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겨우 1학년을 마쳤으니까. 그래서 방학이고 해서 말로만 들어본 플라톤의 국가론을 구입했다. 엄청나게 두꺼운 ''국가''보다는 쉬워보였기 때문이다. 철학이 아니라 윤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스승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책은 제자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옮겨 적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의 전부가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에 읽기도 어렵지 않다.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소크라테스의 화법과 화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깊고 넓은 사상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냐만은 위에서 언급했듯 대화체이기 때문에 철학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소위 학문의 왕이라 불린다. 모든 학문, 아니 그 전에 인간의 삶은 철학과 직결된다. 철학을 나누는 큰 단위는 소크라테스다. 보통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고 이후 철학으로 크게 분류하곤 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담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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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현자 소크라테스와 작가 플라톤이 만났을 때
며칠 전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면서 플라톤이란 철학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통쾌한 논리에 끌리기도 했지만 그의 글 솜씨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책장 한 켠에 밀쳐둔 플라톤의 <국가론>를 읽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들과의 대화 형태로 시종일관 진행되지만, 그 속에는 플라톤의 생각도 깊이 있게 녹아있지 않을까.
한 때 비극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의 유려한 글 솜씨가 없었다면 오늘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살면서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대화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눈 게 다였다. 마치 예수처럼.
소크라테스에 대한 모든 기록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라는 탁월한 작가의 작품이다. 플라톤이 있었기에 소크라테스 역시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지.
애초에 비극작가를 꿈꾸던 플라톤이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우연히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은 시작된다. 전날 밤 새끼 백조가 무릎위에 있다가 날개를 퍼덕이며 기쁘게 날아가는 모습을 꿈 꾼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보자마자, "이 친구가 바로 꿈속의 백조로군." 했다고 한다. 백조는 학문과 예술의 신인 아폴론의 상징동물이다. 운명적인 그날이후 플라톤은 이전에 썼던 작품들을 모조리 불태운 뒤에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삼고 따르게 된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는 순간의 짜릿한 체험은 어떤 것일까.
그의 스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무한대였나 보다. 플라톤은 자신이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행운이라고 했다.
나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과, 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과, 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신께 감사한다. (부록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70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할 때, 플라톤의 나이는 28세였다. 플라톤이 8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소크라테스와 함께한 세월은 7~8년 정도였던 셈이다.
25년이나 끌던 펠로폰네소스전쟁(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에서의 패배로 피폐해진 아테네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대한 배신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가 정치에 회의를 느끼며 쓴 글이 바로 <국가론>이라는데...... 이 책은 모두 열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 방대하고 깊이가 있어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비극작가의 꿈을 꾸며 시나 글을 썼던 플라톤. 마치 드라마를 쓰듯 인물, 사건 배경을 나열하며 특정 주제들을 다루는 솜씨는 정말 놀랍다.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도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고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유지하면서도 암시와 복선이 깔려있음에 여러 번 놀란다. 이 책에서는 정치, 철학, 종교, 교육, 문학, 예술,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정의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시작해 이상 국가와 올바른 인간에 대한 폭넓은 논의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관통하는 주제는 훌륭한 삶,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이다.
1권 정의의 이익 2권 국가의 탄생 3권 수호자들을 위한 교육 4권 정의로운 삶 5권 공산사회와 남녀평등 6권 철학자와 통치자 7권 선의 이데아와 이상국가 8권 잘못된 국가체제 9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왕국 10권 시인 추방론과 영혼불멸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논의를 가지고 말로써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면 플라톤은 그의 부와 지식을 가지고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교육과 저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가 버렸다. 일례로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고 도망쳤다고 한다.
유력한 정치가 집안의 귀족 청년이었던 그가 결국엔 현실 정치를 떠나 학문과 교육에 관심을 두며 아카데미아를 세웠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할까. 그의 이상국가에 대한 강력한 실천의지가 아니었을까. 스승의 철학을 전하기 위한 강렬한 열망이 아니었을까. 그는 스승이 죽은 후 철학과 저작 및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며 스승과의 지난 시간들을 음미했으리라. 그의 저서에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나온다. 그것은 스승이 죽은 후에도 그는 늘 스승과 대화했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소크라테스가 오늘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도 다 플라톤 덕분이다. 땡큐~~플라톤~~
플라톤이 42세에 세운 아카데미아는 이후 1000년이나 지속되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A. D 529에 문을 닫게 된다. 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평생에 걸쳐 <국가론>을 쓰면서 이론적으로 완성한 이상국가론을 시라쿠사에 실현해 보고자 노력했지만 그의 처남인 디온의 개혁실패로 불가능을 절감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차선의 국가 확립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아카데미아를 통한 교육과 그의 저서 <법률>이다.
