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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1학년을 3개월도 채 못다니고 자퇴했다. 힘들게 들어간 예고였는데 의외로 자퇴는 단 한줄의 사유로 분명하게 끝나버렸다. 연륜있는 친구의 차를 타고 오는 길 내내 나뭇잎들 사이로 번져오는 햇빛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늘 함께 있어도 '혼자'였고 앞을 보며 나아가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나에게 미래란 길가에 죽은지 오래되어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고양이 시체같은 것이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쉽게 죽음으로써 일말의 가치도 없는거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방구석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굳어가고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아빠에게서 욕설을 들었다. 화가나서 통장을 들고 오피스텔을 빌려 나갔는데 멋대로 지내다 어떻게 수소문해 알았는지 집으로 이책이 배달되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타이르듯 부드러운 문체로 유유하게 풀어나가는 거장의 어린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삶은 오래된 나무처럼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아빠에게 전화해서 '나무냄새가 나는 책, 고맙다.'고 말했다.
누구나 살아간다는 건 '과거와의 대화'이다. 우리는 미래를 보며 앞으로 나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과거를 흘낏흘낏 훔쳐보며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딛는것이다. 과연 자신이 살아있는 지 스스로 궁금히여기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한다.
언젠가 과거시절의 어린 '나'와 마주쳤을때 우리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면 좋을까. 만약 그 아이(어린 '나')가 "어째서.. 대통령도 되고 싶었고 의사도 되고싶었고 아무튼 훌륭하게 되고싶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 된거냐?" 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인상깊은구절] * 힘을 내어 죽어주세요. * 기억해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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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인이 된 오에 겐자부로가 젊은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하는 말이다. 무척 차분하고 쉽고 써있지만 전하는 내용은 결코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다. 그저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들어봐주세요 라는 식으로 시작하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후세에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척 강하고 무게있게 책을 덮은 후에까지 가슴에 박혀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나의 생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것인가 실로 묘목이 건장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 다시말해 어떻게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나갈것인지, 나무처럼 곧게 자라나기위해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할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된 나무처럼 넓고 깊게 한권에 책에 새겨담아져있다.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정말 좋은 추천 책이다.
책 중에서 인상적 문구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어른과 아이는 계속된다,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한사람안의 '인간'이 일본인의 그리고 인류 전체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을 미래로 말하면,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자신과 지금 여러분의 안에 있는 '인간'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미래의 일본인과 인류에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 지금의 자기 자신 속의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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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시골에 가서 감나무를 심었더니 자꾸자꾸 걱정된다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도 어디서나 나무 걱정
또 시골에 가고 싶다 꽃이 어떻게 피는지 무척 궁금하다 내년에는 감꽃 떨어진 걸 먹고 싶다
딸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쓴 시입니다. 여섯 살 가을에 쓴 시인데 자기가 심은 감나무에 관한 애정과 아이다운 감성이 엿보입니다. 녀석이 걱정하는 감나무는 그 해 식목일 무렵에 심어 아직 단단히 뿌리가 내리지 않은 나무입니다. 식목일 부근인 외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갔다가 심은 나무입니다. 물론 그 나무는 아이가 나무 시장에서 직접 골랐거니와 나무를 심을 때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나무는 자연스레 딸아이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감나무가 ‘자꾸자꾸 걱정’되는지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녀석에게 감나무는 앞으로도 영원한 동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딸아이의 감나무는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골짜기 마을 사람한테는 저마다 ‘나의 나무’로 정한 나무가 숲의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혼은 그 ‘나의 나무’의 밑동 - 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에서 골짜기로 내려와서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죽을 때에는 몸이 없어질 뿐이고 혼은 자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24쪽)
