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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가장 큰 제국을 형성했던 페르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있던 아시리아,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른 메디아, 그리고 메디아를 비롯한 소아시아와 중동 전역 및 인도 서부까지 정복했던 페르시아 제국! 이 거대 제국은 기원전 6세기 중반 키루스 대왕에 의해 창건되었다. 키루스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는 이집트까지 정복사업을 펼쳤으며 캄비세스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제위를 차지했던 캄비세스의 아우 바르디야는 다리우스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제위를 찬탈한 다리우스는 연이은 정복사업으로 국내에 싹틀 수 있는 분란을 방지했고 제국의 팽창이 진행됨에 따라 결국 헬레스폰토스 해협 너머의 세상과 조우하게 됐다.
다리우스 대왕의 페르시아가 세를 불리던 당시 소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은 밀레토스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건설돼 있었다. 이들은 독립성을 유지한 자치도시로 성장했고 절대왕정체제를 고수하는 페르시아 체제와는 결이 달랐다. 페르시아 제국 아래 온 세상을 통치하려는 다리우스 대왕의 야심은 그리스 식민도시들과 그리스에 대한 정복욕으로 이어졌고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을 정복함으로써 그 뜻을 이뤄나갔다. 그러나 페르시아 군이 그리스 본토(마라톤 평원)에서 마주한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투(마라톤 전투, 기원전 490년)에서 참패함으로써 그리스 정복, 나아가 세계 정복이라는 꿈은 좌초되었다.
다리우스 대왕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게 된 크세르크세스는 선왕만큼이나 세계정복에 대한 야심을 불태우는 인물이었다.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가 온누리에 퍼지고 신의 대행자로서 자신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리우스 대왕이 완수하지 못한 과업, 그리스 정복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광대함에서 비롯된 엄청난 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그리스로 진군했고 육상으로는 헬레스폰토스 해협과 트라키아 마케도니아를 거쳐 아티카로 향했으며 해상으로는 이오니아로부터 그리스 남부를 향했다. 크세르크세스의 군대가 다가옴에 따라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연합군을 구성했고 육상은 아티카로 진입하는 병목 부위인 테르모필라이에서 스파르타가, 해상은 에우보이아와 보이오티아 사이의 해협에서 아테네가 주축이 되어 전쟁을 대비했다.
페르시아 군과 그리스 연합군의 격돌은 육상과 해상에서 각각 테르모필라이와 아르테미시움에서 벌어졌다(기원전 480년).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는 레오니다스 왕의 지휘 아래 테르모필라이를 수일동안 사수하며 그리스 연합군이 방비를 강화하고 시민들이 피난할 시간을 벌었다. 같은 시기 아르테미시움에서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연합함대가 수적 우위에 있던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게 되는데 이는 두 차례의 폭풍이 페르시아 함대를 강타한 영향이 컸다. 테르모필라이에서 스파르타의 영웅들이 모두 숨을 거둔 후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로 향했고 아르테미시움에서 그리스 연합 함대가 퇴각하자 페르시아 함대도 아테네를 향했다.
그리스 연합군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군세가 절대적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아테네를 소개하고 가까운 섬인 살라미스로 대피한다. 그리스 연합 함대도 살라미스에 모여 전열을 가다듬고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간첩을 고용해 서로의 동태를 살피고 적에게 혼선을 야기하기도 했는데 테미스토클레스의 간계에 속은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대규모 전투를 개시한다. 병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한 크세르크세스는 결국 그리스 정복이라는 야망을 접고 페르시아로 회군한다.
크레스크세스는 수사로 돌아갔지만 그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가 남겨졌는데, 크레스크세스의 사촌이자 장군인 마르도니우스이다. 마르도니우스는 페르시아 군을 규합하고 도시 국가로 구성된 그리스 연합군이 자중지란에 빠져 분열되길 기다렸지만 그리스 연합군의 단결은 건실하게 유지됐다.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이 평원에서 발생한 전쟁이 그리스 연합군의 대승으로 마무리되고 해전에서도 크게 승리함으로써 2년 가량 이어진 제 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된다.
'톰 홀랜드'는 뛰어난 글솜씨로 역사를 소설처럼 풀어쓰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이다. <페르시아 전쟁>이란 책도 역사서를 읽는다기 보다 역사소설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페르시아 전쟁>은 지면의 절반 가량을 당대의 시대상을 서술하는데 활용했고, 페르시아 이전의 제국들,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과 번영, 그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상황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발생할 무렵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겪고 있던 사회적 진통을 개연성있게 소개하고 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가미한다. 전쟁의 진행은 드라마를 감상하듯 읽혀진다.
페르시아 제국과 고대 그리스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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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전에 일어난 동서양의 대결이자 최초의 국제전이 아닌가 싶어요 페르시아군대가 여러 부족 민족의 혼성부대였고 그리스 역시 여러 폴리스들이 참여한 전투여서 1:1 대결이 아닌 수십개의 다국가들이 개입한 세계대전의 성격을 보이는것 같습니다, 초반 머리말에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 깊어요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영국사의 한 사건으로 보아도, 마라톤전투는 헤이스팅스전투(1066)보다 중요하다 독일 철학자 헤겔 살라미스 해전은 세계 역사의 흥미로움을 심한 위기에 빠뜨렸던 사건이다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유럽인들에 외친 구절을 마지막으로 후기를 마칩니다. 대지여! 그대 가슴에 묻힌 스파르타 병사들의 유골을 돌려주오 300구 유골가운데 세 개만이라도 돌려주어 제2의 테르모필라이를 만들게 해주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