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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홍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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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내 블로그의 대문에도 걸렸었지요. 그 때 이 그림의 주인공이 궁금하다고 묻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 그림의 인물이 남자에요. 여자에요?""여자지요? 선생님 홈에는 왜 예쁜 여자만 있어요?" "그 의도가 수상해요. 너무 밝히신다 *^^*"여자가 좋으니 여자 그림을 올렸지 다른 의도야 있겠습니까?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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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내 블로그의 대문에도 걸렸었지요.



그 때 이 그림의 주인공이 궁금하다고 묻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 그림의 인물이 남자에요. 여자에요?"
"여자지요? 선생님 홈에는 왜 예쁜 여자만 있어요?"



"그 의도가 수상해요. 너무 밝히신다 *^^*"

여자가 좋으니 여자 그림을 올렸지 다른 의도야 있겠습니까?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 *^^*

하지만 이 그림만 놓고 볼 때는 좀 억울합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남자입니다.

<홍루몽>의 주인공인 가보옥!
중국 청나라 때 작가인 조설근의 작품이지요.

학창 시절에 이 책에 얼마나 심취했는지 모릅니다.
귀공자인 주인공 가보옥과
그를 둘러싼 금릉12채의 소녀들

중3때이던가.
그 때 나는 국어 선생님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지요?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인생을 알 수 있지.
느네 중에 세 번 이상 읽은 사람 있니?"

그 때 손을 든 사람이 나 한 명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셨지요.

"오호, 그래? 정말이냐?
그럼 삼국지의 등장인물을 열 명만 대 보겠니?"

나는 그 때 촉나라, 위나라, 오나라까지 구별하면서 수십 명을 열거했고,


어 선생님은 감탄하면서 친구들에게 박수를 치게했었지요.

이 말은 팔불출 같이 툭하면 제 자랑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

나는 삼국지의 등장인물을 나라 별로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숙지하고 있었지만,
홍루몽의 등장인물은 그 이상으로 깊이 있게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랍니다.

지금도 주요 등장인물은 물론

잠깐 스치는 300여명 하나하나를,

그들의 세세한 성격과 운명까지도

마치 어린 시절 고향 사람들처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머릿속에 담고 있지요.

주인공 가보옥의 누이인 가원춘, 가영춘, 가탐춘, 가석춘….
그리고 연인이자 친척이었던 임대옥, 설보채, 사상운, 진가경….
또, 하녀들인 습인, 청문, 사월, 원앙, 평아….
그녀들 모두 마치 소꼽친구처럼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답니다.

근데 이상합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여자 등장인물은 주마등처럼 훤히 떠오르는데,
남자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가보옥외에는
전혀 생각이 안 나네요.
치매초기 증상일까요?
아니면, 더 심각한 어떤 병인지요 ^0^

이 그림의 주인공은 93년도에 중국에 갔을 때,
북경의 서점에서 산 <홍루몽>의 삽화에 나온 가보옥입니다.

내가 산 그 책은 홍루몽 원본을 인민출판사에 발간한 것입니다.
상하 2권의 두툼한 책인데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지요.
종이도 그리 고급 종이가 아니었고,
인쇄 상태도 우리 나라의 30년 전 책 같이 조잡했어요.

물론 모두 한문, 그것도 간자체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읽을 수 없지요.

그런데도 가격은 상당히 비싸서
2권에 2만원.
그 무렵 중국의 교장 선생님 봉급이 3만원 정도였으니
상당히 고가였던 셈이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단행본 가격이 5천원 내외였던 시절이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치긴 미쳤나 봅니다.
읽지도 못할 그 책을
무슨 생각으로 거금을 투자하면서 사들였는지….

그래도 나는
책마다 20여쪽 정도 있는
삽화 외에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그 책을
지금까지 수십 번 펼쳤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지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랑은 가능하다는 것을….
읽을 수 없는 한자 투성이 그 책을
나는 마음으로 읽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홍루몽에 대해 내가 느낀 마음을

우리 학교 학생들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거의 매일 같이 만나면서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말이 통하는 아이들인데도
왜 그 마음까지 전하기는 힘든 것일까요? 


 

나는 지금까지 4종의 홍루몽을 읽었습니다.

2권으로 된 정음사판 홍루몽,

5권으로 된 을유문화사판 홍루몽

10권으로 된 청년사판 홍루몽,

2권으로 된 중국 인민문학사판 홍루몽 (그림만 보았지만 ^^)

