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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나 책을 읽고 모든 사람들이 100%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을 찾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느낌을 가졌으며 어떠한 것들을 얻었는지 알고싶어서 독자리뷰를 쭉~ 훑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전부 한목소리를 내어 Wonderful을 외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 이 시대의 위대한 양심을 지닌 석학으로 추앙(?) 받고있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솔직히 나에게 있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우선, 자신이 느끼고,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들을 주위의 눈에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하는 용기와 그의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박학다식함에는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정보처는 '믿을만한 교회의 소식통' 이었다. 또한 이야기의 설득력이 너무나도 떨어지고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염되어 있는 언론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정말 하기 힘든 옳은 소리를 하는군'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에 대한 논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어떤 주교가 교회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했는데, 지방의 마이너하거나, 종교계 또는 사회주의 성향의 신문에서는 보도가 되었지만 미국의 메이져 언론에는 보도가 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우 옳은 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노암 촘스키가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다 잘못된 것이고,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잘하는 것이라는 식의 편향된 견해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지. 어떠한 진실을 알려주는 글처럼 보이지만, 한쪽은 무조건 악마적이고 한쪽은 무조건 정의의 편이라는 식의 흑백논리를 가지고 글을 썼다면 무식한 나로서는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 더더욱 가치관의 혼란만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선택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즉,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많은 사실들에 대한 용기있는 언급과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데 있어서는 역시 세계적인 석학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암 촘스키의 브랜드 가치가 범인으로서 우리가 받아들일 때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또 한편으로 어떠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무조건 진실일 것이다라는 콩깍지를 쓰고 본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 같다라는 것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는 말이다. |
| 대학에서 영어 부전공을 이수할 때 촘스키는 유명한 언어학자였다. 그러나 요 근간에 접한 그는 정치비평가로 더 적극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9.11 미국 테러 1주년 기념행사와 테러 근절을 위한 보복전이 신문의 국제난을 메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누군가 -물론 미국에서는 그 혐의를 빈 라덴에게 두고 여기에 따른 충분한 증거에 전세계가 공감해 줄 것을 호소했었지만-의 테러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격분하고 이에 대한 보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촘스키는 초강대국 미국이 카리브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동티모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 페르시아만 전쟁과 유고의 코소보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잔학행위를 일삼는 세계도처의 독재정권들을 지원하여 오늘날 어떤 비참한 사태를 불러왔는지를 사실자료를 토대로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논할 때 그 특징으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여 강대국의 이익이 우선된다고 할 때 대개 담담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체제나 이념의 도전을 받지 않는, 아니 미국이 어떤 행동에 앞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비추어 봤을 때,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의 여러 결의안들, 그리고 국제법과 그 관행들을 무시, 위반하는 미국의 경찰 노릇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 내에서만 자유가 허용되도록 제재하고 이를 위한 군사행동이 국제사회에서의 정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요소 중 하나가 주권이다. 이 주권은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독립된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촘스키에 따르면 오늘날 주권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체에 의한 간섭을 위미한다. 그리고 그 주요핵심은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적인 입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기업, 종종 전략적 동맹에 의해 맺어진 대기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제 경제를 주무르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독과점을 향해 움직이는, 그리고 위험과 비용을 사회화하고 저항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주로 국가권력에 의존하는 기업 중상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활동에 최대한의 선처를 베푸는 신자유주의의 미국경제전략은 10 년이상 기적에 가까운 호황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촘스키는 91년 이후 미국의 ''''동화속의 신경제''''로 지칭되는 경제호황의 중요한 요인을 이를 실질적으로 주관했던 앨런 그린스펀의 말을 빌어 ''''더욱 커진 노동자 불안''''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겁에 질려 있고 두려움 때문에 생활임금과 복지혜택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이 당시 미국의 기적은 노동시장의 제도와 관행의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심각한 임금억제 덕분이었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낮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노동자들, 비관리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낮아졌고 노동시간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국의 노동시간은 선진산업국들 중 가장 높다. 