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빛 드레스가 바람에 날리는 듯하고 몽환적인 모습의 여인이(보기엔 소녀같아 보이지만 ^^;)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있는 이 책의 표지는 보는 순간 눈을 확 끌었다. 더군다나 <비틀거리는 여인>이라는 제목이 주는야릇한 느낌은 호기심 자극하고도 남았다. 미시마 유키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굉장한 사람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1957년에 출간 되었으니 올해로 50년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옛날의 고리타분한 연애소설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원작의 힘인지 역자의 힘인지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 주인공인 세쓰코는 스물여덟 살이며 천부적인 관능미를 가지고 있다. 아주 엄한 문벌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소녀 시절에 사랑한 남자가 두어 명 있었지만 결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 했으며 남자아이도 낳았다. 결혼생활은 3년이 지나면서 남편과의 잠자리도 뜸해지고 일상이 무료해졌지만 또래의 여자들을 만나 영화보고 쇼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사는 것이 훌륭한 가정 집안에서 자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살짝 부족한 삶.쓰치야는 세쓰코가 결혼 하기 전 장난처럼 키스를 한번 한 사이다. 그 키스는 너무나 형편없어서 졸렬한 느낌까지 가졌으나 그 느낌이 오히려 그녀의 기억 속에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도 우연히 쓰치야를 자주 만났다. 무도회에서, 레스토랑에서, 호텔 로비, 공항 대합실 등등. 쓰치야는 스무 살 무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항상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과 소극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쓰치야를 보면서 자신의 아들인 기쿠오도 그처럼 성정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어느날 쓰치야가 세쓰코에게 만나자고 이야기 했지만 세쓰코는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쓰치야가 집으로 쳐들어 올 용기가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오래도록 그를 기다렸지만 쓰치야는 오지 않았고 세쓰코는 쓰치야를 경멸했으며 하루종일 화가 나 있는 동안 세쓰코는 자신이 쓰치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후 세쓰코와 쓰치야는 연애를 한다. 세쓰코가 바라는 연애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 되는 공상적이고 도덕적인 연애다. 하지만 인간사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잦은 남녀의 만남엔 결코 공상적이고 도덕적인 연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부탁해서 쓰치야와 여행을 떠나고 기쿠오를 보면서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쓰치야와 만남은 끊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겐 갈수록 거짓말이 늘었지만 한번의 거짓말 후엔 마치 우물의 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늘 가정으로 돌아간다. 더구나 이 책이 출간된 년도을 생각한다면 그러고도 남음이다. 마지막에 세쓰코는 쓰치야에게 결국 보내지 못하고 찢어버린 편지에서 다른사람을 불행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는 않으며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가운데서도 쓰치야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견뎌나가겠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 사랑에서 철모르고 순진한 세쓰코는 쓰치야에게 놀아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책 <비틀거리는 여인>은 제목처럼 사랑에 비틀거리는 여인의 묘사를 굉장히 멋스럽게 해냈다. 평판 좋지않은 불륜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세쓰코의 순진하고 잘 배운 집안의 여자다운 처신을 보여줌으로써 불륜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 명의 작가를 내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그의 전작들에 관심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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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워 둑는 줄 알았다. 완전 일본판 마담 보바리였다. 머니 많고 남편에겐 성적인 매력을 못 느끼고 권태롭기만 한 인생에 대한 지루함에 떠는 주인공 여자. 딱히 불평,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한 남자에게 필이 꽂히고 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이 느끼는 연애의 감정,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남들 하듯이 ‘정상적으로’ 연애를 했다면 느꼈을 수도 있는 감정을 세쓰코는 별 감흥도 없이 결혼을 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에게서 느낀다. 연애할 때 밀고 당기는 감정들, 쓸데없이 흥분하다 끓어 넘치는 상태, 상대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안 들키려고 애를 쓰고, 남몰래 질투를 하고 전화를 기다리고, 약속을 이유도 없이 어기려고 하다가 결국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투정 부리고... 그 모든 것을 세쓰코는 남편이 아닌 쓰치야와 한다. 쉽게 흥분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불행해지고... 세쓰코는 연애를 못해보고 결혼한 여자의 전형을 따라가는 듯하다. 공상적인 연애에 푹 빠져서 자신은 ‘도덕적인 연애’를 한다고 생각한다. 다 허락해도 몸만 허락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진함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어디 남녀 사이의 연애가 그런가. 점점 더한 것을 요구하게 되고 서로 원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는 것, 그것이 남녀 관계의 정석이 아니든가. 아니면 헤어지게 되는 것이나 세쓰코는 마음속으로 도덕적 연애를 정의해놓고 어느 사이에 그와 여행을 계획한다. 또한 사랑을 발견한 여자로서 행복해졌고 또 남편과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미안했으므로 더 다정함을 쏟는다.