청계출판사에서 나온 12권의 홍루몽이

나의 다섯 번째 홍루몽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y******3 2008.08.08.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생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인생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내용보기
홍루몽을 접한지 어느덧 7년이 되어간다.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이, 내 인생을 중국문학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버리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인생의 책 중 세 손가락 안에 항상 꼽히면서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게 되어 소장할 수 없었던 책. 이번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이 책을 추천하면서도 항상 미안했던 게 책을 더 이상 구하기
"인생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내용보기
홍루몽을 접한지 어느덧 7년이 되어간다.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이, 내 인생을 중국문학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버리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인생의 책 중 세 손가락 안에 항상 꼽히면서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게 되어 소장할 수 없었던 책. 이번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이 책을 추천하면서도 항상 미안했던 게 책을 더 이상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홍루몽에 대한 소개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이 대작을 평하기엔 부족한 듯하고 또 조심스러워서 주위사람들의 이런저런 평을 빌리곤 했는데 솔직히 그것마저 마냥 미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때 주로 대던 핑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조설근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의견도 있으니까-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인생을 정의할 수 있겠으며 또 무어라 정의하리오. 주인공인 가보옥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등장하며 사라져간다. 똑같은 사건을 보아도 어떤 이는 흥성을 보지만 어떤 이는 쇠망을 읽는다. [한 예로, 버들을 읊으며 보채는 버들꽃이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가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대옥은 제멋대로 흩어져 날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는 장면이 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홍루몽뿐 아니라 모든 소설에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이를 보는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교훈이 단순히 하나 로 정의되지는 않으리라. 각자 살아온 날들과 경험에 따라 다른 해석과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물론 홍루몽을 꿰뚫는 중심 주제는 있다. 작가는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중간중간에 계속 주인공의 앞길을 보이고, 이미 각 등장인물들의 결말을 고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지듯이, 이미 다 차고 충분히 피어 버린 가문에 펼쳐지는 몰락의 예고와,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공들이 누리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생활들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홍루몽의 가치는 그 시대 그 장소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 빛난다. 주인공이 먹는 음식과 거하는 장소, 별 생각없이 내뱉는 듯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중국 문화의 깊은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주인공들이 시사를 열어 서로의 시를 품평하고, 연극을 고르고, 고전의 인물을 논하는 장면에서는 오죽하랴. 서로 이런저런 의견을 내며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노라면 그들이 논하는 작품에 대해 직접 알아보고 싶고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다. 이렇게 그 시대상과 인물들의 성격들을 눈 앞에 보이는 듯 재현해 낸 작가에게 감탄할 뿐이다.
j******6 2007.01.12.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홍루몽]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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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사색적이면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미덕이다. 보통 뭔가 재미있으면 알맹이가 없고, 알맹이가 두둑하면 재미가 딸리는 법인데, 홍루몽은 이 법을 어기고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사실 이것은 내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이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을 갖는 것. 이것처럼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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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사색적이면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미덕이다. 보통 뭔가 재미있으면 알맹이가 없고, 알맹이가 두둑하면 재미가 딸리는 법인데, 홍루몽은 이 법을 어기고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사실 이것은 내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이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을 갖는 것. 이것처럼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정도 욕심을 내야 살 만한 인생이다. 그리고 이 정도 욕심이 보이는 책이어야만 살 만한 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홍루몽은 투자가 아깝지 않다. 홍루몽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한 편의 뮤지컬영화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가 스토리 사이에 아름다운 노래를 담듯, 홍루몽은 시(詩)를 담는다. 방대하고 깊이있는 소설의 흐름 속에 이 시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이 즐거움을 주고 의식을 집중하게 한다. 따로 홍루몽 시 모음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한문도 공부하고, 시도 공부하고, 즐거움도 얻고, 삶의 의미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홍루몽의 대중성은 주인공들을 둘러싼 수많은 에피소드에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기껏해야 에피소드 6까지 밖에 없지만 홍루몽은 수십 편이나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그리스 신화를 보는 듯 하다. 사랑, 질투, 권력, 애정, 절망, 이별, 죽음과 같은 인생의 원형들이 스토리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겐 남성들의 성심리을 이해하는 교본으로서, 남성 독자들에겐 여성들의 애정심리를 살피는 자료로서 훌륭한 책이라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유산이 있다면 지배의 역사가 아닌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무엇에서 홍루몽의 작품성을 엿볼수 있을까. 소설의 첫대목에 나오는 한 구절을 여기 옮겨본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곳엔 있음 또한 없음이로다" 이것은 장자가 꾸었다는 나비의 꿈 그대로이다. 