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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을 다했다' 라는 말은 니키 드 생팔을 보며 하는 말 같다.
예술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끊임없는 창작과 삶에 대한 열의는 정말 대단했다.
열의의 반대의 감정 속으로도 많이 들어가 본 그녀였기에 온통 환희에 찼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인생 앞에서 나는 너무나 한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 사고관이 한가하기에 나의 인생도 한가한 듯한 이 느낌.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끊임엇이 예술을, 인생을 추구했기에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분명 멈춤, 탈선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길을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 또한 그녀만큼이나 그녀의 인생을 믿고 따라간 셈이였다.
그녀의 전시회를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전시회가 끝나기 3일전 서울을 갈 일이 있어서 전시회를 가볼까 했지만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 책도 읽지 않은 상태였고 그림이 아닌 다른 미술은 너무나 문외한이여서 흥미를 끌 요인이 적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작품들과 사진들이 너무나 갈급했다.
평전이기에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모습들이 당연히 많이 나왔을거라 생각했지만 서문에 그녀의 대표작들만 조금 나와있었을 뿐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료는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그녀의 전시회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해 보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갔던 것들을 바로 확인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녀에게 그녀의 작품은 그녀 자신보다 더한 드러남인데 왜 책에는 그렇게 많이 없었을까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건 분명 답답한면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면을 발결할 수 있는 계기도 되어 주었다.
작품 속과 밖의 니키를 더 자세히 만날 수 있었던 시간들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라고 말한 니키.
그녀는 상처로 뒤덮인 어린시절과 자식을 버린 부모라는 죄책감, 평생의 연인 장의 외도와 죽음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창조적인 힘을 끌어낸 사람이였다.
실제로 그녀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과 정신적 압박과 혼란속에서 그 모든걸 이겨 냈지만 나였다면 진즉 정신을 놓아버리거나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겐 보통 사람으로써 견디기 힘든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이 평생 따라다녔다.
그랬기에 그녀가 하는 손짓 하나에도 혼이 깃들어 있고 아픔이 느껴지면서도 그 행위를 막을 수 없는 힘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예술과 사람의 동반자인 장을 만나면서 그녀는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새로움을 만들어 갔지만 그로 인해 힘들었던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와 사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힘들었다는 그녀.
그러면서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녀.
그녀에게 예술은 많은 것을 견디게 해주었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높이 사고 싶은건 열정과 희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결과는 타로공원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데 그녀가 얼마나 그 공원에 열정을 쏟고 사랑을 부었는지 공사장 인부들 하나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자신의 열의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는 것.
그건 그 사람의 내면 속에는 커다란 활 화산 같은 열정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녀는 평생 그 화산을 안고 있었다. 그 화산이 폭발하고 꺼졌을때 비로소 그녀의 목숨도 빛을 일어갔을 뿐.
그녀의 작품들은 오래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화 환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평전이긴 하지만 평전보다는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였고 처음에 말한 자료의 부족함도 마찬가지여서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니키 드 생팔이라는 열정이 넘친 예술가를 알아간 것은 이러한 푸념들이 감히 명함도 못 꺼낼 정도로 귀한 앎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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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충동 구매를 할 때가 있습니다. 책의 목차나 출판사의 설명을 읽지 않고 책 표지와 제목 그리고 광고 문구에 혹해서 살 때가 그렇습니다. <여신이여, 가장 큰 소리로 웃어라>는 그렇게 구입하게 된 책이고요. 퐁피두 센터 근처에 있는 그녀와 장 탱글리의 작품은 보았지만 딱히 머리에 '니키 드 생팔'이란 이름이 남진 않았습니다.
무지한 상태에서 본 그녀의 일대기는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귀족 가문에 태어났지만 아버지한테 성학대를 당한 어린시절, 그리고 이른 결혼과 이혼, 창작 활동의 시작과 운명의 연인 장 탱글리와의 이야기까지.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였단 것입니다. 저자는 슈테파니 슈뢰더지만 수시로 니키 드 생팔과 대화를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저자가 되어 니키 드 생팔과 대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즐겁게 알게되는 계기도 덤으로 얻은거 같아 기뻤고요.
책을 읽은 것이 꽤 오래 전이라 기록(리뷰)으로 남기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종이가 좋았는지 색도 거의 안바랬고, 잉크가 여기저기 묻어있는 현상도 없었습니다. 책의 뒤틀림도 없었고요.
