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인물인 공자의 말씀을 담은 책으로 아이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로 논어는 공자가 썼을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논어는 공자가 직접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그와 나눈 이야기와 공자가 한말, 정치가 혹은 은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청소년들을 겨냥한 책 답게 친구 사귐과 신의를 중요시 했음을 담은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공자의 말씀중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친숙한 내용이 많아 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이지 고전]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쉽게 나온책이라 하지만 ''논어''라는 제목에서 오는 부담감에 아이가 읽으려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겨 먼저 읽어보라 했더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계속해서 읽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뿌듯~) 중국의 혼란의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정치적인 뜻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상이나 철학, 교육등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알게된다. 이 한권으로 논어를 파악했다기보다는 논어가 어렵지 않음을 인식시키기에 더할나위 없는 가교역할을 할것으로본다. 또한 부록으로 나오는 통합논술은(따로 떼어 사용 가능) 내용을 다시 한번 다지면서 논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독해력과 수준 높은 논술의 활용을 보여주고있다. 논술의 키포인트인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도 고전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있다.다. 덧붙여 삶을 살아가는데에도 공자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인생의 스승을 가까이에 모실수 있는 특별한 만남이 될것이다. (이 책이 아이의 인생에서 특별한 만남의 선물이 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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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공자가 한 말이나 제자들, 정치가들 혹은 은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논어라는 제목 자체가 의논(論)하여 편찬한 말(語)이라는 뜻이다. 논어를 편찬한 연대를 두고는 논란이 있지만, 대략 전국 시대 중기에 공자의 제자들이나 그 제자의 제자들이 편찬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논어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진 것은 한나라 때이다. 진시황이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 실용서를 뺀 대부분의 고전을 불태우고 많은 학자들을 잡아다 매장시켜 버린 일을 '분서갱유'라고 한다. 논어도 이 험악한 세월을 피해 한동안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제나라에서 전해진 <제논어(齊論語)>, 노나라에서 전해진 <노논어(魯論語)>, 공자의 옛집 벽에 감추어 두었던 <고논어(古論語)>, 이렇게 세 종류의 논어가 나타났다. 이러한 책 중에서 한나라 때 장우(張禹)라는 사람이 <노논어>를 중심으로 최초의 교정본을 만들었는데, 지금 전하는 논어가 바로 이것이다. 송나라 때 주희(朱熹, 朱子)는 <논어>를 <예기>의 한 편이었던 <대학>, <중용>, <맹자>와 함께 묶어 사서(四書)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네 권의 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주석을 달았다. 주희가 해설한 주석본은 이후 원, 명, 청 시대에 과거 시험의 교재로 채택됨으로써 다른 학파의 책들과 구별되는 '성경'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이루어졌고 각 편마다 학이(學而), 위정(爲政)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각 편의 처음 두 글자나 세 글자를 딴 것일 뿐 별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즉, 학이편이라고 해서 학문에 관한 말이 집중적으로 나오거나, 위정편이라고 해서 정치에 관한 내옹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논어의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해보면 대략 ① 개인의 수양에 관한 교훈, ② 사회 윤리에 관한 교훈, ③ 정치론, ④ 철학론, ⑤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준 가르침, ⑥ 사람에 대한 비평, ⑦ 공자 자신의 술회, ⑧ 공자의 일상생활과 제자들이 보낸 찬사로 나눌 수있다. 이 가운데 ①과 ②에 해당하는 것이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1/3을 차지한다. 논어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은 학이편 첫 문장이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고 평생 책을 읽고 공부하기로 결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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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뜨기 시작한 뒤부터 사교육계의 논술강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타 과목에 비해 논술강사들이 대접받는 이유는, 국어나 영어, 사회 등등의 교과목의 경우 학교와 학원이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논술은 아무나 손댈 수가 없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논술을 강의하지만, 요새는 철학전공자를 우대하는 추세다. 논술의 지문에 철학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게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된다.