그의 저서목록들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이상 국가, 훌륭한 국가를 얼마나 염원했는지, 소크라테스를 몰라준 세상이 얼마나 야속한지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철학 내용들이지만 대화체인데다 그의 비범한 글 솜씨에 끌려 생각보다 읽기가 수월한 편이다. 1권 정의의 이익에서는 마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듣는 듯 하기도 했다.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삶의 본질, 올바르게 산다는 것의 의미, 훌륭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올바른 국가가 되기 위해 통치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들을 다루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이 왜 고전인지, 고전이 시공을 초월해서 감동을 주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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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에 다니고 윤리교육을 전공했으면서도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국가론"에 제대로 손을 대고 있다. 제대로라고는 하지만 원작은 겁이 나서 청소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 굉장히 잘 읽힌다. 서문에 소화하기 쉽게 만든 빵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대화체와 현대어로 서술했고 윤리와 사상을 공부한 고등학생이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을만큼 쉽게 편역되어 있는 좋은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제시하는 플라톤의 세계관은 치밀한 계산에서 나왔고 철저히 구조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이상국가와 정의로운 인간의 모습, 이를 위한 교육과 제도들, 미학은 그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플라톤의 철학을 조각 조각 공부했는데 사실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데아, 형상, 모방과 같이 감각으로 알 수 없고 추상적으로 알 수 있는 그 세계를 먼저 이해해야 플라톤의 주장들이 납득이 된다. 또한 지금은 전혀 별개의 학문인 것처럼 여겨지는 수학, 기하학, 천문학을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이상국가를 이루는 인간의 계급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고 민주주의를 귀족체제보다 못한 것으로 본 점과 여성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이상국가에서 훌륭한 수호자를 길러내는 도구로 이용하려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에 있어서는 플라톤을 엘리트주의자로 보게 한다. 하지만 "통치자(철학자)- 수호자(군인)- 농부, 장인, 상인 등..."의 순서로 정해지고 각 계급에 지혜, 용기, 절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명확하고 구조적이다. 특히 잘못된 국가체제를 말하는 부분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이미 고대에 그러한 위험을 보았던 플라톤의 지혜에 감탄했다.
교수님들마다 왜 "국가론, 국가론" 하셨는지 알겠다. 지금은 천대받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 학문인지 설득당하고 세뇌당할 정도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더니 철학이 모든 학문의 근원이고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 "국가론"은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책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아 두꺼운 진짜 "국가"를 구입해서 읽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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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인해 정국이 뜨거운 요즘이다. 검찰의 조사 결과, 의혹 수준에 머무르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여부가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현 정권은 국민의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더해 현 사태와는 무관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시하며 맞불 대응을 시작한 집권 여당의 행보는 오히려 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고인의 발언이 문제시되는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위정자들의 권모술수가 있어왔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대중의 정보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전자 민주화 시대에 발생한 사건이니만큼 국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제 독재와 기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 국가라는 패러다임이 안착하는 듯 보였으나, 근래의 세태를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을 바라기에는 다소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처음 국가라는 개념을 세운 우리 조상들이 이런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길 기대하며 나라를 세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상적인 국가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하는 고민은 비단 오늘을 사는 우리들만을 괴롭히는 주제는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주창하던 마르크스나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제작했던 토마스 무어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당시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그를 벗어난 이상 국가를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앞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 옛날, 플라톤이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담아 ‘국가론’이라는 위대한 저서를 남겼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엄밀히 말하면 궁극적으로는 정의로운 국가를 넘어 정의로운 개인을 정의(define)하기 위한 철학적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플라톤의 작중 화자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작품 내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다. ‘어떤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인지를 파악해보고 나면 정의로운 개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겠나? 이렇게 해서 큰 글자에서 작은 글자로 나아가보세.’ <본문 66p 중에서> 종합적인 그림에서 세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 사고의 흐름은 현대 과학을 이끌어 온 환원주의와는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는 작은 틀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나 종합된 큰 틀은 설명할 수 없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환원주의에 물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현대 과학은 물질의 세계를 원자와 같은 미립자로, 생명체를 유전자와 같은 분자로 환원시켜 많은 이론적 진전을 일궈 냈으나, 이들 입자들이 거시적인(눈으로 볼 수 있는) 단위에서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서로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복잡계’의 설명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제는 좀 더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이 때, ‘국가론’은 단순한 이론서를 넘어선 철학서로서 우리에게 낡은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기를 요구한다. '국가론'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2400여 년 전이라는 까마득한 고대에도 이미 선군정치의 개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를 ‘국가론’이 한국 현대사회에 제공하는 시사점들 중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소.