책을 계속 구매하다 보면 쉽게 그리고 당연하게 한 출판사의 책을 여러번 구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꾸준한 질로 만족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민음사의 또다른 브랜드인 세미콜론은 구매하면 할수록 만족을 주는 출판사같습니다. |
| 많은 예술가들이 상처를 안고있는 것 같다. 그 상처들에게서 그들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것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로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작품으로 표현했지만, 그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려고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 자체만으로 비판하고 화제거리로 삼는 부분에서 작가의 고독을 느낄 수 있었다. 니키는 평생의 연인 장의 죽음으로 ''카드 놀이를 할 때처럼, 우리는 규칙을 모른 채 태어나는 것 같아. 하지만 어쨌든 손에 쥐어진 카드들을 제대로 써야겠지.'' (P290) 라고 생각을 한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다. 용기를 내어 내 삶에 충실해야한다. 그녀의 전기를 읽은 것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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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니키 드 생팔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다만 그녀가 만든 나나 중 하나의 사진을 인터넷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 때의 감상은 '오호, 좀 독특한데...'였다. 추상적인 것들을 접할 때, 미술의 문외한인 내가 그 이상의 느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지식이 없다고 해서 감상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것은 왠지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색다른 작품과, 작품 세계를 만나기 위해 니키 드 생팔의 전기인 <여신이여, 가장 큰 소리로 웃어라>를 보게 되었다.
니키 드 생팔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슈팅 페인팅'-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기법이다-이 너무 유명해지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알린 이 기법을 포기하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섰다. 신기한 건, 그녀가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더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그녀가 왜 이런 독특한, 혹은 미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는가, 반항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다보면, 그 밑바닥에 어릴 때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이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지방 귀족'이었다고 적혀 있던데 그런 멀쩡한 남자가 자기 딸을 데리고 근친상간을 하다니...! 그녀가 평생 우울증에 시달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참으로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생명력 강한 여인이었다. 작품활동을 위해 별거, 이혼을 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와 나눠 갖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단이나 대중들의 반응이 뜨뜨미지근할 때에도, 폐가 약해져 병상에 누웠을 때조차도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을 추구했다. 그런 작품들이, 그녀는 사라졌어도,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나'를 보라. 얼굴에 비해서는 비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알록달록한 원색의 슬립만을 입은 채, 힘차게 팔을 휘두르며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원래는 임신한 친구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나를 겹쳐 본다. 잘 움추려 들고, 기운 없어 하고, 패배자인 양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나를 볼 때는 그 안에 나를 투영시키게 된다. 나도 그렇게 '겁없이' 뛰어 보고 싶어진다. '나나에게 권력을!'이란 독특한 슬로건마저도 맘에 든다. 나나는 니키가 우리에게 남겨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다.
부정한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 총을 쏘아댄 그녀, 니키 드 생팔. 그녀의 삶과, 작품이 모두 나를 사로잡는다. 나도 그녀와 함께 큰 소리로 웃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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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여, 가장 큰소리로 웃어라>
아마도 이 작품의 주인공 화가 ‘니키 드 생팔’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다. 처음 들어봤을 수도 있는‘나나’,‘다트초상화’,‘골렘’,‘타로공원’ 등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다. 니키 드 생팔에 대한 작품 첫 머리에는 어느 누구도 예술로 승화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슈팅페인팅’이 나온다. 말 그대로 작품을 위한 캔버스를 준비하고 그곳에 원하는 영감에 따라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배치한 후 실제 총을 사용해 슈팅! 그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니키 드 생팔만의 예술적 감각이 만들어낸 미술계의 획기적인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하나의 미술사조라고까지 언급해도 괜찮을 정도다. 니키 드 생팔은 이 슈팅페인팅의 모티브를 어릴 적 겪었던 아픈 추억에서 발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픈 추억이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학대(?)에서 벗어나고 저주하고 미워하고 원망했던 대상을 슈팅페인트를 통해 해소욕구를 발산시키는 작업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우리들이 생각지 못한 나름대로의 아픔과 삶의 굴곡이 있다고 하는 말은 이제 흔한 말이 아니다. 니키 드 생팡으 명성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나나’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나는 지극히 순수해요. 친절하고 행복하다고요. 플레이보이 따위랑은 아무 관계없어요” 니키 드 생팡은 이렇게 말한다. “나나에게 권력을!” 하지만 니키의 목적은 여성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만은 아니었다. 성별을 떠나서 모든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어떤 힘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 힘이란 니키가 생각하는 자유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권력과의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나는 즐거움과 활동성, 초연함을 향해 자유롭게 열려있었다. 나나의 여성성은 감춰진 구석이 없었다. 여성적인 부분은 강조되어 드러나고 몸의 굴곡들은 과장되었다. 피부색은 국제적이어서 흰색, 노란색, 검은색, 붉은색 등 다양했고 때로는 성년식을 치르는 인디언 원주민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알록달록하기도 했다. 이런 예술적 감성뿐만 아니라 사람의 관계와 사람,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사랑하는 당신, 우리 다시는 손을 잡지 않겠지요! 서로 다시는 연서를 쓰지 않겠지요!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을 다시는 가지 못하겠지요! 