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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는 라디오가 유일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였다. 지금처럼 게스트가 떼를 지어 나와 수다를 떨고, 음악보다 잡담이 더 많은 방송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인지라 FM 방송도 음악보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라디오와 멀어진 이유는 이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내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 DJ가 전해주는 음악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선택한 음악을 나만의 장소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기에 라디오도 시대의 조류에 따라 잊혀 가는 것이 아닌가? 란 생각을 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KBS FM ‘출발 FM과 함께’를 듣다가 송정림의 ‘명작에게 길을 묻다’를 들으며 좋은 교양 프로란 생각을 했다. 보통 사람이 읽기에는 좀 버거운 명작들을 송정림 작가는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쉐프처럼 명작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따뜻한 글쓰기를 하고 있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향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낭만을 따라 꿈꾸는 삶이 자신의 글속에 녹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바람이 있었기에 ‘명작에게 길을 묻다’는 소중한 책으로 다가 왔다. 이 책속에는 송정림이 읽은 명작 5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지는 않았어도 제목이나 간단한 내용 정도는 알 수 있는 책들이다. 이 책의 백미는 6개로 구분된 챕터의 감성적인 제목들이다. Chapter 1 ‘신음하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너’ Chapter 2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Chapter 3 ‘인생이란 페르시아 융단 같은 것’ Chapter 4. ‘패배당할 수 없다. 파멸할지언정’ Chapter 5. ‘내 손을 잡아 주세요!’ Chapter 6. ‘내 삶의 푸른 터널’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힌 사랑의 비극 어느 날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사랑 때문에 신음하지만 그 아픔을 즐기고, 나아가 그 사랑 때문에 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멈출 수 없는 사랑의 독을 마시면서도 행복해 한다. 젊은 베르테르,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다. 송정림은 이들의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 통곡의 소리를 내고,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기쁨은 빛을 잃어버리는 운명의 사랑. 그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 막막한, 그리하여 8할이 슬픔인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앞에서 저들은 기꺼이 사랑을 택하며 자신에게 찾아온 비극 앞에서 초연한 죽음을 맞는다. 기차의 레일처럼 함께 가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 개선문의 라비크와 조앙,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와 스칼렛등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픈 사랑도 있다. 시인 이정하는 아픈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다. ‘뒤늦게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느껴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이미 저만치 떠나가고 있는 그의 등 뒤에서……. 그래도 힘껏 소리칠 일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목 터지게 외칠 일이다. 떠나가는 그 사람이나마 사랑을 안고 떠나가게‘ 명작 속에 나타난 사랑은 아프다. 비극적으로 끝난 사랑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사랑에 감동에 감동하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아픈 사랑에 공감하기에 지금도 많은 독자들은 저들의 사랑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인생은 사랑 외에도 살아야할 이유가 참 많다. 야심 때문에 파멸하는 ‘적과 흑’의 쥘리앵, 신념을 향해 걸어갔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조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며 인생의 본질을 물었던 톨스토이, 데미안의 방황하는 청춘 ‘싱클레어’ 송정림은 이렇게 우리와 친숙한 인물들이 주인공인 명작 55편을 선정해서 명작에 대한 일화, 소개 및 주인공에 대한 묘사, 소설의 줄거리 등을 감성적으로 풀어쓰고 그 작품의 의미를 부여해서 명작 에세이 한편을 완성한다. 송정림의 글은 감성적이고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작가가 최선을 다했구나!” 라는 좋은 느낌을 갖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허접한 책 100권 읽는 것보다 명작 한권을 읽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작을 너무 어린 시절에 읽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의무적이었기에 숙제라는 이름으로 읽었다. 책에 담겨있는 삶의 본질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고 누구도 명작 속에 나타난 삶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읽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저자나 주인공의 이름 정도다. 읽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읽지 않은 것이 명작이 아닐까? ‘명작으로의 초대’는 명작에 대한 안내서쯤에 해당된다. 독도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등산할 때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것처럼 명작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은 몇 권 정도의 안내서를 가지고 있으면 명작을 좀 더 깊이 있고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송정림은 명작으로 인도하는 길을 알고 있는 좋은 가이드다. 명작여행을 바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것이 버거운 독자라면 송정림을 만나 함께 명작여행을 떠나는 것도 자신의 독서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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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참 다른 세상이다. 