해하기에도 그의 정신은 과부하가 걸릴지경이다. 그런데 무슨 여유가 있어 발 밑을 내려다보고 뒤를 돌아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통의 가치를 이해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골든혼의 여인>에서는 이 부류가 서구와 동양이라는 두 세계로 상징된다. 한때 오스만제국의 왕족이었으나 제국의 몰락과 함께 서구로 흘러든 사람들이 있다. 오스만의 왕자는 존 롤랜드라는 미국인이 되어 술을 벗 삼아 우울한 삶을 이어간다. 비밀내각의 총리대신, 아흐메드 파샤는 베를린에서 카펫상점의 주인이 되어 있다. 그의 딸, 아시아데는 일찌감치 왕자의 아내가 될 여자로 점 찍혔으나 이제는 운명이 그녀로 하여금 베를린 시내를 걸어다니는 19살의 여대생으로 살게 한다.
이들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 탄신일 같은 축제일에 오리엔트 클럽에 모여 향수를 달랜다. 이렇게 모여 있으면 그곳이 고향이다. 사람들의 옷에서 '사막과 쓸쓸한 야영천막 그리고 낙타의 향내'가 풍겨나온다. 대학에서 선조들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아시아데는 이런 모임에서 안정을 얻는다. 하지만 '클럽문을 나서는 순간 벌써 낯선 적의 땅에 버려진 것 같'다. '몸을 돌리기만 하면 고향 같은 곳으로 되돌아갈 수'있지만 그녀는 이 타국땅에서 이교도들과 부딪히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이스탄불에서 온 지체 높은 여인, 정확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 편의 동화같은 여인,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곧장 걸어 나온 사람같은 아시아데.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하싸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싸는 '터키 침공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한 세르비아인의 후손'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훌륭한 오스트리아 국민'으로 여긴다. 그에게 이슬람이나 사막으로 대변되는 전통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는 훌륭한 의사이며 하루하루 환자들을 돌보는 삶에 만족한다.
결혼한 그들은 하싸의 병원이 있는 비엔나에서 신혼을 시작한다. 행복한 듯 보이는 결혼생활이지만, 좁힐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데에게 하싸는 '친숙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마치 곁에 두고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기계'같은 사람이 하싸다. 아시아데는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것,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 모두가 왕자의 조상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의 옹호자였던 것이다.
이런 그녀 앞에 '오스만가의 특징인 기다란 매부리코'를 가진 존 롤랜드가 나타난다. 아시아데는 갈등에 휩싸인다. 그녀는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남편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애초의 정혼자였던 왕자를 따라나설 것인가.
소설은 아시아데의 지혜로 좋은 결말을 맞는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아시아데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대화가 안 통하는 여자다. 하지만 그녀가 얼기설기 꼬인 자신의 운명을 지혜롭게 풀어내는 대목에서 그들은 그녀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진정 전통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사람만이 아시아데와 같은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골든혼의 여인>의 저자 쿠르반 사이드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작가의 약력을 알 수 있다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서구 위주의 문화 속에서 이런 색다른 세계를 다루고 있는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이 큰 기쁨이다. |
|
터키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아시아데와 남편 하싸, 존 이라는 예전의 정혼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삼각 관계의 러브스토리. 아시아데와 하싸와의 만남과 함께, 동시에 존이라는 무너진 왕국의 왕자의 삶이 각각 별도로 진행이 되다가, 나중에 한곳에서 집중시키는 방식. 여느 러브스토리와 다름없는 구성이라 생각됨. 특이했던 점이라면,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터키 문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는 점. 실제 이미지를 구체화 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정밀한 배경 묘사. 결론을 편지글을 통해서 진행을 한다는 것도 참 특이했음.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음. 초반부터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무너지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삼각 관계라 해서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관계가 깨지는 것이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이 참 안타깝다. 종교 차이에 의한 결혼은 정말로 힘들다. 그러한 상태에도 결혼을 원한다면, 서로간의 타 종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엿 볼 수 있었다.(물론 일부의 사고방식 이겠지만) 현란한 문체를 통해 터키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책 |
|
|
[골든혼의 여인]은 보수적인 터키와 약간은 퇴폐적인 독일의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두 남녀의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독실한 이슬람교인 아시아데 앙바리는 과거 터키 고위관리의 딸이자 터키왕자 존 롤랜드(압둘 케림)의 정혼자이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몰락과 함께 앙바리는 아버지와 함께 베를린으로 망명을 하고 거기서 대학을 다니며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다. 편도선염에 걸려 병원을 찾은 아시아데는 그곳에서 의사 하싸를 만나게 된다. 곧 하싸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정혼자인 왕자에게 편지를 보내 두 사람의 인연을 정리하고 결혼하게 된다. 연애와 결혼생활은 현실 속에서 다른 것처럼 아시아데와 하싸의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갈등을 겪게 된다. 그즈음 추방당한 터키왕자 존이 아시아데를 찾아오고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강요한다. 풍요롭고 모든 것이 보장된 조국으로부터 추방된 존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 공허함을 느끼면서 술에 찌들어 살던 존은 아시아데를 만나고 자신의 옆에 그녀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에게 돌아와 줄 것을 간청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으로 그 요구를 거절한다. 하지만 유럽의 문화에 맞지 않는 그녀는 하싸와 갈등을 겪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하게 된다. 결혼과 오래 전 정혼자 사이에서 고뇌하던 그녀는 곧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바로 준비를 시작한다. 남편인 하싸와 그의 전처 미리온의 결합을 추진하고 자신은 옛 정혼자의 아내가 되어 떠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터키와 그 주위에 있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 조금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골든혼의 여인]은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의 가치관과 함께 잘 조합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