자신이 꿈 속에서 실제로 나비처럼 느끼고 날았다면, 지금의 자신이 꿈 속의 장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 또는 연극이라고 한다. 막이 내리면 관객들은 돌아가고 배우들은 분장과 의상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열기와 호흡으로 가득찼던 극장은 문이 잠기고 텅 비게 된다. 이 삶이 꿈인 것을 어떻게 알랴. 꿈 속에서 우리는 꿈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놀라고 두려워하고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은 심각하고 실제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삶도 한 편의 꿈일 수 있는 것이다. 생즉몽(生卽夢)이다. 그러나 [홍루몽]의 지은이가 삶에 대한 니힐리즘적 정의를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으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홍루몽의 철학적 태도는 독자가 원한다면 사색적이 되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종교와 철학의 오래 된 질문들을 남겨 놓는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이고 누구이며, 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가?" "우리 삶은 어떤 목적이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과연 가치있는 삶이란게 존재하는가?"
h******d 2007.01.0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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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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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에 따르면, 중국에는 “은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난 지금 그 문학적 만리장성의 어느 언저리에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었다. 역시 역자에게 주워들은 것으로, 마오쩌둥 주석이 “은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라고 했다는데, 그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데만 해도 최소한 두 세 번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자연스레 궁금해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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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에 따르면, 중국에는 “<홍루몽>은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난 지금 그 문학적 만리장성의 어느 언저리에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었다. 역시 역자에게 주워들은 것으로, 마오쩌둥 주석이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라고 했다는데, 그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데만 해도 최소한 두 세 번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자연스레 궁금해졌던 것은, 이 대작을 혼자서 써내려 간 조설근이라는 사람 또는 그로써 대표되는 중국인의 정신 세계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몰락한 권문세가의 자제로서 초야에 묻혀 평생을 지냈다고 하는데, 그러한 외적 환경이나 조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요즘 한국 소설 영역에서 삶의 전체성을 담아 내는 장편 소설보다는 산발적인 단편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 <홍루몽>의 출간을 계기로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홍루몽>에서는 짙은 여인의 향기가 난다 (“야릇한 향내가 코를 쿡 찔렀다. 무슨 향기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으나 온몸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전신이 구름 위에 둥둥 떠오르는 듯했다”: 제6회에서 인용, “누나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무슨 향기인가요? 아직 한 번도 맡아 본 일이 없는 향기니 말이에요”: 제8회에서 인용). 이와 더불어 갖가지 이미지가 다채로운 빛깔을 드리운다(“보옥의 떼에 보채는 하는 수 없이 옆구리 단추를 풀고 속에 입은 붉은 비단 저고리 염낭에서 아롱진 주옥과 눈부신 황금으로 만든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제8회에서 인용). 따라서 <홍루몽>을 읽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향기를 ‘맡고’ 그 빛깔을 ‘음미’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분명 색다른 체험이다. ‘금릉 12채’(남경의 열두 미인이라는 뜻)로 풍부하게 구현된 여성성이 중심에 놓여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소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번 새 번역판의 추천 글을 쓴 서경호 교수는 “대중적 인기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자기성찰과 인생에 대한 관조를 글로 써낼 수 있는 작가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글에서 중국이 유가 사상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상식은 일단 깨어진다. 중국인의 외면적인 생활은 유가 사상에 종속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내면세계,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세계관은 불교와 도교에 의해 지배되는 숙명론에 더 접근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도입부에 불교와 도교를 대표라도 하듯 도인과 스님이 짝을 이뤄 등장하는데, 이 대목에서 저자는 나중에 사람(가보옥)으로 환생하게 될 이 소설의 본래적 주인공인 바위의 입을 빌려 자기 소설의 차별성을 간접적으로 선언한다. “… 지금까지의 이야기책들은 전부 판에 박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그런 케케묵은 냄새는 피우지 않는 것이 도리어 새 맛이 나지 않을까요? … 게다가 도회지의 속된 사람들 가운데는 정치에 관한 딱딱한 책을 즐기는 이보다 인정에 맞고 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소설을 보면 그 태반이 임금과 재상을 비방하거나 남의 집 아녀자의 행실을 힐난하는 것이 아니면 남녀간의 치정 관계를 취급한 음탕한 이야기들뿐이거든요. 그리고 연애 소설이라는 것은 색정적인 저속한 필치로 더럽고 부정한 것들을 글에 담아서는 젊은 남녀들을 그르치고 있는데, 그 예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지요. 이야기마다 번안이 아니면… 어느 것이나 잡스러운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과연 읽어갈수록 여기 그려진 남녀간의 사랑과 애정 표현, 심리 묘사는 그토록 자연스러워 ‘인정에 맞고 생활에 가까’우며, 자칫 음탕함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 전개를 갈무리하는 ‘절제의 미덕’이 돋보인다. 그리하여 이 소설을 읽는 십 대는 핑크 빛 첫사랑을 꿈꾸게 될 것이며, 이십 대는 무분별한 열정에 가리워진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고, 삼십 대는 더 성숙한 사랑의 완성을 향해 매진할 힘을 얻고, 40대를 비롯한 중년의 사람들은 시들해진 사랑의 감정을 소생시킬 묘약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노년에 이른 사람들은, 책 서두에 언급된, 우주만상의 실체도 필경은 텅 비어 있다는 공(空)에 대한 이치를 더 한층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물 흐르는 듯 줄줄 읽히는 한글 문체 곳곳에 백두산에 핀 꽃송이처럼 자리잡은 북한 말투가 눈길을 머물게 한다 (“돈냥이나마 선심을 쓰면 그 집으로선 솜털 하나 뽑는 거나 다름없지만 우리에겐 허리통 맞잡이가 될 게 아닌가?”: 제6회에서 인용, “그런데 그 절의 스님인가 뭔가 하는 요강 대가리 악당은 어디로 꺼지고?”: 제8회에서 인용). 조선족으로서 베이징에 근거지를 둔 역자가 번역 작업을 시작할 당시 지리적, 외교적으로 가까운 북한의 언어 문화를 1차적 자료로 참고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그 주위에 어린 남다른 의미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도 쪽에 치우친 남한 문학이 북녘 사투리와 결합될 때 우리 문학도 온전히 회복될 것이다. 대돈방 화백의 삽화 중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제6회에서 습인이 살뜰하게 보옥을 보살피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이지만, 계급적 차이와 성별을 넘어서는 어떤 애틋한 정이 차고 넘친다. 이 두 남녀의 만남과 여성성을 발휘한 습인의 보살핌은 언제나 모성에 지배 받는 남성의 역설적 연약함 내지는 열등함, 남성을 따뜻하게 보살핌으로써 남성에 대한 자신의 대척적 의미를 확인하는 여성성의 따사로움 사이의 긴장과 보완을 보여 준다. 이 문학적 만리장성의 어느 한 구석에서 한 측면에 집중해 들여다 볼 거리들이 많기 때문에 홍학(redology)이라는 집약적인 학문 분야가 성립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노력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독자들의 일차적 의무는 오직 즐기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달리, 전체적 윤곽을 굳이 파악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갈피갈피에서 풍기는 향취와 일화, 풍경, 정물, 현대적 심리 묘사 등을 따라가며 마음껏 즐기는 것이 <홍루몽>을 처음 읽는 사람들의 자유이자 특권이 아닌가 싶다. 꿈은 사실 깨고 나면 다 잊어버리게 마련이지 않은가!
