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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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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나 책을 읽고 모든 사람들이 100%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을 찾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느낌을 가졌으며 어떠한 것들을 얻었는지 알고싶어서 독자리뷰를 쭉~ 훑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전부 한목소리를 내어 Wonderful을 외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 이 시대의 위대한 양심을 지닌 석학으로 추앙(?) 받고있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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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나 책을 읽고 모든 사람들이 100%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을 찾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느낌을 가졌으며 어떠한 것들을 얻었는지 알고싶어서 독자리뷰를 쭉~ 훑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전부 한목소리를 내어 Wonderful을 외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 이 시대의 위대한 양심을 지닌 석학으로 추앙(?) 받고있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솔직히 나에게 있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우선, 자신이 느끼고,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들을 주위의 눈에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하는 용기와 그의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박학다식함에는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정보처는 '믿을만한 교회의 소식통' 이었다. 또한 이야기의 설득력이 너무나도 떨어지고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염되어 있는 언론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정말 하기 힘든 옳은 소리를 하는군' 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에 대한 논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어떤 주교가 교회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했는데, 지방의 마이너하거나, 종교계 또는 사회주의 성향의 신문에서는 보도가 되었지만 미국의 메이져 언론에는 보도가 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우 옳은 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노암 촘스키가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다 잘못된 것이고,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잘하는 것이라는 식의 편향된 견해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지. 어떠한 진실을 알려주는 글처럼 보이지만, 한쪽은 무조건 악마적이고 한쪽은 무조건 정의의 편이라는 식의 흑백논리를 가지고 글을 썼다면 무식한 나로서는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 더더욱 가치관의 혼란만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선택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즉,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많은 사실들에 대한 용기있는 언급과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데 있어서는 역시 세계적인 석학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암 촘스키의 브랜드 가치가 범인으로서 우리가 받아들일 때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또 한편으로 어떠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무조건 진실일 것이다라는 콩깍지를 쓰고 본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 같다라는 것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는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l*******n 2003.06.26.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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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세계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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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어 부전공을 이수할 때 촘스키는 유명한 언어학자였다. 그러나 요 근간에 접한 그는 정치비평가로 더 적극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9.11 미국 테러 1주년 기념행사와 테러 근절을 위한 보복전이 신문의 국제난을 메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누군가 -물론 미국에서는 그 혐의를 빈 라덴에게 두고 여기에 따른 충분한 증거에 전세계가 공감해 줄 것을 호소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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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어 부전공을 이수할 때 촘스키는 유명한 언어학자였다. 그러나 요 근간에 접한 그는 정치비평가로 더 적극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9.11 미국 테러 1주년 기념행사와 테러 근절을 위한 보복전이 신문의 국제난을 메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누군가 -물론 미국에서는 그 혐의를 빈 라덴에게 두고 여기에 따른 충분한 증거에 전세계가 공감해 줄 것을 호소했었지만-의 테러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격분하고 이에 대한 보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촘스키는 초강대국 미국이 카리브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동티모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 페르시아만 전쟁과 유고의 코소보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잔학행위를 일삼는 세계도처의 독재정권들을 지원하여 오늘날 어떤 비참한 사태를 불러왔는지를 사실자료를 토대로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논할 때 그 특징으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여 강대국의 이익이 우선된다고 할 때 대개 담담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체제나 이념의 도전을 받지 않는, 아니 미국이 어떤 행동에 앞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비추어 봤을 때,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의 여러 결의안들, 그리고 국제법과 그 관행들을 무시, 위반하는 미국의 경찰 노릇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 내에서만 자유가 허용되도록 제재하고 이를 위한 군사행동이 국제사회에서의 정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요소 중 하나가 주권이다. 이 주권은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독립된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촘스키에 따르면 오늘날 주권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체에 의한 간섭을 위미한다. 그리고 그 주요핵심은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적인 입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기업, 종종 전략적 동맹에 의해 맺어진 대기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제 경제를 주무르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독과점을 향해 움직이는, 그리고 위험과 비용을 사회화하고 저항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주로 국가권력에 의존하는 기업 중상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활동에 최대한의 선처를 베푸는 신자유주의의 미국경제전략은 10 년이상 기적에 가까운 호황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촘스키는 91년 이후 미국의 ''''동화속의 신경제''''로 지칭되는 경제호황의 중요한 요인을 이를 실질적으로 주관했던 앨런 그린스펀의 말을 빌어 ''''더욱 커진 노동자 불안''''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겁에 질려 있고 두려움 때문에 생활임금과 복지혜택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이 당시 미국의 기적은 노동시장의 제도와 관행의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심각한 임금억제 덕분이었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낮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노동자들, 비관리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낮아졌고 노동시간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국의 노동시간은 선진산업국들 중 가장 높다. 노동자들은 사치스런 생활양식을 포기해야 한 반면 기업의 이윤은 엄청난 것이었다. 존 듀이와 같은 학자는 ''''국가의 생명''''이 이와 같은 기업화 전략에 -그는 산업적 봉건주의라 부른다.-의해 지배될 때 민주주의라는 형식은 아무런 실체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영자의 지배 하에 들어가 종속되고, 정치는 거대기업의 들러리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세계화를 주창하는 WTO의 보호 하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 나라의 피해와는 상관없이 그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 최근 세계은행의 분석을 보면 세계인구의 상위 5%와 최하위 5%을 비교했을 때 1988년 78대 1인 것이 93년에 114대 1로 벌어졌다. 전세계 인구의 상위 1%의 수입은 하위 57%인 27억명의 수입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종속된 국가들의 대처방안이 있느냐 이것 또한 논란이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때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가 가장 대표적인 처방전으로 제시된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단적으로 ''''대안이 없다 즉 TINA(There Is No Alternative)''''로 잘라 말했으며 이로 인해 실질적 민주주의는 급격히 퇴행했다고 한다. 그럼 민주주의는 절망적인가? 촘스키는 인간에 의해 결정되고 만들어진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수정될 수 있으며 이러한 책무는 여지껏 역사를 바르게 이끌어왔던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낙관하였다. 이 책을 통해 최근 진행되는 미국 주도의 세계 재편 시도가 얼마나 세계국가들의 합의를 얻고 있는지 미국은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며 제 주변 시민들도 이러한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만이 진정한 세계평화는 그 밑그림이 나타날 것이란 생각이 든다.
s******2 2002.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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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외교정책의 단순한 논리를 정리해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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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단 두페이지의 옮긴이의 구절들에서도 느낀 바 많다.     불량국가는 한동안 국제정세를 놓친 사람들에게 정리하기 좋은 책으로 생각된다. 어렸을 때(80년대~90년대 초반) 그냥 뉴스에서 흘려들었던 이야기에는 이렇게 목적과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냉전에서 현재로 어떻게 미국의 foreign policy가 변해왔는지 그 역사를 훑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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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단 두페이지의 옮긴이의 구절들에서도 느낀 바 많다.

 

 

불량국가는 한동안 국제정세를 놓친 사람들에게 정리하기 좋은 책으로 생각된다.

어렸을 때(80년대~90년대 초반) 그냥 뉴스에서 흘려들었던 이야기에는 이렇게 목적과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냉전에서 현재로 어떻게 미국의 foreign policy가 변해왔는지 그 역사를 훑어주는 책이다.

 

미국의 fp는 80년대 레이건 행정부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는 논리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아무도(국가는 그렇다쳐도 단체나 집단 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스토리라인은 매번 이렇다.

테러는 공포스럽다. 그에 대한 안보는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미국이 원래부터 공격하고자 했던(정치적으로 염두해둔)) 어떤 나라를 알고보니(?)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다. 또한 희안하게도 그 나라는 독재자가 국민을 핍박하고 있다(그렇게 프로파간다 되고 있다.). 무엇인가 미국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게 언론은 떠든다. 

