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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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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의 글들을 모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Village Swaraj'역시 받아본 순간 누런 재생용지와 자그마한 판형에 책 만들기에 나무를 최소한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있던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비폭력)과 스와라지(자기통치, 자기억제, 자치, 독립)에 대한 의지와 그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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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의 글들을 모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Village Swaraj'역시 받아본 순간 누런 재생용지와 자그마한 판형에 책 만들기에 나무를 최소한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있던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비폭력)과 스와라지(자기통치, 자기억제, 자치, 독립)에 대한 의지와 그를 이루기위해 실천할 방법들을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충분한 책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동안 간디가 물레를 돌리는 사진을 많이 보았었는데 왜 그리 물레를 돌리며 물레돌리는 모습을 드러냈었는지를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비노바 바베, 자와할랄 네루 등의 이름도 간간이 나오면서 영국지배로부터 독립한 인도에 그치지 않고 진정 인간으로서 독립된 아름다운 인간들이 사는 아름다운 인도를 꿈꾸었던 간디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난한 인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부도덕을 통해 부유해진 인도는 자유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FTA가 타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즈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 나라에서 좋은 일이 조건이 다른 나라에게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이 말에는 강대국의 논리에서 다른 지역의 개별적 조건에 대한 고려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자유무역의 환상을 깨는 힘이 있다.

  '가난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산업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다' '소박한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시도는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하면서 산업주의에 사악함이 내재하고 있으며, 3억인구가 그러한 경제적 착취를 한다면 메뚜기떼처럼 온 세계를 헐벗게 할 것이라는 혜안을 보여준다. 그 옛날에 요즘 사람들이 슬슬 떠올리기 시작하는 개념들을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앞에 위대한(마하트마)을 붙였었던 것이리라. 

  간디는 말한다. 물레가 없으면 아힘사도 스와라지 없다고. 물레는 나이탈림(수공업을 통한 국민교육)과 경제적 독립, 스와데시(외래품 배척운동을 통한 자립경제)를 통한 스와라지의 기초가 된다. 간디가 주장하는 운동방식은 우리나라 일제시대 브로로드 운동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이 책에서 감동받은 몇가지.

  신탁주의 - 부자들은 자신의 여분의 재산을 사회적으로 맡아둔 수탁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부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가 최소한의 폭력으로 그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고 까지 한다.

  금욕주의 - '가난한 이들을 동경하는 사람들,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줄여야 한다' 맛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먹어선 안된다.

  어렵더라도 나부터 실천하자 - '단 하나의 순수한 영혼이 온 마을을 구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곳에 하나의 순수한 영혼이 남아있는 한 멸망하지 않았다' 

j***1 2007.09.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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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런 경계선을 만든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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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봉사를 국가가 만든 경계선 너머 우리의 이웃들에게로 확장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신은 그런 경계선을 만든 적이 없다” 간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간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비폭력 무저항의 민족주의자로만 알고 있는 간디는, 또한 인간불평등 사상을 극복하고, 착취와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을 극복하려 애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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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봉사를 국가가 만든 경계선 너머 우리의 이웃들에게로 확장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신은 그런 경계선을 만든 적이 없다”


간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간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비폭력 무저항의 민족주의자로만 알고 있는 간디는, 또한 인간불평등 사상을 극복하고, 착취와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을 극복하려 애쓴 풀뿌리 사상가이기도 했다.


책은 인도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간디의 오랫동안의 철학이 담겨 있다. 스와라지(자치, 독립)의 중요성, 아힘사(비폭력)와 스와데시(자립경제)의 세계를 향한 그의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울러 그는 기계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이 황폐화를 우려한다. 노동이 단순한 효율성의 증대가 아닌 사랑이 담보된 노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가장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조건에서만 일해야 하고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욕심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가 되어 일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노동 조건의 변경이다. 부를 향한 이 미친 듯한 돌진은 중단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임금만이 아니라 단순한 노역이 아닌 매일의 일거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기계는 국가나 기계를 소유한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이 유일한 최고의 고려 대상이다. 개인의 노동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욕심이 아니라 정직한 인도주의적 배려가 동기가 되어야 한다. 욕심을 사랑으로 대체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평택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간디의 말은 무참하다. 이 책은 1962년에 간행되었다. 그 당시 우리의 노동 현장은 어떠했을까.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모든 설명을 필요 없게 만든다. 그랬다.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고작 청계천 다리 위에 그의 동상만 세웠을 뿐이다.