c****y 2007.01.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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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빠져봐야할 꿈길
"꼭 한 번 빠져봐야할 꿈길" 내용보기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과 함께 중국 동북부 지방으로 문화답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시간의 여유가 나자 교수님들은 제일 먼저 신화서점에 가셨는데, 거기서 사 오신 책 중에 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에는 이걸 제대로 번역한 책이 없어서 중국서 샀다고 하셨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중국말로 된 책뿐만 아니라 조선족들(혹은 북한)을 위해 조선어로 번역된 도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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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과 함께 중국 동북부 지방으로 문화답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시간의 여유가 나자 교수님들은 제일 먼저 신화서점에 가셨는데, 거기서 사 오신 책 중에 <홍루몽>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에는 이걸 제대로 번역한 책이 없어서 중국서 샀다고 하셨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중국말로 된 책뿐만 아니라 조선족들(혹은 북한)을 위해 조선어로 번역된 <홍루몽>도 있었던 것이었다. <홍루몽>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 학생 중에는 누구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없었기에 우린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저 책들을 다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교수님 힘들겠다''는 부수적인 생각만하면서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홍루몽>이 완역되어 전집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때의 생각이 나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홍루몽>을 읽어나가다보니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반응을 끌기 위해서 야시러운 이야기도 넣고, 적당히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어내거나 뜬금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넣으면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시대를 거슬러 그들이 써 내는 소설의 숨어 있는 독자가 된 기분이었다. 중간중간에 독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재밌고, 심오하고, 우아한 싯구들도 삽입되어 책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해가는 이야기가 바로 <홍루몽>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읽어 나가다가 각 장의 맨 마지막 문구 ''~는 다음 회를 보시라''에 닿으면, 책에서 몰입되었던 게 제정신이 들어 우습기도 하고 흥미진진할 때는 정말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인 조설근은 중국 사람이라 아마 우리 조상님도 이 분을 못 만나봤을 테지만 그의 책이 남아서, 이렇게 세대와 시대, 국적을 떠나 그와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책 이상의 감격이었다. 사실 어렵고 어색한 부분도 있다. 청대의 귀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아무리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아도, 아니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으면 놓을 수록 그림을 통하지 않고는 그들의 옷차림이나 집의 규모, 모습 같은 것을 잘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생활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이라, 가끔은 반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보옥과 금릉십이채를 비롯한 중심 인물들을 비롯해서 가끔 한 두번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인생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는 매력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돋보기 안경과 오목렌즈를 적절히 배분해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가 잠시 쉬어가며 그들 주변의 인물들의 삶까지 조명해 보여 주는데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삶이란, 그 삶에 있는 희노애락과 속없는 부귀영화의 허망함은 결코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차츰 변해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비 효과''처럼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게 지나고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고, 그 사람이 바뀜으로 인해서 그 주변의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일들이 바뀌고 생겨나고... 결과적으로는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처음부터 선하게만, 악하게만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상황이 그를 선한 행동을 하게도, 악한 행동을 하게도 바꿔 놓는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안타깝고 모두가 슬프고...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게 되니 그들에게 다 감정이 이입된다. 이처럼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든 등장인물에게 애정이 가는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전집으로 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김용의 무협지를 읽어나가듯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끝을 보아야만 한다. ''~는 다음 회를 보시라''는 말은 마치 마약 같이 나를 휘감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 외따로 떨어진 곳에 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줄창 <홍루몽> 전집을 읽어 보고 싶다는 2007년의 여름 휴가 계획이 저절로 세워져간다. 또한 나는 아직 상해를 가보지 못했는데, 상해에 이 책에 나오는 ''대관원''을 재현해 놓은 데가 있단다. 거기도 꼭 가보고 싶다. 그러면 나의 부족한 상상력이 다 채우지 못한 <홍루몽>의 비어 있는 부분들을 환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홍학''이라고 홍루몽만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던데, 정말 <홍루몽>은 계속 공부하고 계속 읽어야 될 책 같다. 너무 다양한 곳에서 색다른 즐거움과 멋이 숨어 있으니...

