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다룬 사극이다. 이 프로그램은 발해를 고구려를 이어 세운 ‘한민족’의 국가로 설정하고 있다. 대조영은 당나라의 핍박을 이기고 발해라는 대제국을 건국한 영웅으로 그려진다. 분명히 고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현재 중국과 벌이고 있는 고대사에 대한 논쟁과 연관 지어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민족의 지위를 대조영이라는 자랑스러운 민족의 영웅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열광적 반응은 다른 사례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국가대항전으로 열리는 스포츠 경기는 오랫동안 민족주의적인 열정의 대표적인 분출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경기를 벌이는 선수들은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전사’로 일컬어진다. 스포츠 경기는 다른 민족국가와 벌이는 또 다른 전쟁이다. 같은 민족의 구성원인 해외 스포츠 스타의 선전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령 법률적인 국적이 다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 등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성공은 곧 민족의 성공과 일치된다. 동남아시아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반응도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파악할 수 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우리의 공동체에 도저히 포함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한국에서 아직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도처에서 민족에 대한 도전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피해자인 동시에 한국의 민족주의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미 우리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그들에 대한 논의에서 민족개념의 재구성은 필수적이었다. 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타민족 구성원’의 증가는 새로운 민족개념을 필요로 했다. 또한 근대를 지배한 민족이라는 개념의 폭력성을 지적한 연구 성과가 늘어나고, 민족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화가 논의 되면서 기존 민족개념의 취약성과 허구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민족’이란 어떤 것인가. 먼저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주장하는 기능주의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을 특정한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조형물’로 판단하고 상상의 공동체로 규정한다. 또한 에릭 홉스봄(Eric Hobswarm)은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민족의 전통이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와는 달리 민족이라는 관념은 원초적으로 존재했고, 그것이 근대에 들어 확고히 자리 잡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족이란 근대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민족을 정체성의 차원에서 규정한다. 민족에게 영원한 역사적 사명을 부여하는 시간적인 속성,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규정하려는 영토적 속성, 의식주 등의 문화적인 속성을 포함하는 타자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바로 민족이라는 것이다.
민족을 둘러싼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민족국가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사례는 관심 있게 지켜볼만 하다. 특히 서유럽은 근대적 민족개념이 탄생한 곳인 동시에 유럽연합을 통해 스스로 민족의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있는 곳이다. 과연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가 민족국가를 바탕으로 한 단순한 연합의 성격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민족의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집단이 될 것인지는 민족의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유럽연합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집단과 민족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유럽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위해 유럽연합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유럽연합 구성원들을 구분한다.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민족국가를 하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민족국가를 위한 유럽이라는 입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연합헌법의 제정 시도, 국방, 외교권의 통합 등 민족국가가 가지는 고유의 권리를 일정 부분 유럽연합에 양도했다는 점에서는 유럽연합이 민족국가를 넘어선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는 유럽연합과 개별 민족국가간의 서로 다른 입장을 밝히고, 유럽연합에 참여한다고 것이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민족국가인 프랑스·독일·영국 등의 국내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분석한다. 프랑스의 경우 유럽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유럽을 위한 유럽을 주장하였지만 사실 프랑스적인, 프랑스의 이익을 위한 유럽을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하였다. 독일도 유럽연합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전범국가라는 지위를 벗어나 보통국가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한다. 영국은 이들과 달리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자신을 유럽이라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자체적인 제국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규모가 확대되고 참여에 의한 경제적인 이득의 증대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결국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유럽연합에 참여한다는 것이 각 민족국가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른 상당히 복잡한 선택임을 밝힌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각 정치세력이 어떤 주장을 하든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주권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이해관계에 철저히 따르고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유럽연합의 성격이 아직은 민족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동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민족국가의 이해관계를 위한 유럽연합이라는 성격이 크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유럽연합은 하나의 실체적 공동체로 존재한다. 저자도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과연 새로 구성된 유럽연합의 정체성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한다. 유럽의 정체성은 가입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과 유럽 공통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기원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라는 경제적 공동체였고, 현재도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점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의 측면은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유럽 공통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리스·로마 문명, 기독교라는 종교, 개인주의, 민주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정체성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라는 문제로 현실화 되었다. 과연 유럽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인지, 또 그것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것이 정체성의 구성요소가 되는지는 앞으로 유럽연합이 민족을 뛰어 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저자는 경제·문화적인 정체성과 함께 미국과 러시아라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도 유럽연합의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상식과 유럽연합이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과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불록의 형성이라는 측면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럽연합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논지대로 유럽연합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면 하나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유럽민족’의 탄생이 가능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민족국가의 시민권개념을 넘어선 ‘유럽시민권’의 존재를 거론하며 유럽민족의 가능성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럽민족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민족의 개념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을 폭력을 수반하는 폐쇄적 의미를 가진 집단으로 파악한다면 각각의 민족 집단을 결합하는 유럽민족은 결코 가능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민족을 유럽연합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라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결코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으로는 지칭할 수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유럽민족이 가능하려면 그것은 결코 근대적 의미의 민족 개념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있는 유럽민족은 결코 몇 개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간단히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유럽연합이라는 사례가 서로 다른 민족국가의 연합이 ‘반드시 배타적이고 지배적이고 호전적인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닌 평화적이고 화합적이고 협력적인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그것을 유럽을 위한 유럽으로 파악하든 민족국가를 위한 유럽으로 파악하든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럽을 위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바라는 대로 유럽연합을 평화적인 협력의 이상적인 모델로 바라보기는 무리가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저자는 유럽연합의 정체성을 미국과 러시아라는 헤게모니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였다. 그렇다면 미국, 러시아와 유럽연합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유럽연합도 하나의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이라는 사례를 통해 민족의 개념과 미래를 다양한 측면에서 논하고 있는 이 책은 민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펴는 민족의 미래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과연 민족이 저자가 바라는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결국 민족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구성원에 달려 있다. 글의 서두에서 한국의 민족에 대한 유별한 열정을 거론하였다. 유럽연합이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이 탄생한 서유럽은 민족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 아직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들에서 민족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은 근대의 어떠한 이념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어떤 정치세력도 민족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대중에게 파고 들어갈 수 없었다. 글에서 지적한 대로 민족이라는 개념은 그 허구성과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힘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민족의 뛰어 넘으려는 시도인 유럽연합이 일정 부분에서는 아직도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족을 뛰어넘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민족국가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의 힘을 합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유럽연합과 같은 연합의 움직임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유럽을 하나로 묶는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정체성은 동아시아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정체성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한자와 유교문화라는 부분에서 문화적 정체성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충분히 공유되는 정체성을 갖는다. 유럽연합이 그것으로 완전한 모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의 민족의 미래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