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지시하는 것이 통치자요.’ <본문 39p 중에서>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이런 발상이 나왔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물론 노예는 언급된 ‘국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겠지만). 물론 제한적이나마 민주 정치를 시행함으로써 현대적 정치 형태의 기틀을 제공한 것이 그리스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고대에 대한 지나친 선입견일 수도 있다. 그것도 그 공동체의 구성원 중 가장 박식하였다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인 플라톤의 생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먼 훗날, 같은 공간에 기반을 둔 유럽의 국가들에서 국민들을 등한시한 절대 왕정 시대가 등장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플라톤의 시절로부터 정치적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흐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아해진다. 절대 왕정 시대를 풍미했던 유럽의 국왕들은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은 적이 없었던 것일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당연한 논리가 21세기인 지금, 전자 민주화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 시기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인간의 이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끝없이 진보한다던 헤겔의 논리는 이미 거짓 명제라고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논의를 통해 사회에 본질적으로 병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작중 화자 중 한명인 글라우콘은 인간의 본성과 당시 사회의 세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정의를 지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안전하게 부정을 행할 수 있는 한 인간 은 누구나 악행을 저지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단지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시치미 를 떼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현명한 삶이란 선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도 록 행세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 62-64pp 중에서>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인간의 습성과 이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전하게 부정을 행할 수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악행을 저지른다. 인간은 본디 유혹에 약하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동물이다. 반대로 인간은 남들의 이목을 중시하기 때문에 남들에게만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고, 이에 따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이중적인 속성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인간의 이런 속성들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만이 보다 좋은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원리에 대해 보다 합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것이다.
글라우콘의 대화를 이어받은 소크라테스 역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는 극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이 선한 것이라면 말일세. 신은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라 일부분의 원인이네... 우리 사회에 선한 일 은 적고 악한 일은 많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지.’ <본문 81p 중에서>
또한 당시 사회의 세태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더 불명예스러운 일도 있네. 성정이 고약해서 부정에 능한 자들 말이네... 자신의 생활태도를 반성하기 는커녕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까만 궁리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악취미를 갖고 있지.’ <본문 97p 중에서>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까만 궁리하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고대의 이론서에서 발견했을 때 오히려 안도감을 얻었다면 너무 슬픈 일인 것일까. 약 2400여 년에 걸쳐서, 혹은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처음 사회를 이루고 규칙을 만들었던 선사시대로부터 인간에 대해 변하지 않은 진실이 이런 것이라면 말이다. 허나 인간에게 이런 본성들만 있었다면 인류는 오래 전에 세력을 잃고 자멸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에게는 다행히도 다른 종과 구별되는 독보적인 속성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바로 ‘이성’이라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소크라테스는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국가를 정의로운 국가로 정의(define)하면서 이를 통해 정의로운 개인의 모습을 도출해 내는데, 이때 정의로운 개인을 이끄는 중요한 속성으로 ‘이성’을 지목한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세 부분이 맡은 바 자기 일을 올바로 수행할 때, 그 사람 역시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걸세. 아울러 지혜로우며 전체 정신을 관할하는 이성적 부분이 통치자의 역할을 맡아야 하고, 열정이나 기백과 같은 부분은 이성에 협력하고 지배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 아야겠네.’ <본문 142p 중에서> 비록 역사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오작동하거나 과거에 비해 퇴보한 경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언제나 이성이었다. 