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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찰나에 초현실주의적으로 개입하여 이 시간을 일상적 시간으로 늘여놓았고(시간인플레이션), 이를 기억과 반성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한 소년이었던 늙은이의 꿈과 기억을 ‘고래가 도약하는 찰나’를 매개로 서로 이어놓는 초현실주의적 개입은 결국 아주 성공한 셈이다.
이러한 찰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서 그 소년의 삶에 새겨진 질적인 도약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이 짧은 찰나에도 켜켜이 의미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시간인플레이션적 서술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작품의 ‘정적인 운동감’과 ‘정적인 운동’의 표현을 통해 관조적이고 정적인 정서를 연출함으로써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소년이었던 한 늙은이의 체험인 고래의 도약, 즉 카이로스적 찰나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개입하고 있으며, 이들이 끌고 들어온 이야기 역시 너무나 많아서, 이 찰나의 순간에도 상당한 의미들이, 심지어 무한한 의미들이 개입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찰나의 무한성이 드러나는 것인데, 우리가 자칫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 흘려보내는 찰나에도 켜켜이 이러한 무한이 개입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매 순간에 초월성이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의 경험, 초월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이렇듯 강렬하게 알려주는 애니메이션이 있을까.
그 도저한 의미들이 바로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생의 순간에 켜켜이 그리고 숭고하게 주름져 있다는 것을 이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애니메이션이 있을까?
그렇다면 기억이나 회상이라는 것은 결국 이러한 숭고함으로 되돌아들어가는 회귀(回歸) 혹은 회향(回鄕)인 셈이다.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 어긋난 삶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첫 작업이며, 굳이 되돌리지 않더라도 어긋남을 자각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원형으로 돌아가 미래를 기획하는 전진적이면서 후진적인 방식이며, 약자에게 역사의 질곡과 아이러니를 극복하도록 원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우리는 여기서 찰나와 기억의 도저한 힘과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상된 배이름 ‘곤도와나호’ 이것이 바로 모든 기억이 돌아가는 최종 귀착지를 상징하는 것이며, 새로운 출발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곤도와나 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물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곤도와나 호에 담길 기억의 내용은 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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