[인상깊은구절]
새들은 뿔뿔히 숲속으로 날아가네 출세한 자는 살림이 기울어지고 부귀한 자는 가산을 탕진했네 은혜를 베푼 자는 목숨을 부지하고 매정한 자는 천벌을 받았네 목숨을 빚진 자는 목숨을 바치고 눈물을 빚진 자는 눈물이 말랐네 원수는 앙갚음이 만만치 않고 만나고 헤어짐은 전생의 인연 생명의 길고 짧음은 전생에 물어 보라 늙어서 부귀함은 요행이니라 깨달은 자는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지만 깨닫지 못한 자는 헛되이 목숨을 잃는다 그저 질탕하게 놀아나더니 새들은 뿔뿔이 숲속으로 날아가네 남았나니 쓸쓸한 빈터뿐 자취도 흔적도 찾을 길 없네
i****7 2007.01.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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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흩어진 인연, 그 덧없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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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기서라는 이야기, 고등학교 때 고전문학을 배우면서 종종 몽자(夢字)소설의 대표적인 예로 듣고 배워왔던 [홍루몽]을 직접 손에 쥐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성격이 진득하지 못하고 급한 탓에 전 12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뭐야, 삼국지보다 더 길잖아?'라고 투덜대긴 했지만, 그 길이가 읽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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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4대 기서라는 이야기, 고등학교 때 고전문학을 배우면서 종종 몽자(夢字)소설의 대표적인 예로 듣고 배워왔던 [홍루몽]을 직접 손에 쥐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성격이 진득하지 못하고 급한 탓에 전 12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뭐야, 삼국지보다 더 길잖아?'라고 투덜대긴 했지만, 그 길이가 읽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그 농담이 잘 나타나있었다. 같은 몽자소설인 '구운몽'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대의 어느 소설을 가져다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을 만한 길고 먹음직한 이야기. 한 집안의 가족사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한 개인의 사랑과 숙명을 세세히 그려내는 치밀함. 거기다 읽을 수록 맛깔나는 번역자의 문장과 화려한 삽화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었다고 본인은 감히 말하고 싶다.
 