간디는 “다른 생명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고대 이래 인도의 위대한 사상 유산에 대한 가장 겸허한 충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에게 산업주의 경제와 근대적 과학기술에 의존한 서양 문명은 참된 의미에서의 문명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서양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그런 게 있다면 참 좋겠지요”라고 답한 이유이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통해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한 인도의 70만 개의 농촌마을의 부활과 회생 속에서 참다운 독립과 해방, 진정하게 새로운 인류 문명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물레를 돌리며 참다운 자치에 기반한 자립적 마을을 꿈꾸었다. 지금 우리에겐 어쩌면 너무 순진해 보이는 간디의 구상은 그러나 더욱 뼈아픈 자성을 이끈다. 외국의 수입이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품목이 우리에겐 과연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당장 석유가 수입되지 않는다면? 아마 패닉이 밀어닥칠 것이다. 해운대를 습격한 메가 쓰나미 정도의 파괴력이지 않을까.


간디의 수공업 중심의 마을 자치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느낀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네루 수상을 비롯한 당시 인도의 지도부는 간디의 주장에 대해 수긍은 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그리고 어느 덧 지금의 거대한 인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렇담 지금 인도는 행복할까? 아직도 우리 인구의 몇 배가 넘는 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수많은 농부들이 자살하는 국가 인도. 신비로움에 가려진 굶주림과 부패. 이것들 역시 산업화와 개발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라고 할 것인가? 글쎄, 아마도 간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불러온 재앙일 뿐이다.


간디는 근대적 산업화, 기계화는 “인류에게 무엇보다 큰 화근”임을 주목하여, 언젠가 “반드시 인류에게 저주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저주는 시작된 지 오래다. 오래된 미래가 아닌, 새벽의 저주다. 해는 벌써 중천에 솟았다.


각 지자체 별로 특산화한 쌀이 많다. 종류가 하도 많아 기억도 힘들다. 저장한 쌀이 너무 많아 버리든지 북에 지원해주자는 말들도 나온다. 얼핏 보면 우리가 쌀이 넘치는 나라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른바 압축적 경제성장의 결과, 농업, 농촌, 농민의 전면적인 몰락과 함께, 식량자급률 25퍼센트 수준에서 외국농산물에 대한 의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위태로운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중국산 아닌 먹거리를 찾아보시라. 혹시 당신은 돈이 넘쳐 모조리 국산 먹거리만 드시는가?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그 잘난 세계화-사실은 식민주의의 세련된 이름이지만-의 지배 밑에서 민중의 삶은 벼랑 끝에 몰리고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땅을 사랑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던 분을 장관으로 모실 걸 그랬다. 암튼 자연적 토대가 붕괴되는 지금, 또 다른 대규모 자연 학살을 22조 원의 돈을 박아가며 하려 하는 것이 현 우리의 모습이다.


