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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게 살아가는 또다른 화자로, 눈물펑펑 쏟고갑니다... 저도 청각장애인 부모님이 계시고.. 저도 어린데 마치 보호자처럼 항상 생활했어요. 때론 짐처럼 부담이되지만, 때론 제 삶의 전부인 애증관계이지만, 제일 사랑하고 제 삶의 이유입니다.. 미묘복잡한 감정들이 이렇게 공감가는사람을 보며 눈물펑펑쏟게되나봐요. 어려울수도있는데 씩씩해줘서 감사합니다. 저도 씩씩한척 잘 살아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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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러니까 중학교를 갓 입학하고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수어(수화)를 배운 적이 있다. 주변에 수어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 보단 그 당시 다녔던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업 중에 수어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배우기 시작했던 수어를 지금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느낌보다는 반가움, 다가가서 나도 수어를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수어를 배우는게 영어 또는 일본어를 배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경험을 한 것이 더욱 소중하다.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와 동명의 에세이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읽으면서 그 경험은 더욱 소중해졌다. 두번째 페이지를 읽는 순간 벌써 가슴이 뭉클해졌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책은 '농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과 그 차별을 겪으며 자라온 감독의 성장에세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장애에 대한 차별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대해 고민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껴온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아부모를 가진 코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임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자녀 또는 손자로서, 누나로서, 학생으로서, 또는 학교 밖에 존재하는 청소년으로서 마주했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로 청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농인들의 세계에 대해 이길보라 감독은 말하고 있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결코 동떨어져있지 않음을, 실은 꽤 자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언어는 그 누구의 것보다 명징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당신과는 다른 언어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그것을 찾아 걸어가고 있음을 아는 당신.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을까. " page 9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다. 한국어를 한다고 다 알아듣는게 아니고, 서툰 외국어를 한다고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언어'라는 것은 종종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에 국한되지만 이길보라 감독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관'으로서의 언어가 아닐까싶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 경험에 한해 동일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책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농인에게 불편하며, 불합리적인 대우를 해왔으며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하다고, 간편하다고 생각하는 은행업무부터, 드라마를 보는 것까지 청인과는 달리 여러 어려움을 마주해야하는 농인의 삶에 대해 내가 이만큼이나 무지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이길보라 감독이 마주해야했던 다양한 상황을 읽으면서 자주 화가 났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날뻔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주목했던 부분은 '변화'였다. 청각장애를 가진 대학생들을 위한 대필도우미 제도의 변화 (물론 아직도 부족하지만), 또는 미국의 농인종합대학인 '갤로뎃 대학교'에서의 시간을 통해 엿본 변화의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변화는 쉽지 않다. 그리고 제도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만들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건 장애를 향한,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다름'을 향한 나의 시선과 행동은 어떠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우 많이 그리고 끊임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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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청각장애인의 얼굴 표정과 수화는 정보 전달의 음성 언어에 비하여 풍성하고 다채로운 언어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청각장애 부모의 삶과 그 속에서 코다로써 본인과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투닥 싸우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 같지만 어릴 때부터 청각장애 부모와 건청인의 세계를 통역하면서 어른의 세계로 빨리 들어가는 코다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면서 기존 교육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에는 대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고유하며 다르다. 그 누구도 다름을 이류라고 장애라고 폄하할 권리가 없다. 다름을 알아가고 존중해야 한다.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P 101 언어의 경계성에 따라 음성언어가 아닌 수어를 사용했을 때 더 효율적인 순간이 있었다. 음성언어로는 이만큼 말해야 설명할 수 있지만 수어를 사용하면 3차원의 공간과 얼굴 표정을 사용하여 단번에 말할 수 있다. P142 상황과 환경에 맞는 소통 방식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발전한다. 그뿐이다. P 186 코다는 태생적으로 교차성을 품고 태어난 존재다. 아니 어쩌면 각자의 지닌 고유함고 다름이 주는 풍성함을 조금 일찍 알게 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당신과 나의 고유함이 틀리다, 비정상적이다라는 말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의 다름과 고유함을 존중하며 나와 너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생의 여정이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기를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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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는 한마디로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가리키며 이들은 날 때부터 들리지 않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를 동시에 경험한다고 한다. 이러한 코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나 일본 소설 <데프 보이스> 등을 접한 뒤 적잖이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까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이길보라였다. 일전에 <그건 혐오예요>라는 책에서도 접했던 저자는 이 책과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했다. 아마 추측하기론 우리나라에서 농인에 대해 얘기하는 창작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듯해 이렇게 책까지 읽게 됐다. 영화랑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똑같은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책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느꼈던 관객들의 감상에 대해 더 자주 얘기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 자신의 얘길 듣는 것 같았다'며 저자에게 감상을 들려준 전국의 코다 관객의 이야기에다가 저자의 자전적인 얘기도 곁들여져 코다라는 존재가 상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초반에 언급했던 영화나 소설은 아무래도 픽션이라서 - 개중에는 실화 바탕의 작품도 있지만 - 코다라는 정체성이 주인공 개개인의 개성으로만 느껴져던 것에 비해 이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선 순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됐던 것이다. 지금까지 코다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만났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걸까. 여타 장애인과 비교해도 유독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청각장애인처럼 그들도 단지 내 눈에 잘 안 보였던 걸까? 아무튼 그렇다 보니 책에 적혀진 저자의 자전적인 내용들이 적잖이 신기했다. 귀가 들리지 않아 경제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 밑에서 청인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통역사를 도맡았던 것, 그렇게 통역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은행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모를 수가 없게 된 것, 그래서 세상 물정을 일찍부터 알게 된 것 등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읽혔다. 자전적인 얘기를 해서 그런지 가독성과는 별개로 퍽 진실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저자가 코다이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상상이 자극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공항에서 아버지와 직원 사이에서 통역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나 드라마 장면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어머니한테 시달리는 장면 등이... 이런 일상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도 다 좋았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농인들의 현주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작중에서 저자와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갔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공항 직원들부터 간단한 수어가 가능해 주인공이 통역할 필요가 없었던 것에서 시작해 아예 농인 전문 대학까지 있었다는 내용들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인 나 역시 문화 충격을 느낄 만한 부분이었다. <그건 혐오예요>에서 이길보라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는데,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완 달리 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이 보인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은 없는 사람, 혹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으로 배척하지만 외국에선 그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놓는다고.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이는 작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면 더욱 명확히 다가온다. 이길보라 작가의 자전적인 책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보편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읽기 전에 코다인 작가라서 엄청 특이한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려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말을 통역하느라 창피하고 곤혹스러운 경험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게 또 나와 당신들과의 끊을 수 없는 유대의 일부라고 저자는 술회했다. 이걸 보니 청각장애인이나 코다처럼 사회에서 구분 짓는 용어같은 건 진실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가 될 수 없고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 들리지 않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불편하긴 하지만 문제될 것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저자와 저자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겨준 여러 관객의 이야기 덕에 나와 타인 사이의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나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나는 어디까지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재보는 것 자체가 실례고 어리석은 건 아닌가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 책과 동명의 영화가 있다. 지금까지 글로만 접했던 저자의 연출 실력은 또 어떨지 기대하면서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