오에 겐자부로의 할머니가 들려준 골짜기 마을 사람들 이야기지만 오에 겐자부로에게도 ‘나의 나무’는 있습니다. 집 뒤쪽에서부터 강바닥이 드러난 강변으로 내려가기 전까지의 편편한 땅 부근에 그 나무는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둥치에서 줄기가 몇 개인가 갈라져 뻗어나간 곳에 판자를 깔고 밧줄로 고정시켜 그 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을 만든 단풍나무입니다. 그곳에서 소년 오에 겐자부로는 도저히 읽기 어려운 책을 읽습니다. 단풍나무 위의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소년 오에 겐자부로에게 어머니는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거나 야채를 옮겨 심으면서도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웃집에서 하숙을 했던 여선생님이, 나무 ‘위에서 졸다가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말할 때 어머니는 외려 아들을 ‘그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저렇게 하니까’라며 두둔합니다. 그러면서도 단풍나무 주위의 작은 돌까지 주워내어 부드럽게 흙을 골라 줍니다. 오에 겐자부로에게 ‘나의 나무’는 책의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에게 ‘나의 나무’는 책 세상으로 가는 관문이지만 실상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나의 나무’가 드러내고 있는 연속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에 겐자부로는 ‘나의 나무’를 통해 인간의 삶에는 아이 때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자기 안의 ‘인간’은 서로 이어져 있다,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한 사람 안의 ‘인간’이 일본인의 그리고 인류 전체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이겠지요. 나의 어머니는 이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로 말하면,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자신과 지금 여러분의 안에 있는 ‘인간’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미래의 일본인과 인류에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 지금의 자기 자신 속의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내가 여러분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117-118쪽)
이러한 관점을 지닌 오에 겐자부로이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까닭도 ‘인간’을 배우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국어뿐만이 아니라 과학이나 산수나 체조까지도 이전 인간의 말을 이어받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로 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인은 중국에 쳐들어가서 여성을 폭행하거나 어린이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 남경 대학살(南京大虐殺)은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할아버지 세대가, 아니면 그보다 더 윗세대의 일본인이 자행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는, 여러분에게 자존심이 있는 한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같이 말할 때 그 말은 자신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난 발언이라고 믿어도 좋습니다. |
| 상상을 해봅니다. 10여년 후, 우리 딸아이가 엄마의 서재 책꽂이 앞에 서 있습니다. 우연히 '나의 나무 아래서'를 뽑아들게 되고, 읽기 시작합니다. 학원에 가야 하는 것도 잊어버린채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다 읽습니다. 책을 덮은 후, 휴~ 한숨을 쉬고는 가슴에 꼬옥 끌어안습니다. 문득 생각난 듯 제 방에서 연필과 종이를 들고 와서는, 엄마에게 물어볼 질문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님은 읽고 싶지만 지금은 어려울 것 같은 책은 목록에 적어놓거나, 여유가 있으면 구입해서 '나중에 읽을 책 궤짝'에 넣어놓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책을 '아이에게 나중에 읽힐 책 궤짝'에 넣어두고 싶습니다. 위의 상상에서처럼, 제가 직접 권하지 않고도 아이가 이 책을 '발견'해주면 더욱 좋겠지만요. 읽는 내내 예전에 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자분자분'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사투리인줄 알았더니 침착하고 얌전한 모양새던가?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이더군요. 하지만 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대개 '차근차근, 조리있게, 또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라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점잖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자분자분'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듣고 있는 듯 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온 작가의 '경륜'이 매 순간 느껴지고,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주옥같은 문장들이 군데군데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옥에 티라고나 할까요...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 추측되는 아귀가 맞지 않는 문장도 보입니다. 원작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럼에도 번역하면서는 자신의 냄새가 묻어나지 않게 철저히 사념을 버려야한다는 점. 모순되는 두 원리 가운데 역자는 후자에 신경쓰느라 전자에는 충실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되는군요. 비슷한 의미에서 역주를 아꼈다고 역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지만, 저같이 일본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추측도 해볼 수 없는 일본어에도 일언반구 설명이 없는 것은 너무 과했다고 생각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의 청소년들을 위해 쓰신 글이라고 했지만, 성인인 저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린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없다'라고 하셨는데요, 성인들도 강한 의지만 뒷받침된다면 어떤 일들은 꼭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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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하 수상하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반전(反戰) 지식인으로도 유명한 오에 겐자부로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회상하며 쓴 책 <나의 나무 아래서>를 읽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마음이 더 안 좋다. 1935년생인 저자는 가난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열 살이 되던 해에 패전을 맞았다. 