  12권에 걸쳐 흘러가는 이 긴 소설의 뼈대는 가씨 집안의 흥망사지만 진정한 핵심은 가보옥과 임대옥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다. 그 정도로, 읽다보면 '이거,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하는 느낌이 들 만치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기류가 심상찮다. 물론 이들이 이탈리아의 그네들처럼 한 눈에 빠지는 격정적인 사랑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근히 그러나 무섭도록 깊어지는 애정을 서로 드러내놓고 전하지 못해,  눈빛으로 말다툼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애타는 심정을 전하고 싶어하는, 목하 첫사랑 중인 이팔청춘 그들을 보면 본의 아니게 읽는 사람 스스로의 첫사랑이 생각날 정도다. 특히 소설 중반에 나오는 대옥과 보옥의 선문답에서는 대옥이 갖고 있는 불안함과 어쩌지 못할 사랑이 행간마다 배어나오는 바람에, 읽으면서 줄곧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니 둘이 이루어진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보옥에게는 이미 정해진 다른 인연-설보채와의 '금옥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현세에서의 보옥은 원하지 않는 상대와 혼인하게 된다. 얼마나 덧없는 두 사람의 사랑인지. 그 대목을 읽고 '결국 갈라놓았구나!'하고 이미 고인이 된 작가에게 성을 내게 되는 것은 아마 내 성격이 급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대옥의 절명에서 느껴지는 비통함의 카타르시스, 저도 모르게 같이 울며 '인생은 다 이런 것인가'하고 되뇌게 되는 그 드라마성도 아마 그런 분노와 절망에서 나오는 것이지 싶다.
  소설에서, 보옥은 두 가지의 인연을 갖게 되는데, 전세에서부터의 목석의 인연도, 현세에서의 금옥의 인연도 어느 하나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었다. 마음은 목석의 인연을 갖는 대옥에게, 진짜 연분은 금옥의 인연을 갖는 보채에게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 제 1이면서도 결국 진정한 제일은 될 수 없는, 가짜도 아니고 진짜도 아닌 인연. 집안 사람들에게 속아 보채와 혼인한 뒤 넋이 나가버리는 보옥도, 혼인식 날 피를 토하며 보옥과 주고받은 시가를 태우고 그만 절명하고 마는 대옥도, 평생 낭군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가씨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보채도 모두 이 인연의 희생자였다. 일견 대단한 듯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그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질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들의 엮임을 보면 마치 옆에서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지. 이런저런 것에 눈을 빼앗겨 매혹되고 싸우고 울부짖어도 결국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지. 사람 사이의 맺음과 끊김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남은 생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지.' 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외에도, 소설에는 꽃처럼 순결하고 꽃처럼 금방 져버리고 만 아가씨들, 한 때 부귀했지만 결국 몰락해버리고 만 권세가 가씨 부중의 모습, 출가의 길을 떠나는 보옥이 그려지면서 이야기 전체에 덧없는, 한 때 반짝 빛나고 말았다는 그 서글픈 느낌이 흘러간다. 그 안에서 인간들이 어떤 드라마를 펼치고 있더라도 시간은 묵묵히 흐른다. 정해진 톱니바퀴는 예정대로 움직인다. 그 안에 희노애락이 춤추고 눈물과 핏방울이 흩어져도 그저 담담히 흘러가는 세월. 그 무서운 현실 안에서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 그 담담함에 마지막 장을 쉽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향 연기처럼 애틋하고 아련한 이야기. 읽다보면 어느 새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되고 마는 이 서정성과 비통. 연기는 흩어져 사라져도 그 향기는 주위에 오래도록 남듯,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아름다웠던 그들의 모습과 이루지 못한 사랑이 깨진 거울에 잠시 머무른 햇빛마냥 반짝, 우리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홍루몽]을 읽으면서 본인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아련한 향수를 갖고 바라보았다. 마치 우리가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갖는 향수같은 그런 아쉬움과 슬픔을 가지고. 몇 백년이 지나도 거듭 읽혀지는 [홍루몽]의 힘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세기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그들의 순수성. 아무리 많이 읽어도 이미 때가 탄 우리들의 눈에는 그것이 여전히 슬프고 아름답게 비친다. 때문에 우리가 아직까지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은 아직 초판이라 후반부로 갈 수록 사소한 오타가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모두 문장부호에 관련한 문제라 크게 신경이 쓰이는 정도는 아니다. 200명 가량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터라 각 권마다 가계도가 거의 다 붙어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권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장 복사해서 옆에 두고 같이 보아가며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역시 재판이 나올 경우 출판사 측에서 따로 휴대용 가계도를 만들어 넣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중국풍의 삽화가 눈을 즐겁게 해주므로 읽으며 지루할 틈도 없고 이 시절의 소설이 흔히 갖는 성에 대한 세세한 묘사도 거의 없으므로 중학생 정도의 자녀에게도 걱정없이 손에 들려줄 수 있을 책이다. 한 질 사 두고 오래오래 읽을 책, 언제 읽어도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책.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소설, 이 [홍루몽]의 진가를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부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a****d 2007.08.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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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의 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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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4대 기서인 ,,,를 뛰어 넘은 중국 고전소설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지는 조설근의 소설이다. 나 는 많이 들어보고 또 주위에 많이들 읽는 터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접하게 된 은 얼리 리뷰어로 읽는 탓에 알게 된 소설이다. 솔직히 나는 그 흔하디흔한, 많이 읽히는 조차 읽어 보지 못했다. 장편에 대한 두려움(?)과 정사(政事)와 전쟁을 다룬 남자만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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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4대 기서인 <삼국연의三國演義>,<수호전水滸傳>,<서유기西遊記>,<금병매金甁梅>를 뛰어 넘은 중국 고전소설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지는 조설근의 소설이다. <삼국지>나 <서유기>는 많이 들어보고 또 주위에 많이들 읽는 터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접하게 된 <홍루몽>은 얼리 리뷰어로 읽는 탓에 알게 된 소설이다. 솔직히 나는 그 흔하디흔한, 많이 읽히는 <삼국지>조차 읽어 보지 못했다. 장편에 대한 두려움(?)과 정사(政事)와 전쟁을 다룬 남자만의 소설이라 생각했기 때문인 듯싶다. <홍루몽>이 당시 상당히 비쌌음에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나고 80회에 이르렀던 소설을 40회를 더해 편찬한 이유는 아마 이 소설을 읽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 청계출판에서 새롭게 나온 이 <홍루몽>은 기존의 80회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겠다. 절판 된지 10년 가까이 되어 출판이 되고 우리말이 아닌 한문을 번역하느라 고군분투한 옮긴이의 노력을 생각하면 이 어렵게 만들어진, 그것도 얼리 리뷰어 자격으로 가제본이라는 책을 읽는 다는 것에서 상당한 의무감과 우월감, 혹은 감사함을 느꼈다. 중국의 문자는 한 글자에 여러 의미가 있고, 여러 가지 글자가 한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등 변화가 무쌍하다.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문자적 특징과 운율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번역에 심혈을 기울인 옮긴이의 뜻을 받아 중국 문학만의 특징을 몸으로 느껴가며 한 자 한 자 읽었다. 또한 번역은 그 책을 읽을 국가의 사람이 해야 한다는 어느 책 속의 구절을 뼈저리게 느낀 책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옥을 물고 나온 기이한 사내 ‘가보옥’, 어려서 승려에게 받은 금쇄가 있어 보옥의 옥과 한 쌍을 이루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설보채’, 가보옥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보채와의 혼인 소식을 듣고 절명하게 되는 ‘임대옥’ 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각각의 성격에 맞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다 다룰 수 없는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 보채는 조용한 성격, 보드라운 심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고 대옥은 톡톡 쏘는 새침떼기 소녀 같은 사람이다. 각각 매력을 갖고 있는 두 여인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보옥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현대판 로맨스 소설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소맷자락 펄럭일 때 짙은 향기 물씬물씬, 치마꼬리 흐늑일 때 은목걸이 잘랑잘랑~’ 경환선녀가 등장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황홀할 지경이다. 우리말이 아닌 한문의 운율을 살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시를 통해 암시한다는 점에서 한자의 다의성을 느끼기에 다분했다. 마치 언어를 가지고 마술을 부리는 듯하다. 고전소설이라 해서 고전에만 치우치는 경향만 보이지 않는다. ‘세상일에 밝은 것은 학문의 덕이요 인정에 통하는 것은 문장의 힘이라.‘ ‘지금 세상에 그것이 통하기나 합니까? 옛날부터 대장부는 때를 보아 가며 처신한다 하였고 군자도 상서로운 일은 따르고 위태로운 일은 피한다고 하였지요.’ 와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지금 사회에서 팽배히 이루어 지고 있는 일들도 다루고 있다. 진부한 영웅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뻔할 뻔자인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고전소설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중국문학만의 독특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 1~3권까지 읽었지만 후엣 일이 충분히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마오쩌둥 주석은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고 했다. 너무 많은 인물과 복잡한 가계도를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지만 다섯 번 까지는 아니어도 장편이라는 소설에 거리감이 있었던 나에겐 새로운 출발점을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실로 피눈물로 씌어진 것이어늘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오 이 책의 진미는 읽어보고 맛을 봐야 만이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m 2007.01.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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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사랑과 출세 모두 헛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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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의 계곡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일희일비(一喜一悲)할 부분도 있다. 사람 사이를 다루는 내용은 재밌다. 곰곰이 생각하며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맛이 난다. 많은 인간들이 등장하는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여러 장회소설도 비슷한 풍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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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의 계곡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일희일비(一喜一悲)할 부분도 있다. 사람 사이를 다루는 내용은 재밌다. 곰곰이 생각하며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맛이 난다. 많은 인간들이 등장하는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여러 장회소설도 비슷한 풍미가 있다.

