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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는 왕조의 역사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물로써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람을 우리는 사관으로 기억하며 그들에게 주어졌던 역할과 의무를 함께 기억한다. 사관은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담당한 춘추관의 예문관 소속으로 사관 8명(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은 역사 기록에 관련된 직무만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한림翰林이라고도 하였다.”비교적 낮은 직위의 신분이었지만 항상 임금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왕도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들이었다. 매우 엄격한 선발기준에 의해 임명되었고 그 신분을 보장받았으며 정부의 중요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사관제도를 두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사관 제도는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사건, 임금의 언행, 관리들의 공과, 그 시대의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관의 기록인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왕을 포함해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박준수의 ‘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은 바로 이 ‘사초’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계유정난의 주인공들인 수양과 공신들을 한 축으로 하고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던 한 축이 그 사건의 역사적 기록에 대한 사명을 가지면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수양이 죽고 난 후 성왕이 실록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두고 왕과 갈등을 겪는 사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이 이야기 흐름에 덤으로 여자 사관을 등장시켜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여자 사관의 필요성을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자고로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는 신하들은 두 부류가 있다고 전재하며 한 부류는 사관으로 자신들이 직접 알 수 없는 궁궐의 깊은 곳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부류로는 권신으로 자신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왕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전재가 여자 사관을 상정하게 하는 근거다. 사관이 기록한 사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관의 역할이다. 그래서 사관의 기록물인 사초는 시비를 가리지, 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사관이 권력의 눈치를 살펴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일종의 면책권까지 주었다. 그만큼 역사의 기록을 사실에 근거해서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어차피 역사란,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지.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라네. 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 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일세.”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때의 해석 또한 그 해석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민감한 상황에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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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군 대감, 계유년의 일이……” 황(예종)이 하던 말을 갑자기 뚝 끊더니 구석의 사관을 바라보았다. 순간, 사초를 쓰던 검열 이지벽의 붓대가 멈추었다. “사관은 그만 물러가라.” 이지벽이 붓대를 놓고 일어났다. 임금이 신하와 독대를 하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42~3면)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 광해에 보면, “광해군 8년, 2월 28일, 광해군 일기에는 이러한 글귀가 남아있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15일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사관들은 어찌하여 그날의 기록을 실록에 기록하지 못했던 것일까? 애초에 몰라서 처음부터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사관이 기록한 것을 다시 지운 것일까? 이 영화를 바로 이 15일간 사관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았던 내용을 모티브로 제작되어 큰 흥행을 거둔 바 있다.
직필은 살아서 죽고, 곡필은 죽어서 죽는다. 사관은 바로 칼날 위에서 사는 사람인 것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조선왕조 500년간의 방대한 기록을 이만큼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록하고 남기려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남은 기록은, 역사는 과연 진실 된 기록인가? 사관들은 그 날의 기록을, 역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남달랐다. 그리고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과 당상관들이 유일하게 두려워 한 존재들 역시 사관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항상 사관들의 위에 있었다. 선왕이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그 왕을 보필했던 신하들도 덩달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세조의 아들인 금상은 말할 것도 없고, 수양을 왕으로 만든 정난공신들은 실록 편찬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를 하고, 실록청의 인사들도 자신의 사람들로 꾸미고자 하였다. 이는 실록 편찬의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조치로 즉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당사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쓰고자 하는데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임금에게 있었다.
“우선 입시사초들을 과인이 먼저 살펴보면, 어떻겠소?” 깜짝 놀란 한명회가 얼결에 용안을 힐끔 거리며 “전하께서는 사관이 쓴 사초를 열람하실 수 없나이다.”