그 때부터 이미 남들보다 배는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어제까지 분명 '천황 만세, 미군 타도'를 외치던 학교 선생들이 패전과 동시에 '천황은 인간이고 미국은 천사'라며 뻔뻔하게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어른들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떴다. 대신 저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민간 신앙에 눈을 돌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나무'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나의 나무'는 저자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무인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나무를 한 그루씩 가지고 있고, 죽을 때가 되면 그 나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죽어도 생명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이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는 신비로운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생명의 질서와 원리를 옛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한, 지혜의 정수다. 저자는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이야기 말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닳지 않는 '진짜 이야기'의 힘을 이 때부터 믿기 시작한 것 같다. 모순적인 교사들의 교육 방식에 질린 저자는 일찍이 자기만의 공부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나는 건방지게도, 이것이야말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나 혼자서 공부해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찾아낸 공부방법은 교과서에든 보통 책에서든 상관없이, 눈에 띄는 재미있는 말,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노트에 적어서 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책에 나오는 외국어나 인명을 있는 대로 적어두었다가 그것을 다른 책에서 조사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한층 자유스럽게 한층 적극적으로 한 일 -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는 일 - 인데, 지금 말한 방법으로 알게된 책에서 다음 책으로, 스스로 읽을 책을 찾아서 연결시켜가는 방법이었습니다." (pp.100-1) '건방지게도, 이것이야말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지금 가장 관심있고 궁금한 내용을 노트에 적은 뒤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반복하는 것만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공부법이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일본 최고의 명문인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으니 이 '건방진' 독학법이 입시에 있어서도 통하는 것이리라. 독서법도 주목할 만 하다. "어린 나는 그때 읽어도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읽으려고 결심한 저자의 이름과 책 이름을 노트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그때에 언젠가는 읽어보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도 흥미로운 점을, 그 나이의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적어두었습니다. ... 그리고 몇 년이 자니서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고 생각했던 대로 좋은 책이라고 스스로 확인하게 될 때에는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pp.109-10) 나도 관심있는 저자의 이름과 책 이름을 따로 적어두고 정기적으로 구입을 하지만 읽고 싶은 이유와 흥미로운 점까지는 적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적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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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들에게 또는 어른들에게 오에 겐자부로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아주 예전에 어디 도서관 모퉁이에서 꺼내 읽었던 책인데 기회가 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학교는 왜 가는가 ㅡ 나는 늘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궁금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왜 학교에 가는지 아들을 통해 깨닫는다 오에의 아들은 타고 날 때부터 자폐기질이 있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고 소음을 참기 힘들어한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 가서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어하더니 같은 부류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책상 아래 숨어있는 장면은 우리가 왜 학교에 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소통 친구다 이런 류의 작은 일상 속의 깨달음을 거장 오에는 담담히 전해준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맘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책이다 |
| 오에 겐자부로는 "우울한 얼굴의 아이"를 쓰면서 노년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나의 나무 아래에서는 그런 오에 겐자부로가 찾는 동자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나는 이 책을 30살이 넘어서 읽었지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읽으면 인생이나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창가의 토토" 처럼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인가 그리고 아이들은 인생과 책을 접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한 가지 길을 제시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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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따뜻하고 아늑한 책이었다. 