자신의 본성과 감성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 이것마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를 완벽하지 않은 형태로나마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들었을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여 이상적인 국가가 그려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플라톤이 국가론을 통해 제시한 국가상을 현대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이는 그의 이론에 다소 극단적인 면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사리 사욕을 없애기 위해 재산을 공유하자는 공산주의적 시도까지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나 남성들이 자신의 아내까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그는 전쟁이나 기타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젊은이들에게는 여자들과 동침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태어난 아이들이 열성인지 우성인지의 여부를 가려 열성인 아이들은 시설에 별도로 관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우생학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통치 방안에 대한 논의 중에도 그는 지배 수단 중의 하나로 ‘근사한 거짓말’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는데(107p), 통치자의 신격화라는 설정은 이미 일부 독재 국가에서 이미 많은 부작용을 낳았고, 현대의 민주주의 체제와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국가론이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도자의 선발 과정이나 국가적 의무나 권한의 부여 시 발생할 수 있는 성차별 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 등 현대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도자의 선발 ‘국가를 위한 일엔 열성을 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엔 초연한 사람 말일세... 아울러 그러한 소신을 끝 까지 지킬 수 있는지... 그런가 하면 갖가지 시련과 고통을 주어 시험해보기도 해야 하네.’ <본문 105-106pp 중에서> 플라톤은 지도자의 조건 중의 하나로서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였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세상의 저급한 쾌락이 아니라 고귀한 지적 쾌락을 추구하는 철학자여야 한다는 것이 국가론의 요지인데, 이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정권 초반에도 검증되지 않은 고위직 인사로 인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허울 뿐인 장관 청문회는 능력에 관계 없이 연에 의해 내정된 인물들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 우리의 고위 공직자 인사에는 플라톤이 언급한 바와 같이 갖가지 시련과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한 검증과 심사가 필요하다.
2) 국가적 의무나 권한의 부여 시 발생 가능한 성차별 문제 ‘여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못할 수는 없네. 자연의 천성은 남녀간에 동일하니까... 약하다고 해서 모든 의무나 권한으로부터 여자를 배제해도 좋겠는가?’ <본문 149p 중에서> ‘교육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네. 그리고 여자들에게 부과할 의무도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네. 단 지 국가를 방위함에 있어서나 전쟁을 함에 있어 그 노동의 강도는 비교적 가 벼워야 하겠지.’ <본문 150p 중에서> 군대 가산점 문제로 인해 남녀 성차별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에 올라섰던 시기가 있었다. 플라톤은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는 남녀에게 교육의 기회와 같은 기본적 권한이 동등하게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국가적 의무 또한 동등하게 부여해야 함을 주장했다. 물론 새로운 의무를 추가하기 보다는 기존의 의무를 없애가는 편이 좋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현대의 한국사회와 같이 국방의 의무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남녀가 함께 분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체 복무 중인 공중 보건의의 경우에도 그 숫자의 부족으로 인해 의료 취약 지역의 의료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황인데, 의료 분야의 경우야말로 남녀가 분담해 나갈 수 있는 국방 의무의 가벼운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3) 교육의 문제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정책적인 지원만 아끼지 않는다면 사태는 달라지리라고 보네. 선생들을 대우하고 그들에게 명예를 준다면 제자들도 모여들 것이네.’ <본문 213p 중에서>
교육제도에 대한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존재해 왔던 것 같다. 그 고민의 내용도 어찌나 똑같은지 어느 것이 플라톤의 고민이고 어느 것이 21세기 교육부의 고민인지 구별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비인기 학문의 육성을 위한 국가 정책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오늘날 이공계 위기에 봉착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도 21세기 초반에 시작된 이공계 위기로 인해 이공계 장학금과 같은 정책(비록 실패했지만)을 내놓은 선례가 있으며, 국가의 존폐가 달린 이공계의 위기는 가만히 좌시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으로써 지속적인 정책의 도입이 시급하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역시 언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아래의 본문을 참조하자. ‘교육을 강제해 노예적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지.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네. 어릴 때의 학습은 오락처럼 이루어져야 하며, 그래야만 타고난 소질을 파악해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으니까 말이네.’ <본문 217p 중에서> 교육은 항상 즐거워야 한다는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학교 수업에서도 점점 많은 시각 기구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교육이 즐거워야 한다는 말 자체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습은 오락처럼’ 이라는 플라톤의 언급처럼 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동기를 가지고 배움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무엇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적 인프라의 완성 또한 필수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고전 명작을 읽고자 하는 의지는 강했으나 차마 원작을 마주할 용기와 시간은 부족하여 다소 간략한 느낌이 드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국가론이라면 고전 명작과 친숙해지기 위한 입문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주저 없이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중 화자인 소크라테스가 상대 논의자에게 적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고자 할 때 그에 관련된 적절한 예시를 들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예시,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예시는 우리로 하여금 생소한 학문 분야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예시를 적절히 들 수 있는 이는 자기 분야에 국한된 ‘지식’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보면 소크라테스는(이미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플라톤의 국가론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었다. 지도자는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한 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이 상식적인 말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분명히 정상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시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의 결함은 아닐까?