왕실 혹은 왕의 기록인 실록은 사관이 기록을 하는데, 아무리 군왕이라고 해도, 사관이 기록한 실록은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찍이 대행대왕(수양)께서는 김종서, 황보인과 같은 역신들을 물리치시고 또한 보위에 오르신 뒤에도 여러 번의 역모를 제압하여 사직을 지켜내셨으니, 창업에 버금가는 큰 공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니, 대행대왕의 묘호를 세조로 함이 옳지 않겠소?” 임금이 대행대왕의 묘호를 ‘종’이 아닌 ‘조’로 고집하는 것은, 계유정난과 노산군의 일을 재조의 공덕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묘호를 정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양의 묘호를 비난하는 괴서가 저자 곳곳에 뿌려지는 일이 발생한다. 묘호 비난이란 다름 아닌, 수양대군의 묘호를 ‘종’이 아닌 ‘조’로 정한 사실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즉,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임금을 어찌 창업지주의 공이 있는 것처럼 묘호를 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가장사초에는 이름을 쓰지 않네. 사초에 이름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사관의 붓이 위축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초에는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이 관례네.” “실록을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군요.” “당연하지. 글자 한 자에 따라 역사가 바뀔 수도 있으니”
은후의 표정은 시종 진지했다. 실록 편찬에 참여하는 일이 왜 위험한지 그녀는 세주의 이야기을 듣고 나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기도 하였는데, 가장사초가 궐로 납입되게 되면 대신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임금마저도 선왕의 치세에 흠이 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다시 궐에 피바람이 불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은후는 여사가 되고자 마음 먹었던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새삼스레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한편, 세주에 대한 감정이었다. 세주와 함께 하는 동안 세주와 은후 둘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세주가 옛 정혼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은후는 혼란스러워하며 머리 속에는 온통 세주에 대한 생각들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세주에게 자신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밝힐까?”하며... 소설은 시종(始終) 후세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관들의 이야기로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역사는 권력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쓰는 이들은 사관이다. 사관의 붓 끝에서, 그들이 쓰는 글자 한 자에 따라서 역사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관이라 하더라도 한 군주의 치세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일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인 동시에 또한 몹시 위험한 일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단종과 세조 시대 기록은 더구나 내용이 복잡하고 예민할 수 밖에 없었는데, 수양의 경우 임금이 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임금이 된 후에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 또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죽음의 끝에는 자신의 조카 노산군, 단종도 있었다. 단종애사의 비극적 군주 단종.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숙부 수양.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단종실록과 세조실록은 과연 얼마나 진실 된 기록일까? 소설 사관은 예문관 대교 윤세주와 여사 서은후을 주인공으로 이 때의 일을 흥미롭게 매우 긴박한 시간 속에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단종과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배경으로 한 소설, 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 역사를 지키려는 자 VS 역사를 고치려는 자, 조선 역사 기록의 비밀이 소설 사관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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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권으로 된 600여페이지의 긴호홉을 해야 하는 소설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슬픈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두 사람이 안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그 기억들을 감출수 밖에 없었으며 그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그럼으로서 두사람은 가까워 질 수 있었으며 서로가 오랜 시간 기다릴 수 있었던 힘이었다.. 사관으로 들어왔던 서은후는 사관으로서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속기를 연습하게 된다..왕의 말을 고스란히 담아야 하기에 왕의 언행 하나하나 신경써야 하였고 토씨하나 틀리지 말았어야 했다..그렇게 속기를 배움으로서 왕의 말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사관으로서 기본 자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수양대군이라 불리는 세조 이유(李維)는 붕어하시고 그 뒤를 이어서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 이황(李晄)이 조선의 8째 임금 예종으로 추대가 된다..