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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상에 작은 점에 불과한 식민국가, 그것도 아주 조그만 섬에서 태어난 지식인은 어떤 인생의 행로를 걷게 되는가? 이 책은 한 식민지 출신의 학생-정치인-난민의 인생행로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나이폴의 <흉내>(원제목The Mimic Men에 충실한 번역은 '흉내내는 사람들')는 싱Singh이란 이름의 한 식민지인이 '절망의 섬,' 이사벨라(과거에 스페인의 식민지였음을 상기시킨다)를 도주하여 익명의 섬, 런던(식민 종주국)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 싱은 미미한 자신의 존재가 소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필사적으로 편협한 섬 문화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게다가, 타인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멋쟁이 모습만을 꾸며내어 과시하려고 애를쓴다. 측은하며 한심한 모습이나 나중에 자신이 허세의 포로였음을 인식한다. 이런 모방꾼이 식민지 장래의 청사진을 구상하는 지식인-정치인이라면, 식민지의 운명은 불안하며 표류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이 식민지 현실에 대한 나이폴의 냉정하지만 정직한 진단시각이다.
한때 자국에서 좌파정치인으로 행세하며 정치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 참여했던 싱은 이제 런던의 허름한 방 한 가운데 놓인 책상 위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식민사회에 대해 성찰하는 글을 쓴다. 이런 나홀로 글쓰기는 정치드라마에 비하면 청중도 관객도 없는 초라한 판토마임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모방꾼이었으며 자신이 몸담았던 식민국이 근본적으로 혼돈의 도가니임을 절실히 깨달는다. 그에게 더 큰 아픔은 자신이 '마법의 도시'라고 여겼던 런던이 단지 마취된 질서와 죽음의 도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처지가 '난파된 배'와 같다는 인식은 다름아닌 절망의 선언이다. 더욱 굴욕적인 일은 그곳에서 식민종주국이 배풀어주는 자선(그가 한때 잠시 사귀었던 영국여성 레이디 스텔라의 자선단체)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정치적 무질서상태의 섬과 마취된 질서상태의 도시 사이에서 길을 잃는 주인공이 겪는 정체성의 불안과 절망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자신이 진취적인 기마민족인 아리안족의 후손임에 자부심을 느끼며 지도자의 꿈을 꾸어오던 그는 결국 런던에서 초라한 난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자국에서 축출되어 런던으로 망명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 황제의 운명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심적공황과 외로움 그리고 길잃기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동시에 예상된 운명인 것이다. 흉내내기와 허세부리기는 한국인, 특히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의 모습을 특징짓는 말이라서, 나이폴이 그려내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이 다른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에게 정치란 결사적인 것이며, 단 한 번뿐인 돌격이다. 일단 정치에 헌신하게 되면, 우리는 정치적인 전투 이상의 싸움을 한다. 종종 우리는 말 그대로 목숨을 놓고 싸운다. 우리의 전통적인 또는 임시 변통으로 만들어진 사회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열띤 전투 뒤에 우리를 재충전해주고 우리를 흡수해줄 대학이나 런던 시티의 주택들 같은 것도 없다. 패배하는 자들에게는 -- 거의 모두가 결국은 패배하는데 --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도주. 더 큰 무질서. 마지막 공허로의 도주. 런던과 런던을 둘러싼 주들로부터의 도주. --- pp.11-12. 모든 풍경은 결국 땅이 되며, 상상이란 황금은 결국 현실이란 납이 되니까. 난 많은 내 동료 망명자들과는 달리 교외의 두 가구 연립주택에 살 수 없었다. 난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내가 공동체의 일원인 척,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척할 수가 없었다. 난 먼 교외에 있는 호텔의 자유로움을 더 좋아하며, 책임질 일이 없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난 덧없음의 느낌을 좋아한다. --- p.15. 우리는 진짜인 척하고, 배우는 척하고, 인생에 대한 준비를 하는 척했으나, 사실은 '새로운 세계,' 그 신세흉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