처음 초등학교 꼬리표를 떼고 중학교에 올라갔을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국어담당이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우리들 앞에서 고전 문학 리스트를 알려주면서 기회가 될때마다 읽어보라 하셨다. 꿈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 소녀시절... 시를 읽고, 슬픈 사랑 소설을 읽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소녀들은 없었다.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른채 유행처럼 우리는 고전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학기중에는 읽지 못했지만 방학이 되면 삼삼 오오 짝을 맞춰 우리는 동네 헌책방을 놀이터 삼아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지금처럼 좋은 종이도 아니었고 보기 편한 글씨도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책은 세로줄이어서 읽기 불편했지만 그정도는 감수할 만큼 고전 문학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어떤 책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우리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는 내용도 있고, 어떤 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글들로 써져 있어서 머리가 뽀샤질것 같은 내용도 있고, 어떤 책은 그 당시 우리의 고민을 다 이해해 줄것 같은 책도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주신 리스트를 지워가는 재미로 고전문학에 푹 빠졌지만 생각해보니 그 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외려 고전 문학을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읽었던 책인걸 뭐... 하면서 자기계발서나 시드니 셀던 같은 작가의 흥미로운 책들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빌려온 이유는 딱 하나다. 내년에 고전 문학쪽을 건드려(?) 볼 참인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문학들은 2/3 정도가 내가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어린 중학교 때 이런 책을 읽고 내가 다 이해했을까? 무슨 근거로 나는 다 읽었으니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당시 나는 어른들이 읽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는(사실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글씨를 봤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내가 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기양양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것은 겉으로 보이는 글자만 읽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 그 안에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말하고픈 삶의 의미... 그것들은 전혀 모르고 글을 읽었을 것이다. 10대에 읽은 책의 느낌과, 20대에 읽는 책의 느낌과 30대에 읽는 책의 느낌과 40대에 읽는 책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난 느껴보고 싶다. 그때는 미쳐 알지 못했던 책의 의미가, 책이 말하고자 하는 언어들은 무엇인지....
너무도 유명한 고전 문학 55편을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길잡이 같고 어찌보면 소개서 같고 어찌보면 간단한 리뷰같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쉽다. 다시 고전 문학에 다가가기에 흥미를 자극한다. 그래서 명작에게 길을 묻다 2편도 궁금하다. 내년 나의 고전문학 읽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쉽고, 많이 알려진 책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고전 문학도 이젠... 나와 친해져야 한다... 기대가 된다... 나에게 고전 문학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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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생각하면 그와 함께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있다. 지방에서 전학을 와서 친구가 없었던 한 때 버스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하굣길에 벗이 되어준 싱클레어와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고 쓴 글을 칭찬해준 중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 그 시절 달뜬 추억이 고전문학을 떠올리면 같이 따라온다.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문학의 당위성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힘에 있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중고등 교과과정의 주입식 교육의 잔재 때문일 수도 있다. 명작이라는 이름만으로 감동받기를 강요당한 경험이 떠오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 <명작에게 길을 묻다>(갤리온. 2006)가 주는 일말의 거부감은 바로 그런 점이다. 명작 속에 삶의 지혜가 있다는 식의 교조적인 제목과 글의 말미에는 꼭 따라붙는 진정한 사람과 사랑에 대한 계몽적인 어투. 그것이 내 속 어딘가에 있을 꼬투리를 잡아채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명작, 혹은 오래 읽히고 있는 순수문학은 이렇게 상이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한다.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에 젖은 달뜬 추억과 바르고 명백한 해석이 주는 불편함에 묻어나는 조장된 감동이 충돌하는 소용돌이에 말이다. 하지만 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선을 싹둑 자르면 결국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명작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현대문학을 읽고 난 후 종종 보트에 몸을 싣고 넓은 호수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요즘의 문학작품이 우선 그 형식이 다양하고(물론 고정된 형식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함축적이다 못해 압축적이며, 모호한 문장을 세련되게 포장한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 굉장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구태의연함을 지양하고 세련됨만을 지향한 나머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무게로 가르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전문학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아니다. 