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리야 레핀의 그림<<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을 보면서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가 오보랩 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곤 어째서 우리나라 화가들은 지금 이상황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을까 혼자 서운해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역사를 기록한 화가들의 그림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어쩌면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너무도 유명함<<1808년5월3일>>을 그린 화가, 시작부터 나는 그의 그런한 그림을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역사적인 그림과 사회비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 성격은 괴팍했고,그림에 대한 자신감은 오만에 가까웠다. 그리고 출세와 부의 축적을 위해 그림을 수단으로 생각 할 수도 있는 화가였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화가가 어떻게 전쟁으로 인해 민중의 아픔을 바로 보게 된 것인지가 놀라웠고 궁금했다.그러나 책은 내가 충분히 공감 할 정도의 설명은 해 주지 못했다.그래서 개인적으로 추론을 해 보았다. 그는 하나의 화풍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궁정화가에서 쫓겨났고, 젊은시절의 화려함과, 전쟁을 통한 참상을 경험하면서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니깐 <<1808년5월3일>>은 민중을 직접적으로 선동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은 아니지아니었을까 라고 생각을 해 본다.왜냐하면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세상에 바로 공개하지도 못했으니까
일차적 관심의 그림은 1808년5월3일이었지만 나머지 그림들 역시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우선 고야의 그림들을 보면 인물보다 의상에 시선이 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유가 있었다. 당시 고야는 귀족부인들의 얼굴보다 그들의 값비싼 옷들과 장신구에 더 초점을 두어 그림을 그렸던 거였다.또한 펄럭이는 옷자락이 그림에 주로 이용되었던 이유를 알게 된 재미도 그림보는 즐거움이었다. 1808년5월3일이란 그림이 먼저 그려지긴 했지만 <<그네 타는 할아버지>>란 그림을 보면 전작의 그림이 나올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추측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그네 타는 할아버지란 그림이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해탈 한 듯한 그림이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고야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준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주는 고야에 대한 기초입문서로는 충분히 만 족 할 수 있었다. |
|
지난 봄날의 어느 휴일 오전 중에 거실 마루에 앉아서 교육자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열어젖힌 베란다 창문으로 나긋한 봄 햇살이 기어 들어와 고양이 새끼처럼 졸고 있었다. 봄은 이제 막 성장한 여인처럼 무르익어 갔다. 자료 준비가 잘 되지 않아 펜을 든 채 잠깐 생각하는데,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와 베란다 난간에 앉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잠시 이쪽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주저 없이 베란다 난간에서 내려와 빨갛게 피어 있는 꽃 화분 곁에서 물을 찍어먹는다. 봄볕이 그놈들의 깃털에 부딪쳐 튀어 오르면서 반들반들 윤기 나는 색 무지개를 아롱지게 하고 있었다. 내 시선이 고놈들의 행적을 쫓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었다. “오냐 어서 와라, 어서 와!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봄이 되면 봄앓이를 하고 마는 성깔 탓인지, 나는 그놈들의 거동에 과신경이 되어 가는 듯했다. 무언가 나 혼자서 내기를 하는 듯 한 짜릿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그놈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중 한 놈이 베란다 꽃그늘 아래서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거실 마루 위까지 올라와 내 가까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눈부신 희열에 차마 그놈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옥죄이는 마음으로 숨죽여 그놈들의 거동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번개처럼 <성.프란시스>가 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희열을 느낀다. 아아, 나도 그 사람처럼 평화의 사람이란 말인가! 나도 그처럼 새들에게까지 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전하게 되는 건 아닌가! 내 마음은 잠시 들뜨고 부풀어 올라 황홀 속을 유류(遊流)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뿔싸! 웬일인지 이쪽과 간격을 둔 채 잠시 그 자리에서 맴돌던 그놈은 궁둥이를 이쪽으로 돌리더니, 서서히 다시 베란다 쪽 제 짝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아닌가. “안 돼! 녀석아, 이쪽으로 와! 와서 내 머리에도 앉고 내 어깨에도 앉고…, 나를 <성.프란시스>로 만들어 줘!”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비극적인 애원에 지나지 않았다. 녀석의 거동은 아주 매정스러웠다. 녀석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는 베란다로 나가 자기들 둘이 좋다고 구구구구 주둥이를 맞추더니 베란다 난간으로 뛰어올라 훌쩍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펜대를 쥐고 있던 내 손에서부터 온 몸으로 힘이 쭉 빠짐을 느꼈다. 꿈을 깨고 보니 나는 <성.프란시스>가 아니었다. 비둘기한테서 마저 딱지 맞아 마땅할 형편없는 무명의 한 아저씨에 지나지 않았다. 갑자기 봄꿈이 깨지며 봄이 죽는소리를 낸다. 아내가 슈퍼에서 돌아오더니 후다닥 베란다 창문을 닫는다. 근처 대학에서 격렬한 데모가 일어나 최루탄 냄새에 봄이 심한 재채기를 하며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나에게서도 화염병, 최루탄, 삿대질, 핏대, 그런 냄새가 나서 비둘기가 달아나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봄, 사랑, 기쁨 그런 것은 어디로 실종됐단 말인가. 4월이 오면, 아아 피기도 전에 흩날린 꽃 꿈가루 가슴에 묻으며 부르는 슬픈 한 노래가 있다. 그리고 염원처럼 꿈꾸고 바라옵는 한 나라가 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것임이니라.」(사11:6~9). 이제는 떠나 버린 비둘기가 야속하지 않았다. 다만 비둘기가 다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텅 빈 그 자리에 화분의 꽃들이 야들거리며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