 

실은, 그 순서가 반대일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염두해둔 나라를 처리하기 위해 테러를 가장하거나 언론을 통해 테러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핍팍받는 국민과 국제 안보를 위해 세계 경찰국가 미국이 나아가신다~!

(어쩌면 이 논리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 대체로 서구의 전쟁/정치사상을 지배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라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이런 논리(테러에 대한 국제 안보와 그 나라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로 폭격이나 돌진으로 그 나라를 침략한다.(그런데 그 명분에는 꼭 그 표적국이 유엔결의나 헌장을 위반하는 것으로 되어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 무력침략은 수많은 유엔결의나 헌장을 무시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침략 후, 꼭두각시 국가를 세우고 철수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원래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자원이 풍부하다면 원하는 바를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M&A와 vertical integration이듯, 힘이 있다면 손쉽게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 전쟁 아닌가 싶다. 그것이 현실주의자들의 논리이며 나는, 조지도 그러하듯, 현실주의를 매우 인정한다.

p*****e 2007.03.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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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던 미국의 정체 그리고 잠깐 생각해본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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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인격을 부여받고 책임은 지지않는 불멸의 존재인 집산주의적 법인체에의해 움직이고 있고, 세계의 여러나라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해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기업독재자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대우를 원하는 민중의 학살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것으로 그러한 바이러스(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가 퍼지지 않게 노력하고있다.    이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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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인격을 부여받고 책임은 지지않는 불멸의 존재인 집산주의적 법인체에의해 움직이고 있고, 세계의 여러나라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해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기업독재자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대우를 원하는 민중의 학살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것으로 그러한 바이러스(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가 퍼지지 않게 노력하고있다.


   이 글에 의하면 미국은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세가지 기둥인 세계인권선언(인권제도), 유엔헌장(정치질서), 금융규제(경제질서)를 무시한다. 왜냐면 돈이 안되니까. 춈스키 할아버지는 금융규제가 세계의 복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고 동아시아의 유래없는 발전은 적절한 규제의 덕분이었고 90년대의 금융자유화가 한국에서 IMF구제금융을 요청하게된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재산가들은 유럽과 미국식의 하이컬쳐(고급소비문화)를 탐욕스럽게 추구했고 재산의 해외이동을 통해 누진세금을 거부했고 재정위기때마다 구제금융을 끌어다 썼다.(물론 당연하게도 그곳의 대다수의 국민은 굶주리고 있다.) 이것이 수세기동안 자유시장 정책이 보여주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고, 금융의 자유화는 복지국가를 저해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라고 말했다. 또 구제금융은 금융의 채무에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지고있는 소수자본가들에게서 대다수 국민에게로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전가하는 방법이 되었다라고 했다.

 


정부의 공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낸 세금이 기업을 살리는데 쓰여졌지만 그와중에도 불법적인 대출이나, 그대출금을 사적인 지출로 바꾸어버린 뉴스보도를 보면서 나는 그 주장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한국의 미래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한국이 '라틴아메리카화'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것이다.


 위에서 말한 금융자유화이후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현상들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있다. 부의 불균형은 심화되었고 소수의 상위%자들은 명품에대한 열광을 통해 유럽과 미국의 소비문화를 좇던 라틴아메리카 자본상위층의 전형적인 행동을 답습하고있다. 그들은 또한 원정출산과 조기유학, 이민열풍으로 미국시민권을 얻으려는 강렬한 욕망을 표출한다. 



  결국 국가의 모든 부가 상위층으로 몰리고, 그 상위층이 부를 가지고 모두 미국인이 되어버린 뒤 우렁어미처럼 빈껍데기만 남은 나라에 하위90%의 절대빈곤층이 되어 남겨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촘스키 할아버지는 라틴아메리카의 허약한 공동체의식이 유럽과 미국의 소비문화를 탐욕스럽게 추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대적으로 더 강한 공동체의식이 이를 저지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결국 낡은 금언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우리의 위기를 구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 같다.



  노암 촘스키 할아버지는 언어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이 복잡했다. 그래도 글 자체는 국어책처럼 거슬리는데가 없어서 읽는동안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다. 다만 중학교때 읽었다면 글에 대한 이해가 더 잘됐을 거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했다. 요새는 감성도 이해력도 무뎌져서 이런 어려운 글을 읽기엔 내공이 딸린다. 그냥 아줌마처럼 '어머 세상에 이런일이' 하는 분개하는 기분을 에너지삼아 읽었다.

a****i 2003.07.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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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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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국의 도발   <<<    1988년 3월 이라크 할라바 지역에서 쿠르드족에 대해 가스 학살을 자행한 직후만하더라도 이라크에 대해 군사적인 공격을 해야 한다는 열렬한 외침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미국과 영국은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사람이었던 이 학살 주범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력하게 확대했다. ... 미국의 유도 미사일 순양함인 빈센트호에 의한 이란의 민간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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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국의 도발

 

<<<    1988년 3월 이라크 할라바 지역에서 쿠르드족에 대해 가스 학살을 자행한 직후만하더라도 이라크에 대해 군사적인 공격을 해야 한다는 열렬한 외침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미국과 영국은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사람이었던 이 학살 주범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력하게 확대했다. ...


미국의 유도 미사일 순양함인 빈센트호에 의한 이란의 민간 항공기 격추는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저지른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작전”의 절정이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미국의 예속국이 통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실천하도록 요구했다.   


1982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미국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때의 민간 손실은 쿠웨이트에서 후세인이 저지른 것을 훨씬 능가한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즉각적인 철수를 명령한 1978년의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예루살렘 및 골란 고원과 관련된 수많은 다른 결의안들도 위반한 것이었다. 미국이 상투적으로 거부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관련 결의안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탈이아에서 [‘합법적인’]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은 적어도 1970년대까지도 주요 프로젝트로 남아 있었다.

                                


기록을 보면 미국은 잔학행위를 선동하기도 한다. 그 한 사례가 미국으로부터 최대 군사원조를 받았던 터키에 뒤이어 새로이 군사원조를 받은 콜롬비아이다. 터키가 미국의 최대 군사원조 수혜국이란 지위를 내준 이유는 단지 클린턴의 지원을 받던 터키의 테러가 잠정적이긴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챔피언 콜롬비아는 90년대 들어 서반구에서 최악의 인권 유린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잘 준비된 장기적인 원조를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군사원조와 훈련을 현저하게 확대하려는 계획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를 해체하려는 미국의 주요 비밀작전을 감독하는 한편 인도네시아의 의회제도를 해체하는데 한몫함으로써 이후 40년 동안 계속된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게 되는 무대를 제공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라오스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자유 선거를 뒤집어엎었고 캄보디아에 대한 공격을 지원했으며 미얀마 정부를 전복시켰다. 남베트남에서는 예속 정권의 테러행위를 강화시키더니 마침내 몇 년 후에는 케네디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공격이 확대되었다. 이 국가들이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입은 장기적인 영향은 가히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1998년에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약품 생산시설의 절반을 파괴하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 ... <뉴욕타임즈>의 편집자들이 내세운 설명에 따르면 “테러분자들이 미국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는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장이나 훈련캠프에 대해 미국은 군사력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폭격은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1986년에 리비아의 주요도시들을 폭격했을 때에도 공식적으로는 “미래의 공격에 대한 자기방어”라는 식으로 정당화했다.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에서 1962년 사이에 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민간인에 대해 화학무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선구자이다.