분명 고전문학 역시 그 시대의 현대문학이고 지금의 문학만이 비추어낼 수 있는 사회적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 유재형님이 그린 삽화가 굉장히 매력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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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해에 나는 무려 150여권의 명작들을 읽고, 독후감을 남겼다. 그 덕분에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아주 큰 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책들을 읽은 부작용으로 『좁은문』이나 『폭풍의 언덕』과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서로 헷갈려한다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책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내 독후감들이 떠올랐다. 느낌보다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반 이상을 차지했던 내 독후감들, 다시 꺼내어 읽어볼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들이다. 책의 줄거리는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을 감정들의 한 귀퉁이는 잘려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는 ‘출발 FM과 함께’라는 KBS 1FM의 화제의 코너 “명작에게 길을 묻다”에서 소개된 책들을 방송작가 송정림이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느낌이나 감상보다는 객관적인 책의 내용이나 책을 둘러싼 일화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라디오라는 매체와 책이라는 매체는 그 특성이 확연히 다르다. 라디오 매체는 공중파를 이용하는 것이므로, 개인적인 치부까지 드러내도 상관이 없는 책과는 달리 공중과 공통 관심사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덕분에 자연히 방송작가들은 책을 펴내는 작가들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 할 수 있다. 또 책은 독자의 호흡으로 읽혀지는 것인데 반해, 라디오라는 매체에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 분위기를 함께 전달할 수 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것에도 작가의 의도대로 ‘연기’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디오 매체에서는 화제의 코너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온전히 내 호흡으로 읽어야하는 책으로서는 ‘화제의 책’ 근처에는 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알려준다는 것, 두 가지 함정이 있다. 먼저 내가 읽은 책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책의 내용을 읽는다는 것은 따분한 일일 뿐이다. 이미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엿보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내가 읽지 않은 책이라면, 책의 내용은 스포일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작가 송정림의 고등학생 아들 유재형군이 그린 그림이었다. 책 속 장면들을 옮겨 그린 유재형군의 그림에는 감성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감성을 담은 그림들의 색채들과 터치들이 너무 예뻤다. 좀 신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어머니의 글보다는 아들의 그림이 오히려 더 ‘명작’에 어울리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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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개를 할 때 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항상 포함된다. 심지어 입사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에도 빼먹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생일이든 아니든 아빠와 삼촌께서 책 선물을 많이 해주셨다. 지방에 살 적에는 아빠께서 서울로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사오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와 바닥에 엎드려 외숙모네서 가져온 두꺼운 세계문학전집 다섯 권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일부러가 아니라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책과 접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중학교 때 처음 스스로 책을 샀었다.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신문 광고에 난 책을 찾아보고, 용돈으로 책을 사는 행위는 정말 즐거웠다.
학창시절부터 항상 있었다. 중학생이 읽어야 할, 한국 단편 50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등 고전이든 세계 명작이든 제목만 말해도 유명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항상 도서 목록에 제목은 적혀 있지만 막상 도서관에 가면 신간을 고르게 되는 이유는 왜일까? '명작에게 길을 묻다'의 목차를 먼저 보았을 때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쉰 다섯 편의 명작 중 한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는 것은 반도 안 되었던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사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빌려 본 한국소설에서 등장한 책이었다. 기숙사 내 서점에 들렀다가 그 제목이 눈에 띄어 바로 집어들어 사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모파상의 '목걸이'는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장편의 명작 한 권 한 권을 읽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 한 권이 정말 고맙고 소중하다. 간추린 줄거리와 함께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편의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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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길을 묻다 - 송정림 지음
팀과제로 선택되어진 운명의 책^^ 이 책 왠지 지루할 것 같았던 첫인상과는 달리 엄청 재미있다.