예종이 먼저 시행했던 것은 자신의 아비인 세조의 좋은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감추는 것이었다..이렇게 세조의 치적이 담긴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60명의 사관을 모으고 그 안에서 사관의 직필이 담긴 가장사초(家藏史草)를 모두 수집하기에 이른다.. 왕의 곁에서 왕의 기록을 남기는 사초와는 다른 가장사초(家藏史草)에는 임금의 기록이 아닌 조정 대신들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그들의 공과 과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었다..그러나 예종에 이르러 가장사초에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사관들의 이름과 본관이 쓰여진 가장사초를 제출하게 되고,사초를 고쳐서 올렸던 사관들은 문책을 당하고 사관들을 덜덜 떨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예종이 이렇게 가장사초를 모으려 했던 것은 바로 노산군의 죽음과 관련된 사관들의 기록들 중에서 문제가 되는 사초를 걸러내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걸러내는 걸러내는 과정에서 감추어진 가장 사초를 찾아내게 된다. <사관 上>이 사관으로서 시작하는 서은후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면 <사관 下> 는 사관으로서 서은후가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특히 도도한 기생 설화의 마음을 훔쳤던 서은후..그 두사람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다시피 이어지지 못한다는 걸 알 수가 있으며 설화와 서은후의 관계는 바람의 화원에 나왔던 신윤복(문근영 분) 과 정향(문채원 분) 처럼 애틋함과 아픔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정난일기 분실사건과 괴서 사건들의 배후가 밝혀지면서 그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알다시피 서은후가 사관이 되었던 그 이유와 서은후의 사부 윤세주의 비밀까지 함께 드러나면서 결말이 드러나게 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속의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 진실을 드러내는 자와의 시소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진실을 드러내는 자는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걸 알 수 있으며 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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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상권에서는 여자 사관의 직임을 맡게 될 서은후가 예문관에서 사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가는 동안의 이야기와 정난일기가 사라졌다 돌아오고 얼마 후 괴서가 나붙게 되면서 일어나는 파란을 담고 있습니다. 수양대군의 죽음으로 마무리를 맺은 사관은 하권에선 또 어떤 내용들이 펼쳐질지 기대를 담고 책을 들었더랬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관들의 가장사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임금 황으로 인해 역사를 고치려는 자와 역사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서 피바람이 불게 됩니다. 사관 하의 마지막 즈음에 노산군과 수양대군이 나누었던 대화를 병풍 뒤에서 있던 사관 임기건이 몰래 듣고 기록한 사초의 한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요. 이 문장이 사관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 옮겨봅니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수양대군의 부도적한 행위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행위가 훗날 정당한 일로 후인들에게 기억될까 몹시 두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관들의 이야기였기에 뜻 모를 단어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국어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읽느라 좀 더딘 읽음이였지만 은후와 세주의 로맨스와 더불어 진실을 두고 벌어지는 역사전쟁을 다룬 책이라 생각하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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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서 은후는 예문관의 외사로 나갈 한 사람이라고 손광림의 소개로 남장한 채 들어오게 되며 세주는 사관의 직무를 가르치고 둘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른 감정을 갖는다. 은후는 세주를 연모하지만, 세주는 은후를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되돌아온 정난일기와 정난공신과 수양의 대립, 그리고 괴서와 살인 사건으로 그들간의 대립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앞으로 실록에 기록될 내용 즉, 단종에게서 양위 받은 수양의 보위에 대해 사관이 기록한 사초로 수양은 편치 않은 말년을 보내며, 붕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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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 세조의 묘호를 지극히 드높게 하기 위해 임금이 된 예종 황은 신하들의 뜻을 여러 번 바꿔 세종대왕보다 큰 업적을 가진 분이라는 뜻으로 ‘조’가 들어간 세조라, 시호는 세종대왕보다 더 많은 20자로 만든다. 그리고 세 번째 괴서가 등장하는데 이와 같은 묘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예종 황은 실록청을 세워 자신 대에서 아버지 세조의 업적 및 왕권 계승에 대한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하고, 정난공신 한명회, 신숙주에게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다.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두 번째에 오른 한명회는 계략을 써서 황에게 정치적으로 젊은 피였던 병조판서 남이를 역적으로 몰아 없애버린다.