사교육계뿐 아니라 논술은 출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내노라하는 출판사들부터 이름없는 출판사들까지 모두가 논술교재를 편찬하느라 공력을 들이고 있다. 논술방법론부터 시작해서, 나는 논술로 대학갔다, 와 같은 자기체험서, 또 철학사의 주된 내용들을 중고등학생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조리한 대중철학서들 등 논술관련 책도 참으로 다양하다. 심지어는 일반 고전으로 분류되는 소설 띠지에도 몇년도 논술 출제 지문이라고 하면 더 잘 팔린다. '논술'자만 들어가면 먹고 들어가는게다.
수많은 논술수험서(?)들 중에서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기획하고 내부 철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만든 이지고전 시리즈가 그것인데, 어려운 철학 내용을 쉽게 풀어놨다. 아마 이정도도 중학생에겐 꽤나 어려울 것이고,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이런 지문읽기에 익숙한 이들이나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쉽게 풀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지고전 시리즈에는 공자, 맹자, 노자, 플라톤, 마키아벨리, 이황, 모어, 이이, 정약용, 헤겔, 니체 등 동서양과 한국을 가리지 않고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텍스트로 삼고 있다. 이 책은 공자의 <논어>에 대한 해설부터 인물로서의 공자, 제자들, 공부내용등을 살피고, 실제 <논어>의 대목들을 쉬운 한글로 풀이하고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논어>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또 별책으로 본문에서 읽고 습득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일종의 논술문제집을 만들어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고전 따라잡기, 생각 넓히기, 논술 도전하기, 예시답안으로 구성된 이 별책부록(?)은 꽤 잘 만들어졌다. 공자의 <논어> 뿐 아니라 현대 사회문제, 또 다른 텍스트와 연계하여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한 권 한 권 제대로 공부하면 각각의 철학자들에 관해서 꽤 깊이있는 지식과 안목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까지 논술수험서 제작에 뛰어들어야하느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잘 만든 수험서 한 권은 안읽히는 전문서보다 차라리 낫다. 사회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열어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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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어떻게 보면 짧은 글입니다. 그래서 그냥 논어를 번역해놓은 책은 두께가 두껍지 않아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필사도 3번 정도 해봤고 작가의 해석이 들어간 논어도 몇 종류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항상 색다르게 와닿습니다. 이번에는 학급문고에 있었던 것을 한 번 골라서 읽어봤습니다. (예전부터 학급문고로 가지고 다니는 책을 꼭 다 읽어보겠다 다짐했는데 아직도 몇 권 못 읽었네요.)
단순히 번역된 책이 아닌 작가의 해석이 들어간 책은 저 같은 인문학 초보에게 좋습니다. 제가 그냥 읽어나갈 때 놓치기 쉬운 것들이나 너무 폭넓어 정리하기 어려운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거든요.
논어 학이편에서 처음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예전에 어릴 때 교과서에서 이 문구를 봤을 때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군대에서 논어를 보면서 색다르게 느껴졌던 문구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익히는 것만큼 기쁜 것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논어 속 공자는 제자들을 어떻게 교육했을까요? 그의 교육 방법을 엿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어를 몇 번 봤지만 몰랐던 내용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논어를 다시 봤더니 똑같은 내용도 제자들의 성향,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공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논어 속 증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생활한다면 대인관계 측면과 학습 측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과연 저는 주위 친구들에게 유익한 벗일까요? 아니면 해로운 벗일까요? 지금부터라도 유익한 벗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일부 현대인들에게 공자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그렇다면 동양 사상에 한 획을 그은 공자는 타고난 천재일까요?