웃긴 건, 이 이야기에 세쓰코의 남편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존재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섹스보다는 잠을 더 좋아하는 남편은 바람 피워도 되느냐고 묻는 세쓰코에게 “글쎄, 내가 이러쿵저러쿵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답한다. 그 동안 보인 남편의 성격상 이 말은 거짓말이나 허영에서 나온 말 같지는 않다. 인공적인 도구를 싫어하다 보니 자연스러움만 강조해 아이를 여러 번 없애게 되는 세쓰코. 그 불쾌감은 육체를 상하게 하거나 없앤 아이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을 신경 써 주지 않는 쓰치야에 대한 원망으로 비쳐진다.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남편보다 불안감이 없는 쓰치야에게 세쓰코는 불안하다. 그게 질투인가.
친구가 이 책을 빌려주면서 섬세한 문체를 보라고 했는데, 책이 너무 지겹다 보니, 그런 문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암튼 이 여자, 혼자 엄청 비틀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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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이 생각이 난다. 10년동안 금요일 밤이면 나왓던 그 드라마에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이 드러난다. 그 드라마로 국민불륜녀가 되어 민지영씨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은 명장면을 만들어 내곤 하였다. 한편으로 그 드라마를 보는 입장이라면 조금은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욕을 하면서 보는 대표적인 드라마, 그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하게 되며, 이 소설 또한 욕을 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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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정확히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난 솔직히 말해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잘 믿지 않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그려온 이상형과 만났을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겉모습만이 이상형인 사람을 두고,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겉과 속을 모두 알면서 더 깊어지든지 얕아지든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사랑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알아채기란 힘든 일이다. 물론 사랑이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 끝날때는 '어떤' 예감이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콕 집어서 그게 언제라고 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 끝나가는 걸 느껴도 일단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사랑의 시작과 끝은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순간 불현듯 눈치채게 된다. 구라코시 세쓰코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명문가 집안의 딸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가정교육이 엄했고, 위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세쓰코는 음악이나 옷취향 같은 것은 훌륭했지만, 기지나 위트, 탐구심이나 문학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다른 여자들이 남자들을 보는 취향과 많이 달랐달까. 세쓰코는 남자의 야심이나 일에 대한 정열, 정신적 우월이나 지적 우월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흘러넘칠 듯한 정력을 사업이나 이상적인 현실에 쏟고 있는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들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족속들인가. 볼품없는 풍채의 세계적 학자들이란 또 얼마나 꼴불견인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가 멋있어 보인다고들 하지만, 원래 멋있지 않은 남자가 일에 열중한다고 해서 멋있어 보이겠는가. (12p) 세쓰코는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과 아이가 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지만 세쓰코가 꿈꾸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공상으로 연애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공상이라면 아무 죄책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잠든 남편을 보며 혼자만의 공상을 맘껏 즐겼다. 현실이라면 패덕이지만 공상의 세계는 모든 것이 미덕이었기에. 너무 깊게 분석하지 않는 세쓰코의 사고 속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소중히 해온 부덕(婦德)은 사실 상당히 모호하게 정의되었던 것이다. 공상의 영역은 아직 미덕에 속했고 현실은 패덕에 속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쓰코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좀 더 준엄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공상속에서 그녀는 매우 관대했던 것이다. 아무리 사악한 마음도 마음속에 머무르는 한 미덕의 영역에 속한다고 세쓰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의 행위는 아무리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순진한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패덕의 세계에 속했다. (61p) 이런 세쓰코가 현실의 남자인 쓰치야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공상을 벗어난 현실에서 말이다. 