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롱박은 어릴 때 집의 정원에서 키웠던 기억이 난다. 조롱박은 서양 악기 중에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그보다 어여쁜 새색시처럼 잘록하게 허리가 들어간 맵씨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조롱박이 자라서 단단하게 여물면 똑똑 따서 반으로 가른 다음 속을 파내고 잘 말려서 바가지로 썼던 기억도 아슴아슴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 조롱박이라는 녀석은 주로 바가지나 술병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물이나 술로 목을 축여주는 일상생활의 소품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무한대로 뻗어나는 상상력의 씨앗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옛이야기의 힘과 같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모양도 예사롭지 않은 조롱박 속에서 아주 먼 옛날부터 이세상 수만 가지 동물들의 이야기가 영글고 있다는 재미있는 상상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아이들 과학'이라고 해서 잠깐 고개를 갸웃했었다. 이야기책인 줄 알았는데, 과학책인가? 아주 단순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원래 TV에서도 동물이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보던 터라,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논픽션이 아닌가 설핏 짐작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건 바닥을 드러낸 내 상상력의 실체였을 뿐! 이 책은 어른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재미있는 '상상력의 과학'이 넘쳐나고 있었다. 제비의 꼬리는 왜 끝이 갈라졌을까? 반달곰의 가슴에는 왜 반달 모양이 있지? 나방은 왜 불만 보면 뛰어들려고 하는 걸까? 하는 동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이 책은 옛이야기처럼, 어른들이 보기에는 '신화'의 한 구절처럼 아주 진지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하고 있어서 나는 그것이 더 웃음이 났다.) 혹시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극성 엄마들이 읽어보고, '제비의 꼬리 끝이 갈라진 게 하늘 사람들의 불을 훔치려던 제비가 하늘 사람들에게 들켜서 부집게에 꽁지가 집히는 바람에 그런 모양이 되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아이들의 과학적 지식을 그렇게 왜곡시켜서야 되겠어요?'이렇게 항의를 해올지도. 그러나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학교 과학시간에 배울 것을 굳이 이야기 책에서도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때 이미 짐작하고 있는 답이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어른들이 듣기에 놀랄 만큼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하다. 이 책은 적어도 아이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누이의 이야기와 또 다른 동물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룬 '조롱조롱 조롱박 2'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
|
한울이 할머니의 이야기속에서 평소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재미있는 풀이를 듣게 된다. 실제로는 왜 그러했는지,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을 갖게 되지만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에 빠져 들게 된다.
구수한 할머니의 말씀속 이야기들이 얼핏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지만, 조롱박속에서 생겨난 일로 인해 지금의 동물들이 엉뚱한 모습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그러한 관점으로 살피고 관찰하게 되면 보다 새로운 생각과 발전이 있을 수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까지도 확인하면서.......
옛날 이야기로 전해지는 많은 것들이 그저 심심찮게 시간을 보내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 나름의 해학과 교훈이 있듯이 서로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어떤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최고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동물들의 입담시합. 각각 동물들의 특징과 성품을 빗대어 표현하는 맛이 제대로이다. 그저 막연한 과장과 허풍으로 가득한 것만이 아니기에 혹시라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
| 할머니에게 조르면 수많은 이야기가 술술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저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번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 조롱박이다. 산 보다도 더 큰 조롱박 속에 갖가지 동물들이 암수 한쌍씩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 수 있으랴. 홍수를 피하기 위해 동물들이 조롱박 속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에서부터, 누가 가장 대단한 일을 했는지 이야기 시합을 벌이는 대목만 보아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솔솔 피운다.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이야기인양 생각되는 에피소드들은 작가의 창작인지 구전인지 아니면 적당히 섞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사람이 천년을 살 수도 있었는데 까마귀 때문에 백년 밖에 못살게 되었다니 순간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가 욕심을 부리는 나를 발견하고 순간 무안해지기도 한다. 게가 왜 얼굴 없이 눈만 지니고 있고 옆으로 기어다니는지는 조롱박의 최후와 관계가 있단다. 해와 달이 5개씩이나 떴을 때 일어난 소동도 재미있지만, 일등 공신인 멧돼지의 식탐은 그래서 봐줘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장이 어찌나 술술 넘어가는지 할머니의 입담이 구수하게 느껴지는데, 역시 작가의 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