국가론을 살펴보면 플라톤은 당시 그리스의 민주주의 체제를 그다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그는 민주주의 체제를 실패한 체제로 지칭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방종과 무질서가 민주 체제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본문 236p 중에서>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해 온 세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 민주 국가, 자유 시장 체제에서 태어났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고 성공적인 형태의 세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체제적 불합리함이 자신의 실생활에 큰 불편함을 주지 않기 때문인데, 사실은 우리가 피해를 입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많은 정치적 공작들이 국민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단지 언론 통제와 기득권층의 단합으로 인해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 그 명백한 비밀조차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이 세상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적으로 위정자들이 부패한 국가는 오래 가지 못했다. 향락과 사치에 빠져든 고대의 로마가 그러했고, 호색에 빠진 백제의 의자왕 역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끈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되었으며, 중국 한나라의 십상시들로 인한 각지의 반란은 번영하던 제국을 붕괴시켜 혼란스러운 군웅할거의 시기를 야기하였다. 정치적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요즈음,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꺼져가는 경각심의 불씨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수 천 년 전 한 철학자가 시작한 고민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지금, 이제는 우리를 위한 국가론을 다시 써내려가야 할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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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저작인 <국가론, Politeia>는 기원전 380년 경에 자신의 입이 아닌, 허구화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자신의 철학을 토해내고 있다. 그의 가치가 당대에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나 보다. 표현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여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시대가 많았다. 반민주적이고 (집단)독재 정치의 칼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조선의 연암 박지원도 당대에 유행하던 북벌론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북학을 주장했고 양반의 무능력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허생'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서 얘기한다. 마무리에서는 허생도 사라진 것으로 처리했다. 플라톤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이 직접 못하고 이미 독배를 마신 스승의 입을 통해서 세상에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여러 제자들은 스승이 독배를 마시던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플라톤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이책은 마치 하나의 연극 대본을 보는 것 같다.
이야기는 소크라테스가 인근 지역의 축제를 구경하고 나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에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 글라우콘, 아데이만토스와의 대화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正義의 定意에 대해서 논하고 哲人과 수호자들이 다스리는 이상 사회를 그리며 正義로운 사람이 不義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애기한다. 그는 국가와 정치의 본질, 남녀 평등, 교육의 방법,철학자의 역할, 이데아, 시가의 위상, 영혼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들의 주제는 매우 무거워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기본 취지가 청소년을 위한 것이어서 그런지 어려운 주제들을 매우 쉽게 번역하고 있다. 플라톤이 자신이 아닌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서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의 내용이 소크라테스의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출판사가 그런 과정을 소개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서양의 고금을 통하여 철학적 인식의 밑바닥은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철학과 그의 진리 탐구 방법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훈육 방법은 대화를 통한 진리의 터득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면서 상대방의 생각이 옳고 옳으지 않았는지에 이르게 한다. 공자의 그것과 닮았다. 또한 그들은 책을 직접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이미 학습에 필요한 능력이나 기관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장님의 눈에 빛을 넣어주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영혼으로 하여금 밝은 부분을 볼 수 있도록 관조하면서 견딜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그것이 최고의 존재인 선을 찾아 터득하는 捷徑이라고 한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논리를 대화로써 통치자는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논리적 대화의 진수를 본다. 그와의 대화에는 반드시 보편적 이성을 전제로 한다. 단순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얼핏 보면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교육 방법론에서 연유한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찬동하개 하려면 제일 먼저 말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이런 논리 전개 방법은 그의 스승에게서 배운 방법이다. 