세쓰코는 육체적인 관계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면 도덕적인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부녀인 세쓰코가 남편이 아닌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그자체로 비도덕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아무리 사랑이 고결하고 순수한 감정이라 해도, 남편을 속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쓰코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쓰치야와의 연애를 아주 즐겼다고 할까. 그녀는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뭔가 시적인 것을 필요로 했다. 시 가운데서도 가장 에로틱한 시. 관념 중에서도 가장 육감적인 것. 남자들처럼 관념이 육감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육감이 바로 관념화하여 육체의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하는 것…… (31p) 세쓰코를 보면서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점은 공상속의 연애를 하는 것처럼 현실속의 연애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뭔가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꿈꾸는 여자랄까. 그래서 그런지 하나하나의 행동을 계산에 넣고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보이겠지, 쓰치야가 이렇게 나오면 난 이렇게 행동할 거야, 라는 등의 이미 짜놓은 각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 꼭 공상처럼 되란 법은 없다. 세쓰코는 위험하게도 밀회를 거듭하는 동안 자신이 쓰치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아주 미묘한 것에 일일이 감동해서 쓸데없이 마음의 진폭을 늘려서는 안되었다. (126p) 하지만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쓰치야가 누구를 만나든 질투따위는 하지 않았다. 때로는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 위험한 순간에도 그녀는 그 나름의 의미를 붙이고 짜릿함을 얻는다. 특히나 쓰치야와 함께 간 여행에서 백부가 호텔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 후의 세쓰코의 반응이 아주 재미있다. 처음에는 덜덜 떨다가도 나중에는 그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니까. 내 고통은 어쩌면 나 혼자만의 것이었던 게 아닐까. 모든 게 나 한 사람한테 일어난 사건이었던 게 아닐까…… (191p) 그러나 이런 관계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쓰치야와 밀회를 하는 동안 세쓰코는 총 세번의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쓰치야가 조금씩 변해간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마지막을 준비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연극이었는데, 쓰치야가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쓰코는 쓰치야와 결심한 후 죽을 결심도 해보고, 마지막으로 편지를 쓸 생각도 해보지만 결국 그 편지를 부치지 않고 찢어버린다. 난 이런 세쓰코의 결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로써 세쓰코는 쓰치야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해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비틀거리고 흔들렸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들어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난 세쓰코라는 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했지만, 점점 세스코의 밀회를, 세쓰코의 변화를 즐기게 되었다. 세쓰코의 연극적인 말투와 연애 방식, 어쩌면 우리들 역시 연애를 할 때는 일종의 연극을 하는 지도 모른다. 즉, 아무 생각없이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해보기도 하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다른 대응을 하기도 한다. 세쓰코는 아주 솔직한 여성이었기에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맹목적인 사랑은 세쓰코에게 맞지 않았다. 그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세쓰코는 쓰치야와의 결별에서 아픔을 느꼈지만, 그것이 세쓰코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그렇게 보면 세쓰코는 아주 현명하게 사랑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미시마 유키오란 이름을 보면『금각사』와 같은 소설이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에는 할복자살을 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섬세한 심리묘사에 놀랐고, 뻔한 이야기를 색다르게 만드는 그만의 방식에, 그리고 가슴 시원한 결말부에 매료되었다. 남성작가이면서 여성의 심리를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내다니, 정말 놀라웠달까. 남자와 여자를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나 연애나 사랑을 할 때 더 그렇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이토록 잘 집어 내다니. 미시오 유키오 역시 이 책의 주인공 세쓰코처럼 유한계급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잘 묘사해낸다는 것에는 그다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해도, 여성의 심리묘사는 분명히 그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미시마 유키오란 작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의 일생, 그의 마지막과 관련한 편견을 걷어내고 그의 작품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
