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읽을 때 많이 울었다. 바쁜 일상으로 냉정해진 후 두번 읽을 때 더 많이 울었다. 삶에 대한 무심함과 전쟁에서의 비굴함과 죽음에 대한 간절함을 칼처럼 정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시선과 태도가 칼처럼 나를 찔러서 많이 울었다. 믿음과 오해 용기와 두려움 나아감과 물러남 그리고 승리와 패배... 전쟁함을 배우기에 좋은 책이다. 용감해 질때도 가끔 있지만 더 많이는 타협하고 비겁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이순신만큼이나 나도 치열하게 나와 세상에 대해 전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번 읽을 때 나는 아마 책이 아닌 칼을 읽게 될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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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서 보아 오던 이순신 장군은 단순한 무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을 지극히 순결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승화시켰다. 전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세계 2차 대전사' 같은 다큐멘터리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가 더 실감이 나고, 적절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참담함과,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데는, 이순신 장군의 1인칭 독백만큼 더 적절한 게 없었을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동 시대에 장군이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함이 전해졌다. 그리고, 치열하고, 실존적이었던 장군의 고뇌가 느껴졌다. 결코 가벼이 삶을 살지 말라는 무언의 계시가 느껴진다.
"신의 몸이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
이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으려면, 몇번이고 삶을 담금질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일일 것이다.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여러 문인들의 찬사가 결코 빈말이 아님은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신의 몸이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
| 성웅 이순신, 어릴때부터 위인전하면 빠지지 않고, 세종문화회관 앞에 위풍 당당하게 서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고뇌가 없을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적 고뇌로서 힘들어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번민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하고 원통했던 것은, 나약한 임금의 모습과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위해 한몸 바치는 한 영웅을 무참히 밟아버리는 조정의 무리들.. 더욱이 명군 수장 진린과 유정. 이 두사람의 행적을 보고 있으면 역시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수 없다. 노량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오히려 잘된일이 아닐까? 혹시나 그 당시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개선했다 하더라도 역모에 휩쓸려 이 생을 떠날 가능성이 농후하지나 않을런지..... |
| 나는 책을 읽을 때 좀 빠져드는 편이다. "칼의 노래"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충무공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소설속의 화자로 등장했을 때 좀 당혹스러웠고 내내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충격? 아, 모르겠다. 이마음을... 아마도 집에 책이 없었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책 "칼의 노래"를 그저 온갖 미사여구로 뒤덮인 어줍잖은 위인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아니었다. 끊임없이 고여오는 눈물속에 활자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종종 책장을 덮어야만 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다시 책을 보기 시작하면 활자들이 어른어른... 너무도 절실하게 쓸쓸했다. "칼"의 주인은 정녕 그렇게 시리도록 외로웠던가. 아니면 작가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한 글일까? 참담하고 쓸쓸하고 눈물겨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 눈물겨운 소설에 대하여. |
| 늦은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마치 그 때 이 충무공의 가슴속을 갉아 먹던 서걱거림처럼.... 그저 그런 책이려니 하고 외면했던 책이었다. 체질적으로 수상작을 꺼리는 탓에, 그리고 그저 그런 한 성웅의 일대기려니 하며 한켠에 젖혀두었던 책이었다. 우연히 김훈님의 소개를 받았다. 그리고 단지 김훈님의 소설이라는 이유로 책을 펼치고, 내 눈은 책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급하게 읽어내려갔다. 언듯 쉽게도 느껴지고, 하지만, 행간에 걸려있는 많은 생각들이 가끔은 시선을 멈추고 먼산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지휘관으로 느껴야 했던 역사의 무게와, 백생들의 생명을 짊어지고 가야만 했던 버거운 어깨가 느껴졌다. 얼마나 무겁고 버겁게 느껴졌으면, 밤마다 서걱거리는 불면에 시달리셔야 했을까. 차마 부하들 앞에서 울 수 없어 홀로 소금창고까지 찾아 아들 면의 죽음을 호곡할 땐 나도 어쩔 수 없이 장군과 함께 울어야 했다. 날은 마침 흐렸고,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무거운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듯, 저녁무렵엔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왠지 마지막장을 덮어버리기엔 너무도 안타까워 2권으로 접어들 무렵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져 있었다. 한동안 남녘의 파도소리와 더불어 정체모를 서걱거림이 내 마음 속에서도 들릴 듯 싶다. |
