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보고, 책으로도 보게된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 그곳에서 본 도쿄타워는 뭐랄까, 살아있는 도쿄타워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비슷한 제목에, 다시나온책인가? 싶어 , 사실은, 일본여행 이벤트에 혹해 덜컥, 사게된 ''새로운 도쿄타워''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마냥 하나의 이미지로서만 부각되었던 도쿄타워가 이렇게나 슬프고 이렇게나 생생하게 느껴질줄은 몰랐다. 유쾌한 어린시절 질풍노도 청년시절 마지막 눈물의 중년시절까지 마사야가 커가면서 내마음도 함께 커져갔다. 결코 남얘기 같지않은 이야기에 눈물이 흘렀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웃으면서 책을 덮을수 있었다. 난 눈물을 짜내는 소설은 싫어한다. 대놓고 울어주세요.. 라고 말하는 소설은 정말 질색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진심으로 울수있었다. 그리고 그냥 그저그런 소설들과는 다르게 엄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점점 지우개처럼 작아지는 엄니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음악과 유흥으로 대충 지워버리고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진부한 기술, 엄니에게 마음을 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가는것. 다른공간, 다른세대를 살고있지만 마치 내 얘기인것만 같았다. 흘린눈물을 닦아내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도쿄에는 도쿄타워가 있다면, 나에게는 남산타워 (아차차 이제는 서울N타워지) 가 있지않은가. 책을 읽던 내내, 도쿄타워가 남산타워와 겹쳐보였다. 남산타워에 올라가보고 싶어하셨던 엄마가 생각났다. TV에서 남산타워가 새단장 한것을 보고 가보고싶어하시는것을 애써 외면하고 서울에 오신다고해도 공부해야한다는 말도안되는 핑계로 거절했던 내가, 생각났다. 사실 난 왠만한 일에는 감동받지도, 영향을 받지도 않는 다소 무감각한 성격이다. 그런내게 이렇게 울림을 줄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 울리기위한 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진심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내 마음에도 이렇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것 같다. 심지어는, 책표지에도 가득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어머니가 꼭 챙겨주셨던 밥과,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토끼 어머니가 항상 사람들을 웃기실때 쓰시는 우스꽝스런 안경 어렸을적 받은 소중한 시계 어머님께 사다드리고싶었던 꼬치 그리고.. 도쿄타워. 나는 엄마가 좋아하시는것을 꼽을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가만히 앉아 엄마. 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조용필아저씨.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하시는 호떡. 엄마가 좋아하시는.. 아빠 엄마가 좋아하시는.. 나 엄마가 좋아하시는 .. 내동생 부끄럽게도 나는 이정도밖에 꼽을수 없었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좋아하시는것을 많이 알수있도록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겠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며 - 많이 떨어져있는 도쿄타워와 남산타워였지만, 내얘기같은 이 이야기에 왠지 친밀감을 느낄수밖에 없었고 이미 다써버린 핸드폰 정액요금을 충전해서, 집으로 전화를 걸수밖에 없었다. "엄마, 저녁 먹었어?" "날 따뜻해지면 남산타워 가자...." 책읽고 리뷰를 쓴다는것이, 그만 신세한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오랫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울 사랑하는 엄니에게, 소홀해질때마다 꼬옥 한번씩 다시읽어봐야겠다. 5월에 누군가가 말했다, 남산타워를 보면 ''엄니''가 떠오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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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 인기라는 뉴스를 접하고, 과연 어떻길래...하는 생각으로 나름대로는 주위의 평판이나 서평을 쭉 훓은 후에 구입하였으나, 생각보다는 기대 이하였다.
마치 근 10년 전 즈음인가..이정현인지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책의 엄마 버젼인것 같다. 그 아버지,라는 책 역시 팔린 부수에 비하면 작품성이나 그런건 형편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찬가지로...母情을 풀어서 글을 쓰면, 이 만큼의 스토리 라인은 어쩌면 은근히 뻔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스토리 일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상투적인 스토리와 전개와 읽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이..솔직히없었다.