드러내놓고 자신이 행복하다고도 또 삶이라는 것이 가치로운 것이라고는 한번도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이 책의 작가가 참 행복한 사람이며,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사랑하면서 더욱 가치롭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결코 아님에도 저절로 우러나는 은은한 삶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도 고통이나 어려움에 시달리기보다는 가족 모두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으로 가꾸어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평온스럽게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과연 평범하게 거치는 과정이었을까마는 자식의 장애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아이는 오직 남과 다를 뿐이므로, 그걸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아이가 남과 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혹은 남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것 때문에 공연히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부모로서 그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작가 부부의 가치관에 그저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란 자신이 자라온 과정을 또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가. 어렸을 때 자신이 느꼈던 어려움, 고통, 아쉬움들을 자신의 아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려해 줄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세대간의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의 그런 경험을 너무도 잘 되살려 놓고 있다. 어렸을 때의 그 어려웠던 기억들을 되살려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지의 방향을 잘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나아가 인류의 아이들을 위하여. 작가처럼 나도 나의 나무 아래서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또 하나의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정말 후회없이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다만 나는 여러분에게 어릴 때 여러분이 시작하는, 자기를 위한 공부는 중단하지 않고 평생 계속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였을 때, '좋았어, 이렇게 살아가자'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시작하는 삶의 방식은 평생 계속된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습니다. |
| 나의 나무 아래서를 읽으며 저는 오에에게 친근함 이상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낡아서 반지르르해졌지만, 더욱 애착이 가는 소지품처럼 포근한 친근감. 오에가 어린 시절을 보내었던 숲속 마을,나무의 정령들, 영시와 문학책을 외우며 탐독하던 시절,장애아로 태어났지만 음악을 하게 된 히카리의 이야기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저에게 정겹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그리고, 여태 제가 읽었던 그의 책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오에를 처음 만난 건 '나라는 소설가만들기'에서였습니다.제가 그 때 나이 많은 그 분에게서 느낀 감정은 설레임이었습니다.소년의 향기를 지니고 있는 노작가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그의 책을 많이 읽게 하였습니다. 개인적 체험,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조용한 생활등등을 읽으며 저는 그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이츠의 시를 책상머리 써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의 신간 소개란에서 '나의 나무 아래서'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같게 된 건 그림때문이었습니다. 숲 속 나무의 소년과 나이 많은 할아버지 그림. '그리운 시절...'에서 이미 오에는 숲속 마을의 유년이 그의 문학의 토양이 되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그 책처럼 소상하게 오에의 유년을 그린 작품은 아마 없으리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드네요.) 저는 '그리운 시절...'의 숲속 마을을 생각하며 신문에 소개된 작은 삽화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그림을 그린 이는 그의 부인이라고 소개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삽화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청초한 느낌의 그림. 언제나 오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소년과 나무. 저는 무작정 좋아서 이 책을 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인 책이었지만, 다시 한 번 따뜻한 목소리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에에게 느끼는 공감대와 나아가 그의 유년기, 소년기,학창시절의 학업등을 생생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듣고 싶었습니다. 특히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신 첫 단원은 저에게 정규교육에 대한 불신을 어느정도 씻어주었습니다. 개인적 체험에서 주인공이 느낀 그 기괴하고 악마적이기까지 하던 느낌을 히카리를 통해 승화시킨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서의 오에, 책을 읽으며 종이에 글을 옮겨적는 어린 오에, 유럽 민화집에서나 만난 듯한 당나귀를 어루만질려다 '인생의 진실'을 체험한 듯한 느낌을 받는 소년 오에, 영시를 암기하며,감동깊은 문장을 암기하며 학문을 받아들이는 학생 오에,문장을 계속 고쳐쓰며 정신을 단련하듯 작품을 쓰는 오에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