 

  <홍루몽>은 특별하다. 서양과 동양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게, 이젠 식상하지만 그만큼 또렷하게 드러나기에 나도 비춰 보아야겠다. 지금도 책장에서 거꾸로 뒤집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나를 노려본다. 오로지 그 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묘사라든가, 인간관계 구도를 그려내는 작업에 있어서는 조설근과 셰익스피어 두 사람을 동격에 두고 싶다.

 

  언젠가부터 중국에 대해 많은 말들이 돌아다닌다. 새로운 세기에는 중국이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따위의 말이 넘쳐난다. 물론 나도 그 말을 비난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누구의 꾐이든, 스스로의 선택이든 나도 중문학과에 진학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5년간의 대학생활에서 ‘전문가’가 되라는 주문을 받았다. 중국은 매우 넓은 영토와, 굉장히 많은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의 지역을 선택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설이었다.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한 나라의 문학 전반을 훑어 읽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면, 그 나라 민족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중문과 불량 학생이었지만, 조설근과 <홍루몽>은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이 하신 저 말씀도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지만, 백 번을 듣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보는 게 나았다. 이번에도 옛말은 적중.

 

  중국 것은 엄청난 스케일인 것이 많다. 1권의 맨 뒤를 들춰보면, 가나다 순서로 된 등장인물 안내와 이 책의 얼개를 이루고 있는 4대 가문의 가계도가 수록되어 있다. 중국 전토를 휩쓰는 <삼국지>도 그렇고, 서역까지 불경을 찾으러 가는 <서유기>도 그러하고 주체할 수 없는 중국인들의 스케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가 보다.

 

  <홍루몽>을 읽을 때 인간들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야기 전반을 제대로 좇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 대부분이 바깥일과는 거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사건들은 홍루(紅樓, 여인들이 기거하는 처소)에서 벌어진다. 우리 문학의 ‘몽자류 소설’인 <옥루몽>이나 <구운몽>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전쟁터에서 무공을 세우는 장면이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느낌으로 그칠지 모르겠지만, 세 소설의 주제가 한 곳으로 모여드는 느낌이다. 마치 탄천과 중랑천, 양재천이 한강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반갑다. 아직까지 <홍루몽>은 깨끗한 완역본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상세한 각주와 한시를 맛있게 번역해 둔 부분은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중국어와 한문을 할 줄 안다면, 역자의 노력을 좀 더 보람 있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장회 소설의 백미는 “다음 회를 보시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다시 군침이 돈다. “다음 회를 보시라.”

 

<책에서>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실로 피눈물로 씌어진 것이어늘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오

(滿紙荒唐言, 一把辛酸淚, 都云作者癡, 誰解其中味) -1권 -p.30 1회

 

가짜가 진짜가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곳엔 있음 또한 없음이로다

(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1권 p.36, 143. 1회, 5회

 

원춘은 가마 안에서 어원의 안팎이 이처럼 호화로운 것을 보고 남몰래 한숨을 지었다. 지나치게 돈을 들여 꾸며 놓은 것이 민망했던 것이다. -2권 p. 192 18회

YES마니아 : 골드 c***m 2007.01.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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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맛깔스런 고전 소설, 중국 고전소설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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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홍루몽>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았고, <삼국지연의>나 <서유기>는 보았지만 <홍루몽>이 그보다 더 유명하고, 마오 쩌둥마저도 홍루몽은 다섯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안다고 극찬했던 책이 바로 이 <홍루몽>일 줄은 몰랐다.   학교 다닐때는 김만중의 <구운몽>같은 '몽'자 시리즈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서문에 있는 번역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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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홍루몽>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았고, <삼국지연의>나 <서유기>는 보았지만 <홍루몽>이 그보다 더 유명하고, 마오 쩌둥마저도 홍루몽은 다섯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안다고 극찬했던 책이 바로 이 <홍루몽>일 줄은 몰랐다.
 

학교 다닐때는 김만중의 <구운몽>같은 '몽'자 시리즈의 아류작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서문에 있는 번역자의 홍루몽이 나오기까지의 얽힌 이야기와 홍루몽에 대한 소개를 읽다보니, 이 책이 중국 문화, 중국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그리고 우리 고전 소설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로도 나왔고 또 현재 제작중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홍루몽>의 드라마 역시 보고싶어진다.

 

고전소설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주인공인 가보옥을 중심으로 12명의 미녀인 금릉십이채의 미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외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500여명이 넘다보니, 소설을 계속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인물이 나오고, 이 인물들의 관계만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보통 고전소설들이 지은이가 불분명하거나 이름을 바꾸어서 내곤 하는데, 이 <홍루몽>의 원작인 <석두기>는 원작자가 분명한 소설이다. 한자어가 상당히 많고, 이 한자어의 운율을 살린 시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번역하는데 있어 역자의 노고가 상당히 많이 보여진다.

 

또한 지루할 수 있는 이 긴 소설의 중간중간에 소설의 내용에 해당되는 고전 삽화의 명인인 대돈방의 삽화가 들어가있어서 보는데 지루하지 않고 상상한 장면들을 눈으로 보는 맛도 있다.

