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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의 미덕은 뭐니뭐니해도 목표하는 독자층에게 쉽게 읽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전공 서적은 해당 내용에 걸맞게 전문적이어야 하고, 대중 서적은 누가 읽더라도 쉽고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옥이 돌아왔다”는 건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란 선입견은 버리시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같은 독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옥”에 대한 이야기일까? 한옥이란 평범한 20대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가끔 서울 변두리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와 지붕들이 있는 집, 아니면 어렸을 적 기억 속의 시골 할아버지가 사시던 허름한 고택 정도가 얼핏 떠오르는 정도일 거다. 아, 민속촌도 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한옥이란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국악한마당과 같은 박제된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분명 한옥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는 바로 그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한옥은 ‘근대화에 실패한’ 건축양식이다. 좁고 한정된 땅덩어리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모여 숨가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 환경에서, 수평적 공간의 한옥은 설 자리를 잃어 왔다. 그 자리엔 하늘을 향해 겹겹이 쌓인 집, 아파트라는 수직적 공간이 들어섰다. 다시금 저자의 말을 옮기자면, “주거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기본 상황이 변했고, 한옥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한옥의 부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가 한옥을 도태된 양상으로 말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주거공간의 패러다임을 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한옥의 진화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한옥에서 그러한 혁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을 어렵게 읽을 필요가 없다. 저자인 건축가 황두진씨가 무무헌을 시작으로 한 다섯 개의 한옥 건축 작업 이야기를 그저 따라가 보면 된다. 건축가의 작업노트를 어깨너머 보는 듯한 느낌으로, 아니면 마치 뒷풀이 술자리에서 옆에 앉아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하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때로는 음악의 악보에 비유하여 건축에서의 도면의 의미를 말하고, 때로는 랑그와 파롤이라는 언어학/기호학의 개념을 빌어 기술과 공간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건축학을 넘어선 저자의 깊은 인문학적 소양에 감탄하게 된다. 만약 한옥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진화했다면 어떠하였을까? 저자는 이렇게 질문하면서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해체하여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만의 자주적인 역사 발전의 자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는 사실에 유감스러워한다. 단지 한옥뿐이랴.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근대의 수용은 타율적 이식에 의해 비판적 성찰을 결여한 채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책은 우리사회의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의 지점을 건축가의 눈으로써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단순한 건축 도서가 아니라, 한옥을 주제로 하는 우리의 삶의 공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자 생활 양태의 또다른 방향성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삼청동이나 가회동을 연인과 함께 데이트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그 한옥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나도 한옥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사물을 낮설고 새롭게 인식하게 된 셈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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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젊은 건축가이며 그것도 한옥과는 먼 서양건축물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온 그가 어느날 우연히 특별한 제의를 부탁받고 한옥 작업에 뛰어들게 된다. 목수나 한옥을 전문으로 한 건축사무실의 주체가 아닌 그가 한옥에 맞닥뜨리면서 겪게되는 제도적 또는 공사현장에서의 실질적 제문제 또는 본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하는 과정이 일반독자로서도 자뭇 흥미롭다.
한옥을 짓거나 고쳐서 살고싶다는 로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더불어 실질적인 질문과 청사진을 던져준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현대도시민들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를 구분하는 것이 것인 대기업의 상표와 6-8개의 숫자임에 반해 한옥은 각각의 이름이 있다. 무무헌, 취죽당, 쌍희재, 가회헌, 유유헌 등 삶도 그러할지 모른다. 똑같은 삶, 나아가도 뒷걸음질쳐도 그만인 무기력한 삶 나의 색과 향취가 녹아있는 삶이라야 내 이름 석자를 걸 수 있는 바로 '나'의 삶이 아닐까
결국 사방의 벽을 꽉 막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면적을 찾으려는, 공극률이 0에 육박하는 답답한 '모더니즘 상자'만이 양산되고 있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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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가을, 안동하회마을에 다녀오면서 한옥의 운치에 연신 감탄 했다.
이제껏 나는 한옥을 느낄 수 있는 아무런 여건도 없었을 뿐더러 남산의 한옥마을도 한번 못가본 그야말로 서울 촌O이었다.
건축가가.쓴.글.이기에 전문.용어가.난무하는 어려운.책.같았지만. 나.같은.사람을.의식.했는지. 한옥의.소탈하지만.세련된.사진들과 편집디자인. 그리고 '한옥은 실패했다'같은 직설적인.저자의.말투.덕에. 정말.흥미진진하게.읽어내려갈.수.있었다.
저자의 손을 거친 한옥은 '정말 한옥이 맞나'싶게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다.