간디의 물레 사상. 우리가 입을 옷이라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소박한 사상. 한 집에 물레 하나씩 가져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자는 그 소박한 사상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간디는 단순함이 보편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수백만의 이익을 위한 것은 어떤 것도 많은 학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식은 오직 소수만이 갖출 수 있고, 따라서 부자들에게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이다. 온갖 어려운 통계와 자료를 들이밀며, 우리에게 공범이 되자고 유혹하는 “머리 좋은” 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해가며, 환경오염의 주범인 킬러 자동차를 팔기 위해 우리의 쌀을 포기하는 지금. 과연 우리 마음속의 물레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린 새벽의 저주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어쩜 그 저주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농부가 멕시코에 가서 영어로 외치고 자결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일독을 권한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09.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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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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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간디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즉 간디만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유토피아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p.8),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p.12),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p.40~41), 마을 스와라지(p.61),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p.66), 비폭력과 탈중심화(p.70), 보호무역(p.94), 전인교육(p.113)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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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간디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즉 간디만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유토피아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p.8),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p.12),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p.40~41), 마을 스와라지(p.61),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p.66), 비폭력과 탈중심화(p.70), 보호무역(p.94), 전인교육(p.113) 등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이 [이상적인 삶]인지 부터 의문점이 생기고 또한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간디도 자신의 꿈꾸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p.108) 분명히 고백하건데 아직 젊은 나로서는 간디처럼 <이상주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본인도 전세계 사람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지만 이럴 때 대부분 알고 있는 체게바라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래서 나는 과연 간디의 꿈꾸는 삶이 [불가능한 꿈]인지 하나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단일 세계 정부 수립이 최선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단일 세계 정부 구성의 시초가 될지도 모르는 UN을 보면 현실 정치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1학년 시절에 현재는 호주대사로 임명된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UN도 미국의 단일패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만약 UN(united nations)이 속된 말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UC(united country)라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어서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도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p.13)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를 분산시키는” 마을 스와라지를 제시하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국가를 분산시킨” [마을 스와라지]가 바로 또 다른 [국가]가 아닌지 궁금하였다. 대체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 스와라지]라 함은 단순히 이름만 바꾼 [국가] 자체가 아닐까? 그냥 단순히 권력만 분산시킨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마을 스와라지]에 대해 간디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 그럴까?

 

또한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는 굉장히 기계와 산업화를 반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히 사악함은 산업주의에 내재하는 것이어서 산업을 아무리 사회화해도 그 사악함을 제거할 수 없다(p.42)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초창기 [천민 자본주의]로 인해 많은 사악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의 [천민 자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나마 사악함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간디가 다시 살아난다면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은데 개인의 지적 능력은 오직 인류에 봉사하는데 쓰여져야 한다(p.66)는 간디의 견해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간디도 너무 앞서 나가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간디로 아래 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는 우리의 시간의 대부분은 육채노동에 바쳐져야 하고, 오직 조금만이 독서에 주어져야 한다(p.67) 라고 주장하는데 뭐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p.69)을 주장하는데 이 부분의 논리도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평등한 분배가 이상이므로 공평한 분배를 차선으로 추구하는데(p.68) 과연 부자들의 재산 신탁과 공평한 분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이라 함은 평등한 분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재산 신탁한 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나중에 사용하고 돌려줄 것인가? 절대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니 한마디로 그냥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말의 유화된 표현 아닐까?

 

이어서 비폭력과 탈중심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폭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농업적으로 조직된 인도는 육해공군을 잘 갖춘 도시화된 인도보다 외국의 침입을 받을 위험이 적다(p.70)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지 궁금하다. 과연 인도는 과거에 농업적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인가? 그리고 인도가 왜 현재 다른 나라의 무시를 받지 않는가? 그것은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간디가 주장하는 보호무역(p.94)은 개인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원래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해 경험이 미천한 관계로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에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통해 영국이나 미국이 IMF, 세계은행, WTO 3인방을 통해 각 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의 허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나라들도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보호무역을 하였으며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는 자유무역을 다른 나라에 강요함으로써 올라올 때 사용한 사다리를 치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이탈림, 혹은 전인교육(p.113)으로 대표되는 간디의 교육관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간디는 지력의 올바른 교육은 오직 손, 발, 눈, 귀, 코 등 신체기관의 적절한 운동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p.113)고 말하고 있다. 즉 적절한 지능 발달에는 몸과 마음의 교육과 함께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추구한 교육 목표인 전인교육(全人敎育)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빼자고 주장(p.117)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는 판에 이런 주장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소리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 영어가 일종의 학벌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어가 이른바 상류층으로 편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으며 영어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다. 영어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오는 논문의 대부분은 영어로 작성되고 있으며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 영어라 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어와 같이 인도의 문화를 왜곡할 수 있으며 당시 [친영파]의 주요 출세 수단이었던 만큼 이를 배척한 간디의 생각은 이해되지만 현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으로 간디가 주장한 이상적인 삶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a******n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