이런 교육 방법론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어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집대성한다. 그 논리학을 우리는 지금도 배운다. 논리학을 배운 사람은 논리학의 정교함에 감탄을 할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의 스승처럼 불의에 맞서서 당당하지 못하고, 스승의 뒤에 숨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각 자가 자신의 맙은 바 역할을 열심히, 잘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 공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공자는 君君臣臣民民이라고 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백성은 백성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계층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가 다른 것은 플라톤은 평등적 질서의 측면이 강하고 공자는 계급적 질서의 측면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당시 아테네는 직접 민주주의 국가였고 중원의 대륙은 춘추시대로 고대 정복국가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生前에 그리 큰 각광은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그들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그들의 제자들의 공덕이 크다. 그래서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 而敎育之)을 '君子三樂' 중의 하나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생각은 공자와는 많이 다른 점도 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이고 공자는 현실주의자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연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도 플라톤은 그의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간 소피스트가 무서웠다. 당시에 소피스트가 추구했던 정치 행태다 민주주였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악용되는 '중우 정치'였다. 이에 플라톤은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혐오를 느끼고 철인 독재 정치를 주장했다. 당시에는 교통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고 민중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서 달변가인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민주주의는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렴된 다수의 의견이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기에는 무모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2500여 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할 제반의 여건이 이루어졌다. 독재 정치로의 길은 국가가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역사적 교훈도 얻었다.
세월은 2500여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사상은 지금도 읽히고 또 읽히고 전습되고 있으며, 사회에서 하나의 모범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철학자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학자, 심리학과 교육학 등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에 관한 것들이 대화의 중심의 화제이다. 어찌보면, 이들의 화제는 영원한 미제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도 있다. 플라톤의 가치 중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서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사상으로 오늘날 현실의 가치에 맞지 않는 것도 있다. 실제로 그의 사상을 악용한 무리들도 있었지만,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는 그의 마음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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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집이나 구성 그리고 번역이 매끄러운 편이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청소년층을 겨냥한 출판사인듯 하다. 번역은 꽤 쉽게 풀이해 나가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왠만한 철학책은 한국말인데도 어려운 한자를 남용해가며 쓰기때문에 내가 한국인인데도 이해를 못할때가 많았었다. 오히려 대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찾아서 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책은 가능하면 이해하기 쉽고 한자를 많이 쓰지 않은 점이 철학이 어렵다고 느끼는 자라면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주는 유토피아도 구성이나 번역이 괜찮은 듯 하다. 사실 유토피아는 훑어보기만 했지 아직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국가론보다 보너스로 따라오는 유토피아 책이 삽화도 적절히 들어가 있고 더 좋아보인다..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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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소크라테스의 힘에 놀랐습니다. 구성은 청소년 읽기 좋게 해 놓고 편집도 잘 해 놓아서 만약 국가론 편집을 크게 하지 않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이 책을 읽으면 소크라테스의 화술의 무서움을 깨닫지 않을까... 아, 소크라테스가 논리적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헛점을 파고들어 자신이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아마 어떤 오류를 내포하고 있든 소크라테스 앞에서 설득당하지 않기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용돌이 같은 화술이라고 할까, 국가론은 살아가면서 읽어 보면 좋을 교양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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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경 살았던 철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의 스승은 소크라테스이고 소크라테스의 사형 소식을 듣고 세계 곳곳을 방랑하며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적 이념을 바탕으로 이상국가를 실현하려고 했으나 많은 정치인에게 반감을 사면서 실패했다.