이 책은 이시대의 꼭 읽어야 할 고전의 책들은 요약해 작가의 코멘트가 더해진 책이다. 그동안 제목은 읽히 알았으나 어떤 내용의 책인지 정확히 몰랐으나 이 책을 통해서 ‘아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 괴테의 [파우스트] / 김만중의 [구운몽] /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읽히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고전의 책들의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그것도 지독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주를 이어 약간 좀 이해가 잘 되지를 않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읽으며 읽어갈 수록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어떻게 저런 비유를 할 수 있는지 가면 갈수록 아! 라는 감탄사가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에서 감동받는 멘트들이 워낙 많지만 몇가지를 정리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사랑에 실패했지만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가 위대한 이유이다”
“그리하여 8할이 슬픔인 사랑, 그럼에도 불하고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신음하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사랑. 앓는 심장에 검은 독약처럼 스며든 사랑, 알코올 중독자의 알코올처럼, 도박꾼의 도박처럼 치명적인 중독성을 지닌 사랑, 증오와 복수라는 방법 말고는 그 어떤 사랑의 방법도 없는 폭풍같은 사랑, 죽어서도 잠 속에 들지 못하고 황량한 덤불 속을 헤메고 다니는 황야의 사랑, 육신이 없다면 유령으로라도 보고싶은, 그래서 창틀 부여잡고 제발 내 앞에 나타나달라고 애원하는 사랑.. 그런 사랑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 사랑을 놔버리는 사랑, 가까이 두고 싶지만 애써 거리를 멀리 두는 사람, 그래서 사랑은 온 우주를 드는 것보다 더 무겁고 힘들다는 말을 하는가”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사랑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고, 첫사랑은 더욱 그렇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건 분명한데 그런데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랑..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사랑.. 그러니 사랑은 슬픔과 이음동의어다”
“서로 좋아하면서 서로가 내는 삶의 음이 달라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음치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안을수록 깊이 상처가 생기는 ‘고슴도치의 사랑’이 있고, 헛된 집착 때문에 다가온 사랑도 보내버려야 하는 ‘바보의 사랑’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랑은 한 박자 늦게야 그 사랑을 발견하는 ‘박치의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함께 즐거움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통도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고운 정만 쌓는 것이 아니라 미운 정도 쌓아가는 것이다. 사랑은 건강할 때만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에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편견을 지워버려야 마음에 드리운 오만을 걷어버려야 비로소 사랑의 마법을 작동하기 시작한다”
“가장 슬픈 사람은 사랑이 없는 자. 가장 괴로운 사람은 오만한 자. 가장 허망한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 아닐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다가올지 모른다. 산다는 것은 죄를 짓는 과정이므로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삶의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 있다면 그 죄를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을 돌아보며 단련하지 않으면 악의 편에 서기 쉬운 존재, 유혹에 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다”
“결국 굴레가 없다면 비상도 없다. 슬픈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오는 기쁨이 더 크고 패배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하기 위해 더 달리게 되고, 눈물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굴레의 슬픔, 패배와 눈물은 곧 인생 수업료이다”
“어쩌면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슬픈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고, 외로움조차 감정의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죽고 싶어도 못 죽고 편안히 나를 방치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니까”
“세상의 모든 자리가 다 어렵고 다 고단하지만 아버지의 자리만큼 무겁고 고단하고 외로운 자리는 드물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도 세상 안에서 당신의 자리는 너무나 작고, 큰소리 치며 호통하고 싶어도 가진 지갑은 너무 얇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도 돌봐야 할 식속들이 너무나 많고, 자식들에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싶어도 어깨는 자꾸만 내려가고, 큰소리치고 싶어도 세상속에서 키가 너무 작아져 버린 우리들의 아버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쓸쓸히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다”