| 이건 미시마 유키오 판 <귀여운 여인="">이다라고 나는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름도 귀여운 세쓰코 그녀가 하는 짓은 정말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귀엽다. 연인을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길을 돌아가고 남자의 무심한 한마디 말에 여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토라지고 여행을 위해 친구와 남편을 속이는 공모를 꾸미고 연인과 안 좋은 소문이 난 여배우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남자가 뒤에 선이 없는 스타킹은 여성의 다리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킨다고 말하자 뒤에 선이 없는 스타킹을 모두 버리기로 결심하고... 그러면서도 그녀가 점점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왜 귀여운 여인이 이렇게 고통받고 힘들어해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사랑의 속성이라는 게 궁금해졌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차이에 대해서도. 남자가 말하는 사랑과 여자가 말하는 사랑은 혹시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퍼뜩든다.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가 이렇게도 섬세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검도와 유도와 보디빌딩으로 남성성을 추구하던 남자가 이다지도 불륜에 빠진 유부녀에 대해 감정이입을 완벽히 해내다니! 이자 역시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귀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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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비틀거리는 여인'은 공상적인 연애를 꿈꾸는 여인 세쓰코이다. 그녀는 가정교육이 엄한 집에서 자란 조신한 여자답게 부모님이 정해주신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사이에 아들도 한명 두었다. 겉모습에서 보여지는 평온한 주부의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공상 속에서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공상적인 연애가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몸만 허락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는 믿음아래 9년전 첫키스를 나누었던 동갑내기 쓰치야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그녀가 원하는 도덕적인 연애, 공상 속의 연애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무던하고 잠자기를 좋아하는 남편과는 달리, 동갑인 쓰치야는 소년같은 면모를 지닌 청년이다. 그러한 점에 매력을 느낀 세쓰코는 점차 그와 몸까지 허락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마음 속으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진부해진 유뷰녀의 일탈이야기를 미시마 유키오는 때론 담담하게 세쓰코가 즐기는 공상적인 연애와 그의 애인 쓰치야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때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철이 없어보이는 세쓰코의 내면의 감정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함께 헛웃음을 짓게 만들어주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실제의 쓰치야와의 사랑보다는 공상 속에서의 키워낸 쓰치야를 더 사랑하지 않았나 싶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에 느끼는 흥분을 즐기고 그 즐거움에 슬퍼지는 세쓰코의 모습은여자의 심리적인 허영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공상 속에서 만들어 낸 상황과 실제의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면 세쓰코가 느끼는 심리적 좌절감이 공감을 불러낸다. 또한 공들여 준비한 비련의 여주인공같은 상황을 꿈꾸었던 그녀에게 그녀가 통보한 이별을 취소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쓰치야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옴을 막을 수 없었다. 읽는 동안 나역시 체홉의 '귀여운 여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녀들의 유치하지만 솔직한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됨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의 화려한 경력과 스캔들에만 치중해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면을 보여준 그가 써내려간 '비틀거리는 여인'은 여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
| 금각사와 할복의 이미지, 그리고 전공투 학생들과 논리로 맞짱뜨던 미시마 유키오. 소설을 읽으며 미시마 유키오의 기존의 이미지와 너무도 다른 것에 사실 놀랐다. 이것이 그 우익 마초의 작품이란 말인가. 게다가 작품의 연표를 보니 이 소설은 ‘금각사’와 동시에 쓴 작품이다. 20세기 일본 최고의 문호이고 장편소설만 40편을 발표했다는데 정말 내가 알고(?) 있던 미시마 유키오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반성이 든다. 소설은 50년 전에 쓰인 거지만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왜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궁색하겠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며 계속해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문장을 떠올렸다. 능청스러움과 돌덩이에서 멋진 조각 작품을 만들어내는 조각가처럼 하나의 완벽한 허구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조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세쓰코는 남편과 아이를 속이고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사랑이라는 게 정말이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처럼 자기의 위치에 따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세쓰코가 주위 사람들을 배반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성직자나 성스러운 것에 한 몸 바치는 무녀처럼 사랑을 봉사하고 섬긴 것인지는 쉽게 잘라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