노동자들은 사치스런 생활양식을 포기해야 한 반면 기업의 이윤은 엄청난 것이었다. 존 듀이와 같은 학자는 ''''국가의 생명''''이 이와 같은 기업화 전략에 -그는 산업적 봉건주의라 부른다.-의해 지배될 때 민주주의라는 형식은 아무런 실체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영자의 지배 하에 들어가 종속되고, 정치는 거대기업의 들러리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세계화를 주창하는 WTO의 보호 하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 나라의 피해와는 상관없이 그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 최근 세계은행의 분석을 보면 세계인구의 상위 5%와 최하위 5%을 비교했을 때 1988년 78대 1인 것이 93년에 114대 1로 벌어졌다. 전세계 인구의 상위 1%의 수입은 하위 57%인 27억명의 수입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종속된 국가들의 대처방안이 있느냐 이것 또한 논란이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때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가 가장 대표적인 처방전으로 제시된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단적으로 ''''대안이 없다 즉 TINA(There Is No Alternative)''''로 잘라 말했으며 이로 인해 실질적 민주주의는 급격히 퇴행했다고 한다. 그럼 민주주의는 절망적인가? 촘스키는 인간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진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수정될 수 있으며 이러한 책무는 여지껏 역사를 바르게 이끌어왔던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낙관하였다. 이 책을 통해 최근 진행되는 미국 주도의 세계 재편 시도가 얼마나 세계국가들의 합의를 얻고 있는지 미국은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며 제 주변 시민들도 이러한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만이 진정한 세계평화는 그 밑그림이 나타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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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단 두페이지의 옮긴이의 구절들에서도 느낀 바 많다.
불량국가는 한동안 국제정세를 놓친 사람들에게 정리하기 좋은 책으로 생각된다. 어렸을 때(80년대~90년대 초반) 그냥 뉴스에서 흘려들었던 이야기에는 이렇게 목적과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냉전에서 현재로 어떻게 미국의 foreign policy가 변해왔는지 그 역사를 훑어주는 책이다.
미국의 fp는 80년대 레이건 행정부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는 논리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도(국가는 그렇다쳐도 단체나 집단 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스토리라인은 매번 이렇다. 테러는 공포스럽다. 그에 대한 안보는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미국이 원래부터 공격하고자 했던(정치적으로 염두해둔)) 어떤 나라를 알고보니(?)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다. 또한 희안하게도 그 나라는 독재자가 국민을 핍박하고 있다(그렇게 프로파간다 되고 있다.). 무엇인가 미국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게 언론은 떠든다.
실은, 그 순서가 반대일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염두해둔 나라를 처리하기 위해 테러를 가장하거나 언론을 통해 테러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핍팍받는 국민과 국제 안보를 위해 세계 경찰국가 미국이 나아가신다~! (어쩌면 이 논리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 대체로 서구의 전쟁/정치사상을 지배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라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이런 논리(테러에 대한 국제 안보와 그 나라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로 폭격이나 돌진으로 그 나라를 침략한다.(그런데 그 명분에는 꼭 그 표적국이 유엔결의나 헌장을 위반하는 것으로 되어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 무력침략은 수많은 유엔결의나 헌장을 무시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침략 후, 꼭두각시 국가를 세우고 철수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원래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자원이 풍부하다면 원하는 바를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M&A와 vertical integration이듯, 힘이 있다면 손쉽게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 전쟁 아닌가 싶다. 그것이 현실주의자들의 논리이며 나는, 조지도 그러하듯, 현실주의를 매우 인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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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인격을 부여받고 책임은 지지않는 불멸의 존재인 집산주의적 법인체에의해 움직이고 있고, 세계의 여러나라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해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기업독재자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대우를 원하는 민중의 학살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것으로 그러한 바이러스(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가 퍼지지 않게 노력하고있다. 이 글에 의하면 미국은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세가지 기둥인 세계인권선언(인권제도), 유엔헌장(정치질서), 금융규제(경제질서)를 무시한다. 왜냐면 돈이 안되니까. 춈스키 할아버지는 금융규제가 세계의 복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고 동아시아의 유래없는 발전은 적절한 규제의 덕분이었고 90년대의 금융자유화가 한국에서 IMF구제금융을 요청하게된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재산가들은 유럽과 미국식의 하이컬쳐(고급소비문화)를 탐욕스럽게 추구했고 재산의 해외이동을 통해 누진세금을 거부했고 재정위기때마다 구제금융을 끌어다 썼다.(물론 당연하게도 그곳의 대다수의 국민은 굶주리고 있다.) 이것이 수세기동안 자유시장 정책이 보여주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고, 금융의 자유화는 복지국가를 저해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라고 말했다. 또 구제금융은 금융의 채무에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지고있는 소수자본가들에게서 대다수 국민에게로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전가하는 방법이 되었다라고 했다.
