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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매일같이 '맛난 것'을 먹고 산다면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탕수육, 내일은 갈비, 모레는 햄버거(그때는 이게 요즘의 피자 정도 느낌이었죠^^), 글피는 백화점의 어린이 런치, 그렇게 세 끼 모두 특별하고 대단한 음식들이 내 앞에 놓인다면... (생각해보니 그 리스트에는 '컵라면' 같은 엄마의 금기식품도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밥, 미역국,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된장찌개, 김치, 갈치구이, 계란말이... 늘 그렇고 그런, 어찌보면 뻔한 음식들을 차려주셨지요. 물론 불평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맘 속으론 불만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바라는 맛난 것들은 따로 있지만, 엄마가 주니까 별말없이 먹어야 한다는...
그리고 세월이 지나 당연히 깨닫게 됩니다. 엄마가 차려주던 그 밥상이 가장 맛있고, 우리 몸에 맞으며, 무엇보다 풍부하고 알찬 영양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요. 다이어트 등 자료를 보면 항상 '한식 위주의 상차림'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어려서 그 좋아보였던 매식이나 패스트푸드를 많이 접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 우리들의 건강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도 이와 같습니다. 살다보면(저는 아직 절실히 느끼진 못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일상에 막막해질 때가 있을 겁니다. 권태라는 말이 조금 심하다면, 심심해~ 라는 느낌 정도라고 말할까요. 그게 조금씩 서로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삶에 대한 무기력으로 가게 되면서 결혼은 매일 똑같은 반찬이 차려진 집밥처럼 느껴지고, 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외식(?)같은 것을 꿈꾸게 되기도 합니다.
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기혼자들의 환상을 어느정도 대리만족시켜줍니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가 가장 대중적인 예일 겁니다. 분명 메릴 스트립은 행복한 주부였으나, 어느날 찾아온 사랑이라는 이름의 일탈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많은 주부들이 '나의 킨케이드'를 꿈꾸며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었던 영화의 키는 바로 '결국 그녀가 가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화려하고 특별한 음식을 맛보았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앉을 곳은 평범하고 친숙한 식탁 앞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혼해서 '더 나은 삶'을 찾게 되는 커플도 물론 적지 않습니다. 폭력, 도박, 알콜이나 약물 중독, 상습적인 외도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태, 불만, 성격차이 등으로 말해지는 이혼의 사유 대부분은 '결혼 생활 즉 현재의 행복을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훨씬 나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 아이리스 크라스노우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쌍둥이를 포함한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후회와 충고, 통찰과 경험담들이 이 책에는 가득 들어 있습니다. 미국-한국의 문화적 차이로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아주 없진 않지만(특히 번역의 성의없음이 가끔 눈에 뜨입니다. 심지어는 인물의 이름들도 달라지는 것을 보면- 앤소니, 앤터니/ 크라스노우, 크라스노 등- 혹시 몇명의 손을 더 타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듭니다). 주로 우리가 감동하게 되는 것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충고들입니다. 수많은 내용들을 열거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으니, 그 충고들에서 공통되는 부분들을 뽑아 보는 것으로 이 책의 요약을 대신할까 합니다.
- 행복하고 영속적인 결혼생활을 하려면, 편안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것. 그 앞에서 나 자신 그 자체로 있어도, 무언가를 꾸미거나 불편해 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삶을 함께 할 사람의 자격, 결혼에 대한 기대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한정하라. - 인생의 목표가 비교적 비슷한가. 좋은 아버지인가. 힘들 때 서로를 받쳐줄 수 있는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책임을 다할 사람인가. 그 외에는 필요없다.
- 좋은 결혼생활을 위한 세 가지 개념; 서로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 복잡한 배우자의 정신세계에 대한 지식의 기억과 유지. 결혼에 대한 그 지식들의 적극적인 응용.
- 사랑은 각 단계마다 다른 삶의 형태를 취한다. 사랑은 변화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강력하고 높은 강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랜 관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없다.
- 나는 미움의 감정이 결혼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미움도 변화시키면 훌륭한 것이 되기에 조용히 분노를 표현하는 법과 분노를 변화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는 떠날 거예요"가 아닌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평생을 같이 할텐데 당신의 그런 행동은 참기 힘들거든요."라고 말하라.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많이 변하진 않는다. 부부관계에서 달라지는 것은 당신이 예전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참을 수 있게 된다는 것 뿐이다. 우리는 항복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이런 항복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인 것이다.
항복의 미학에 대해 무척이나 설득적으로 서술된 이 책은, 어쩌면 미혼분들에게는 나약하고 체념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의 유지'라는 것은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아무 감정도 없이 이혼도장을 찍는 신혼의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만, 결혼은 진실로 '책임감 있는 성인'을 위한 열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랑과 신부가 아닌, 오랜 해로의 흔적이 주름살에 묻어있는 평온한 표정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s.
이게 결혼생활인가? 하고 가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못 먹은 떡들'에 대해 졸업앨범이나 알럽스쿨 등에서 가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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