 

이 소설의 큰 줄기는 권문세가인 녕국부, 영국부의 가씨 집안 이야기로서, 여기에 천지 창조때 여와가 사용하던 돌의 일부분이 몇 겁을 걸러 가씨 집안에 태어날때부터 옥을 물고 태어난 보옥이 중심이 되어, 가씨 집안과 관련 있는 열두 명의 여인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보옥과 대옥, 보채의 삼각 관계를 중심으로 초반부터 이 금릉십이채의 열두 명의 여인과 보옥의 운명을 암시하는 시들이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언어를 맛깔나게 사용한 언어 유희를 이용한 등장 인물들의 이름들, 지명들이 탄성이 나오게 만들며, 지은이의 감정을 드러낸 시구들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곳엔 있음 또한 없음이로다.

 

이 책을 계기로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중국의 5대 기서를 모두 읽어보는 것으로 정해졌다. 전권은 아니지만 일부만 읽어본 것만으로도 이 책의 진수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어 기쁘다.

k*****5 2007.01.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회를 거듭할 수록 매혹적인 작품....
"회를 거듭할 수록 매혹적인 작품...." 내용보기
나에게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자, 하나의 도전이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같은 시대를 살아도 나이에 따라서 쓰는 언어가 조금씩 다른데, 정신과 정서가 다른 시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비록 한글로 쓰여졌다고 해도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 같이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출연하면 영어 원서를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튀어 나올 때
"회를 거듭할 수록 매혹적인 작품...." 내용보기
 

 

 나에게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자, 하나의 도전이다.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면 느낄 있듯이 같은 시대를 살아도 나이에 따라서 쓰는 언어가 조금씩 다른데, 정신과 정서가 다른 시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비록 한글로 쓰여졌다고 해도 다른 세계를 접하는 같이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출연하면 영어 원서를 읽을 모르는 단어가 튀어 나올 때의 당황스러움과 별차이가 없다. 그나마 한국의 고전은 교과서를 통해서 익숙해져서 인지 다른 나라의 고전을 읽는 만큼의 어려움은 덜하지만, 다른 나라의 고전을 접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체나 단어의 선택을 좌우하는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번역으로 원작의 맛을 얼마나 살리고 지금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느냐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번역 때문에 내가 포기했던 작품이나 읽어도 내가 읽었는지 모르는 작품이 있었다. 삼국지가 시대의 여러 유명작가들에 의해 계속 번역되어 나와도 작가의 관점이나 시점에 따라서 그리고 작가의 문체에 따라서 주는 느낌이나 감동이 다른 처럼, 원서를 바로 실력이 안되는 내가 고전을 읽을 때는 가장 먼저 꼽는 것이 번역이다. 작품을 선택 했을 때는 작품에 대한 많은 찬사나 문학적 평가가 중요했지만, 작품을 받았을 때는 이상 문학적 평가나 찬사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권을 끝까지 있을 정도로 수월하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읽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고 감동을 받고 생각할 꺼리를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읽히지 않으면 이상 나에게는 소용없는 책이 되고 만다. 그렇게 쌓여 있는 책만 꽂이 칸을 차지하고 있고 대다수가 고전이기에, 내가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나 도전이다. 홍루몽을 받아 들고 "내가 끝까지 권을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장을 넘겼다. 역시 장부터 낯설다. 역자의 서문을 통해서 책이 나오기까지의 노고와 열정을 충분히 느꼈지만, 200 이상 시간의 차이에서 나오는 문체와 정서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낯설음은 어쩔 없나 보다.  초반의 낯설음을 조금만 참고 넘기니 홍루몽에 조금씩 몰입할 있게 되었다. 이야기의 생소함과 문체의 생소함으로 작품에 몰입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가씨 집안의 이야기라는데 가씨 집안의 친척도 아닌 가우촌이라는 인물과 냉자흥 같이 가씨 집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 나와서 초반 이야기를 이끌고 가더니, 가보옥의 꿈을 통해서 가씨 집안 12인물의 삶을 노래로 설명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준다. 인기 있는 스릴러 영화의 스포일러들이 범인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당혹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친절함은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까지 뒤로하면 홍루몽 속으로 들어가는 가기는 수월해 진다. 본격적인 가씨 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가족인 가씨 집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조그만 사회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의 갈등에 쉽게 공감하고 빠져든다. 가보옥과 임대옥의 밀고 당기는 애정전선은 가보옥의 애간장을 태울뿐만 아니라, 애간장까지 타게 만든다. 음욕을 절재하지 못하여 벌받고 운명을 달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측은하기만 하다. 시대의 풍류를 눈앞에 펼쳐 놓는 것은 묘사와 한시들은 책의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설보채를 양귀비에 비유한 묘사를 보면서 살찐 사람이 미의 기준이 였던 시대의 정서에 웃음도 난다. 회가 끝날 마다 나오는 "다음 회를 보시라" 문장에 웃기도 했지만, 얼리리뷰를 위해 받은 분량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 나오는 문장은 홍루몽에 점점 매료되어 버린 나에게 야속함 자체였다. 홍루몽에 대해서는 내가 문학적으로 말하기고 평가하기에는 모자람 때문에 힘들다. 그러한 평가는 이미 보도자료나 미디어의 서평만으로 충분하리라. 그냥 읽어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페이지 페이지 넘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홍루몽의 늪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하는 자신을 있을 것이다.

h*******k 2007.01.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