정부의 공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낸 세금이 기업을 살리는데 쓰여졌지만 그와중에도 불법적인 대출이나, 그대출금을 사적인 지출로 바꾸어버린 뉴스보도를 보면서 나는 그 주장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한국의 미래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한국이 '라틴아메리카화'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것이다. 위에서 말한 금융자유화이후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현상들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있다. 부의 불균형은 심화되었고 소수의 상위%자들은 명품에대한 열광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소비문화를 좇던 라틴아메리카 자본상위층의 전형적인 행동을 답습하고있다. 그들은 또한 원정출산과 조기유학, 이민열풍으로 미국시민권을 얻으려는 강렬한 욕망을 표출한다. 결국 국가의 모든 부가 상위층으로 몰리고, 그 상위층이 부를 가지고 모두 미국인이 되어버린 뒤 우렁어미처럼 빈껍데기만 남은 나라에 하위90%의 절대빈곤층이 되어 남겨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촘스키 할아버지는 라틴아메리카의 허약한 공동체의식이 유럽과 미국의 소비문화를 탐욕스럽게 추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대적으로 더 강한 공동체의식이 이를 저지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결국 낡은 금언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우리의 위기를 구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 같다. 노암 촘스키 할아버지는 언어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이 복잡했다. 그래도 글 자체는 국어책처럼 거슬리는데가 없어서 읽는동안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다. 다만 중학교때 읽었다면 글에 대한 이해가 더 잘됐을 거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요새는 감성도 이해력도 무뎌져서 이런 어려운 글을 읽기엔 내공이 딸린다. 그냥 아줌마처럼 '어머 세상에 이런일이' 하는 분개하는 기분을 에너지삼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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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공하는 과목은 '언론학'이다. 언론학과 '언어학자' 촘스키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살아있는 최고의 지식인'인 촘스키는 언론과 국가, 그리고 이 둘을 막후 조종하는 몇몇 거대 기업에 대한 '살아있는 최고의 비판가'이다. 이런 이유로 촘스키와 언론학도인 나와의 관계는 시작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저작은 어렵다. 실제로 '국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읽었던 촘스키의 글(물론 영문판)은 정말 해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어휘(vocabulary)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촘스키의 글을 번역하는 것 역시도 '어렵다' 최근에 번역된 촘스키의 미국 패권주의 비판서인 <숙명의 트라이앵글>을 '가장 나쁜 번역서의 표본'으로 꼽는 이유 역시 촘스키 글이 갖고 있는 난해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 <불량국가>는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다. 읽어가면서 마치 촘스키가 '한글'로 글을 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원저자의 박학다식함이 매끄럽게 펼쳐져 있고,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촘스키의 분노가 맨살에 그대로 꽂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당시 '노수석'이라는 학생이 죽었다. 그 후 2년 동안 군대에 들어가기 전의 기간동안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역을 하고 나서는 그간의 나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상의 모든 일에 냉소적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전 발생한 9-11 사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닌, 냉소주의 특유의 상대주의-"전쟁에 이기면 관군, 지면 반란군"-에서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를 깨달은 것 같다. 예전과 같은 뜨거운 마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이 지켜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또 '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 동안 '세계의 나팔수'였던 미국 언론이 침묵했던 여러 사태들에 대한 숨겨진 사실들을 폭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문제, 니카라과에서의 문제, 베트남, 쿠바 등 흔히 '불량국가'라고 미국이 정의한 그 국가에서 미국이 얼마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준엄한 폭로가 바로 그것이다.