한옥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 콘텐츠를 담은 건축인 만큼 진화를 거듭하여 대중적인 한옥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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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한옥에 대해서도 건축에 대해서도 잘 알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딱히 관심을 두었던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집었던 책이다. 이 책은 현대 건축가인 글쓴이가 부탁을 받고 서울 북촌의 한옥 한 채를 수리하게 되면서 한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다른 한옥도 수리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써진 글이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전통가옥을 어떻게 짓거나 보존해 왔는지도 다루고 있고, 그를 통한 한옥의 개선방안 탐구와 한옥의 현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한 글쓴이의 성찰도 엿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한옥은 절대 똑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동양은 자연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중시하고 서양은 인위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것을 배웠었다. 한옥은 재료를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각각의 모양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고, 집집마다 척도도 제각각이다. 글쓴이는 이것을 가지고 ‘양옥은 붕어빵, 한옥은 떡’이라는 말을 했다. 양옥이 정확한 척도와 수치를 사용하여 비슷비슷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면 한옥은 기본적 구성은 정해져 있지만 세세한 부분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만드는 이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옥의 도면에 대해서도 잠깐 볼 수 있었다. 현존하는 전통적인 도면들은 집을 짓기 위한 것보다는 짓고 나서의 회화적 성격이 강한 도면이 많고, 최소한의 정보만 담은 목수의 도면인 ‘양판’도 있다. 책에 수록된 다양한 도면들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보다 경험적이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조상들의 특성이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은 도면 없이도 만들어진 한옥이 종종 있다고도 한다. 내가 이 책의 제재인 건축과 한옥 두 가지에 대해 문외한인데다가, 전문적인 내용도 다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간혹 잘 이해가 되지도 않고, 모르는 단어들도 많이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평소 편협한 독서를 하던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라고도 느꼈다. 한옥은 경쟁에서 도태되었고,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좁아서 살기 어렵고, 생활이 불편하고, 비싸다는 것이다. 한옥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위의 이유를 비롯한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한옥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한옥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지식도 가지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한옥을 생각할 때 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집보다는 문화재나 연출을 위해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사는 집 또는 사극에 나오는 집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이라기보다는 문화재에 가까워질 정도로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한옥이 사라져가는 요즘,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한옥이 발전해가고 보편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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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내가 우리 문화에 대해 하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 같다.
막연히 우리 전통적인 유산이니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다녀온 여행과, 최근에 읽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라는 책을 통해 한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펼치자 마자, 차례에 있는, 한옥은 실패했다.. 라는 글귀가 눈을 이끈다. 왠지 욱하는 마음이 든다.
'뭐야, 한옥이 나쁘다고 하려는 거야?'
하지만 읽다 보니 충분히 수긍이 간다. 작자에 따르면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 사람들의 생활은 점점 서구화, 근대화 되어 가는데, 한옥은 그에 맞게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작자는 개량된 한옥, 현대에 적합한 한옥들을 보여준다.
책에는 작자의 생각 또는 주장과 작자가 건축가로서 북촌 한옥들의 보수공사에 참여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한옥에 대한 기술적 이야기보다는 한옥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 주변이야기-짓는 사람들, 현대의 한옥, 거주자-들에 중점은 두고 있는데, 나에겐 시야를 넓혀 나무를 볼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읽으면서 느낀 건, 한옥에 대한 설명보다는 자신의 관점위주로 끌어 간다는 것인데, 나름 공감하는 부분도 있는 데다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옥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보여준 부분이 마음에 든다. 나도 잠시 했던 생각인데, 지붕만 기와라고 한옥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현대 사람들의 생활을 무시한 채, 예전의 한옥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닐까.
특히나 마지막 부분이 상당히 흥미를 끈다. 나중에 한옥을 한채 지어 사는 것이 꿈인 나로서는.
마지막 장은 '한옥의 보편화를 위한 제안'. 닭장같은 아파트 보다는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 한옥촌을 만들자는 것이 제안이며, 그 마을을 이룰 구체적인 한옥의 도면도 첨부해 두었다. 한편으론 너무 획일적이게 되면 한옥의 맛이 떨어지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옥을 널리 보급하는데는 큰 몫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한 듯하다.
한옥을 짓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뭐니뭐니해도 그 가격. 같은 면적일때 양옥의 2배가량 든다는 비용은 왠만한 이들에겐 부담일 테다. 하지만 작자가 말한대로, 공장생산처럼 정량화 규격화 되어 나온 자재들로 한옥을 짓게 된다면 그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옥의 전성시대가 다시 오게 될 지도 모른다.
