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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시쳇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100년의 역사를 알려면 상해로 가고 1,000년의 역사를 알려면 북경으로 가고 3,000년의 역사를 알려면 시안으로 가라". 그만큼 장안(시안)의 역사가 유구하고, 장안에는 많은 역사적 경관이 누적되어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수많은 왕조의 수도로서 오랜 기간 영화로운 역사를 누려 온 장안에 대해서 지리학적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장안일까?" 그리고 그 시기 장안의 도시 구조가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 또한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해 주는 책으로, 과거에 '장안'이라는 공간이 형성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경관이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장안을 바라보기에 앞서 '새로운 역사 서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즉 유라시아 대륙 각 지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동한 역사(p.22)이다. 과거의 서양사/동양사의 분절적인 지역사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체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유라시아의 환경적 조건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북반구의 동서로 1만 킬로미터 이상 넓게 펼쳐져 있고, 이는 동서로 비슷한 기후대가 대상으로 넓게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기후대에서는 비슷한 역사 및 문명이 생겨나고, 기후대를 따라 수많은 인구 집단이 이동 및 교류하기 쉬워진다. 기후대의 접경 지대에는 다양한 문명의 접촉 및 교류의 역사가 나타나고, 결국 환경적 조건과 역사적 사건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도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것은 '환경사'라는 분야이다. 저자는 '환경과 인간 활동의 상호작용과 환경의 중요성을 지금까지보다 더욱 깊게 생각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p.32)' 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주요 거주지역을 분류하면, 1)대하천 유역의 농경지대(북위 30도 전후), 2)유목지대(북위 40~50도 부근), 3)농업 및 유목 접경선의 남쪽에 접한 농업지대(북위 30~40도 부근)(p.33) 이다. 특히 이중에서 3번 지역에서는 농업 및 유목문화가 만나면서 위대한 고전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는 기원전 3500~기원후 3,4세기로, 지중해 북부의 그리스-로마, 이란 고원의 페르시아 문화, 중국 화북의 한(漢) 문화이다. 그리고 유목민과 고전문화권의 상호작용으로 7~8세기에는 보편문화를 지향하는 왕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트 문화권의 비잔틴 왕국, 이슬람 문화권의 압바스 왕조, 그리고 불교 문화권의 당이다. 그리고 각 왕조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은 넓은 문화지역에 영향력을 미치는 이른바 '세계도시'로 불릴 만 했다(p.61)고 한다. 특히 그 중에서 장안의 규모가 가장 컸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건설된 도시라고 한다. 장안이라는 하나의 도시를 환경사의 관점에서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그리고 장안의 입지는 장안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라는 점에 동감했다. 이러한 세계적 스케일은 물론, 중국이라는 국지적 스케일에서도 장안의 입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왕도는 그 왕조의 범위에 따라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내중국과 외중국을 포괄하는 범위의 왕조는 농경-유목의 접경지인 장안, 북경에 왕도가 입지하고, 내중국만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는 농경지대의 중심인 낙양, 개봉, 남경 등에 왕도가 입지하는 것이다(p.82~). 명나라 수도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이전하는 등의 예외도 조금 존재하긴 했지만,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안과 낙양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자연환경의 차이가 제법 존재한다. 미시적인 관점으로만은 이러한 왕도 이동 법칙을 포착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에, 중국 전체의 스케일에서 왕도의 입지 패턴을 규명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권의 접경지에 입지한 장안은, 불교라는 보편 문화를 지향하는 당의 수도였다. 또한 전근대 왕조의 특징인 '왕조의 정통성을 하늘에 둠'이라는 사상이 잘 드러나는 도시이기도 했다. 즉 장안은 '우주의 도시'인 것이다. 장안의 도시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정말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반영되었다. 천문사상, 예사상, 주례가 제시한 이상 도시, 음양오행 사상, 역경 사상(p.153~)등이다. 얼핏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보이는 공간구조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사상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장안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사상이 '공간의 재현' 과정을 거쳐 탄생한 도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주의 중심 도시로서 탄생한 장안 역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사상의 변화로 인해 장안의 도시경관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9세기 이후 장안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보편성을 띠는 모습이 사라지고, 점차 한족 위주의 전통 문화로 회귀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한편 저자는 고고학적 발굴과 사상사적 해석만으로는 장안의 당시 모습을 완전하게 복원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온 장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장안을 상상 속에서 걸어보는 내용이 있다(p.238~). 역사지리적 관점은 상상력의 발휘가 필요하다. 물론 사실적 정보를 기반으로 해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역사가의 상상력이 함께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시공간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안이라는 하나의 도시경관을 두고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이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역사학 및 사상사의 배경지식이 부족해 책의 모든 내용을 소화하기에 역부족이어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지리학에서도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었다. 역사학과 지리학의 만남이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시대의 경관을 해석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