정난일기와 괴서 사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수양 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파헤치는 정난공신들은 그 사건에 수양의 가노였던 막동이 연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며 세주와 은후가 포쇄를 위해 청주에 내려간 일로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된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세워진 실록청에 사관들이 집에서 보관하는 기장사초를 납입하라고 하고, 기장사초에는 본래 이름을 적지 않게 되어 있음에도 이름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하는데, 과연 역사는 어떻게 계유정난을 기록할 것인가. 수양의 뜻을 이어받은 예종 황과 정난공신들은 그들을 미화한 역사 남기기에 성공할 것인가. 더불어 세주를 연모하는 은후는, 세주가 옛 정혼자를 찾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는데, 이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작가들은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서 역사물이나 시대물을 만든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인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사초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사초를 쓰는 사관들이 정직하지 않거나 외압을 받고 작성하게 되면 조선왕조실록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사관은 정 9품에서 정7품까지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직급으로는 낮으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조례의 내용을 혹시 제대로 받아 적지 않았을 경우, 조례가 끝나고 따로 관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토대로 사초를 작성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할 필요가 없다. 따로 만나서 개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답을 한 사람의 사적인 의견이 들어갈 수 있으니, 만일 무언가 놓쳐서 사초에 기록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부득이 개인의 의견을 써야 되면, 그것은 사관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관이 그 시초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만인지상 임금조차 자신의 이야기는 다음 대에서만 열람이 가능하고 또한, 사관은 늘 임금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기에 어디 숨을 수도 은폐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보인 예에서처럼 수양대군은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음에도 사관이 혹시나 봤을까봐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양 자신의 보위가 정당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화해 보려고, 또 정당성을 부여해 보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또한 예종 또한 아버지가 당위성을 확보해야만 자신도 정통성의 뿌리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일을 도모한 정난공신의 주축인 한명회를 비롯해서 신숙주, 최항, 홍윤성 등이 괴서의 출처가 되며 수양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을 찾아 없애고자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안위마저 위협당하고 있으며 후세에 자신들 또한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당위성을 확보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더이상 쿠데타라고 불리지 않고 혁명이라 불린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세조가 그러했듯 잘못된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한 피치 못한 과정으로 치부되며 당위성이 확보된다. 그러나 그릇된 역사는 잘못된 대로 후세에 제대로된 평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노산군이 선위를 하기 바로 전날 나눈 대화를 일부러 사관을 몰래 들여 사초에 남기게 한 것처럼,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요, 그저 후세에 우리들이 잘못된 일들이 정당한 일로 둔갑되어 그릇되이 기억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시끌시끌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미 계획대로 진행 중에 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역사에 대한 비판도 어렵게 되었으며 2017년도부터는 국정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자녀들.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고 저열한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꾼다.’라고 말한 전우용 역사학자의 말이 새삼 다가온다. 여사관을 목표로 남장하여 들어온 은후와 세주와의 로맨스를 살짝 덧입혀, 올바른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귀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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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서 은후는 예문관의 외사로 나갈 한 사람이라고 손광림의 소개로 남장한 채 들어오게 되며 세주는 사관의 직무를 가르치고 둘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른 감정을 갖는다. 은후는 세주를 연모하지만, 세주는 은후를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되돌아온 정난일기와 정난공신과 수양의 대립, 그리고 괴서와 살인 사건으로 그들간의 대립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앞으로 실록에 기록될 내용 즉, 단종에게서 양위 받은 수양의 보위에 대해 사관이 기록한 사초로 수양은 편치 않은 말년을 보내며, 붕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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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 세조의 묘호를 지극히 드높게 하기 위해 임금이 된 예종 황은 신하들의 뜻을 여러 번 바꿔 세종대왕보다 큰 업적을 가진 분이라는 뜻으로 ‘조’가 들어간 세조라, 시호는 세종대왕보다 더 많은 20자로 만든다. 그리고 세 번째 괴서가 등장하는데 이와 같은 묘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예종 황은 실록청을 세워 자신 대에서 아버지 세조의 업적 및 왕권 계승에 대한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하고, 정난공신 한명회, 신숙주에게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다.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두 번째에 오른 한명회는 계략을 써서 황에게 정치적으로 젊은 피였던 병조판서 남이를 역적으로 몰아 없애버린다.