거기에다 일본 소설임에도 '엄니'라는 은근 한국적인 사투리로 번역해 놓은것도 거슬리는 역활을 하며, 몰입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나의 경우에는..꼭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나라 재일교포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조금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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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타워의 부제..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아이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단편의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그런 조각들로 삶 속에서 아버지와 간간히 이어지는 왕래. 아이는 어머니에게 한 겨울의 아랫목에서 따스하게 덥혀진 이불처럼, 화사한 봄날의 소풍처럼, 한 여름의 시원한 바닷바람처럼, 고운 빛을 발하며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떨어지는 단풍처럼, 그렇게 한 세상이고 우주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인연은 있었지만 결국 끝까지 함께할 아름다운 인연은 아니였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가 커가면서 그렇게 한 없이 작아져간다.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지우개처럼.. 누군가가 그랬다. 신은 도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우리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신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까?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전해지는 우리 마음 속에 녹아있는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향수.. 담담하게 그려가는 어머나와 나,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 그 속에서 오늘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의 의미를 다?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소중한 것들.. 가끔은 그렇게 흔들어 깨우기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관계란 건 간단한 것이다. 이를테면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어도 혹은 거의 만난 일조차 없어도 부모와 자식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점에서 달라지는게 없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말이 되면 그 관계는 ''부모자식 사이''만큼 간단하지 않다. .. 부모자식은 계속해서 덧셈이지만 가족은 더하기뿐만이 아니라 빼기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히 0 이 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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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의 시에 <엄마>라는 시가 있다.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들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行商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 가는 山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엄마는 죽지 않는 계단이라고 오랜 연륜의 김종삼 시인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나아가기 위하여 딛고 서서 올라가야 하는 계단.
기분전환용으로, 선전문구에 혹해서 집어든 <도쿄 타워>을 읽는 내내 떠 오른 시가 노시인 김종삼의 <엄마>라는 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꽥 소리지르고,그 소리에 지레 겁먹어 내 눈치 살금살금 살피며 지들끼리 속닥거리는 아이들에게 왠지모르게 울화통이 터져 미쳐버릴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 지금 아마도 공포의 계단위에 서 있는 기분일 게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공포의 계단쯤 느끼고 있었을 지금 이 순간 , 나는 우리 엄니가 나를 어떻게 대했던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릴리 프랭키가 마련해준 나의 엄니에 대한 회고는 불완전한 기억의 조각들로 채워졌지만, 분명한 것은 엄니는 우리 삼남매를 끔찍히도 사랑해주었고 헌신적이었다는 것이다. 엄니는 우리 딸들이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번번히 피력했음에도 공부하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속이 바짝 타들어가도 지켜만 보고 계셨다. 책욕심이 많아 아르바이트 하는 족족히 책을 사 들여도 집에 돈 좀 보태라는 잔소리 한 마디 그리고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 공부는 뒨전이고 음악에 미쳐 하루종일 라디오와 레코드를 끼고 살아도 그냥 씨익 웃고 넘기셨다. 그 땐 엄마의 넓은 맘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엄니는 원래 잔소리 안 하는 사람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왠만큼 도딱지 않는 이상, 우리 엄마가 우리들에게 보여준 넉넉한 위상은 힘들다는 사실을, 내가 엄마가 되어 보고 알았다. 그 땐 왜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몰랐는지....하지만 이게 다일까 ? 혹, 워낙 엄니의 사랑이 커서 내가 지니고 있었던 공포의 기억을 밀어낸 것은 아닐까! 글쎄, 우리 아이들도 나의 헌신적인 사랑만 기억했으면 좋겠구만.. 우리 딸내미가 아무리 나에게 혼나도 자랑 꼭 자야한다고 우기는 것하고, 내가 우리 엄니에 대한 애정의 코드는 분명 같으리라.
