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모두들 막상 닥친 장례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사위의 눈에 장인어른이 나타난다. 임신한 아내의 배를 쓰다듬고 계신 것이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사위의 눈에만 종종 나타난다. 자신의 장례절차 주변을 돌아다니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 무엇 때문에 떠나지 않고 계실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 최덕규는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만나는 사건을 통해 가족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특별하지만 익숙한 우리네 가족의, 아버지의 이야기. 제목그대로의 내용이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다만 화자의 친 아버지가 아닌 장인어른, 내 아내의 아버지이다. 그것도 돌아가신 분이 다시 돌아오신것이다. 그렇다고 죽은줄만 알았던 분이 다시금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는 훈훈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치 유령의 모습으로 친딸이나 장모님처럼 반평생을 함께 해오신 가족들이 아닌, 사위인 나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새로 돌아오셨다. 비록 유령의 모습으로 아버지(장인어른이)가 나의 눈에 보인다는 설정이지만, 그것을 제외로하고는 이 만화는 가슴이 헛헛할 정도로 처절하게 현실적이다. 우선 나의 눈에만 보이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나는 가슴의 따뜻함이나 어떠한 진중한 깨달음을 얻는것대신, 그저 그의 모습을 관찰하는 시선을 보인다. 나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를 목도했을때, 그 대상에게 악의나 해를입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하게되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보이겠지. 싶을정도로 나름 담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 한 가정에서 큰 기둥이 되었던 남자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진다. 그것이 너무나 담담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러나 안타깝고 슬프다. 오히려 나의, 우리의 입장에 대입하기 요원한 구성이 전혀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변변찮은 돈벌이마저도 시원찮은 사위가 처가살이를 결정했을때 고개를 끄덕인 장인어른. 그 모습이 사위에게만 보이는것은 왜일까? 살아생전 크게 친하지도, 정다운 대화몇번 나누지도 못한, 가족이되 다소 껄끄러운 그런 관계일진데. 그것은 그가 그나마 아버지 본인에게 있어 가장 멀리있는 타인같은 가족이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은이의 존재로인해 웅성웅성한 한 가정에 큰 파문없이 그저 자신의 마음을 지켜봐줄 수 있는 존재이기때문에, 현실적인 죽음. 그 존재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갑자기 나의 아버지가 보고싶어진다.
|
|
만화책이다. 하지만 얼마전 장인어른을 떠나보낸 나와 마찬가지로 장인어른의 별세를 소재로 한 만화라는 점에서 읽어보았던 책이다. 죽음에 대한 담담한 관조와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시선 등이 눈에 들어오는 참 따뜻한 만화이긴 하지만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만화가가 아직 젊어서일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소재의 무게와 표현의 정직함에도 불구하고 깊이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