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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의 원류를 찾아서
마조히즘masochism 혹은 매저키즘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대략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가? 그럼 어원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마조히즘과 더불어 사디즘sadism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며, 각각 피학대 성 도착증과 학대 음란증이라는 뜻도 알 것이다. (굳이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더라도 음란물에서 채찍이나 벨트로 맞는 장면을 떠올려도 좋다.) 그렇지만 마조히즘이나 사디즘의 어원을 아는 이들은 많이 있을까? 두 용어의 어원은 모두 작가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전자가 독일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이름에서, 후자는 프랑스 작가 사드의 이름에서 명명되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자허마조흐의 대표작이자 마조히즘의 원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마조히즘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과 원전격인 문학적 내용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자허마조흐의 생생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미적인 문체까지 더하며 문학적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소설은 화자 ‘나’가 친구 ‘제베린’의 체험기를 읽는 액자식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나’의 비너스 꿈을 시작으로, 꿈속의 모습을 제베린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그림에서 확인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제베린의 여성 편력을 지적하며, 가혹했던 그의 과거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실재하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 즉, ‘반다’라는 여인에 대한 노예로서의 위치와 채찍질로 점철된 기억이었던 것이다.
......“‘망치 아니면 모루가 되어야 한다’는 괴테의 말만큼 남녀 관계를 훌륭하게 지적한 말은 없다네. 말이 난 김에 꿈속의 비너스 여인도 그 점에 동의할 거야. 남자의 열정 속에 여자의 권력이 들어있어. 그런데 남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여자는 그 권력을 이용할 수 있어. 폭군이 되느냐 아니면 여자의 노예의 되느냐 하는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네. 남자는 헌신하는 만큼 머리에 멍에를 뒤집어쓰고 채찍 맛을 보게 될 거야.” (p. 22-23)
“제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아름다운 여자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p. 77)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말 속에는 남녀사이의 역학관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는 신이라는 위치를 가진 상위의 존재인 것이다. 또한 소설 속 제베린의 모습을 보듯 노예(제베린)로서 주인(반다)에 대한 주종의 관계로, 그녀를 지배자에 대한 숭배의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모피는 하위자에 대한 성취물로 볼 수 있으며 힘과 미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채찍은 이러한 관계를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자리하며 폭력과 잔임함을 나타낸다. 즉,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에서의 관계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로 동일한 위치 혹은 동반자가 아닌 ‘모루가 아니면 망치’ 상하, 주종, 지배자와 피지배의 관계로 대치된다.
제베린과 반다의 모습에서 보듯 마조히스트와 사디스트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현재의 제베린은 하인을 혹독하게 다루는 사디스트로 변모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럼 두 인물에게 아니 어떤 이를 ‘마조히스트로 사디스트로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이 문제는 다른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p.s. 시기를 같이하여 사디즘의 사드 또한 이 책과 나란히 그의 「사랑의 범죄」라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책에서>
저는 본능 속에는 뭔가 성스러운 것, 심지어는 유일하게 성스러운 것이 있다고 인식했습니다. 또한 여자와 여자의 미에는 신적인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여성에게는 종족 보존의 임무라는 가강 중요한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자연이 의인화된 이시스의 신이며 남자는 여신의 사제이자 노예입니다. 여자는 자연처럼 남자에게 잔인합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충실했을지라도 더 이상 필요 없으면 내쫓아버립니다. 반면에 여자의 학대뿐만 아니라 여자에 의한 죽음까지도 남자에게는 즐거운 행복이 됩니다. (p. 75)
채찍은 빠르고 강하게 내 등과 팔을 내리쳤다. 채찍질 하나하나가 내 살을 파고들어 여기저기서 피가 흘렀지만 고통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그 고통은 내가 숭배하는 여인, 언제든지 내 생명을 바칠 용의가 있는 여인이 주는 것이니까. (p. 88-89)
나에게 이기심과 오만함, 잔인성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그 첫 번째 희생자가 되어야 해요. 나는 이제 정말로,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는 한 인간을, 나보다 더 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한 남자를 다스리고 학대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요. 특히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말이에요. (p. 236)
“......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시선은 천장에 멈췄다. 거기에는 블레셋인들이 데릴라의 발치에서 삼손의 눈을 빼고 있었다. 이 그림이야말로 정열과 욕망, 그리고 여자를 향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영원한 비유이자 상징처럼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삼손같이 될 것이다. 또한 좋든 싫든 우리 모두가 자기가 사랑한 여자로부터 결국은 배신당할 것이다. 그 여자가 조끼를 입었든 검은담비 모피를 입었든 간에.” (p. 240-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