탈구조주의자인 미셀 푸코는 촘스키와 같은 지식인상을 '허무한 박학다식'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 '일원성'과 '인권, 정의, 자유, 평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푸코의 적대적인 이론적 경향과 촘스키의 비판이 갖는 반억압적인 경향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섞여져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행했고, 지금도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 탈구조주의(탈근대주의) 이론의 탓일까? 사람들은 정치나 경제, 사회적 구조와 같은 거대한 주제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제는 '미시 권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또 현재의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든 대안은 '근대의 폭력성'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너무도 손쉽게 단정짓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국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국가에 대한 국민의 통제권도 약해지지는 않았는가? 기업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옆에 있는 이웃들의 어려움을 '나랏님도 구제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탈구조주의자인 푸코 역시도 <감시와 처벌>이라는 저작을 쓰면서 감옥 내에 일어나는 미시권력의 억압적 요소를 철폐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촘스키와 푸코는 대립되는 인물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비록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상호보완적인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상적인 정부의 역할마저도 감소시키고 작으나마 인류가 이룩한 인간다운 삶의 근원마저도 '보이지 않는 손의 신성화'를 통해 파괴시키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자신만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탈피하였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친구와 선배들은 '산업예비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현실이 과연 '개혁'인가? 여기에 대해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촘스키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촘스키의 생각에 대해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경청을 할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범죄의 고발은 같은 기간에 서구 열강들과 그 속국들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공격에 의해 어떤 참화가 빚어졌는가를 고려할 때, 더욱 힘을 얻는다. 여기서 기록을 다시 살펴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블랙 북>이 출간되기 전에 공산주의 범죄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사실(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공격으로 일어난 범죄-옮긴이)도 주요 여론 주도층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라이언은 <블랙 북>의 저자들이 과감하게 다음과 같은 '큰 질문'에 맞서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반도덕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와 나치즘 가운데 누가 상대적으로 더 나쁘냐"는 것이다. 비록 "죽은 사람의 수로 본다면 공산주의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덕성의 저울대에서는 나치즘 쪽이 더 많이 가라앉고 있다고 라이언은 결론짓는다. |
| 미국. 세계최강의 나라. 현재 지구촌을 움직이는 나라. 종종 한국이 미국의 종속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 발달된 대중문화의 나라. 이 정도가 현재 우리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관심있어서 좀 더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강 위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고, 점차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던 중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활동적인 정치평론가 노암 촘스키의 본 책을 읽게 됐다. 그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성, 그리고 국제 단체를 뒤에서 조종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초토화 시키는 과정은 정말 미국이 발표하는 소위 불량국가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반미를 외치면서 운동할 생각은 없다. 또 미국을 무작정 증오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
| 불량국가...는 처음 접한 촘스키의 책이다. 9.11테러 직후 여러 관련 서적이 나왔다. 그런데 그 중 촘스키의 이름이 쏠쏠치않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이 책 역시 테러 직후에 나온 책이라, 책표지에 '미국은 왜 테러의 표적이 되었나?'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현지에선 그전에 나온 책이라 문구만 보고 샀다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까지 미국이 저질러온 불량스러운 만행들을 파헤치고 있다. 읽는 나도 개탄스러움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는데, 당사자들은 어떠했을까 짐작해본다면 책표지의 글귀가 예사로 넘길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역자가 말했듯 '정말 이것들이 사실일까'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적어도, 이제까지 미국이 최고선이며 지상낙원으로 알아온 우리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지난 테러때만 하더라도 한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미국보다 더 미국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제서야, 미국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만도 약자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어왔는가 하는 통탄을 하게 된다. 