우리가 꿈꾸었던 그 아이들을 낳지 못하겠지요!” “지난 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나는 꽃이었고 당신은 뱀이었습니다. 나는 당신 것이었고 당신은 내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정적인 말들인가? 니키 드 생팔은 삶의 후반기 이탈리아의 타로공원을 몇 년에 걸쳐 제작하면서 그곳에 칩거해 작품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던지는 니키 드 생팔. 그의 예술적인 삶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 또한 우리들에게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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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20대 초반에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여자, 30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안의 분노에 대한 표출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캔버스나 석고상에 슈팅 페인팅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제껏 우리가 봐왔던 여성 예술가들과 같은 맥락의 길을 걷고 있는 또 다른 예술가의 삶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동시대라 할 수 있는 기간에 예술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보 레알리슴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의 차이라 할까? 초반에 나오는 사진을 통해 본 그녀의 예술세계는 시각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삶을 산 여인이라는 것을 말해줬다. 푸른 얼굴의 여대사제와 은빛 얼굴의 마법사 등이 세워져 있는 타로공원, 검은 물감으로 얼룩진 셔츠 위에 던져진 다트 위의 화살이 인상적인 「내 애인의 초상」, 권력에 집착하는 남성들의 세계를 비판했다는 피를 흘리는 작품 「킹콩」 등등. 물감이 대상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보면 극적인 기분이 듭니다. 작품은 희생물이에요. 그 작품은 바로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표지 이미지로 형상화된 그녀의 작품 「나나」라 할 수 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검은 피부에 알록달록 화려한 빛의 속옷을 걸치고 있는 나나,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과 동시에 춤을 추는 듯한 기쁨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이 책에서 말하려는 그녀의 삶을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기쁨을 통한 해결책을 제안합니다. 여성들만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발명에 관해서는 남성들에게 찬탄을 보낼 만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여자들의 몫입니다. 나나에게 권력을! 여성들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해결책, 그것은 결국 sexism은 물론 racism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을 자유로움 속에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상처 입은 영혼, 그리고 전쟁을 겪은 인간의 본질적인 상처, 그 속에서 번뇌하는 한 여성, 그리고 그것을 여성성으로 포용하려는 한 여성의 몸짓을 그녀는 작품으로, 그리고 그녀의 전 생애에 걸쳐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 광적 예술가의 삶을, 그리고 삶의 모순을 타개하고자 하는 한 페미니스트의 삶을, 세상 모든 이들을 따스한 모성애로 품어주고자 한 휴머니스트의 삶을 바라보며 왠지 가슴 한구석이 숙연해지는 듯했다. 우리 인간에 대해 생각할수록 한 가지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된다. 우리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선함과 창조력, 어리석음, 악마와 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부에 간직하면서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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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 그녀는 누구일까? 처음 책을 받아들고, 생소한 프랑스인 이름에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슴 조각가. 1961년 전시장에서 관객에게 총을 주어 캔버스 위에 매단 물감 주머니를 쏘게 하여무작위적인 추상화를 연출하는 '슈팅 페인팅' 작업을 하였다.
슈팅페인팅. 사실 미술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에게 있어서 참 생소한 단어였다. 물론, 영어를 직역해 알아먹기는 했지만... 새로운 장르로의 접근은 조금 어렵다고 해야 할까? 겁을 지레 집어먹고는, 왠지 내 타입이 아닐지도 몰라 라는 등의 생각을 하며 그냥 성의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던 나에게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 "나나"는 왠지 모를 정감을 주었다.
그녀의 '나나'는 꼭 역사를 배울 때면, 초반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연상케했다. 그 비너스상이 우리에게 있어 (교과서적인 느낌이지만)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각상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나나'는 그런 왠지 모를 땅콩껍질 속에 틀어박혀 있는 듯했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과는 달리 자유롭고 뭔가 알록달록한 날개라도 달고 있는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 니키는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은 최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녀는 소위 말하는 못말리는, 이해할 수 없는 반항아였고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우리가정은 갇혀진 곳이었다. 자유와 사생활이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분리되었고 각각 매우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날개 달린 사자와 같은 정신이 '나나'에 반영된게 아닌가 싶다.
예술가들은 가슴 한구석에 어딘가 아픔을 달고 다니는 것 같다. 이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소견이지만, 관심을 가졌던 여러 예술가들은 어딘가 그래보였다. 웃고 있으면서도 한켠으로는 슬픈 눈동자를 하고 있는, 이미 다 큰 어른이면서도 상처받고 어쩔줄 모르는 어린아이같은 그런 그들의 마음이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평범한 나는- (물론 나도 그런 불안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때도 있다.
니키의 인생. 아픔과 수많은 도전, 남편과 아이.... 그녀의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태풍과 같은 절규랄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100%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은 뭔가 가슴에 와 닿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삶 자체가 나에게 감명은 줄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은. 뭐랄까. 늘 아파서 발부둥치는, 날이 잔뜩 선 그런 고슴도치와 같은...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물러서고, 조금 더 마음을 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그녀의 인생 부분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고, 그것이 그녀의 삶이고, 그것이 그녀의 예술이라면- 나는 그녀의 예술 부분만 조금 이해하는 것에서 머무르리라 생각하게 된 듯 하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예술을 사랑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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