1977년에 언론에 조그맣게 보도된 바에 의하면 미국이 쿠바에 대해 생물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더 끔찍한 사실은 이것이 계속되는 미국의 테러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쿠바는 지금껏 40년 동안 미국의 테러와 경제제재의 주요 대상국가들 중 하나였다. 그 시발점은 쿠바정부를 전복하려고 계획한 1960년 3월의 비밀 결정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쿠바 위협론은 아더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역사학자]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정책 방향을 신임 케네디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카스트로의 사상이 퍼져 나간다면, 이는 현재 다른 지역에서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요구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슐레진저는 후에 이를 ‘바이러스효과’ 또는 ‘썩은 사과 효과’라고 불렀다.   >>>

 

 

<불량국가>(이하 모든 경우 <<<~~~~>>> 의 경우는 노암 촘스키의 <불량국가>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에서 저자가 제공한 자료 중 극히 일부만 예를 드는데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각지를 아우르고 있다. 그 방식 또한 잔혹 행위나 침략 행위의 선동과 배후 지원, 타국 정부의 전복, 의료시설에 대한 폭격, 민간항공기의 격추, 각국(쿠바, 베트남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에 대한 생물학무기의 사용 등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노암 촘스키 씨 자신 역시도 (<불량국가> 내에서)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의 수법은 직접적 침략, 정부 전복, 테러뿐 아니라 속국들로 하여금 이러한 관행을 계속하도록 지원하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고.


미국은 “강력한 힘의 그림자가 협상 테이블에 드리워지지 않는다면 협상이란 용어는 그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미국무장관이 공공연하게 발언하리만치 패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시원이랄 수 있는) 유럽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에 전파하며 북미와 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에서 민중과 여론의 가치와 위상을 한차원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프로파간타를 자랑하는 미국이 왜 반미의 기류를 스스로 조장해낸 것일까?


특히나 위의 발췌문 중 맨 마지막 쿠바의 사례에서 아더 슐레진저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했다는 발언을 보자. 그들은 그들로부터 핍박받는 민중들이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요구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를 미연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의 기회에 대한 요구를 말이다.


이들의 세계관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이들의 국민을 대하는 정책들과 처우들을 보자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2.미국에서의 국민이란?


<<<    콜롬비아야말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가장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나라이며 미국의 군사원조와 훈련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콤롬비아에 대한 원조는 클린턴 정부 아래서 더욱 증가했는데,... 국제사면위원회는 마약과의 전쟁이 허구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러한 견해는 다른 국제 조사관들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최근의 마약과의 전쟁은 대부분 흑인 남성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이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죄수들의 과반수가 흑인들로 채워졌고, 흑인 죄수의 수감 비율은 백인에 비해 7배나 높아졌다.


미국 국내에서는 특히 마약과 같은 범죄의 공포가 “범죄 자체와는 거의 관련이 없거나 전혀 관련이 없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조장되었다. 국립형사정의위원회의 결론에 의하면 언론의 관행과 더불어 “국민의 공포를 조장하는 데에 정부와 사기업의 역할”도 이러한 요인 가운데에 포함된다. ......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잠복 중인 흑백 인종분쟁을 조장”...... 그리하여 “흑백 사이에는 화해할 수없는 심연”이 생겨나고, “미국은 사회적 재앙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범죄학자인 마이클 톤리도...... 체포에서부터 선고에 이르는 사법시스템 전반에 작용하는 인종차별적 절차들을 지적하면서.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인종-계층 상관관계도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은 콜롬비아와 다른 테러 국가들에서 국가의 테러 부대가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회 청소’ -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제거하는-의 또 하나의 유형이다.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은 나머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여 복종하게 만들려는 일반적인 수법이기도 하다.


법무부가 기업 범죄가 가져오는 피해가 거리의 범죄보다 7~25배 가량 높다고 추정한 사실은 깨끗이 무시된다.    >>>


이는 마약과의 전쟁 관련 부분만 발췌한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미국 사회가 인종-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윈사라손, 바바라사라손의 저서 <<이상심리학>>을 인용하자면 ‘소수집단의 높은 체포율과 수감률이 단지 반사회적 성격 및 약물남용의 진단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유전적 요인 심리적 요인 외에 사회적인 요인들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된다는 지적 일수도 있겠으나 위의 발췌문들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내재적인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조작되고 계획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도록 해주는 발언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특히나 부의 불균형, 계층 간의 심화는 인상적이면서도 메스껍다. 노암 촘스키와 같은 반세계화운동가들과 시에라클럽과 같은 환경운동사회운동단체들의 주장들을 접하며, 미국의 노동환경이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감소, 노동시간의 연장 임금의 삭감이 총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 그러면서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놓여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근간의 뉴스들과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종합할 때 이러한 추세는 자동차 시장의 연쇄 적자 사태나 원자재 가격의 버블, 전세계 노동환경의 악화, 미국 경제의 연착륙에 대한 불확신 등 경제환경의 불신 때문에 더더욱 피고용자들의 불안감만이 더해질 전망이라 추측되는데 이러한 상황 하에서 가장 어려운 사태를 겪을 이들은 역시 노동자들일 것이다.


히로세 다카시 씨의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을 보자면 1998년 말의 미국인의 평균 개인 소득은 대기업 경영자 평균의 1/358 이라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해 생각해 보자면 보통 미국인이 버는 것을 대기업 경영자들은 하루 만에 번다는 것이고 대기업 경영자들이 1년 동안 버는 것을 일반인이 벌자면은 적어도 358년은 걸린다는 말이 된다.(물론 죽지 않는다 해도 그 사이 경제환경은 바뀌리라는 논리는 배제하고서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어이없는 것은 이것이 평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인 평균개인소득과 대기업 경영자들의 평균 개인소득의 대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과 최고 소득자들 간의 개인 소득의 격차는 아마도 우리가 쉽사리 추측할 액수는 넘어서리라 짐작된다.

더욱이 우리는 해마다 부와 소득의 격차가 점점 더 현격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마주해야만 하지 않는가?


히로세 다카시 씨의 같은 책에서 20세기 말에 대한 언급을 하나 더 인용하자면 ‘20세기 말에도 인구의 1%에 불과한 극히 소수의 미국인이 미국 전체 금융 자산의 36%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100년 전의 부의 집중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미국뿐만이 아닌 (인권과 사회복지라는 가식적 위장으로 은폐엄폐하고 있는 과거 제국열강들의 연합인) 유럽이나 미국과 국제경제기구들 그리고 기업의 팀플레이에 와해되어버린 개발도상국들과 제3국가들, 그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범세계적인 현실일 것이다. 


다수의 빈곤을 담보로 해서, 다수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노동력을 제공함을 담보로 해서 상위 1%의 부가 극대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UNICEF의 추산에 의하면, 기본적 사회 복지에 누구나 혜택 받을 수 있게 하려면 ‘개발도상국들’의 연간 군사비 지출의 1/4이 필요한데, 이는 미국 군사비 지출의 단 10%에 불과하다 (<불량국가> 내 인용)”고 한다.  딱히 그사이 사회복지 혜택이 결여된 인원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이 책이 집필된 해를 고려해 그 사이 증가한 미국방 예산을 감안하자면 이제는 10%도 채 안되는 비용일 것이다.


세계의 복지는 커녕 미국은 자국의 국민에게까지 냉혹한 기만의 국가이다. 교도소로 입소하는 인원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최저임금 노동자로 활용될 것이고 범죄 검거 등으로 치안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공권력의 강제력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불안 심리는 911테러 이후 강경해진 데 더해 더한층 불안을 더할 것이다.


미국이 범세계적으로 타국가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내정을 간섭하며 자신들의 예속국가와도 같은 그들 국가의 정부가 해당국민들을 스스로 억압하도록 미국의 무기와 군사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전 위 1.의 발췌문들을 보아 아실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미국과 다국적 기업이 각 국가들의 노동과 자원 기간 산업을 침탈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각 해당국가들의 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 시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각국에 또 미국 내부에서 이런 사회 불안과 인종-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 시키는 것일까?



