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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거나 배운 역사가 완전한 객관성을 지닌 역사가 아니라는 것은 대학시절에 읽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의 계급과 관점에 따라 역사 자료의 선택과 기술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성(性)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모두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중심이 된 역사를 남성 역사가가 기술한 남성의 역사다. 여성계에서 절반의 역사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였고,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남성과의 관계 등 잃어버린 여성사를 찾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여성의 역사’가 아니라 ‘젠더의 역사’인 것은, 생물학적인 차이로서의 성(sex)을 넘어 문화적으로 구조화되고, 역사적으로 변해온 불안정한 성 차이를 일컫는 ‘젠더’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같은 연대기적 서술 방식이 아닌 주제별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제1장 [서론]에서는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페미니즘의 동향과 각계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제2장 [가족]에서는 남아와 여아, 남자와 여자의 경험이 가족 내에서 달라지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고, 제3장 [경제생활]에서는 생산수단과 노동, 소비 양식, 소유권 관계와 같은 경제구조의 변화가 젠더를 규정하고, 젠더가 규정되는 방식을 추적하고 있다. 제4장 [관념, 사상, 규범, 그리고 법률]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한 집단에서 의미하는 바를 문화적인 범주와 연계해 탐구하고 있다. 제5장 [종교]에서는 전통적인 종교와 세계 종교의 기본 교리 속에 나타난 젠더 양식을 살펴본다. 제6장 [정치생활]에서는, 고대국가에서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각 정부가 규정한 젠더의 존재방식과 여권운동의 추이를 들여다본다. 제7장 [교육과 문화]에서는 문학, 미술, 건축, 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에 젠더가 나타나는 방식과 문화생산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8장 [섹슈얼리티]에서는 성적 매력과 성적 활동이 어떻게 보이고 생성되는지 그 방식을 탐구한다.
이상에서 보이는 젠더의 역사는 한 마디로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 정치, 경제, 인격의 차이로 굳어져온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느 나라고 , 지금도 모권제 사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인도의 일부 부족을 제외하면, 가부장제 하에서 내려온 모든 역사는 여성이 남성에게 철저히 종속되어온 역사임이 드러난다. 원시 모권제의 존재를 주장하는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바흐오펜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 엥겔스가, 원시 모권제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로 이행하게 된 원인으로 잉여 생산물의 증가로 인한 사유재산의 축적이 부계 혈통의 필요성을 가져오고, 국가가 성립하게 된 역사적 전단계가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 외엔 여성이 역사의 중심이었다는 객관적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엥겔스의 표현대로 세계사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전 세계적 확대로 인해 여성의 재산권과 참정권 등이 법으로 인정받고, 특히 세계 1.2차 대전을 전후하여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고 사회, 경제, 정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에 여성을 남성과 가정에 종속시키는 빌미가 되었던 임신과 출산, 양육과 돌봄은 사회정책의 확대와 더불어 여성을 가정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젠더의 차이가 완전히 해소되는 날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역사의 방향은 분명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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