정난일기와 괴서 사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수양 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파헤치는 정난공신들은 그 사건에 수양의 가노였던 막동이 연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며 세주와 은후가 포쇄를 위해 청주에 내려간 일로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된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세워진 실록청에 사관들이 집에서 보관하는 기장사초를 납입하라고 하고, 기장사초에는 본래 이름을 적지 않게 되어 있음에도 이름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하는데, 과연 역사는 어떻게 계유정난을 기록할 것인가. 수양의 뜻을 이어받은 예종 황과 정난공신들은 그들을 미화한 역사 남기기에 성공할 것인가. 더불어 세주를 연모하는 은후는, 세주가 옛 정혼자를 찾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는데, 이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작가들은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서 역사물이나 시대물을 만든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인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사초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사초를 쓰는 사관들이 정직하지 않거나 외압을 받고 작성하게 되면 조선왕조실록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사관은 정 9품에서 정7품까지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직급으로는 낮으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조례의 내용을 혹시 제대로 받아 적지 않았을 경우, 조례가 끝나고 따로 관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토대로 사초를 작성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할 필요가 없다. 따로 만나서 개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답을 한 사람의 사적인 의견이 들어갈 수 있으니, 만일 무언가 놓쳐서 사초에 기록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부득이 개인의 의견을 써야 되면, 그것은 사관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관이 그 시초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만인지상 임금조차 자신의 이야기는 다음 대에서만 열람이 가능하고 또한, 사관은 늘 임금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기에 어디 숨을 수도 은폐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보인 예에서처럼 수양대군은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음에도 사관이 혹시나 봤을까봐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양 자신의 보위가 정당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화해 보려고, 또 정당성을 부여해 보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또한 예종 또한 아버지가 당위성을 확보해야만 자신도 정통성의 뿌리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일을 도모한 정난공신의 주축인 한명회를 비롯해서 신숙주, 최항, 홍윤성 등이 괴서의 출처가 되며 수양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을 찾아 없애고자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안위마저 위협당하고 있으며 후세에 자신들 또한 수양대군과 마찬가지로 당위성을 확보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더이상 쿠데타라고 불리지 않고 혁명이라 불린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세조가 그러했듯 잘못된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한 피치 못한 과정으로 치부되며 당위성이 확보된다. 그러나 그릇된 역사는 잘못된 대로 후세에 제대로된 평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노산군이 선위를 하기 바로 전날 나눈 대화를 일부러 사관을 몰래 들여 사초에 남기게 한 것처럼,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요, 그저 후세에 우리들이 잘못된 일들이 정당한 일로 둔갑되어 그릇되이 기억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시끌시끌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미 계획대로 진행 중에 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역사에 대한 비판도 어렵게 되었으며 2017년도부터는 국정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자녀들.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고 저열한 지도자는 역사책을 바꾼다.’라고 말한 전우용 역사학자의 말이 새삼 다가온다. 여사관을 목표로 남장하여 들어온 은후와 세주와의 로맨스를 살짝 덧입혀, 올바른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귀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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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 상,하 청년정신 박준수 지음 예전에는 왕과 정치인들의 행동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라면 요즘은 파파라치가 있다. 의미야 조금씩 다르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보여주는것이 보여지는대로 기록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문자, SNS등 많은것에 자신의 모든것을 들키도 하니 어쩜 더 심할수도 있다. '왕을 기록한 여인 사관'도 어찌보면 아주 가까이 밀착되어 왕의 모든것을 알아내고 하는것이니깐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조선에 대해서 자세히 알수 있었던것이겠지만 이런상황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서 왕이 자신의 기록을 보고자 하고 궁금해한것은 어찌보면 당연한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잊은 만족에게 미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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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왕들과 신하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접하여 옛 임금들의 궁의 생활과 권력다툼에 대한 내용은 익히 알고 있지만, 역사의 편찬을 맡아 초고를 쓰는 일을 맡아보던 사관을 소재로한 내용 을 접했던 기억은 없는 거 같다. 이 책은 책제목과 같이 임금의 일거수일투족과 대화 내용들을 낱낱이 기록하는 사관을 주제로 이야기 가 전개 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세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형 문종이 사망하자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인 세조가 왕인 시대의 이야기이다.
수양대군은 지병으로 병이 깊어지는 가운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후대에 기록으로 남을까봐 전전긍긍 하며 사관들의 기록에 많은 신경을 쓴다. 실록 편찬의 자료로 사관이 직무상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작성한 국정 기록인 사초는 사관이 누구의 눈치 도 보지 않고 진실만을 기록할 수 있게 임금은 볼 수 없도록 선대때부터 지켜져 왔다. 볼 수 없기에 더욱 신경쓰이고 후대에 자신이 어떻게 전해질지 지은 죄가 많은 왕은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욱 세밀한 임금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여자 사관인 주인공 은후가 등장하며, 은후의 사부인 세 주와 은후의 사랑이야기가 가미 되면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왕과 뜻을 같이한 신하들도 사초에 자신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여 기록이 남 기를 바라지만, 역사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비밀조직들이 등장하며 직필과 곡필의 경계에서 이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수양대군이 죽고 아들 황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만, 아들 또한, 역사 편찬에 아버지의 기록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초를 보고자 애를 쓴다.