“한여름밤에 꾸는 짧은 꿈일지도 모르는 생. 미워하기에는 너무 짧다. 욕심만 채우며 질투하고 경쟁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다. 사랑만 하며 살아도 그리 길지 않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진 않았어. 인간은 파괴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순 없어”
“우리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내 짐만 보이고 남의 지은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우리는 똑같은 무게의 짐을 등에 지고 가는 달팽이들이다. 그러니 서로 손 내밀어 함께 동행해야 한다. 장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 말을 들어줄 타인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주리라 믿으면서 내 혼란과 내 의문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우리들. 그러나 고독도, 외로움도, 상실도, 허무도 모두 나의 몫일뿐.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의 귀는 닫혀 있고, 삶은 여전히 내 몫일뿐이다. 그러니 인간은 누구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다”
“오늘 안에서 행복을 찾아보라고. 오늘은 그저 기뻐하며 사랑하라고. 절망할 일이 있으면 내일! 미워할 사람이 있으면 내일! 미워할 사람이 있으면 내일! 오늘은 언제나 행복하라고..”
“만약에 그 약속을 지켰더라면, 만약에 그곳에 갔더라면, 만약에 사랑을 고백했더라면, 만약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를 알지 못했더라면, 만약에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좀 더 강해졌더라면, 만약에 병원에 갔더라면, 만약에 낭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후회는 과거의 일에 대한 마음의 그늘이다. 과거는 내가 돌아갈 수 없는 시공간. 그러니 ‘만약에’ ‘만약에’를 웅얼거리는 일은 부질없다”
“사랑과 사용. 이 두 단어는 첫 음절이 똑같지만 많이 다른 단어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 헌신의 의미이고, 사용은 주지 않고 늘 쓰기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가끔 오해한다. 용기와 힘의 차이를. 학대를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편견을 휘두르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편견을 없애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억은 때때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또 때로는 슬픔속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기도 한다. 슬픈 기억은 후회를 동반한다. 후회는 다시 슬픔을 동반하고 그럴 때 슬픔은 자꾸만 커져간다”
- 이상 -
고전을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통해서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을 몇가지 체크해두었다. 이 책을 통해서 고전, 명작을 다시 보게끔 해준 책이다.
이 책 진짜로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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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읽으려 막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고전을 우선순위로 놓는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텐데 무엇보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루고루 사랑받은, 검증받은 책인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고전에 내용들은 계속해서 뼈대는 이어갈 것이다. 변하는 건 세월에 맞춰가는 내용들뿐. <명작에게 길을 묻다>는 주옥같은 고전들을 추려 줄거리, 작가 정보, 간단한 감상이 곁들여 있다. 고전을 읽는다, 읽는다 말로만 수백 번을 읽은 나 같은 게으른 사람들에겐 임시방편으로, 고전을 읽으려 하는데 무슨 책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를 때 이 책만큼 좋은 게 없다. 자신이 평소 읽어보려 찜했던 고전의 내용을 살짝 맛만 보고(경고_줄거리는 다 읽지 말 것) 선택할지 말지를 고르면 된다. 만약 내용이 생각보다 별로다 싶으면 줄거리와 간단한 설명을 보면 된다. 이렇게 고르다보면 나만의 고전 리스트가 완성되고 하나씩 실천에 옮기면 끝.^^ 줄거리만 읽은 고전들은 세세한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그 책에 얘길 한다면 대화 몇 마디는 던질 수 있다. 단, <명작에게 길을 묻다>만 읽었다고 고전을 우습게 여기거나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어디까지나 줄거리는 내용의 전반적인 줄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감수성을 기르고 당시의 시대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죽어도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다면 고전을 추천해본다. 단 몇 줄의 문장이 당신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성불감증의 끈을 여지없이 풀어헤칠 것이다. 고전은 어디까지나 세월의 검증을 고스란히 부딪쳐 살아남은 작품들이다. 그래도 인간 개개인에게 다 만족을 줄 순 없다. 그래서 먼저 이 책으로 고전 뷔페를 시식해보라는 거다.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읽으라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부디 한 번 사는 인생 고전 몇 권은 건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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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스물여덟. 여름. 그리고 생일.. 쥐구멍이 있다면 딱 하루만 숨어있고싶었다.