작자가 던진 질문 중 하나인, 왜 한옥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 봐도, 다른 이유보다는 한국의 옛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만 들고 그냥 한옥을 보면 포근한 느낌을 받는 게 좋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그냥 잃어버리기엔 아까운 것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다. 생각만으론 안된다. 실천하는 의지가 중요한 거다. 이 다음에 꼭 한옥을 짓고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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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익선동이나 북촌은 외국인부터 시작해서 많은 젊은층들에게 핫한 장소가 되었다. 한옥으로 구성된 골목길들이 현대의 도시에서 흔하지 않은 신선한 공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분명 한옥이 우리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친근해 지고 있는 것은 기쁜일이다. 하지만 다른 편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 동안 우리가 너무나 전통성을 잊고 살아 왔기 때문에 뒤늦게 한옥과 가까워지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씁씁함을 감출수 없을 때가 많다. 이 책의 저자인 황두진 건축가도 한옥이 그 동안 현대화로 발전 되어 보급되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 하며 한옥과 양옥은 건축 설계 부터 시공까지 너무나 다른 생산 과정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가능한 서로 다른 생산과정의 차이들을 좁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옥은 아직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개량되고 개선되어야지만 갱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다. 한옥이기 때문에 무조건 적인 칭찬과 긍적적인 태도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면서도 현실적인 작가의 평가는 쓰지만 다음 도약을 위한 한옥의 긍정적 비판을 한 것 같았다. 아픈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으로 근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양식건물의 발전은 엄청났지만 한옥의 발전은 거의 제자리 걸음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멈춰있는 한옥의 발전이 움직여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한옥의 제자리 걸음이 엄청난 독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옥으로 정의하는 기준이 너무나 딱딱하게 굳어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건축법을 들 수가 있다. 건축법에서 한옥의 정의는 한옥이 살아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건축양식으로 발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마치 박제된 동물같이 한옥을 옛 건축양식으로 굳어가게 만들고 있다. 한옥이 옛 건축양식으로 굳어지기 전에 건축가들의 많은 시도와 끊임없는 비판적 주장들이 이 책처럼 나오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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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옥이 우리 곁에 돌아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지은이 황두진은 대학과 미국에서 주로 서양 건축을 공부했다. 하지만 오리지널 서울이랄 수 있는 통인동에 살게 되고, 여러 채의 한옥을 개보수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한옥에 대한 애정을 키워간 건축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한옥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 그 동안 고친 한옥과 목수들의 이야기, 같은 관심을 가진 동료 건축가 이야기 및 한옥의 보급화를 위한 구상까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언니가 북촌에 살기에 또 한옥 골목길을 같이 걸어보았기에 비록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한옥에 관심을 갖는 건축가를 만나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만 한 책이기도 하다.
한 가지 떠오른 의문은 과연 한옥만이 우리의 전통 가옥인가 하는 점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옥은 양반 계층의 집이었다. 지금 관광 열기에 휩싸여 있는 북촌 한옥들도 알고 보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집장사 한옥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옥은 양반이 그야말로 '노블'하게 사는 거주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실제로 요즘 북촌에서 한옥에 산다는 것은 천문학적인 경제력이 있다는 말과 다름없기도 하지 않는가? 나는 이런 한옥 사랑이 행여 양반의 후손이고 싶은 허영의 산물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황두진씨가 한옥의 진화를 주장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적정 가격의 보급형 한옥을 얘기하지만 왜 굳이 한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서민들이 살았던 민가는 고려 대상이 안되는 걸까? 비록 땅덩어리가 작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고 자연환경도 다채롭기에 강원도 너와집, 농촌의 초가집, 북부지방의 정주간이 있는 집 등 다양한 민가가 존재해왔다. 환경과 기후에 적응하여 지었던 이런 서민의 집들도 앞으로 새롭게 지어질 집으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그러기에 실체는 잘 모르나마 요즘 지어지는 황토집에 호감이 간다.
얼마 전 양평 물소리길 30여 Km를 걸으며 크게 실망한 일이 있다. 수도권인데다 중앙선 전철도 뚫렸겠다, 전원 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서로 부조화한채로 큼직하게 지어지는 정체불명의 서양식 집들은 거칠게 말해 꼴불견이었다. 차라리 낡아가는 슬레이트 옛 집들이 아담한 사이즈로 훨씬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양근 향교! 그 유서 깊은 건물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우뚝 우뚝 집을 짓도록 허락한 양평 군청의 몰지각은 뭔지?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베이비 부버 세대의 은퇴와 함께 앞으로 전원 주택은 더 많이 지어질 것이다. 한옥 포함 옛 집들이 건축가들의 손길로 창조적으로 변형되어 부활하길 소망해본다. 부디 우리 땅엔 우리 건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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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옥목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러 한옥책들을 찾아보는데 학교에서 서양건축을 배운 건축가로서의 한옥에 대한 고민들과 연구가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으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실제적이고 현장감있는 글을 기대하는 마음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필자가 공사를 해온 현장에 대한 소개들이 위주이고 마지막 부분에 신한옥에 대한 도면들이 실려 있지만 깊이 있는 고민들이 지속되어 나온 작품이라고는 보기 힘들 것 같다. 결론적으론 책값에는 조금 못미치는 책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