동양에서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도 스스로를 옛것을 좋아하며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부지런히 찾아 배우다 보면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번 읽었던 강점 혁명에서 알게 된 나만의 강점을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 공자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도 도덕 시간과 윤리 시간에 꼬박꼬박 빠짐없이 수업을 들었지만, 솔직히 그의 사상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지금도 딱히 설명할 말이 없다. 그만큼 공자라고 하면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 먼저 들곤 했으니까. 오죽하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란 책의 이름만 보고도 반가워했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 책도 앞의 몇 장만 읽고 내용이 쉽게 추리할 수 있을 만큼 뻔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이미 알고 있던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란 설명을 또 읽으니까 공자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던 노자는 왜 4대 성인에 들어가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바로 전에 『노자의 도덕경』이란 책을 읽어서 확실히 아는데 노자의 사상은 범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생각이던데 말이다. 그래도 노자의 책보다는 이 책이 훨씬 재미가 있고 알기가 쉽다. 물론 노자의 범상치 않은 사상 때문이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필자의 역량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연유가 어쨌든 공자의 사상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기쁘다. 재미있게 읽어야 그 내용이 머리에 깊게 남을 것이 아닌가. 또한 명색이 어른인데, 중고등용 책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논어』가 어떤 책인지를 살펴본다면,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로 대표되는 세계 4대 성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손으로 글을 남기지 않았는데, 역시 이 책도 공자의 사후에 공자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전국 시대 쯤에 편찬한 글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한동안 사라졌다가 제나라에서 전해진 『제논어』, 노나라에서 전해진 『노논어』, 공자의 옛집 벽에 감추어 두었던 『고논어』, 이렇게 세 가지 판본이 나타났는데, 그 중 『노논어』를 중심으로 한나라 때 장우라는 사람이 만든 최초의 교정본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논어』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사서(四書)’는 『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말하는데, 이것은 송나라 때의 주희라는 학자가 『예기』의 한 편이었던 『대학』, 『중용』, 『맹자』를 『논어』와 함께 묶어서 ‘사서’라 부르고 이 네 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주석을 달았던 것에서부터 유래했다. 이후 원, 명, 청 시대에 주희의 주석본이 과거 시험의 모범 교재로 채택되어 다른 학파의 책과 구별되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인으로서 ‘사서’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선비라면 꼭 배워야 했을 교양의 근본 내용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극도로 적어질 이 때, 이런 식으로 알게 되어 기쁘다.
하여튼 『논어』는 총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요한 부분만 짤막하게 인용만 되었을 뿐 전체를 다 수록하지는 않는다. 각 편마다 학이(學而), 위정(爲政) 같은 이름이 붙어있는데, 각 이름은 각 편의 처음 두 글자나 세글자를 딴 것일 뿐 별다른 뜻이 없어 내용상 뒤죽박죽 섞여있을 때도 많이 있다. 주제별로 분류해보면 대략 ‘개인의 인격 수양에 관한 교훈’, ‘사회 윤리에 관한 교훈’, ‘정치론’, ‘철학론’,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준 가르침’, ‘사람에 대한 비평’, ‘공자 자신의 술회’, ‘공자의 일상 생활과 제다들이 보낸 찬사’로 구분되는데 앞의 두 가지가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니 공자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말 안해도 알 수 있다. 공자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대표적으로 인(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인’이라는 사상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실천을 강조하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수양이 요구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의 뚜렷한 형상은 알 수 없지만, ‘인’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있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 책에서는 효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만 몇 가지 공자의 말을 발췌해서 정리해주었는데, 독특한 것은 누가 물어봤느냐에 따라 공자의 대답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는 각 제자의 성품과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해설이 없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다.