| [어떤 책이라도 10페이지를 읽고나서 끝까지 읽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글이 이 책에 있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단숨에 읽었던 이유는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곁에 어린아이가 다가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가 이야기를 마칠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부터 시작하여, 산속에서 바다 표범을 키워 갔던 이야기며 자신의 나무에 올라가 책을 읽으며 어떤 사람으로 자랐던가에 대하여 숨김없이 이야기 하는 어린아이를 누군들 외면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소년은 어느덧 자라 결혼을 하여 지적 장애아로 태어난 아들을 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세상에 적응 하며 자라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삶, 책에 그림을 그려준 아내와 함께 늙어 가는 이야기를 도중에 그만 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요?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어린아이에게 다가가는 그의 태도 입니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임에도 전혀 유명한 티를 내지 않고 기꺼이 어른이들을 상대 하려 합니다. 모르는 어른이 찾아와 '강연'을 해 준다해도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할리가 없다는것을 알고 그는 어찌 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은 강연을 들을 아이들에게 미리 작문을 써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문에 붉은 잉크의 만년필로 문장의 부정확한 을 정정 하거나,틀리지는 않았지만 좀 더 괜찮은 문장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고치거나, 더 나아가서 문장의 순서를, 무엇이 가장 쓰고 싶었지 잘 알 수 있도록, 다시 조립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과정을 첨삭이나 퇴고로 부르기를 거부 합니다. 첨삭이란 한 단계 높은 곳에 서서 선생님이 학생을 고쳐 준다는 느낌이 들고 퇴고라 하면 왠지 취미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상대방과 똑 같은 위치에서 함께 문장을 다듬고 상대방과 자기를 인간으로 조금씩 높여간다는 느낌이 드는 영어 elaboration 이라 표기 하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들과 눈 높이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 할 수 있도록 북 돋워 주려는 그의 적극적인 의도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소중하게 책을 다루는 방법과 평생 쉼 없이 꾸준히 책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는 아이였을때 부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적인 독서를 하였으며 지금껏 그 독서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 표지를 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좋은 구절이 나오면 그 것을 공책에 적고 외우고 책을 읽을 때는 마음에 닿는 부분에 밑줄을 긋는데 읽는 횟수에 따라 색을 달리한 연필로 표시 한다고 합니다. 읽을때 마다 감동이 다르기에 전에 읽을때 자신이 감동 받은 부분을 되새길 수 있고 지금 새롭게 감동 받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무조건 사서 읽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책이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려운 책이라면 구입을 미루고 왜 읽고 싶은지 그 책에 기대하는 감동이 무엇인지 공책에 적은 후 서점에서 그 책을 눈여겨 본 후 읽을 나이가 되어 마침내 만남을 시도 한다고 합니다. 책에 관한 접근 방법과 태도는 지금도 변함이 없이 지켜 나간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따라 언제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는 책들을 상세히 추천하고 있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 지는 부분입니다. 그가 열살때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돌이킬 수 없다는 말' 을 화난듯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대 들은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 합니다. 믿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냉혹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 밖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아이가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작고 쉰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고백 합니다. - 그렇지 않아! 아이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게 될때가 생기더라도 아이가 중지하고 멈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 보는 힘'을 가져 보라고 다독여 줍니다. 이제 틀렸다고 체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든 견디는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에 자기가 성장하고 용감해 지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린시절 나무아래에서 나이를 먹은 자기를 만나는것을 상상 했다고 합니다. 운 좋게 나이 든 자신을 만나면 그에게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물어보려고 했답니다. 이제 그는 반대로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을 만나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이 책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너는 어른이 되어도 지금 네 속에 있는 것을 계속 지니게 될거야!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아서 그것을 키워 나가기만 하면 돼. 지금의 너는 어른인 너에게 계속되고 있어. 그건 네 등뒤의 과거의 사람들과 어른이 된 네 앞의 미래의 사람들을 잇는 것이기도 해. 너는 자립한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나무처럼 그리고 지금의 너처럼, 곧게 살아가가를 바란다!" 라는 말을 듣는 동안 나무아래 있던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책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으로 자라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일종의 독백이라고 할까요...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눈물이 나는 이유는 그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것입니다. 진실하고 따뜻하게 작은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도와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누구든지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나무아래서]를 이 가을에 읽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하지만 이 일은 돌이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 다른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다시 또 그의 나무 아래로 들어 가보고 싶습니다. 요주의! 이 책은 절대로 지하철에서 읽어서는 안되는 책입니다. 달리 할일이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30분간의 통학 할때는 보통때는 읽기 힘든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읽기를 작가는 권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