요즘 일본 소설에 흥미가 많아서인지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가 2006년 서점대상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등장한 탓에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 내가 2005년 나의 최고의 책이라고 꼭 찍은 <남쪽으로 튀어>를 제끼다니, 도대체 얼마나 괜찮은 소설이길래, 일본 서점 직원들이 이 책을 1위로 선택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일찍히 예판하고 나서 기다리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사실 처음 몇 장이 아니라 삼분의 1정도는 진도가 나가기 않을 정도로 지루했다. 이게 뭐야 ! 여타의 성장소설하고 뭐가 다르지, 프랭키의 나 이렇게 컸습니다 라고 소개하는 철딱성이 없는 날라리성장 소설쯤으로 치부하고 있던 찰나에, 중간 이후부터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나와 이 릴리 프랭키의 인생에 어느 정도 접히는 부분이 있어서 인지, 프랭키의 소설이 읽으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이런 제길, 아이들도 보고 있는데.. 프랭키의 외할머니가 "모두 떠나 버린 집에서 누렇게 변색된 밥을 먹으며 매 끼니마다 심장병 약을 먹고 칙칙거리는 텔레비젼을 지켜보고 있었다"에서 나는 33평 텅 빈 아파트에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고 프랭키의 엄니가 암과 싸울 때는, 간암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식들에게 아픈 모습 안 보려주려고 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한없이 한없이 아파왔다. 이렇게 맘이 아픈 소설이라면 읽지 말것을....에잇.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이건 내 이야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 프랭키가 엄니를 암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낼 때의 그 순간 순간을 감정의 왜곡 없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내면과 그 때 그 상황를 잘 전달하고 있다. 나 또한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프랭키처럼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안아드리고 싶었고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 하루가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보고 싶다. 단 한 번 만 꿈속에서라도.
하지만 이 소설 다 읽고도,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가 처진 이유를 모르겠다. 내 눈물샘 자극해 실컷 울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중간까지는 약간 지루하다. 그래서 별하나 감점. 혹 실컷 울고 카타르시스 맛보고 싶다면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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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릴리 프랭키가 위암 투병을 하고 있는 어머니 곁에서 쓴 것이라는걸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소설같지 않은 담담함과 어쩌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려는 속셈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질만큼 그 어떠한 화려함과 기교가 섞이지 않은 것이 그 때문일까. 어머니와 그만의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추억을 굳이 포장할 필요도 없거니와, 천상에 계신 어머니에게 바칠 선물로서는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터이다. 2006년 일본 서점가를 휩쓸었던 이 책이 "전차나 버스 안에서 읽는 것은 위험하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될테니"라는 조금은 과장되고 오버스러운 광고문구로 무려 200만부를 돌파했지만 기실 지금에 이르는 일본문학의 자극성에 비하면 조금은 순한 측에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눈물 콧물 짜내게 하는 것에는 한국문학도 만만치 않으니 그 유명했던 '가시고기'에 비한다면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가시고기의 너무나도 작위적인 부분이 조금 불편했다면, 이 책은 솔직함과 담담함이 빚어낸 감동이 있기에 더욱 높이 사고 싶다.)