| 이 책은 문장이 무지 짧아 읽는 호흡 역시 가쁘게 만든다. 얼마 읽지도 않은 것 같은데 보면 꽤 많이 읽었다. 나는 이 문장이 주는 효과가 작가가 의도한 여러 장치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대사마저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내뱉고 만다. 무슨 말을 더 할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무슨 말을 더 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다들 무뚝뚝하기만 하다. 이런 문체가 특히 이순신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무게감을 더하게 한다. 그리고 그 시대상이 그러해서 그런가 문장이 무지 건조하고 긴박하게 돌아간다. 이순신이 그 시대상을 관조적으로 관망하면서 썼기에 문장이 그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터뜨리고 싶은 감정들을 억제하면서 썼기에 절제된 문장들이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짧은 문장들과 절제된 감정들 틈새로 베어나오는 그의 고뇌와 인간됨, 그리고 그 시대상 등은 절제된 만큼이나 치열하게 베어나오고 있었다. 명랑해전을 아무리 담담하게 효과음 하나 없이 기록했을지라도 그 상황은 문장들 사이의 여백이 주는 상상의 공간으로 채워져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는 그의 대사 속에서 나는 그렇게 결정하기까지의 그의 고뇌와 그의 지혜를 읽을 수 있었다. 껍데기만 남은 조정과 보잘 것 없는 군수품과 전력을 갖고 왜선 수백척을 맞아 싸워야 하는 그의 처지에서 나온 결정은 명랑해에서 12척으로 일자진이었다. 임진왜란은 단순한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역사는 되풀이 되었고 실제로 그 반복성은 일제 강점기라는 근대사에 다시 현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구조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점점 더 거대해져만 가는 중국과 이미 자리를 잡은 일본. 역시 그 사이에 한국은 껴있다. 우리는 또다시 이순신이 필요한가. 아니다. 이순신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임진왜란 가운데 이순신 마음 속에 있는 칼은 항상 징징징 울어대었다. 때로는 적의로 때로는 자괴감으로 울어댔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 속의 칼은 그러한 마음으로 울어서는 안된다. 신명과 진취적인 마음으로 칼이 울어야 할 때이다. 그의 칼의 노래는 항상 나의 마음을 물들이고 있다. |
| '칼의 노래'는 요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이다. 올해의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작가 '김 훈'의 매력적인 글쓰기가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의 마법과 같은 글쓰기가 바로 그를 '동인문학상'에 뽑히게 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글에 감탄하는 우리 시대의 문인과 기자들이 그의 책에 상찬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작가 김훈은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했고, 최근까지는 시사저널의 편집장으로 있었다. 즉 그는 글쓰는 걸로 밥벌어먹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보통의 기자출신에게 보이는 건조한 문체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문체를 선보임으로써 '그래봐야 기자지'하는 말을 쏙 들어가게 만든다.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지난 책인 '자전거 여행'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풍경과 감상을 적은 일종의 수필집니다. 평소 책을 좋아해서 각 신문의 북섹션을 수시로 체크하는 등 도서정보를 자주 접하고 있는데 이 책이 나왔을 때 도서정보를 수집하는 모든 루트에서 이 책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보통 한 두 개 신문에서 겹치는 책이 나올 수는 있지만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이례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책이길래 이 난리인가 싶어 책을 사보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 나 역시 '김훈'의 팬이 되고 말았다. 우리 시대에 글쓰는 사람들이 왜 김훈에 열광하는지 깨달았다. 그의 글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우리 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쓰는 사람을 아직 나는 보지못했다. 내 독서경력이 일천해서일 수도 있지만 글꽤나 쓰고 책꽤나 읽었다는 양반들까지 그러는 걸 보면 글쓰기에 있어 이 사람은 일가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비유와 새로운 묘사가 가득한 그의 글은 정말 우리말의 잔치이다. 그래서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도 바로 찜해뒀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 결국 이 책을 읽고 말았다. 