사실 촘스키는 정작 미국내에서는 따돌림받는다고 들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 가끔 너무 극단적인 면만 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역자의 말처럼, 나도 촘스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옳은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태로 해서 유태인에 대해 감정이 안좋지만, 또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닌가보다.(사실 생각해보니, 이책에 선진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유태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던듯 싶다 맞나? 어려운 책이라 띄엄띄엄 읽다보니.. 참고로 촘스키는 유태인이라 들었음) 우리에게도 이런 입바른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비판 문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조금만 맞받아치면 말대꾸니 하는 걸 나는 굉장히 싫어한다) 그걸 발판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면, 잠깐 따끔한 거야 참아볼만 하지 않을까...싶다. 여튼 촘스키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촘스키, 딱 걸렸어! |
| 불량국가(Rogue States)란 무엇인가? 시사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분명 어디선가는 들어봤음직한 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북한과 같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인 국가들이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촘스키는 그의 저서 ‘불량국가’에서 그 불량국가를 두개의 범주로 나눈다. 하나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되는 문자 그대로의 용법이다. 전자는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이나 이라크와 같은 나라들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가 불량국가라 지칭하고픈 미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국의 만행은 비단, 타국이나 세계정세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해지는 것뿐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인구의 3분의 2가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에 반대하는데도 40년간 쿠바를 괴롭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UN을 비롯한 4개의 국제기관이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퇴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정세에 반대하는 미국, 그 미국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미국 정부. 미국을 불량국가를 만든 원인은 미 정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선진국임을 자칭하는 미국이지만, 그 불평등의 격차 또한 세계 제일이라는 점을 본다면 잘못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해지지 않을까.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는 사실상 그 존재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촘스키가 ‘미국은 없다’고 했던 것일까.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라는 이름아래 그들 정부와 소수의 대기업들이 자행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익추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국 이외의 강대국 - 예를 들어 영국이라든가 - 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나 다른 후진국, 개도국들을 상대로 불합리한 일들을 해왔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량국가인 미국은, 단지 미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주축으로 한, 권력을 남용하고 세계정책을 무시하는 강대국들을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를 미국에 떠넘기는 짓은 할 수 없어도, 많은 경우 미국이 문제를 저지르는 행위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들이 하는 ‘침략’행위는 분명 ‘월권(越權)’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과연 어느 정도일 것인가. 국민은 어리석을수록 지배하기 쉽고, 속이기 쉽다. 미국이 전쟁과 정책, 양 방면으로 힘없는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미국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의 문맹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꽤 높은 수치라고 알고 있다. 글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면 이런 촘스키의 서적과 같은 것들이 아무리 많이 발간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이해가 가능한 지식인들 이외에는 변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정부는 이것을 보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서민에게 과거의 응시 자격은 있었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실제로 응시할 수는 없지 않았는가. 실제로 과거뿐 아니라 외교나 군사에 관한 지식 등은, 비록 관리라고 하더라도 하위에 있는 사람들은 접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이 없었던 과거에 지식의 보관수단은 책과 같은 문서였고, 그들은 그 문서를 독점함으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그만큼 힘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대외정세는 평화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성이라면 군자금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갈 때에 사실을 들이대면서 반발하고 나올 것이 아닌가. 