 

 

3. 미국의 대외정책


<<<    오늘의 세계에는 유엔헌장과 부속 결의안들,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 등에 기초를 둔, 모든 나라들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국제법의 제도와 국제질서가 있다.


모든 나라가 국제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한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


“오늘날 국제법은 미국에서 금세기 어느 시기보다 더욱더 무시되고 있다.”

     노암 촘스키의 불량국가 내 미국국제법학회의 1999년 3월호 소식지를 인용한 대목


‘이 학술지 편집자는 그전에도 미국이 “놀라우리 만큼 더욱더” 국제 조약의 의무를 파기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국제법에 구속받지 않는다.’


미국은 모든 국가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 거부했고, 유엔총회의 비슷한 결의안들에 대해서도 거의 유일하게 반대했다.


국무성의 법률고문인 에이브러햄 포파이어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견해에 동조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요한 국제문제에 관해서는 오히려 대다수 국가들이 종종 미국에 반대한다.”고 실토했다.     >>>



미국의 갈등 고조 심화 성향은 미국 내에서 뿐 아니라 처음의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예처럼 세계적인 것이다. 미국의 국제 결의의 파기, 국제법의 위반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나날이 가중된다면, 아무리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교대상이 없는 세계 최초의 단일 초강대국이라 한다해도 비난의 대상이 됨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극단적인 도발주의식 국가방침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다. 왜일까?


<<<    미국은 “핵무기 선제 사용을 금하는 정책”을 거부하고, 대신에 미국의 “응전이 사후 조치일 수도 있지만 예방적”일 수도 있음을 적국들에게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핵확산금지 조약(NPT)의 명시적 목표를 거부해야 하고, 조약에 가맹한 비해(非核) 국가들에 대해 핵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핵불사용보장조약”[Negative Security Assurances;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핵무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약속받는 소극적인 안전보장장치]에도 동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전략핵무기를 관장하는 미국전략사령부의 1995년도 비밀 연구보고서에 기본적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중략... 이 보고서는 미국의 치명적 이익이 공격당할 경우 비이성적이고 반드시 보복을 하는 국가로 그 자신을 묘사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략... 미국 정부의 어떤 요인 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통제불능일 수도 있다고 비춰지는 것이 오히려 적국의 정책결정자들의 마음속에 공포감과 의심을 조장하고 강화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닉슨의 미치광이 이론(mad man theory)을 부활시키고 있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미칠 수도 있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가공할 파괴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겁에 질려 우리의 요구에 순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닉슨의 ‘미치광이 이론’이다.    >>>        


핵은 쉽사리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안일히 여기지만 이희진씨의<한국전쟁의 수수께끼>에서 보더라도 한국전쟁 당시에도 야전사령부의 계획과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핵을 사용할 준비가 되었노라고 미국대통령이 직접 승인계획을 밝혔었다고 한다. 또한 ‘주한미군 핵배치’란 키워드로 2005년 신문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1958년부터 1991년까지 몇 백기의 각종 핵미사일을 전술적으로 한반도에 배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91년 이후 모두 철수했다지만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위의 불량국가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에서 보듯이 미국은 정책에서가 아니라 국가 자체가 정신분열 증세를 실제로 보이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미국은 이러한 비난까지 감당하면서 또 전 세계적 위협이 됨을 자처하며 이와 같이 무리한 수를 두는 것일까?


 

 

 

4.미국식 논리? 기업식 사고?


<<<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미국의회는 불법적인 무력사용을 강화하기위해 새로운 자금투입을 허용하는 법안을 즉각적으로 통과시켰다.


폭력의 부산물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무기의 생산과 판매가 증가되는 것이다. 국가는 무기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수년 동안 첨단기술 경제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무기 판매는 96%의 국민들이 반대했지만 첨단기술산업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되어 왔다.           >>>


켄 실버스타인의 <전쟁을 팝니다>나 피터 w. 싱어의 <전쟁 대행 주식회사>만 보더라도 미국이 군수산업가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예속국이다시피한 국가들에 무기를 판매하고 군사프로그램을 유료로 교육시키며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획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을 마치 사업을 확장하듯이 수행하고 스포츠를 즐기듯이 즐기고 있는 것이다.


위 2.의 미국에서 국민이란 난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종 간 계층 간에 격차를 심화 시키고 노동환경 또한 악화 시켜 놓았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모병제 체계 하에서는 갓 성인이 된 국민들이 쉽사리 모병공고들의 매혹적인 제안들에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최고액의 국방 예산을 자랑하는 미국이라지만 모병제 국가에서 지원병사들이 없다면 아무리 첨단병기의 전투라지만 군대의 의의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위 2.의 모략들은 최저임금노동자 양산과 사회혼란을 통한 공권력 강화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국민통제의 목적과 함께 전투병력확보 또한 목적으로 한 것인 것이다.

사실 미국의 국방예산이라한다면 전 세계 국방예산의 1/3을 차지한다고 한다. 세계대전이라도 준비하는 건지마저 의심해야할 규모인 것이다. 이런 지경에서 미국의 범죄와의 전쟁이 전투 수행 병력 충당을 노린 의도적 계략이 아닌지가 의심이 든다고 이상할 일은 아니라 본다.


하지만 아무리 호전적이고 미친걸 자랑삼는 국가(mad man theory를 비아냥 거렸을 뿐이다.)라 한다 해도 또 아무리 전쟁이 마진이 많이 남는 경제분야라 한다해도 과연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전세계적인 규모의 대대적인 침탈과 정부전복을 수행하는 걸까?


<<<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군부 쿠테타가 일어났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수하르토 정권이 몇  달 동안에 대부분 땅을 갖지 못한 농민들인 약 50만 명의 민중을 살육하고 있을 때,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증가했다. ...중략... 세계은행은 곧바로 인도네시아에 자금을 대출해주어, 이 나라는 이 은행의 3번째로 큰 채무국이 되었다.  >>>


<불량국가>에서 한문장 더 인용하자면 ‘국제 금융기관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은 금융 재난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대목이다. 그 시대에 대한 노암 촘스키 씨의 증언으로는 '1970년대 각국에 차관을 적극권장하기 시작한 것도 세계은행'이라고 한다. 또 '1982년 멕시코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기 바로 몇 주 전까지도 IMF와 세계은행은 차관 도입을 장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IMF, 세계은행, WTO 등 국제경제기구들과 미국이 공조한 팀플레이는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계획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으로 자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미미한 저항만으로 순조로이 미국과 다국적 기업의 침탈에 순응하는 각국 정부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보들의 세계인걸까?)


그들의 대전략은 정치*군사적으로는 각국을 내정간섭이 가능하고 정권교체까지 용이한 상황으로 유도하며 경제적으로는 해당국가와 그 국민으로부터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동시에 현재에서와 장래에 까지 능동적 수요층으로 활용할 다용도 다목적 다각도에서 완벽한 계획이 아니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다 인걸까? 이제껏 거듭 여러 차례 언급하였듯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 세계를 침탈하는 행위는 장래 전 세계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극단적인 대전략을 행사해온 해당 당사자국들 내부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국민적 반발과 적대적 여론이 형성될 소지가 크다. 어찌보면 아직까지 그러한 여론이 억압가능한 정도의 규모로만 형성되었을 뿐임이 더욱 이상한 것이 아닌가?


 

 

 

5. 여론의 통제


<<<       거대한 대중매체를 지배하는 사적 언론기관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유럽인권위원회도 언론의 과도한 집중이 세계인권선언 19조가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했다.


기업계는 사적인 언론기관이 미디어를 통제함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이미 고정된 사고로 제한하고자 시도해 왔다.


지배적인 언론사가 1984년 50개 사에서 오늘날 10개 사로 감소했음을 보고했다.


언론 소유주의 다른 금융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더 뻔뻔스러워진 뉴스조작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집중화된 광고비가 한줌도 안 되는 마케팅 담당자들의 손으로 모여들게 된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광고주들이 언론의 편집자들에게 어떻게 위력을 과시하는가...