가장 처음 공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공자가 제 뜻을 이루어내지 못한 실패자였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그의 사상을 인정해주고 제 뜻을 펼 수 있게 지지해준 권력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원초적인 슬픔을 가진 사람이란 사실은 그의 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논어』‘학이 편’의 첫머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학이-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p. 69)
이 말은 아주 유명하고도 익숙한 말인데, 배움에 대해서, 벗과의 관계에 대해서, 인정받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그 슬픔을 억누르고 (지금 공자의 현실처럼)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화내지 않는 것이 바로 군자임을 몸소 표현해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공자는 제 뜻을 펼치지 못한 실패한 사상가였지만, 자기 스스로 군자란 어떤 것임을 보여준 행동하는 사상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는 아주 실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공자 스스로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라 비유했던 노자는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따라가기에 벅찬 비범한 도인에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그를 본받기도, 배우기도, 따라하기에도 어려웠던 문제가 있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읽기에는 재미나지만 실천하기엔 문제가 있는 사상이었던 것으로 볼 때, 공자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실제적인 모델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자 그 자신이 정치판에 끼여들지 않고 그 더러운판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히 자연을 벗삼아 명상만 하면서 우리에게만 치열한 삶 속에서 배우기를 강권하고, 인하기를 종용하고, 군자가 되라고 했다면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정치판에 끼기를 소망했고 그 소망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배우고 익히기를 힘써 인(仁)하기를 원했던 역사적 사실은 우리네 범인(凡人)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인생 한 자락 한 자락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 같은 인생이자 명언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4대 성인에 노자가 아니라 공자가 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의 뜬 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치열하게 살다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의 경험담이 더 도움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자기 스스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계씨-9】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최고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고, 곤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고,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최하이다.”(p. 88-89)
【술이-19】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다.”(p. 75)
공자 자신이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서 부단히 노력해왔고 배우기를 힘썼기에 누구나 배우면 자기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스승이라니, 이런 스승만 있다면 누구나 다 배우기를 힘쓰지 않을까. 원래 수학을 무척 못했던 사람이 수학선생님이 되면 훨씬 더 잘 가르치고 동기 유발을 더 잘하는 것처럼 동양의 거대한 스승인 공자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부족해서 배웠고, 배워서 변화했고, 변화해서 조금은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런 스타 강사~~
【양화-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로지 가장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이 변화할 수 없다.”(p. 89)
【위정-1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p. 72)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그래서 이 책의 저자(황희경 교수)는 공자가 본래 매우 총명한 사람인데, 부단히 공부해서 ‘어질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인자(仁者)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이인 편)거나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옹야 편)는 식으로 지자(知者)의 심리를 잘 알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한문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가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 심오한 의미가 정말로 잘 들어맞기 때문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전까지는 지자가 왜 물을 좋아하는지, 인자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인-2】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하지 않은 사람은 곤궁함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안락함을 오래 누리지도 못한다. 인한 사람은 인이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p. 94) - 지혜로운 사람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인한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인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과 하나가 되어 편안한 경지와는 분명 차이가 있지요. 스스로 편안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옹야-18】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p. 74-75)
【옹야-21】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p. 102) - 생각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물처럼 막힘 없이 흐르는 사람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어 즐거운 것이지만, 끊임없이 동요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인의 경지는 나름의 신앙이나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산처럼 고요하고 안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공자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지자와 인자에 대해서 설파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仁)임을 천명했다. 자신도 인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부터 그가 인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스승이기에 아마도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얻어낸 주옥 같은 가르침을 제시하는 스승, 그런 스승을 닮기 원하며 스승의 가르침에 목숨까지도 다 받드는 제자, 그런 사제 관계가 있었기에 이런 명징한 삶의 가르침들이 이 때까지 전승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참고로, 『논어』에는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명언들이 많다. 그런 것만 읊어도 충분히 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짧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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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을 아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받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전에 대해서 조금은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냥 가족 성장소설이나 청소년 소설에는 관심이 많지만,
고전소설은 좀 어려워하더라구요.
그 특유의 어려운 단어들이 구석구석 포함이 되어 아이들의
관심이 조금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접하면서 생각을 넓히고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논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구요.
요즘은 논술의 비중이 상당히 커서 논술만 전문으로 하는 학원
도 생길 정도로 논술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논어.
아이가 공자라는 분의 이름은 알아도 그 분의 업적이라든가
그분의 책을 읽은 경험이 없어서 좀 어려워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책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나와서 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같이 되어 있는 논술공부도 겸할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한
책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불평하던 아이도 참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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