소설 역시 만족스러웠다. '칼의 노래'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영웅 이순신을 인간적 고뇌에 휩싸인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용기백배한 불패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고뇌자로서의 이순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작가 김훈이 아니면 누가 그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 매혹적이다. 그의 글은 여전히 내게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한때 소설 쓰겠다고 깝죽대다가 대가의 소설을 읽고 포기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에코의 '장미의 이름',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 등이 그거다. 그리고 이제 '칼의 노래' 또한 나에게 이런 포기를 강요하고 있다. |
|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때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다. 칼의 노래는 후우...정말이지 나를 끌었다. 계속 끌었다... 나는 책의 저자이신 김훈작가님의 다른 책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분의 문체가 원래 이러하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책을 이끌어 나가는 문체가 너무 맘에 들었다. 절제하는 듯이 딱딱 끊어지고.....이순신의 말, 딱 그것이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소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순신장군의 독백모음집 하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조금 마음이 어려왔다. 책 구입을 고려하는 분들은 어서어서 보시길 바란다. |
| 김 훈의 칼의 노래는 새로운 세계를 일깨우는 작업이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 왔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다. 이순신은 임금을 부인(否認)하며 살수 있었는가. 그는 조국을 사랑했는가. 군인으로 칼의 힘에만 의지했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음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가. 어짜피 임금을 부정한다면 전쟁과 고통의 일상을 팽개치고 곽재우와 같이 산 속에서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이 더욱 나은 방편이 아니던가. 인간은 무엇인가 먹고 자고 배설하고....... 동물적으로 생산하고 죽어가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 인간은 어짜피 안일을 위하여 부를 찾고 권력을 찾고 부귀 영화를 위하여 금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권력의 지배. 왕과 제도와 귀족과 종과......... 과거는 그렇다 치자. 현대는 어떠한가. 그게 그 모양이 아닌가. 좋아진 것은 무엇인가. 지식의 역사를 다시 추스르자. 한국의 역사를 다시 읽어야겠다. 어젯밤 읽은 향약이 뜻밖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쓰여져 있지 않던가. 김훈은 반체제 인사가 아닌가. 박정희 시대, 아니 노태우 정권이라도 만찬가지 이다. 권력을 오로지 하는 사람들에겐 한낱 버러지 같은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남산이나 국가 정보원에 끌려가 치도곤을 맞아도 싼 책이다. 그리고 현 체제에서도 공인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야인으로 돌아가 썼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서문-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긍정하지 않는다. 이 현세의 각종 규율과 의리와 정의와 제도를 나는 선뜻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금의 나는 여러분과 무관함으로 서로 복 되도다.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더러운 세상에서 떠남을 기뻐하고 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과 결별하였음으로 자축하는 것인가. |
| '칼의 노래'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답답하고 음습하고 슬프고 격해짐을 숨길 수 없었다. '나’라는 화자로 이야기되는 이순신의 독백체. 간결하고 감정이 최대한 절제된 채 깔끔하기 짝이 없도록 단정(端正)하면서 비정한 문체와 문장. 그 대신 대화가 거의 생략된(기피된) 독백의 소리로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통한의 울부짖음이다. 묘사가 거의 없음에도 더욱 뚜렷한 이미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피로 낭자한 산하와 가련한 백성의 처절한 모습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 페이지마다 피의 냄새가 낭자하다. 계속 베이고 벤다. 아무 감정 없이 베어 처형하고 살육 당하고 죽인다. 왕이 충성스런 장수와 의병장을 처형한다. 왜적에 의하여 백성이 쓰러지고, 전투에서는 수많은 병사와 군관이 희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지키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에 눈이 먼 장수를 보면 그 자리에서 처단해버리라고 칼이 울어대지만 참는다. 이 책은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말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덮어두기에는 그의 고뇌와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여기 ’칼의 노래’에서 작가 김훈은 전시를 살다간 역사 속의 한 개인으로서 이순신의 치열한 삶의 사색과 기록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