어린이들은 이러한 대량 공격의 특별한 표적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격은 세계인구의 정신과 태도를 규격화하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과 웹은 거대한 이익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그것이 기업의 통제와 상업적 광고주의 통제 속에 들어가게 된다면,...중략... 인터넷과 웹은 사람들의 태도와 신념은 교화시키는 사명을 가진 새로운 수단이 될 것이다.   >>>   


911테러와 범죄와의 전쟁으로 미국인들은 아마도 매우 불안한 내적 상황 하에 놓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조작된 위험인지도 모를 일이란 것을 <체인지 루즈의 911테러분석 다큐 동영상>이나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을 보신 분들이라면 의심해보셨을 것이지만, 여기서 주목하자고하는 것은 위험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위험에 대한 여론과 국민들의 반응이다.


사회통제를 위해 정교하게 조장된 위험을 악용하고 있음을 위 2.의 인종계층간의 갈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사회통제를 위해 사용되는 방법들은 위험의 조작뿐만이 아니다. 진작부터 영화와 미디어 전체를 통한 대중심리의 통제가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암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에서 인용하자면 ‘미국은 선전산업이 세계최초로 발달한 곳’으로서 ‘선전산업의 임무는 대중심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전산업계는 요즘 가치로 환산해 매년 약 10억 달러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에 쏟아 붓고 있었다고 하는데, 폭발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1920년대에는 대중들을 거의 세뇌하다시피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정도가 워낙 심해지자 1930년대에는 미 의회가 위원회를 통해 조사에 착수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같은 책에 1900년대 초엽 크릴위원회라고 정부선전위원회의 가공할만한 역량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발족 6개월 만에 평화지향적이던 국민들을 선동해 광적인 전쟁지지자로 변모시키고 1차대전 이후에도 빨갱이 소동 등의 여론 조성을 통해 노동조합 파괴공작을 벌인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경우를 다들 과거였기에 가능했을 뿐이라고 치부하리도 모르지만 현재의 미디어 발달은 위와 같은 사례보다 상당히 더 강력한 각도에서의 여론 통제가 가능한 시점이다. 

 

<불타는 세계>의 저자 에이미 추아 씨가 지적하듯이 이미 인종 간 계층 간의 갈등은 전 세계적인 위험으로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이는 에이미 추아 씨의 지적처럼 힘의 논리를 최우선 시 하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그러한 비윤리적인 정책들과 대치되는 자유와 평등으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의 전파자의 역할; 양측을 미국이 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대전략의 착안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약간의 여론 조성만으로도 심대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으로 현실을 통제해온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여론조작은 오히려 한결 손쉬운 각도로 발달하고 있지 않은가?


UCC 등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국민정서를 통제하거나, 국가나 민족에 대한 특정 적대감 등을 심화 시키려 블로그나 공공 사이트 등에서 의도적으로 조작된 댓글 등의 설전을 통해 왜곡된 정서를 조장하고 여론을 조성하거나 하는... 이러한 방식으로 대중심리를 통제하자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위의 발췌문에서나 미디어 컨트롤의 인용구절에서 보자해도 우리는 각종매체들을 통해 우리를 통제하려는 집단이 있으며 각종매체들을 통해 대중들이 상당히 통제 당하고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광고 매체들은 우리를 무조건적인 현실긍정과 다각도의 소비패턴에서 만족을 얻도록 유도하고 있다. 브리트니스피어스의 LG 였나 삼성 핸드폰으로 전화 거는 파파라치 사진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생각해보자. 그 외의 기타 헐리우드 스타들의 쇼핑장면들이 그들의 팬들인 미국일반인들의 소비패턴에 미칠 영향을. 그리고 우리가 시청하고 있는 다양한 광고들을 떠올려보자. '그냥 친구가 진짜친구다.', 'Just do it!',‘함께해요’그 외에도 다양한 광고들을 나름대로 떠올려보자. 제품의 기능이나 디자인을 선보이는 직설적인 광고도 물론 있겠으나 제품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회적 요소들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아닌가? 그리고 기업들이 우리에게 세뇌하다시피 하는 내용들은 모두가 즉흥적이며 자극적인 또는 안락감을 근간으로 한다. 현실긍정이 무슨 문제냐고 할테지만 나는 기업의 의도와 이로 인한 사회풍토가 우려되는 것이다.


현실을 긍정하고서야 비로소 안정감 있는 소비문화의 육성이 가능해진다. 또한 쇼핑홀러가 되어 현실긍정과 자기만족에만 탐닉할 때 사람들은 눈앞에서 만연하는 사회문제들에 둔감하게 된다.

 

이럴 의도로 유포되는 캠페인이나 광고들의 효과로 인해 우리는 테러의 공포와 치안의 불안, 자살자들이 범람하는 현실을 체험하면서도 도살장의 소나 닭장 안의 닭들처럼 근거를 찾을 길 없는 현실 긍정 속에서 위험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안일함 속에 향략적인 삶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리라.


미국 내에서도 사회불안을 조장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추진하고 테러 우려를 근거로 사회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이며,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타국의 군사, 정치적 침탈을 자행하고 그 바탕 하에 초국적 기업들이 해당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유린하며 기본적인 식량문제, 생활을 위한 임금과 노동환경문제, 교육여건문제, 의료 등의 복지문제까지 난도질하듯 해체하여 자원과 노동력 착취를 완벽히 구가하면서도 해당국가 국민들을 자신들의 판매품들을 구매하는 구매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으로 하여 인도네시아에서는 장기밀매의 의도로 영유아들이 밀거래되고 있으며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 극빈층들 일부는 자신의 장기마저 내다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체의 일부를 교체하는 현대 서양의학의 특성 상 인체의 일부가 상업화되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은 이것까지도 의도하고 타국가들의 경제 상황을 낙후 시킨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디어의 세뇌에 이러한 사회문제들에 눈감아버리거나 둔감해진 채 기업의 농간대로 현실긍정으로 가득하여 풍부한 물질문명의 이기들을 소비하며 살아갈 때 미국과 초국적 기업들과 국제경제기구들의 대전략은 완수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목표가 어느 정도 완숙에 이르렀을 때쯤에는 그들이 착수한 전략을 완수하는 과정과 동시에 다음 전략을 위해 준비해온 새로운 전략을 펼쳐낼 것이다.

 

그러기위해 그들은 대중들이 산재한 문제들에 둔감했었음을 지적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늘 동시에... 문제를 야기하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병행하듯 진행되어왔는데 이것에 대중이 집중하거나 별일 아니라고 지나치게 되는 등의 계기는 역시 미디어의 프로파간타(선전)이다.


쉽게 말해 내부적으로는 갈등의 조성 등 문제를 야기하여 오면서도 다수가 자각하지 못하도록 표면적으로는 현실 긍정적인 풍토만을 조장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물이 코 아래까지 차올라 익사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즉, 테러와 폭력 살인 등 치안과 빈곤 질병 인권 그리고 만연하는 전쟁 등 사회적 국제적 문제들이 극한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갈등 속에 있음을 실감하도록 둔감하면서도 반사적인 감성을 갖도록 세뇌해 왔다는 말이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통해 쉽사리 예측 가능하듯 이제 그들은 위기감을 확산시킬 것이다. 절묘하게 마련해둔 해결책을 그들이 제공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우선은 선행해야할 것은 반전과 반세계화 반미로써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의도한 범세계적 갈등의 양산이며 본색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예측한 바이고 의도한 바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위적인 역사적 인류적 흐름이기도 하다.(그렇기에 그들 대전략가들에게 간혹 두려움과 함께 경탄의 마음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껏 거듭 되짚어온 과정들로 미국과 다국적 기업이 착수한 전략을 완수하면서 전개될 그들의 다음 전략의 기반이랄 수 있는 범세계적 규모의 반발에 그들이 의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범세계적으로 가혹한 정치 외교 군사적 만행을 스스럼 않고 행해온 그들이 상황을 타개할 복안이라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지 않은가? 이후 유럽으로의 권력 이양을 말이다. 