오래전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가면서 엄마와 택시기사가 나누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중병에 걸린 택시기사의 어머니에게 그가 병수발을 하면서 그동안 못해드린 게 너무 많아서 세상을 뜬 지금도 너무나 후회된다고. 그리고 엄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 생전 부모님께는 아무리 잘 해드려도 부족하게 느껴질 뿐이라고 동감하셨다. 그렇게나 외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렸던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시는데, 딸인 나는 얼마나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집을 떠나 있으면 전화 한 통 할까말까에 중,고등학생때는 아침에 늦었다는 불평하는 내게 어떻게든 아침밥을 떠먹여주셨던 분이다. 지금에야 그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하지만, 막상 이런 시간이 너무 지속되면 결국은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던 릴리 프랭키의 어머니의 음식.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생전에 베푼 마음 덕분일 것이다. 비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다, 한국 사람도 아닌 분이셨지만 그 한국적인 인정을 몸소 느껴보고 싶었다. 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따뜻하고 정성 어린 밥상을 나도 함께 즐겨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똑같듯 정성이 담긴 밥상 또한 같을 것이다. 매일 엄마가 해 준 음식은 맛 없다고 투정버렸던 나도 오늘만큼은 정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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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오다기리 죠가 도쿄타워라는 영화홍보차 한국에 들어온적이 있었다. 나는 이미 메종 드 히미코를 통해 오다기리 죠를 관심있게 보고 있었던 터라 그가 주연한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무척 궁금했다. 대충 TV에서 해주는 예고편을 보니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은 감동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영화를 보기에 앞서 문득 인터넷에서 책을 구입해 먼저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게 되었다. 자전적 소설인 도쿄타워를 읽으며 나는 주인공인 마사야가 너무 못마땅하고 싫었다. 어렸을적 별거를 한 부모님중 어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마사야는 홀어머니라는 핸디캡을 가지면서도 양부모가 똑같이 있는 아이들처럼 부족한것 없이 자라났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다른 아이들처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이것저것 안해본일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근면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들이 해달라는 것은 무슨일이 있어도 해주는 어머니, 작가는 그 그리운 어머니를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다. 집안에 무심한 가장인 아버지와 별거하며 아들을 온갖 일을 해대며 키우지만 그 아들 마사야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기 때문이다. 변변치 않은 학벌에 그나마 대학도 중퇴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할일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부랑아처럼 기웃거리며 어머니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면서도 정신을 못차리는 마사야를 보면 나는 정말 몇대 죽지 않을 정도로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년동안의 밑바닥 생활끝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지만 어머니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만다. 아들과 함께 언제한번 도쿄타워에 올라가자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혼자서 도쿄타워를 올라오는 마사야. 그런 마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늘 하릴없는 생활을 해대는 아들에게 엄한소리 하지않고 고요히 지켜봐주고 늘 주위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도쿄타워를 읽으며 나는 지금 나의 어머니,아버지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릴리프랭키는 책방대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책이 많이 팔린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책을 읽고 한참이나 목소리도 듣지 못했던 부모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든가 뭔가 쑥스럽지만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러냈다든가 하는 독자들의 반응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 읽고 책을 덮자마자 벌써 다른 영역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 1분 1초라도 책을 읽은 이의 생활이나 감각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렇다. 이 책은 부모님에게 오랜만의 안부인사를 쑥스럽게 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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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프랭키의 도쿄타워를 읽고나서...
너무나 유사한 유년의 시기에 너무나 비슷한 일을 겪은 저로써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흘러내리는 눈물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엄니가 너무 보고 싶어....어머니께서 지어주신 따뜻한 밥과 어머니의 짱아지.. 그리고 어머니께서 제게 남긴것...
저희 어머니께서는 부산 사직야구장이 보이는 부산의료원에서 2005년 11월에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간암에 이은 합병증으로...아버지께서는 현재도 건강하시지만 아직도 많이 많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는 슬픔에 쉬이 보내시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책 표지의 문구...지하철에서는 절대 보지마라..웃다가 울수도 있다는 말.... 실제 어머니께서 살림에 보태라고 보내준 턱시도에서 배가 뒤집혀라 웃었습니다. 그리고 갑상선...암...위암...도쿄타워...많이도 울은것 같습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명철의 설명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늘 일어나는 일로... 소재로 삼기 힘든 주재를 아주 간결한 문장과 터치로 우리에게 부모님에게로의 향수와 동경을 잘 나타낸 걸작이라 보입니다.