국민들이 공부를 하고, 영리해지고, 지배계층의 일에 관심을 돌리면 그들로서는 골치 아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봉해놓은 대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익에 맞는 행동을 해 주도록 왜곡된 지식을 퍼뜨리고, 가르쳤다. 그들이 그렇게 지식을 독점하고 왜곡된 지식을 가르치는 행동은, 지금 한국 정부가 통일에 관한 문제를 꽁꽁 싸매두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만 골라 빼내서 이리저리 말을 만들어 내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이 가르치는 ‘왜곡된 지식’은 더더욱,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그들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제서라도 강대국이라는 호칭 이외에,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호칭을 얻으려면, 더 이상의 무차별적인 월권행위는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미국이 UN의 다른 국과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실상, 미국을 평범한 선진국 중의 한 나라로 전락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영국 등의 다른 선진국이 아무리 발전해도, 중국이 얼마나 성장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미국과 UN연합 가운데에서 우위를 정한다면, 당연히 UN쪽의 의사가 좀더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UN연합과 UN에 소속된, 다른 여러 나라들 사이를 중재해주는 ‘UN의 보조자’ 역할이 미국의 역할은 아닐까. 간단하게 예를 든다면, UN은 한 반을 담당하는 교사의 역할일 것이고, 미국은 선생의 보조를 하거나 학우들의 의견을 모아서 전달하는 반장의 역할인 것이다. 그 정도의 책임은, 그간 행사한 미국의 월권행위를 볼 때, 충분히 지어야 할 책임이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이익도 없는 불필요한 일에 나서서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책임도 짓지 않는다면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서, 국제질서를 무시해 가면서 까지도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행동은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UN의 힘이 강해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미국 내의 국민들이 지금보다 좀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정부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들에게 비판의 말을 던져야 할 것이다. |
| ‘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알면서도 어찌 해결할 도리가 없을 땐 차라리 모르는 게 맘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애써 외면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부조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겐 충분한 희망이 있으므로.. 미국은 9 11 테러 이후 북한, 이라크 등의 국가를 불량 국가로 규정했다. 미국은 자국에 해가 되는 의미에서의 적국들로서 그들 국가를 지칭했지만, 촘스키는 불량국가를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디(선전)로서의 용법이외에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한다. 즉, 촘스키의 의도대로라면 내부 규제가 없는 강대국들이 바로 불량국가인 셈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왜 불량국가라 불리어 마땅한지 명확한 사례와 증거들을 제시하며 주장한다. 우리는 매일 신문과 뉴스를 접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인다. 21세기에는 빠른 정보의 유통으로 세계 속에서 더 이상 무지로 인한 배척당함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방송 매체들은 911테러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한 테러를 알려줬고 이라크와 북한의 핵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갖게 한다. 보스니아에서의 내전은 민족과 종교가 다른 역사가 오랜 세월 내밀하게 곪아 드디어 터져버린 것이었고, 콜롬비아는 늘 마약 때문에 정부군과 게릴라간의 끊이지 않는 총격전이 벌어진다. 우리가 아는 진실들은 이런 것들이다. 그 뒤에 어떤 음모가 있는지 도대체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얼마가 거짓되고 위선적인 정보에 휘둘렸는지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을 지원한 것은, 40년 전 인도네시아가 농민층에 기반을 둔 좌파 정당의 정치 참여까지 허용할 만큼 민주적이고 독립성이 강하였기 때문이였다. 또한 콜롬비아 플랜의 목표는 콜롬비아 내부의 사회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농민에 기반을 둔 게릴라 병력을 제거하고 콜롬비아의 자원에 특혜를 받으며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미국의 이익과 연결된 엘리트들이 콜롬비아를 지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 이면에는 항상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 국가를 흔들어대는 놀라울 만큼의 이기심들이 있다.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설립된 여러 국제기구들의 의사도 무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정부정책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권력 형태인 지구적 자본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의 둔화와 생산성 후퇴와 금융 위기등이 발생했다. 전후 경제 질서를 해체한 것은 다른 대안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촘스키는 이것은 이기적 사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특정한 사회 경제적 질서는 인간이 결정하여 만들어 낸 결과이고 따라서 그러한 결정은 수정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촘스키의 바람대로 역사를 바꿀 자신의 이익을 뒤로 하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