 

 

 

6. 초강대국 권좌의 이양


이미 거듭 되짚어 온 것을 보면 미국이 국제결의안을 위반하며 국제법을 거추장스레 여기고 일방주의를 고집하여 군사력을 행사하며 핵사용의 우려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인권선언 무시의 사례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민의 인종-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자기국가 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생계까지도 위협하는 최악의 국가임도 알 수 있다. 이 모두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서양세력의 선두를 유지하려는 책략의 하나로 미국이 악역을 맡고 유럽이 그 대안으로 등장하고자 하는 위선과 가식, 기만의 술수였던 것이라 추정된다.


미국의 일방주의(국제결의*국제법을 어기며 세계인권선언까지 당당하게 위반하는 유아독존격 행보)와 패권주의, 힘의 논리와 대조되는 유럽의 인권의 수호자,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복지국가 이미지, 유럽이 주창하는 다자주의 등은 오랫동안 계획해온 대전략의 과정이었던 것이라 추측된다.


사실 유럽국가들은 식민지 제국 열강들이었지 않나? 양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국가들의 독립 열기가 고조되고 대전 이후 이들을 군사력으로만 억압하기도 버거운데다 사회변화의 추이가 더 이상 무력으로 식민지들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열강들이 새로이 세계경영의 대전략을 수립하고 그를 완수해온 과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라고 본다. 브레턴우즈회의 삼자회의 등의 국제회의의 면면도 이러한 세계경영의 과정을 브리핑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 명료해 보이지 않는가?


그들의 행보만 보더라도 미국과 국제경제기구들이 마련한 바탕 위에 초국적 기업이 안착하는 형국이고 다차려 논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엊는다는 식으로 유럽이 어부지리를 노리는 형국이지 않은가? 더욱이 미국이 주도하여 야기해온 각국의 빈곤과 인권유린 문제를 마치 유럽이 천사인 양 위선을 떨며 나타나 개선한다는 잘 짜여진 진행과정들을 보면 정말이지 역겹기까지 하다. 미국은 기업형국가라 한다해도 유럽은 다르리라 기대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유럽의 발단 또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더더욱 이권중심의 결속이 그들의 효시이다.


이제 미국은 할당된 기간 동안 모든 역할을 마치고 왕관을 승계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      클린턴 행정부는 “나토가 유엔과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은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토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NATO 의 지휘권은 주로 미국이 주도해왔다고 하나, 이제 그 또한 정해진 수순 마냥 유럽의 영향력 하에 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 초에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상호협의를 통하여 NATO 내에서 유럽 국가들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제고 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공동으로 제시한다. ... 중략... 이 제안은 WEU(서유럽동맹)소속 국가들이 기존의 NATO의 지휘구조와 편제를 자신들의 관리 감독하에 두고 군사작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 미국은 NATO 총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1996년 봄 베를린에서 개최된 NATO 장관회의에서 이 계획을 승인한다.<유럽연합의 대전략과 동아시아 정책>’


바야흐로 미국 대공황까지 더해진다면 전 세계적 공황의 여파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인 양 이제껏 국제적 위법 위험국가의 대명사였던 미국에서 선량한 이미지의 유럽으로 자연스레 정치 군사 경제적 주도권이 계승될 것이라 예견된다.


하지만 모두들 이것은 우스운 비약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국가가 자신의 주도권을 계획 하에 타국가들과 연대하여 육성하고 이양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국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답변하겠다.


 

 

 

 

7. 진정한 국가?

 

<<<<      세계인권선언은 이제 그것을 고안하고 수호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의도와도 훨씬 달라지게 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불멸의 사람(법인)들에게는 인격체적 권리가 주어지게 되는데, 그들은 각종 제재로부터 보호받고, 그들 내부 작용을 통해, 경쟁자들과의 ‘전략적 동맹’이나 다른 연결을 통해 국내외 시장을 관할한다. 이러한 법인체들은 강대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그들로부터 결정적인 지지를 얻어 낸다.


신자유주의의 기본강령은 데이비드 록펠러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경향에 대해 언급한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정부의 역할 축소는 기업인들이 쌍수로 환영한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나머지 한쪽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누군가는 대신해야 한다. 그 일을 대신한 논리적 존재가 나는 기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많은 기업인들이 이일을 떠맡지 않아 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일이야. 내 일은 아니라고.’”


현재의 정책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은 집산주의적 법인체의 권리를 실제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권리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이 점이 NAFTA나 다자간투자협정(MAI)과 같은 무역협정이 노리는 목표이다. MAI는 당분간 대중의 압력에 의해 포기되었지만, 약간 덜 눈에 띄는 모습으로 다시 도입될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협정들은 기업 독재자들에게 전통적 의미에서는 실제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내국인 대우의 권리를 부여한다. ... 기업들은 또 상대 국가를 소유권 탈취 혐의로 고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소유권 탈취 혐의란 물론 자원이나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기업의 요구를 상대 정부가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위의 발췌문 중 정부의 역할 축소를 외치며 축소된 역할을 대신할 대안은 기업이라고 말한 이가 석유왕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록펠러로써 그는 1970년 대 삼자회의를 주최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즉, 세계경영을 주도해온 회의를 주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위의 발췌문들을 보면서는 그다지 실감이 안갈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일체를 걷고 있는 국가이다.

이를테면 기업과 극부층 개인이 지지 정치가를 후견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 국가라는 말이다. 마이클무어 감독의 [화씨 9.11]을 보면 부시 대통령이 군수업자들과의 파티석상에서 연설 중 “부자 여러분! 그리고 더 부자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반석입니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한국에서라면 꿈꿀 수도 없는 발언일 것이다. 그마만큼 미국에서의 극부층과 기업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대통령 부통령 재무장관 국방장관 등은 기업 소속이었다가 정계에 몸담았다가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 노선을 취하고 군부의 장성들까지 퇴역 후 기업에 몸담는 형국이 미국식이다.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미국 정계에 기업인사들의 영향력은 가공하리만치 절대적인데 미국의 진정한 정부는 곧 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할 지경이다.


주지하다시피 기업은 다국적이며 초국적이다. 국가라는 한계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 외에 북미나 유럽의 국가들 또한 미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형국이리라 추정된다. 그렇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인 중 한사람이 정부의 권한 축소와 함께 그를 대신할 역할을 기업이 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발언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정부의 권한 축소라는 것은 달리 볼 것도 없이 직설적인 말이다. 기존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정부의 역할을 결국 기업이 대신할 것이라는 것 아닌가? 어쩌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국가의 상위에 기업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돌아본 것만으로도 알겠지만 국가가 마치 기업을 보호하고 보조하기 위한 존재처럼 역할해오지 않았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우리는 바야흐로 모든 국가들을 경영하며 주도하고 그들의 배후에서 전 세계를 통제하는 글로벌기업, 국제경제기구들의 연합이라는 세력과 조우할 날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경제기구들이 사법기관이 되고 각 기업들이 행정기관이 되며 그들 극부층 기업인들 대주주들이 입법기관의 역할을 하는 완벽한 국가. 화폐생산의 민영화마저 그들의 계획대로 귀결 지어지고 나면 바야흐로 우리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궁구해보아도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잠시라도 저지하거나 개혁할 방법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가 연대하여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정치 경제 군사적  변모를 모색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선행해야할 것이다. 여러분의 세계를 여러분이 정말 사랑한다면... 지켜내야 할 일이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이 세계에 있고 그래서 이 세계를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각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것 여러분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일어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먹만 쥐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난 여러분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지켜야만할 무언가를 위해 움켜 쥔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기대하게만 된다.