책 구성의 특이점은 대화체로 기록되어있다는 것이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아만테이토스, 글라우콘이라는 플라톤의 형이 나온다. 또한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의 그가 이상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귀족들도 나온다. 과거의 기록된 책이라고 그들은 우리와 다른점이 없었다. 그들은 대화에 경청하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내용을 기억하는데 있어서 많은 양을 기억하고 있고, 대화의 논점과 논리적 흐름은 지금의 현인들의 대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책은 개인으로 시작하는 인간의 본성과 그에 따르는 현상을 논한다. 또한 개인이 뭉쳐서 국가가 만들어지는 순서와 당위성을 말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수호자의 성품이나 행동에 대해서 논한다. 또한 수호자가 가져야 될 성품 중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 명예, 부를 갈망하는 마음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탐색한다. 그리고 이상국가가 갖춰야할 자질과 이상국가가 되지 못한 국가의 형태를 말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이데아'를 사고해본다. 그의 저서는 파피루스 종이에 빼곡히 적어놓은 낙서와 비슷할 지라도 그가 담은 '국가론'이라는 내용은 지금까지도 통찰력을 제시해주기에 충분하고 현실성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이 주제에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읽어서도 공감할 내용을 다룬다. 그것은 '실제로 악한 사람이 겉으로 정의로운 척하고 모든 명예와 부,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나온다. 그러나 제자의 말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설은 재치를 발휘한다. 그가 말하는 논거의 핵심은 의사가 의사로서의 도리를 할 때 의사라고 부르고 선장이 배를 잘 몰아야 선장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사람은 사람의 구실을 하여야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란 것은 정의를 행하는 사람으로 겉으로 거짓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적에게 대한 정의는 악으로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 대한 정의도 정의로 배푸는 것이 정의라고 설파한다.또한 정의로운 사람은 다른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탄생, 좋은 수호자가 되기 위해 국가의 탄생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설명은 길지않지만 이해도가 높게 다가온다. 국가 또한 정의를 위해서 뭉친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있지만 힘든 삶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분업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술을 통해서 농부,목수,상인,대장장이,의사, 그리고 수호자로 분화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작점에서는 동일하고 평등한 지위가 되지만 각 업종의 특징에 의해서 명령을 받거나 내리는 관계에 들어선다. 그래서 국가는 수호자의 능력에 따라 운영되게 된다. 그래서 수호자는 좋은 교육과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당위성이 성립된다. 그래서 좋은 수호자가 되려면 우선 가져야 될 것을 논한다. 그 중 우선이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명예, 부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알았을 떄 기쁨을 알지 못한다. 반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명예,부가 부질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리와 지혜만을 탐구하고 이것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자연히 발전하게 되고 설사 땅이 좁아 정복전쟁을 나설 때에도 타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통일된 국가는 더욱 발전해간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이데아' 우리는 휴대폰을 보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전자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것은 휴대폰을 모습을 하고 있는 잠시동안(10년정도) 휴대폰의 기능과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휴대폰은 이데아라고 하는 개념에 있다고 한다. 휴대폰의 이데아는 영원하고 일정한 휴대폰의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휴대폰의 이데아는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마치 노자의 도덕경에서 보는 '도'의 비슷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질과 현상을 본뜬 사물을 이데아를 대체해서 이름을 붙인다. 아이러니 한 점음 진짜 휴대폰 이데아가 나타나면 지금 눈앞에 있는 휴대폰이라는 것은 휴대폰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휴대폰 모습으로 하고 있는 전자기기라고 이름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이상국가에 시인이 없어야 된다는 논리와 부합된다. 시인은 이상국가와 여러 감정들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상국가에서는 시인은 이상국가나 감정을 나타낼 수 없다. 왜냐하면 이상적인 국가는 이상적인 개인과 합치되고 더이상 나아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현실에 실현되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내고 상대를 설득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을 느꼈다. 단지 그 자리에서만 설득된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지만 말이다
-산파술, 국가, 정의, 선의 이데아를 아우르는 고대의 고전은 많은 시사점이 있다. 사람은 오랜 세월(기원전)부터 공통된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귀성관계와도 연관성있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판단하고 정의하고 규정하고 이론화하는 것은 아직도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개인적인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를 가진 사람들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경로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혜를 알고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하는 힘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속에서 행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공존관계에 있다. 그의 화법을 들으면서 마치 법정에서 피고를 유도심문을 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가 펼치는 말은 사람의 본성과 행동을 꽤뚫는 내용이 많았다. 2000년이 넘게 흘러도 이 글이 계속해서 내려온 다는 것은 그 만큼 고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도 다른 사람이 지혜를 찾으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기쁨을 주는 글과 행동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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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함께 set로 판매되어 읽게 되었다. 학창시절 시험공부를 위해 플라톤을 공부할 때, 대표저서는 '국가론',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 배운 것이 기억난다. 우연히 이 책을 읽었는데 대화체로 쉽게 풀어서 번역되어 있어 철학책의 딱딱함을 벗어날 수 있었다. 리뷰 쓰려고 yes24에 들어와 책소개를 보니 '청소년들이 철학적 사유와 논리를 훈련하는 데 가장 훌륭한 교본이며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도서'라고 소개되어 있다. 어쩐지 쉽게 쓰였다 했더니 이 무슨 망신(?)...