이 책을 읽으며, 투철한 사명감과 진실된 역사의 기록을 담당하는 사관들의 애환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정치적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직필을 하여 그것을 지켜 후대에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사관의 역할에 대해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또한,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는 역사 기록이 과연, 직필인지 곡필인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 많은 의문과 궁금증이 생겼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진행되는 현 시점에 진실된 직필기록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 기록은 후대에 어떻게 남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수양대군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행위가 훗날 정당한 일로 후인들에게 기억될까 몹시 두렵기 때문이다. p310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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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려는 자들의 사명
제목에 '왕을 기록하는 여인'이라고 한 점이 조금은 아쉽다. 역사 로맨스였다면 정말 역사 로맨스 쪽으로 완전히 가버리든지, 역사서로서의 문학이라면 정말 '사관'의 사명과 투쟁을 더 중심으로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건 로맨스이면서도 역사서였는데,,, 오히려 로맨스가 역사서의 순수한 측면을 잃어버리게 만든 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남장 여인을 조금 더 미스터리하게, 그래서 궁궐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했어야 했다.
책 자체는 '왕을 기록하는 여인'인데, 남장 여인이 정작 왕을 기록하는 것은 딱 한 번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세조와 공신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적으려는 것을 사관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이 책에 나오는 사관의 역할, 사명,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절실하게 다가올 듯 했다.
마지막에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무리들에게 "왜곡된 역사도 역사다."라며 그러한 왜곡된 역사도 나중에는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세주의 말이 다가왔다. 지금 그렇게 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무모한 행동도 나중에 그 나름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는 이긴 자들의 것이 된다. 하지만 패배한 자들의 역사 또한 이긴 자들의 역사 밑에서 숨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게 올바른 역사인지 보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정해진 것이다. 역사를 국정 교과서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 붙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어떤 역사가 적히더라도 그 역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나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세주와 은후와는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였다. 그들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당시 권력자들에 의한 역사 기록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대부분은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씌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자리를 찬탈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역사를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세조도 모든 역사를 깨끗이 삭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한계일 것이다. 아무런 힘도 없는 우리에게는 더 잘된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제대로 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관들의 사명감을 엿볼 수 있고, 자신들의 과오를 남기지 않으려는 권력자들의 습성을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하기에 좋았다.
* 네이버 책콩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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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신분으로는 사관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기록이라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많은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기 된다. 그렇기에 진실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글을 남기고 싶어한다. 불리한 글이 남겨져 있다면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관은 그럴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찾아와도 진실만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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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세주가 모를거라 생각하는 은후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세주. 그들은 남자의 모습으로 서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서로의 마음을 숨긴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주를 향한 마음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여자라고 말하고 싶은 은후. 세주와 혼담이 오가는 초희를 바라볼때마다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세주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릴적부터 혼담이 오가던 가연이 담겨 있다. 남모르게 가연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세주. 그토록 보고 싶은 가연을 만날수 있을까.
세주와 은후의 닿을듯 닿을수 없는 관계와 더불어 사초를 궁 안에 놓아둔 사람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역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이 역사에 남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는 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니…… - 본문 312쪽
반전이라고 해야할까. 행방이 묘연했던 가연의 존재, 은후와 사초의 연관들을 보면서 만나야할 운명은 어떻게든 만나는 것이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일때가 많은 것이다. 가끔은 진실을 감추고 사실인것 처럼 보여주기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아는 것이다. 역사속 사건이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빠져들게 할만한 요소들이 있다. 역사를 알아가는 지식적인 측면보다는 재미있게 알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세주의 말처럼 왜곡된 기록일지라도 남겨두는 옳은 일일지도 모르다. 흔적들이 있어야 그것을 보고 후세의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생각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마지막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기록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요즘 역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예민해질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허구의 이야기이고 흥미위주로 쓰여진 글이지만 그 안에서도 역사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웃으며 가볍게 지나치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