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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어빈 얄롬의 책들은 한결같이 집단심리치료와 치료사와 환자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핵심이 되는 네 가지 주제,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를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 놓는다. 저자가 보기에 정신의학이란 일차적으로 삶과 죽음에서 야기하는 실존적 고뇌들을 치유하는 일이다. 1999년에 발표한 심리치료 소설집《폴라와의 여행》도 여섯 편의 심리치료 이야기를 통해 실존적 불안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이 책의 원제는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인 '엄마와 삶의 의미'(Momma and the Meaning of Life)이다. <엄마와 삶의 의미>는 저자의 자서전적 환상으로 어머니의 유령과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가족 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성찰한 작품으로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는다면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허심탄회하게 속깊은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는 결심이 들게 만든다.
반면에 국역본은 두번째 작품 <폴라와의 여행>을 책제목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암환자를 대상으로 저자가 행한 최초의 집단치료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치료자 어브와 말기암환자 폴라와의 심리치료과정을 들려준다. 폴라는 불가지론자인 치료자와는 다르게 매우 종교적인 인물로 각종 뉴에이지 종교에 심취한 인물로 그려진다. 저자가 종교적인 폴라를 보면서 느끼는 거북한 감정이 내게도 낯설지 않다. 나는 무신론자인데 무신론이야말로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일신교에서 무신론으로 진행되는 종교적 진화의 종착점이다. 따라서 무신론도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해당한다. 즉 무신론은 결코 반종교가 아니다. 어브는 종교란 인간 조건의 불안감을 위로하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발전된 것이라는, 다음과 같은 프로이트의 종교 발생설에 공감한다.
"우리는 살아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즐거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를 기다리는 알지 못하는 목적, 참을성 있는 영혼, 하늘나라, 불멸성, 신, 부활-모든 환상들, 죽음의 비참한 쓴 맛을 없애는 모든 달콤한 생각들."(31쪽)
<매그놀리아의 위로>는 고통받는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성인으로 변화하면서 얻게 되는 위로와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사람과 변화시키는 사람 모두에게 나타나는 제한적인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매그놀리아는 두 다리가 마비된 70세의 뚱뚱한 흑인 여성으로, 살갗에 벌레가 기어다닌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일곱 가지 슬픔 치료 강의>는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치료자 어브와 배우자와 사별한 아이린이 긴밀한 소통을 하면서 함께 치료법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외과의사 아이린은 남편, 아버지, 어머니, 조카의 연달은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저자는 치료자가 각각의 환자를 위해서 새로운 치료법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료자는 환자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그 자신도 변화하는 법이다. 좋은 치료자는 끊임없이 진행되는 자기 발견의 항해에 있는 영원한 학생인 것이다. 저자는 치료자가 학생이 되고 환자가 선생이 될 때가 가장 이상적인 치료조건이 아닌지 묻고 있다.
<이중 노출>과 <헝가리 고양이의 저주>에는 반갑게도 《카우치에 누워서》(시그마프레스, 2007)의 주인공 닥터 어니스트 래시가 등장한다. <이중노출>은 치료자가 환자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치료자의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다. 치료자의 자기 개방으로 적절한 범주로는 치료 기제에 대한 개방, 여기/지금에 대한 개방, 치료자의 생애에서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개방 세 가지다. 미르나는 닥터 래시의 딕테이션이 녹음된 테이프를 차안에서 듣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닥터 래시와 환자인 미르나 사이에 역전이가 일어난다. 미르나의 이야기는 이 역전이를 포함해서 심리치료 이론을 구축하고 있는 인과관계의 역할 등의 주제를 탐색하고 있다.
<헝가리 고양이의 저주>는 매혹적인 이야기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난 작품이다. 닥터 래시는 치료를 그만두려는 환자 핼스턴에게서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의 매혹적인 여인과의 하룻밤 로맨스를 듣게 된다. 환상적인 원나잇스탠드를 보낸 핼스턴은 커다란 야수적인 고양이에 쫓기는 망상에 시달린 나머지 잠든 아르테미스를 남겨두고 그만 달아나고 만다. 래시는 전에 자신의 섹스파트너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이른바 유기의 경험 때문에 아르테미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직접 북 데포 카페로 가 아르테미스를 만난다. 아르테미스는 지성미와 육체미를 모두 갖춘 금발의 미녀로 토마스 만과 무질의 문학에 심취한 문학애호가이기도 하다. 래시는 아르테미스에게 반하고 그녀와 뜨거운 밤을 보낸 뒤 그 역시 거대한 고양이 메르게스에게 쫓기는 망상을 경험한다. 이 메르게스는 아홉 번째 삶을 사는 고양이로 아르테미스의 할머니에게 앙심을 품고 줄곧 그 자손들을 괴롭혀온 저주스런 존재이다. 닥터 래시는 메르게스와의 초현실적인 대화를 통해서 메르게스의 원한을 잠재우고 삼대에 걸친 저주를 풀어버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