여러분 이 소설 꼭 읽으셔야 합니다. 나의 부모님과 내가 부모이면...나의 아들 마사야를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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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라는 제목 보다는 엄마와 나 , 때때로 아버지. 라는 부제가 너무 잘 어울리는 :)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울어 버렸다. 올만에 책이라는걸 읽고 이렇게 긴 - 감상에 젖었다.
가슴이 메이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고 뭔가 찡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대구집에 있었으면 이걸 읽었던 이 날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자고 있지 않았을까.
첨에는 그냥 릴리 프랭키의 글과 표현력이 좋고 내 어린날도 새록새록 떠 올라 재미있게 봤는데 중간중간. 지하철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민망하기도 했다.
결국은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하임씨앞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
왜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엄마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졌어 ♡
릴리가 방황을 할때는 정말로 너무너무너무 답답하고 속상했고 릴리 엄마가 된것 처럼 같이 애타고 얼른 정신 차리길 기도했다. 나의 모습을 보는것도 같고 우리 엄마 모습을 보는것도 같았다. 언제나 안아주고 받아주고 기다려 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_
요즘도 매일 밤 전화와서 어디야? 밥은 먹었어? 춥지는 않아? 필요한건 없구? 라고 매일매일 같은 걸 물어 보는 엄마에게 응 응 응 응 이라고만 얘기하고 끊어- 하는 내게 엄마는 늘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딸 열심히 살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질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엄마라도.
올만에 예쁜 책을 읽어서 마음이 예뻐진거 같다.
기분이 좋고 그러면서도 찡한 이 책을. 나는 정말로 강하게 추천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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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더랬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쪽수가 많은 것도 아닌데 12월달은 어수선한 달이기도 했고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빨간 소파 뒤에 한달이 넘게 한 쪽 읽고 쳐박아 두고, 한 장 읽고 쳐박아 두고 그랬는데 어느날 지민군의 낮잠시간동안 그냥 후다닥 읽어버려서 다소 허무했더랬다. 이 책을 읽거나, 혹은 오기다리죠의 동명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 ' 도쿄타워'를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가오리의 소설을 먼저 읽은 바 있어,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이 책제목 때문이다.
릴리 프랭키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첫 느낌은 릴리 프랭키라는 이름의 외국인이 도쿄에 살면서 쓴 소설인가? 뭐 그쯤의 선입견으로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사람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사와 상당 부분이 일치하고 있다. 아니, 그의 얘기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실화에 바탕을 둔 자전적인 요소로 이루어졌으니, 오히려 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더랬다. 암 수술, 항암치료 그리고 암전이의 절차를 밟고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상당 모습이 오버랩 되어 읽는 내내, 아픈 과거를 회상해야 했으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암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더우기 나의 뿌리 나의 근원인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자식으로서 한없고 영원한, 절대 지워지지 않는 문신같은 그런 슬픔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읽는 동안 작가가 부러웠다. 그나마 작가는 자립하여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고, 철도 들고 나이도 든 상태에서 어머니를 떠나 보낼 수 있었으니까...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라면... 아니면 한마디도 할 수 없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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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결국 울어버렸네. '어쩜 넌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수가 있냐'는 소릴 듣던 예전과 다르게 감성이 풍부해진 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낄낄거리다가 '이렇게 웃기는데 언제 운다는거야'라며 울기만을 손꼽으며 읽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
'정신없이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흘리게 되니 지하철에서는 절대 읽지 말라'는 고마운 충고가 쓰여진 이 책을 만난 것은 내가 일본의 배우 '오다기리 죠'의 팬인 덕분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이 바로 이 '도쿄타워'이다. 오다기리 죠 답게도 요상하지만 그에게 퍽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웬 아주머니(엄니겠지)와 함께 찍은 예고편 동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게 '도쿄타워'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도 있었기에 제목을 보고서는 그녀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이 뒤엉켜서 저 귀염성 있는 표지를 하고 속살을 내보인 책. 배송시에 함께 온 퍼즐은 진작에 신이 나서 맞춰버렸다. 일러스트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릴리 프랭키'라는 노랑내나는 이름을 가진 작가는 의외로 일본인이다. '나카가와 마사야'라는 본명이 따로 있음에도 저런 필명을 써서, 나는 '작가는 분명 서양인일거야'라고 오해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인데, 읽는 도중에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인이 주인공이라 뭔가 이상함을 느껴서 그제야 작가 프로필을 보고 작가가 일본인임을 알았고, 더 한참을 읽고 나서야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바보... 그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작가의 얼굴 대신에 오다기리 죠의 얼굴을 오버랩하며 읽으려 애를 썼지만 절반 쯤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이건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서 대신해야겠다.
