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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인 Shine> 오스트레일리아의 스콧 힉스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영화로, 평생을 두고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으며, 피아노 소리는 실제 주인공이 쳤다고 한다.
아들이 술집에서 두들겨 맞았다고 때린 이들을 찾아가 꿇어 앉히고는 몸소 주먹과 몽둥이로 때리고, 아들한테 맞은만큼 다시 때리라고 한 어느 재벌 회장 때문에 요즈음 시끄럽다.
<샤인>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버지의 치우친 마음 때문에 아들은 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 끝에서야 다시 본디 자리로 돌아왔으니, 다 잘된 것일까?
2. 처음은 어느나라 말인지 모르게 나와 "이거 이상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머리 속이 헝크러진 사내의 영어라 알아 듣기가 어려웠다.
데이빗 헬프갓(학생시절-노아 테일러, 어른-제프리 러쉬)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인 피터(아민 뮬러 스탈)의 강요로 피아노를 배웠으나 솜씨가 있어 잘 친다.
그런데 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살아야 한다. 발표에 나서서도 연주할 곡(쇼팽의 플로네즈)마저도 아버지가 정해준다.
온화하게 생긴 생김새와 달리 이상한 아버지다. 나이에 맞지 않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치게 하지 않나...
요즈음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이다. 가기 싫어도 다른 아이들한테 질 수가 없다며 온갖 학원과 과외에 아이들을 보낸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오는 어린 아이들, 이들과 데이빗은 다를 바가 없다.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까지 똑 같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아버지는,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글쎄, 참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때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어버이 마음대로만 하려니, 그게 사랑일까? 어버이의 욕심일뿐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피붙이 끼리의 일은 조금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마음대로 하면서 제 솜씨를 닦을 수 있으니까.
아버지 피터는 어렸을 때 바이얼린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중에 아버지(데이빗의 할아버지)가 부셔버리는 바람에 제 뜻대로 하지를 못해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그래서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면서 음악에 미치도록 몰아간다.
어렸을 때 어떻게 배우고 자랐느냐에 따라 나이가 들어 제 아이들한테 하는 방식이 나온다.
데이빗의 아버지는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아이들한테 하도록 해주면서 "너는 운이 좋은 아이야. 음악을 할 수가 있으니..." 말 하지만, 거기서 끝맺어야 하는데도 아버지가 좋아할 일만 하도록 시킨다. 데이빗이 알아서 하도록 가만히 두면 될 것을, 자꾸 몰아부치니 데이빗이 견딜 수가 없다.
데이빗이 대회에 나가서 잘 하는 바람에 미국으로 공부하러 오라고 초청장을 보냈지만, 집을 떠나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아버지는 초청장을 불태우고 못 가게 한다.
그토록 아들이 피아니스트로 잘 되길 바란다면 큰 물에서 놀도록 보내야 할텐데, 집에서 끼고 안 놔준다. 그 아버지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더 잘 하길 바라면서도 더 배우려고 집을 떠나는 일엔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니... 아들을 위하는 듯 하면서도 아버지가 정한 울타리 안에 사랑하는 아들을 가둔다.
3. 시간이 흘러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학교에서 데이빗한테 장학생으로 와달라고 한다. 그 때도 아버지는 집을 떠날 수 없다며 억지를 부린다. "이 집을 나가면, 너는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는 데이빗이 아버지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 더 이상 아버지는 나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놓는 사람이니까 떠나기로 한다. 아버지가 나무라는 소리를 뒤로 하고...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억지를 부리거나 잘 하지 못하면 집을 나가야 한다. 가만히 그 밑에서 있다가는 제 삶이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피아노를 치는 데 솜씨가 있어 곧 천재 소리를 듣는 데이빗, 어렵다고 아무나 치지 않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데, 감동을 주는 솜씨에 놀라 듣고 보는 이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런데 삶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천재적인 솜씨를 부려 최고 상을 집으로 보내지만, 머리 속은 뒤헝크러져 반쯤 돌아버린다. 하늘은 천재들을 오래 두고 못 보나?
그래서 런던에서 집 가까이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영국으로 떠난 아들이 못마땅해서... 때리면서도 아들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던 아버지가 맞을까?
사랑과 미움은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까? 차라리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면...
4. 이 영화로 제프리 러쉬는 1997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다 받았다. 어눌한 오스트레일리아 영어로 몸 속에 천재적인 솜씨를 감추고 살아가는 피아니스트 모습을 잘 보여준 값이다.
나중에 아내로 나온 점성술사 길리안(린 레드글레이브)의 도움으로 데이빗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데이빗에 눈길을 오래 주다보니 길리안의 자리가 영화에서는 돋보이지 않아 아쉽다.
촬영이 돋보인다. 데이빗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얼마나 멋있는지 모른다. 물 흐르듯 손가락이 건반을 오가며 소리를 내는데 눈이 즐겁다.
화면은 깨끗하고, 소리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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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예술가는 외롭다고 했던가. 예술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야만 했으니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그들의 삶은 고통 속에서 얻어진 한 알의 진주처럼 힘든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예술가로 살게 했을까 궁금하다. 해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 <샤인>을 선태하게 되었다. 영화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남자,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인생 이야기다. 아들 데이빗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한 아버지 피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데비잇을 가르친다. 1등이 아니면 결코 잘한 게 아니라는 강한 신념을 지녔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을 한 데이빗에게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린다. 피터는 아들의 유학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고 오로지 자신만이 아들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시 찾아온 영국 유학 기회를 데이빗은 받아들인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가족이 아닌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왕립 음악 대학에서 데이빗의 놀라운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세실 교수는 라흐마니노프 3번 연주를 지도한다. 피나는 노력 끝에 데이빗은 혼을 다한 연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을 떠나온 죄책감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진다. 아픈 몸으로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데이빗은 어린 시절의 정신 상태로 멈춰 더 이상 자라지 못한 채 생활한다. 그러니까 그는 과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피아노를 연주할 때만 생기가 넘친다. 그런 데이빗를 사랑하게 된 점성술사 길리안은 그와 결혼한다. 길리안으로 인해 데이빗은 점차 안정을 찾고 다시 연주회를 연다. 그의 연주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리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화해를 하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길리안과 함께 아버지의 묘를 찾고 나누는 대화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세월을 흘러가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야 한다. 모든 건 다 때가 있으며 우리는 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다. 아버지인 피터가 그토록 데이빗을 세상 밖으로 보내기 두려워했던 이유는 자신의 상처 때문이다. 잔인하게 죽은 부모님, 혼자 남겨진 자신의 모습을 데이빗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 자신만의 방식이 옳다고 믿지 않았다면 데이빗인 신경쇠약으로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피터의 트라우마가 온전하게 치유되지 않았기에 데이빗에게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데이빗에게 길리안이란 존재가 있어 그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주었기 때문에 갇혀 있던 그가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장 처음은 아닐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내 아버지와 나의 관계, 더불어 나와 아이의 관계를 바라본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에게 무조건 바라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건 내게 속한 욕망을 충족시킬 뿐, 아이의 마음을 배제한 건 아닐까. 들어주기, 바라봐 주기가 아니라 무조건 무언가를 강요하고 피터처럼 내가 정해놓은 그 안에서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 크나큰 상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더불어 어떠한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의견을 나누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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