 

 

 

 

 

 

 

 

참고문헌


<불량국가>를 근간으로

<노암 촘스키 미디어 컨트롤>

<유럽연합의 대전략과 동아시아 정책>

<위대한 전환>

<거대한 체스판>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전쟁을 팝니다>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

<미국경제의 유태인 파워>

<세계사의 주역, 유태인>

<마인드 세트>

<세계 경제>

<자본주의 역사 강의>

......

k****t 2007.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불량 지식인, 촘스키 선생?
"불량 지식인, 촘스키 선생?" 내용보기
내가 전공하는 과목은 '언론학'이다. 언론학과 '언어학자' 촘스키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살아있는 최고의 지식인'인 촘스키는 언론과 국가, 그리고 이 둘을 막후 조종하는 몇몇 거대 기업에 대한 '살아있는 최고의 비판가'이다. 이런 이유로 촘스키와 언론학도인 나와의 관계는 시작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저작은 어렵다. 실제로 '국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불량 지식인, 촘스키 선생?" 내용보기
내가 전공하는 과목은 '언론학'이다. 언론학과 '언어학자' 촘스키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살아있는 최고의 지식인'인 촘스키는 언론과 국가, 그리고 이 둘을 막후 조종하는 몇몇 거대 기업에 대한 '살아있는 최고의 비판가'이다. 이런 이유로 촘스키와 언론학도인 나와의 관계는 시작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저작은 어렵다. 실제로 '국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읽었던 촘스키의 글(물론 영문판)은 정말 해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어휘(vocabulary)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촘스키의 글을 번역하는 것 역시도 '어렵다' 최근에 번역된 촘스키의 미국 패권주의 비판서인 <숙명의 트라이앵글>을 '가장 나쁜 번역서의 표본'으로 꼽는 이유 역시 촘스키 글이 갖고 있는 난해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 <불량국가>는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다. 읽어가면서 마치 촘스키가 '한글'로 글을 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원저자의 박학다식함이 매끄럽게 펼쳐져 있고,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촘스키의 분노가 맨살에 그대로 꽂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당시 '노수석'이라는 학생이 죽었다. 그 후 2년 동안 군대에 들어가기 전의 기간동안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역을 하고 나서는 그간의 나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상의 모든 일에 냉소적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전 발생한 9-11 사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닌, 냉소주의 특유의 상대주의-"전쟁에 이기면 관군, 지면 반란군"-에서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를 깨달은 것 같다. 예전과 같은 뜨거운 마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이 지켜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또 '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 동안 '세계의 나팔수'였던 미국 언론이 침묵했던 여러 사태들에 대한 숨겨진 사실들을 폭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문제, 니카라과에서의 문제, 베트남, 쿠바 등 흔히 '불량국가'라고 미국이 정의한 그 국가에서 미국이 얼마나 '몹쓸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준엄한 폭로가 바로 그것이다. 탈구조주의자인 미셀 푸코는 촘스키와 같은 지식인상을 '허무한 박학다식'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 '일원성'과 '인권, 정의, 자유, 평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푸코의 적대적인 이론적 경향과 촘스키의 비판이 갖는 반억압적인 경향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섞여져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행했고, 지금도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 탈구조주의(탈근대주의) 이론의 탓일까? 사람들은 정치나 경제, 사회적 구조와 같은 거대한 주제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제는 '미시 권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또 현재의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든 대안은 '근대의 폭력성'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너무도 손쉽게 단정짓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국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국가에 대한 국민의 통제권도 약해지지는 않았는가? 기업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옆에 있는 이웃들의 어려움을 '나랏님도 구제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탈구조주의자인 푸코 역시도 <감시와 처벌>이라는 저작을 쓰면서 감옥 내에 일어나는 미시권력의 억압적 요소를 철폐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촘스키와 푸코는 대립되는 인물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비록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상호보완적인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상적인 정부의 역할마저도 감소시키고 작으나마 인류가 이룩한 인간다운 삶의 근원마저도 '보이지 않는 손의 신성화'를 통해 파괴시키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자신만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IMF의 구제 금융을 받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탈피하였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친구와 선배들은 '산업예비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현실이 과연 '개혁'인가? 여기에 대해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촘스키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촘스키의 생각에 대해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경청을 할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범죄의 고발은 같은 기간에 서구 열강들과 그 속국들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공격에 의해 어떤 참화가 빚어졌는가를 고려할 때, 더욱 힘을 얻는다. 여기서 기록을 다시 살펴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블랙 북>이 출간되기 전에 공산주의 범죄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사실(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공격으로 일어난 범죄-옮긴이)도 주요 여론 주도층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라이언은 <블랙 북>의 저자들이 과감하게 다음과 같은 '큰 질문'에 맞서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반도덕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와 나치즘 가운데 누가 상대적으로 더 나쁘냐"는 것이다. 비록 "죽은 사람의 수로 본다면 공산주의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덕성의 저울대에서는 나치즘 쪽이 더 많이 가라앉고 있다고 라이언은 결론짓는다.
4*******i 2001.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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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내용보기
미국. 세계최강의 나라. 현재 지구촌을 움직이는 나라. 종종 한국이 미국의 종속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 발달된 대중문화의 나라. 이 정도가 현재 우리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관심있어서 좀 더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강 위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고, 점차
"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내용보기
미국. 세계최강의 나라. 현재 지구촌을 움직이는 나라. 종종 한국이 미국의 종속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 발달된 대중문화의 나라. 이 정도가 현재 우리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관심있어서 좀 더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강 위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일어났고, 점차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던 중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활동적인 정치평론가 노암 촘스키의 본 책을 읽게 됐다. 그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성, 그리고 국제 단체를 뒤에서 조종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초토화 시키는 과정은 정말 미국이 발표하는 소위 불량국가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반미를 외치면서 운동할 생각은 없다. 또 미국을 무작정 증오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y******a 2002.0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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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촘스키...딱 걸렸어
"처음 접한 촘스키...딱 걸렸어" 내용보기
불량국가...는 처음 접한 촘스키의 책이다. 9.11테러 직후 여러 관련 서적이 나왔다. 그런데 그 중 촘스키의 이름이 쏠쏠치않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이 책 역시 테러 직후에 나온 책이라, 책표지에 '미국은 왜 테러의 표적이 되었나?'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현지에선 그전에 나온 책이라 문구만 보고 샀다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까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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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는 처음 접한 촘스키의 책이다. 9.11테러 직후 여러 관련 서적이 나왔다. 그런데 그 중 촘스키의 이름이 쏠쏠치않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이 책 역시 테러 직후에 나온 책이라, 책표지에 '미국은 왜 테러의 표적이 되었나?'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현지에선 그전에 나온 책이라 문구만 보고 샀다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까지 미국이 저질러온 불량스러운 만행들을 파헤치고 있다. 읽는 나도 개탄스러움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는데, 당사자들은 어떠했을까 짐작해본다면 책표지의 글귀가 예사로 넘길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역자가 말했듯 '정말 이것들이 사실일까'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적어도, 이제까지 미국이 최고선이며 지상낙원으로 알아온 우리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지난 테러때만 하더라도 한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미국보다 더 미국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제서야, 미국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만도 약자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어왔는가 하는 통탄을 하게 된다. 사실 촘스키는 정작 미국내에서는 따돌림받는다고 들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 가끔 너무 극단적인 면만 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역자의 말처럼, 나도 촘스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옳은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태로 해서 유태인에 대해 감정이 안좋지만, 또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닌가보다.(사실 생각해보니, 이책에 선진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유태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던듯 싶다 맞나? 어려운 책이라 띄엄띄엄 읽다보니.. 참고로 촘스키는 유태인이라 들었음) 우리에게도 이런 입바른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비판 문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조금만 맞받아치면 말대꾸니 하는 걸 나는 굉장히 싫어한다) 그걸 발판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면, 잠깐 따끔한 거야 참아볼만 하지 않을까...싶다. 여튼 촘스키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촘스키, 딱 걸렸어!