각설하고, 책 내용은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옮겨 적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상국가란 어떠한 국가여야 하는지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여러 등장인물과의 대화를 희곡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正義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어떤 사람인가? 왜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냐 할까? 여자도 국가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가? 왜 이상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훌륭한 국가는 지혜롭고 용감하고 절제있고 정의로운 국가를 말한다. 옳고 아름다운 행위를 담당하는 지식(지혜), 두려움에 대한 분별과 올바른 견해를 유지하는 힘(용기), 각계각층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절제), 국민들 각자가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정의)이 이상국가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추상적인 이상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현대적 의미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사회, 수호자는 행복과 불행, 재산과 자식은 물론 아내까지도 공유하는 공산주의적 국가로 묘사된다. 실재(이데아)와 진리를 사랑하는 지혜로운 사람인 철학자가 지배하는 국가이다. 반면, 질서만 강조되고 창의나 변화에 대서서는 무지하다. 시인마저 추방되는 곳이 이상국가의 모습이다.
소수의 철학자(귀족)이 지배하는 이상국가론이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이 책을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형이상학, 정치학, 윤리학, 심리학, 교육학 등에 영향을 미친 서양철학의 원류라고 한다. 철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상국가에 대해 꿈꾸고 고민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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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전을 많이 읽고 있다. 고전이란 단순히 옛날에 쓰인 책이 아니다. 고전과 옛날에 쓰인 책은 엄연히 다르다. 고전은 그 책에 담겨져 있는 사상이 사상의 체계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그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현재에도 통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요즘 시기에 왠지 고전에 담긴 내용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이번에 나의 가슴에 큰 경종을 울린 고전은 플라톤의 ‘국가론’이다. 훌륭한 국가를 건설 하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든든한 수호자를 교육 시키는 방법들이 들어 있는 책이다. 저자는 플라톤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우리 인간은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각자의 능력은 아주 제한돼 있네. 그래서 한 사람만의 힘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란 어렵지. 결국 사람들이 힘을 합치게 됐고, 이러한 집단이 모여 국가가 된 거야’라며 국가의 성립을 설명한다. 국가를 이끌어 가는 수호자들의 자질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양치기 개를 생각해 보세. 개는 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지키는 보조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개가 어떤 연유로든지, 방종 탓이든 굶주림 탓이든 양을 지키기보다 해치는 데 주력한다면 그 개는 이리를 닮았다고 할 수 있네. 이는 양치기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무섭고 한심한 일일세.’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 계층은 개일까? 이리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양치기 개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면 양치기 개가 이리로 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크라테스는 ‘그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갖도록 해야 하네. 집이든 창고든 사유재산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되지. 식량이나 보수도 필요한 만큼만 지급하되 연간 소비량 이상을 주어서는 안 되네.’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렇게 주장했을까? 만일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재물을 모으는 데 맛을 들인다면 그들은 수호자가 아닌 도둑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서로 싸우게 되고 해를 끼치게 되어 공포와 증오를 만들어서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 했다. 지금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과 대비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수호자, 즉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에의 사명은 무엇일까? ‘우리의 국가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네.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지. 그러한 국가에서만이 정의는 힘을 발휘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정의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행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어가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지도자의 사명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있다. 만약에 소크라테스가 지금 대한민국에 상황을 본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그가 말한 정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은 무릇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왜 사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정의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을까? 현재 사회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정치인들의 필독서로 지정해서 시험을 봐야 그들이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알 것인가? 그들은 항상 자신의 뜻을 국민의 뜻이라고 큰 착각을 하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만 한정해서 말하는가 보다. 과연 그런날이 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여의도를 벗어나는 날을 고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