'엄니', '그랬고만...' 하는 것은 분명 한국의 사투리인데도 번역된 일본 소설에 잘 어울렸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고 정감이 가서, 하고 많은 사투리 중에 하필 이것으로 번역한 이유는 엄니~라는 말투가 유독 구수해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그 지방의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지방의 사투리와 닮아있는 것을 이용한 것인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잡설이자 추측이지만 오늘 '훌라걸스'라는 영화를 보고 놀랐던 것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탄광촌의 사투리 억양이 우리의 북쪽 또는 강원도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 소설의 배경인 그곳은 엄니~하는 말투의 사투리를 쓰는 곳이 아닐까. 아무튼 센스있는 번역도 이 소설의 강점.)
이 책은 독자가 억지로 눈물을 흘리도록 한다거나 시종일관 웃게 한다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그랬다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잔잔하고 구수하고 유쾌한 영화를 보듯이 흘러간다. 그 배경이 한국과도 닮아 있고, 주인공은 나와 닮은 부분도 가지고 있어서 감정이입이 쉬웠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지만 분명 누구에게나 있었을법한 추억들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에 너도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다 자란 나와 동생을 두고도 엄마의 마음 속엔 늘 우리가 있나보다. 어느 날 엄마가 TV 옆에서 코를 골며 곤히 잠들어 계신동안 나는 지나가는 말로 옆에 있던 동생에게 '배고프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것이 곁에서 잠자던 엄마에게 들렸는지 꿈꾸는 듯한 어눌한 말로 '베란다에... 고구마... 있어...고구마...'라고 잠꼬대 비슷한 말을 하길래 흠칫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동생이랑 깔깔대며 신기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다. 울 엄니도 깊은 잠을 자는 시간마저지 자식 배곯을까 걱정이 되었을까.
"역시, 집이, 좋고만..." "응...그런가...?" "야야, 그거... 냉장고에 도미 회가 들어있고만. 그거하고 또, 냄비 속에 가지 된장국 있어. 그거 데워서 먹어라이...."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니, 왜 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지, 가지 된장국이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아마도 엄니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이 병실을 사사즈카 집의 부엌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자신이 그런 힘든 상황에 빠져있는 때에도 환각 속에서 내 밥 걱정을 하고 있었다.-338
철 없는 어린아이였을 적에 나와 마사야는 늘 엄니와 함께였다. 엄니가 없이는 못 살 것 같았고, 그 후로도 쭉 엄니는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은 왜냐고 물을 가치가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엄니와 떨어져 지내는 법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질 때가 온다. 나와 마사야가 엄니와 동떨어진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순간에도 엄니는 우리에게서 마음을 뗄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마음대로 버렸던 엄니에게 내 멋대로 돌아가 안겨도 엄니는 늘 곁에 있던 사람처럼 가만히 나를 안고 토닥여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든 어머니는 있는 거구나.-149
책을 덮기 전에 코를 훌쩍이며 '슬퍼..슬퍼..'라고 연신 말했던 것은 정말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져서 생긴 열이 콧물로 증발 되어서였을 것이다. 따신 밥 처럼 훈훈한 소설은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예쁜 이 소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될 영화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