b*******a 2002.06.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편견으로 보는 세계는 뒤틀릴 수 있다.
"편견으로 보는 세계는 뒤틀릴 수 있다." 내용보기
불량국가(Rogue States)란 무엇인가? 시사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분명 어디선가는 들어봤음직한 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북한과 같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인 국가들이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촘스키는 그의 저서 ‘불량국가’에서 그 불량국가를 두개의 범주로 나눈다. 하나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용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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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Rogue States)란 무엇인가? 시사에 어두운 사람이라도 분명 어디선가는 들어봤음직한 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북한과 같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인 국가들이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촘스키는 그의 저서 ‘불량국가’에서 그 불량국가를 두개의 범주로 나눈다. 하나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되는 문자 그대로의 용법이다. 전자는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이나 이라크와 같은 나라들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가 불량국가라 지칭하고픈 미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국의 만행은 비단, 타국이나 세계정세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해지는 것뿐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인구의 3분의 2가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에 반대하는데도 40년간 쿠바를 괴롭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UN을 비롯한 4개의 국제기관이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퇴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정세에 반대하는 미국, 그 미국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미국 정부. 미국을 불량국가를 만든 원인은 미 정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선진국임을 자칭하는 미국이지만, 그 불평등의 격차 또한 세계 제일이라는 점을 본다면 잘못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해지지 않을까.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는 사실상 그 존재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촘스키가 ‘미국은 없다’고 했던 것일까.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라는 이름아래 그들 정부와 소수의 대기업들이 자행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익추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국 이외의 강대국 - 예를 들어 영국이라든가 - 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나 다른 후진국, 개도국들을 상대로 불합리한 일들을 해왔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량국가인 미국은, 단지 미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주축으로 한, 권력을 남용하고 세계정책을 무시하는 강대국들을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를 미국에 떠넘기는 짓은 할 수 없어도, 많은 경우 미국이 문제를 저지르는 행위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들이 하는 ‘침략’행위는 분명 ‘월권(越權)’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과연 어느 정도일 것인가. 국민은 어리석을수록 지배하기 쉽고, 속이기 쉽다. 미국이 전쟁과 정책, 양 방면으로 힘없는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미국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의 문맹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꽤 높은 수치라고 알고 있다. 글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면 이런 촘스키의 서적과 같은 것들이 아무리 많이 발간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이해가 가능한 지식인들 이외에는 변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정부는 이것을 보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서민에게 과거의 응시 자격은 있었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실제로 응시할 수는 없지 않았는가. 실제로 과거뿐 아니라 외교나 군사에 관한 지식 등은, 비록 관리라고 하더라도 하위에 있는 사람들은 접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이 없었던 과거에 지식의 보관수단은 책과 같은 문서였고, 그들은 그 문서를 독점함으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그만큼 힘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대외정세는 평화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성이라면 군자금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어갈 때에 사실을 들이대면서 반발하고 나올 것이 아닌가. 국민들이 공부를 하고, 영리해지고, 지배계층의 일에 관심을 돌리면 그들로서는 골치 아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봉해놓은 대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익에 맞는 행동을 해 주도록 왜곡된 지식을 퍼뜨리고, 가르쳤다. 그들이 그렇게 지식을 독점하고 왜곡된 지식을 가르치는 행동은, 지금 한국 정부가 통일에 관한 문제를 꽁꽁 싸매두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만 골라 빼내서 이리저리 말을 만들어 내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이 가르치는 ‘왜곡된 지식’은 더더욱,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그들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제서라도 강대국이라는 호칭 이외에,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호칭을 얻으려면, 더 이상의 무차별적인 월권행위는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미국이 UN의 다른 국과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실상, 미국을 평범한 선진국 중의 한 나라로 전락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영국 등의 다른 선진국이 아무리 발전해도, 중국이 얼마나 성장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미국과 UN연합 가운데에서 우위를 정한다면, 당연히 UN쪽의 의사가 좀더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UN연합과 UN에 소속된, 다른 여러 나라들 사이를 중재해주는 ‘UN의 보조자’ 역할이 미국의 역할은 아닐까. 간단하게 예를 든다면, UN은 한 반을 담당하는 교사의 역할일 것이고, 미국은 선생의 보조를 하거나 학우들의 의견을 모아서 전달하는 반장의 역할인 것이다. 그 정도의 책임은, 그간 행사한 미국의 월권행위를 볼 때, 충분히 지어야 할 책임이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이익도 없는 불필요한 일에 나서서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책임도 짓지 않는다면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서, 국제질서를 무시해 가면서 까지도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행동은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UN의 힘이 강해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미국 내의 국민들이 지금보다 좀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정부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들에게 비판의 말을 던져야 할 것이다.
p***t 2005.09.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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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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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알면서도 어찌 해결할 도리가 없을 땐 차라리 모르는 게 맘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애써 외면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부조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겐 충분한 희망이 있으므로.. 미국은 9 11 테러 이후 북한, 이라크 등의 국가를 불량 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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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알면서도 어찌 해결할 도리가 없을 땐 차라리 모르는 게 맘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애써 외면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부조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겐 충분한 희망이 있으므로.. 미국은 9 11 테러 이후 북한, 이라크 등의 국가를 불량 국가로 규정했다. 미국은 자국에 해가 되는 의미에서의 적국들로서 그들 국가를 지칭했지만, 촘스키는 불량국가를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디(선전)로서의 용법이외에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한다. 즉, 촘스키의 의도대로라면 내부 규제가 없는 강대국들이 바로 불량국가인 셈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왜 불량국가라 불리어 마땅한지 명확한 사례와 증거들을 제시하며 주장한다. 우리는 매일 신문과 뉴스를 접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인다. 21세기에는 빠른 정보의 유통으로 세계 속에서 더 이상 무지로 인한 배척당함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방송 매체들은 911테러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한 테러를 알려줬고 이라크와 북한의 핵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갖게 한다. 보스니아에서의 내전은 민족과 종교가 다른 역사가 오랜 세월 내밀하게 곪아 드디어 터져버린 것이었고, 콜롬비아는 늘 마약 때문에 정부군과 게릴라간의 끊이지 않는 총격전이 벌어진다. 우리가 아는 진실들은 이런 것들이다. 그 뒤에 어떤 음모가 있는지 도대체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얼마가 거짓되고 위선적인 정보에 휘둘렸는지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을 지원한 것은, 40년 전 인도네시아가 농민층에 기반을 둔 좌파 정당의 정치 참여까지 허용할 만큼 민주적이고 독립성이 강하였기 때문이였다. 또한 콜롬비아 플랜의 목표는 콜롬비아 내부의 사회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농민에 기반을 둔 게릴라 병력을 제거하고 콜롬비아의 자원에 특혜를 받으며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미국의 이익과 연결된 엘리트들이 콜롬비아를 지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 이면에는 항상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 국가를 흔들어대는 놀라울 만큼의 이기심들이 있다.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설립된 여러 국제기구들의 의사도 무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정부정책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권력 형태인 지구적 자본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의 둔화와 생산성 후퇴와 금융 위기등이 발생했다. 전후 경제 질서를 해체한 것은 다른 대안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촘스키는 이것은 이기적 사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특정한 사회 경제적 질서는 인간이 결정하여 만들어 낸 결과이고 따라서 그러한 결정은 수정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촘스키의 바람대로 역사를 바꿀 자신의 이익을 뒤로 하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인가?
l******2 2003.02.26. 신고 공감 0 댓글 0