이제 제법 머리도 굵어서 어줍잖은 어울림보단 혼자가 기분좋은.
살면서.. 사랑하고, 헤어지고..다들 그렇게 살지만
마음이 폐허인채 시간만 흘러,
걸죽한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목석만 남은 나였다.
필요했다 오아시스가.
부담스럽지 않은 책표지도..
과하게 친절하지 않은 잔잔한 문체도 좋았다.
특히나 이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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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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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할 것도 없이 당장 사서 읽어내려갔다.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떤 명작속에
삶의 애환이 다 들어있다..
나와 명작의 간격사이에 따듯한 다리 하나가 놓이고
거기 앉아 촉촉하게 젖어갔다.
명작을 읽는 눈을 티워주고,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요즘 불티나는 자기개발서나, 여성지침서보다
더 깊은 위로와 메세지를 담은.
노골적이지 않으나, 아련하게 녹아나는.
이 책이 참 좋다.
두번, 세번 읽을수록..
다~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
개츠비가 있고, 조르바가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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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봐야 할 에피타이져와 같은 책.
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작은 많았다. 여기에 쓰여져 있는 책 중에서 반도 못 읽었다. 읽다가 포기한 책들도 많고 읽었으나 머리가 크기 전에 읽은 소설도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만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내용, 주장하는 바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문제를 이 책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다.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작에 대한 독서 의지가 꿈틀거린다. 또 예전에 읽으려다 포기했던 책들이 그렇게 재미가 있었으며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책인가라고 느끼게 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예전엔 그렇게 재미없게 느껴졌던 테스나 데미안, 백경, 달과 6펜스 등이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다르게만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이는 저자의 명작에 대한 이해도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력이 출중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또한 책 안에 있는 저자의 자제분이 그렸다는 삽화도 고등학생 답지않게 책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를 높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좋았던 것은 책에서 인용한 작가들에 대한 설명이 소소하나마 책의 말미에 나와있다는 점이다.
만약 명작이라는 책의 두께나 재미없거나 흥미가 땡기지 않는다면 이 책을 먼저 시식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면 명작의 만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새 생길 것이다. 나도 이 책의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위대한 게츠비」를 한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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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감동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주옥같은 리뷰들을 보면서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다가 파멸할지라도라는 제목이 붙은 위대한 개츠비부터, 너무나 좋아했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최근에 읽었던 달과 6펜스..오랜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맑은 영혼의 꼬마친구 어린왕자까지... 제인에어를 읽었을 땐 학창시절의 내 동생을 떠올렸다. 이 책을 몇 번씩이나 읽던 동생을....내 왼쪽 밑의 늑골 어딘가에 달려있는 실 한오라기 당신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은 정말이지 내 가슴을 에리게 만든다. 사랑하다가 파멸할지라도, 모든 것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다가 죽더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명작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같이 애통했고, 실패한 삶때문에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한다. 왜, 그들의 삶은 그리도 힘든지...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으로 사는가의 대답에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온 몸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자유인 조르바를 만났고, 빵 한조각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쟝발장을 만나면서 용서의 의미를 생각했다. 오만양과 편견군이 만나 티격태격 예쁘게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만나면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떠올린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제대로 겪고 있는 홀든 콜필드를 이해하게 된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리뷰를 쓰면서 인용했던 오래된 가요의 구절은 그 모모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라는 소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