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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ワイエットル-ムにようこそ:: 松尾 スズキ 병원은 몹시 낡아서 오히려 막 급조된 가건물처럼 보였다. 복도에 늘어서 있는 대기 의자들도 70년대쯤 만들어졌음직한 촌스런 색깔의 플라스틱 의자들이었고 폭도 매우 좁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빽빽히 빈틈없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더 인원이 많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앉아 함께 기다리려니 마치 한 부대의 일원 같다는 이상한 연대감이 들었다. 다른 곳이라면 병증이 조금씩은 틀리겠지만 여기는 사연은 달라도 대부분 같은 병증일거라고 나도 모르게 수긍해서 였던 것 같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이런 병을 이렇게나 많이들 앓고 있다는 사실 확인에 의한 충격이 뒤섞여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흘깃 사람들의 얼굴들을 살펴보니 겉으로는 모두 멀쩡하고 평범해 보였다. 의식을 안한다면 일반 병원의 대기실 풍경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른 것은 대기 시간이 일반 병원보다 더 길다는 것뿐이었다. 예약을 하고 오지 않아 기다려야 하는 시간만 두시간은 넘겠다고 했다. 처음이라서 예약을 하고 와야하는지도 몰랐다. 다음날로 예약하고 집에 돌아갈까 했지만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겨우겨우 용기를 끌어모은 거였다. 이왕 온 김에 딱 한번만, 이라는 심정으로 긴 대기 시간을 참고 기다렸지만 도중에 몇번이고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진찰실로 들어가 진단을 받는 것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 벗어날 수 없는 연대감. 나도 이 사람들과 같다는 절망에 대한 확인사살. 왠지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 것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며 생색을 내러 이 자리에 온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아프긴 아픈걸까? 그 자리에 앉아 그 질문을 수도없이 하며 나 스스로를 진단해보았다. 그러는 동안 대기 시간이 끝나고 차례에 떠밀려 진료실로 들어갔다. 낯선 의사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데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더듬더듬 조각조각 자신없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의사는 진료서에 받아 적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죄다 병증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그 사연을 다 얘기하려면 당장의 몇분 갖고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데 도대체 의사가 얼마만큼이나 나를 이해하고 얼마만큼이나 오늘 하루에 대한 처방을 해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한꺼번에 이야기 하는 것은 포기하고 당장 오늘이라도 버틸만한 약을 달라 했다. 병원까지 찾아온 이유도 괴로움을 누그러뜨릴만한 약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그거라도 먹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정신과 치료의 첫 기억이다. 형편이 안좋은 시절이라 비싼 진료상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형 정신병원에 갔더니 정말 아연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신체가 아픈 이들이 모여있는 병원의 풍경을 보는 것도 우울한 일인데, 마음이 아파 모여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본다는 건 정말 착잡하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되는 거였다. 그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어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당연히 몇번의 진료를 더 받았어야 되었지만, 의사를 졸라 약만 일주일치 타서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약도 정확한 진단없이 받은 약이라 항우울제가 아닌 수면제가 전부였다. 먹고나서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어 3일만에 끊었고, 우울증은 오히려 더 증폭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나 혼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까진 견딜만 했지만, 남을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자 정말 절박해진거다. 이후 가끔씩 정신과 치료에 대한 고민 상담을 주변 이들에게 받곤 한다. 대부분 마음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정신적 위안이나 약물의 효능을 기대하지만 막상 병원 문앞에 가기까지를 매우 망설인다. 완전히 치료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도 없잖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고 필사적으로 믿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앓는 소리하면 나약하다고 윽박지르던 부모 세대에 의한 세뇌 효과탓도 크다. 병원에 치료를 받을 지경까지 가면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공포 때문에 설령 한 두번 다녀왔다해도 감추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그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픈 곳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상처는 결코 낫지 않는다. 잠시간은 외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고 통증이 재발되어 또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것의 반복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함께 병들게 한다. 자살 미수로 정신 병원에 수감된 아스카는 단순한 실수였다고 자신의 상태를 부인한다. 함께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멀쩡한 것 같다. 그런데 그들 역시도 스스로는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자해가 지나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싶으면 잠시 '콰이어트룸' 에 묶여 있는 것이 전부다. 누구나 한번쯤은 확 하고 폭발하여 광증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걸 갖고 미쳤다고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며 아스카는 병원을 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퇴원 허가가 나기 전까지 며칠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사실 자기 자신에겐 조금쯤은 문제가 있었다고. 치유받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고. 그래서 곁에 있는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괴롭혔다고. 너무나도 이상하고 문제 있어 보이지만 자신과 별다를 게 없는 병원의 사람들을 보며 겨우 스스로의 아픔을 바로 볼 수 있게 된거다. 자괴감이나 자책감으로 인한 우울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다. 잘 견뎌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 성격의 모난 곳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관계에 있어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한번쯤은 견디기 어려운 부분을 바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까진 없다해도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되뇌이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프지 않은 것 같다해도 나는 조금쯤 아픈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조용히 진단해 본다면 억지로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었던 무언가의 팽팽함이 조금은 느슨해지지 않을까. 그건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직시해서 극복하려 하는 진정한 강함이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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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권의 원작소설들을 만나면서, 호불호가 나눠졌었다.
이 책은, 기대이상 마음에 든다.
영화 자체가 독특할 것 같고, 좋아하는 배우의 출연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 중에, 원작소설부터 만났는데, 재밌게 잘 읽었다.
소설과 영화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런데, 소설 자체만으로도 영화 이상의 상상이 가능했기에, 어떤 영상이 그려지는 이야기. 나름, 재미나게 읽었다.
스물 여덟,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꼭 이혼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혼녀.
짧게 보여지지만, 그녀의 이력을 들을 수 있고, 14일 간의 정신병원 체험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인생들을 통해, 다양한 간접경험이 되는 것 같다. 비록, 아주 짧은 만남이지만...
어떤 아픔에 대해, 꼭 느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간직되는 슬픔, 그런 건 이 책에서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체 자체가 가볍고, 읽기 쉽게 번역을 한 건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꼭 보고 싶다.
소설과 얼마나 다른 구성일지, 너무도 궁금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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